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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7

    <847 – 억울한 아이(2)>

     

    훌쩍.

     

    “오크노디 이 나쁜 녀석. 사람을 버려두고 혼자 가버리다니!”

     

    스노우빌은 담요를 두른 채로 코를 훌쩍거리다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자 코코아를 홀짝였다.

    아카데미 의무실에는 꼭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반죽음당한 학생들이 부활을 위해 리스폰을 하러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조난자들이 심신을 달래기 위해 이송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반죽음을 당한 선배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이송되니, 울다가 빨개진 눈이 코코아잔 뒤에서 이리 데굴 저리 데굴 정신없이 구르며 떨렸다.

     

    “얘 상태 왜 이래! 빌런조직이 아카데미를 습격이라도 한 거야?!”

     

    의료동 치유마법사가 기겁하며 벌떡 일어섰다.

    출혈부터 잡고 치료를 시작하는 치유마법사 옆에서 환자를 데려온 교관이 말했다.

     

    “북부는 땅값이 너무 올랐으니 차원코인 올라타서 소차원 개척하고 떼돈 벌겠다고 깝치다가 운석 맞고 반죽음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용케도 살아서 돌아왔네!”

    “혹시 치료비가 많이 든다면 이 녀석이 기절하기 전에 자기가 죽으면 마법시계에 올린 소차원 개척 연재글에 부고 소식만 올려달라고 하던데, 그냥 지금 올리고 부조금 펀딩 모으면 치료비는 되겠죠. 남는 돈은 반띵하시겠습니까?”

    “깨어나면 천천히 받을 테니까 그러지 마….”

    “뭐, 받는 본인이 그렇게 말하시니 제 손은 떠난 일이군요. 아무튼 고생하십쇼. 뭔 이런 어수룩한 녀석 때문에 야밤에 피나 잔뜩 묻고는. 쯧.”

     

    교관도 사람마다 강함의 차이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데, 저 교관은 대충 엿들어도 범상치 않았다.

    차원계를 넘나들며 구조 임무를 하니 일단 4학년과 동급의 강함은 확실하다.

    엽기적인 인성은 오랜 아카데미 생활로 망가진 상식과 결합하여 경험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기요!”

     

    스노우빌이 코코아 잔과 담요를 내팽개치고 부지런히 달렸다.

    교관이 흘끗 스노우빌을 곁눈질하고는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짓더니 부르기 전보다 3배 더 빠른 속보로 의무실 밖으로 향했다.

    황당함을 참지 못한 스노우빌이 항의했다.

     

    “사람이 부르는데 왜 부르기 전보다 더 빠르게 도망가는 건가요!”

    “일없다. 귀찮게 굴지 마라. 지금부터 구석에 짱박혀서 퍼질러 잘 거니까.”

     

    스노우빌은 교관의 성정을 간파했다.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하려면 마법과도 같은 말을 외쳐야만 했다.

     

    “돈!”

    “돈?”

     

    교관이 우뚝 멈췄다.

    실력자일수록 돈 들어갈 구석은 많다.

    허접은 못 다루는 고급 장비.

    허접은 못 먹는 고급 영약.

    허접은 모르는 고급 지식.

    전부 돈 주고 사려면 뒷골이 당길 정도로 비싸다.

     

    “돈 많이 벌 기회 나눠드릴게요! 힘 좀 빌려주세요. 교관님!”

    “아카데미에서 포인트 부족한 녀석들이 미친 짓 벌이는 일은 일상처럼 만연하다. 방금 의무실에서 본 얼간이도 그런 녀석 중 하나지. 너랑 저 얼간이는 뭐가 다르지?”

    “전 지금도 돈 많아요. 앞으로는 더 많아지고 싶을 뿐이죠!”

     

    교관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스노우빌을 훑어봤다.

     

    “별로 부자처럼 안 보이는데?”

    “흥. 그거야 주목 받기 좋아하는 아이린이랑 다르게 저는 내색을 안 하니까 그렇죠. 비가시 모드 해제!”

     

    스노우빌이 마법을 해제하는 순간, 교관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4학년도 아닌 2학년 981기 학생이 갑자기 제국귀족마냥 전신 마갑을 착용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 비싼 걸 대체 어디서 구했지?”

    “흥. 청색마탑주의 제자를 우습게 보지 말아요. 마탑의 기둥뿌리를 뽑아먹는 차기 마탑주 후보가 받는 지원은 귀족가 후계자 못지않다고요?”

    “대책 없는 철부지는 아니었군. 좋다. 조금 정도는 어울려주지.”

     

    교관은 스노우빌의 저력을 인정했다.

     

    “내 이름은 올로스트. 978기 휴학생이자 교관이다. 결코 실력이 부족해서 진급을 미룬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도록.”

    “반가워요, 올로스트 선배. 전 스노우빌이라고 해요. 제 목적은 다크프린세스가 지닌 북부개발계획에 버금가는 다음 계획을 알아차리고 전재산을 꼴아박아 인생역전을 하는 건데, 이 꿈을 이루려면 선배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굉장히 느낌이 싸한데 그만 돌아가도 되나?”

     

    스노우빌은 냅다 달려가서 교관선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못 가요! 언제 어느 땅의 부동산이 수만 퍼센트 폭등할지 모르는데 오크노디 뒤만 쫓다가 이대로 허망하게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요!”

    “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 같은데 아카데미 선배로서 유익한 조언을 해주지. 사고뭉치 주변에는 함부로 접근하지 마라. 기사학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교훈이다.”

    “기사학부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있었지. 전도유망한 검술명가 일곱 곳이 하루아침에 가문검술에 정통한 후계자를 모두 잃어버린 일이.”

    “!!”

    “10년 전, 라인하르트라는 검의 천재가 있었다. 그의 검을 꺾고 싶다. 터득하고 싶다. 온갖 이유로 재능 넘치는 검사들이 불을 발견한 날벌레처럼 뛰어들고 모조리 죽었지. 덕분에 현재 검술명가라는 녀석들은 대가 끊기고 세대가 교체된 잔챙이들이다.”

     

    올로스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실전된 가문의 기술을, 형님의 검술을 되찾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이야기하던 동기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나 동기와의 기억까지 스노우빌에게 말할 이유는 없다.

     

    “네가 얻어야 할 교훈은 오크노디의 부와 자산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라인하르트의 검술에 현혹된 이들이 충분히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모조리 명을 달리하고 그 가문마저 쇠락했던 수순을 따라 밟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그건…”

    “네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청색마탑의 은혜를 헛되게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스노우빌은 마법시계를 조작해서 소지자산을 보여주었다.

     

    ━━━

    스노우빌의 포인트 잔액 : 1억 2000만 포인트

    ━━━

     

    “이걸 천배만 불릴 수 있어도 1200억 포인트라는 거금이 모여요. 북부에서 일어난 부동산 대폭등을 고려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얼마나 대폭등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죠. 그렇게 얻은 포인트의 10%를 나눠드리겠어요!”

    “교훈은 도전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나 챙기는 거지. 그놈들은 좆밥이고 난 고수니까 다르다. 도박도 따면 그만이지. 오크노디가 어디에 있다고?”

     

    돈은 멍청한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지만, 엄청 많은 돈은 똑똑한 사람도 어리석게 만든다.

    스노우빌의 과감한 투자는 바보를 하나 더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오크노디의 투자계획을 듣고자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계획인데, 요즘 오크노디의 동선에 특이한 행적이 잡혔어요. 아카데미의 도전요소들을 하나씩 챙기고 다니고 있어요!”

    “기록한 지도를 공유해라. 이건… <마법의 미로 정원>과 <꿈나무의 숲>, <도서관>, <수련의 탑>, <교장의 유적지>인가.”

    “마법의 미로 정원에서는 도통 따라잡을 수가 없으니 오크노디가 오래 머무를 것 같은 시설에서 존버하다가 대화를 나누어야 해요!”

     

    올로스트 교관은 역시나 악명 높은 다크프린세스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크노디의 출몰장소라는 곳들이 하나같이 정신 나간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법의 미로는 일단 아닌 것 같아요. 너무 빠르고 길도 어려워서 좀 그래요.”

    “잘 생각했다. 마법의 미로 정원은 교수나 교관들이 처분이나 관리가 귀찮은 식물몬스터를 무단투기했다가 처치가 곤란해지자 몬스터들의 탈출이 불가능하게 막아버린 일종의 거대 쓰레기통이다. 2학년 따위가 들어가도 좋을 곳이 아니다.”

    “오크노디는 왜 그딴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죠? 저 죽을 뻔한 건가요?!”

    “지름길로 다니겠다고 미로의 규칙을 위배하고 위험한 곳만 함부로 돌파하지 않으면 된다. 불을 지르거나, 미로 벽 위로 돌아다니거나, 노상방뇨를 하거나, 칼자국이나 마법표식을 남기거나.”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요?”

     

    올로스트가 정색하고 쳐다보며 물었다.

     

    “진짜 알고 싶냐?”

    “…아니요. 그냥 안 들을래요. 그보다 신경 쓰였던 건 절 구하러 왔던 위어드 교수님의 교관들인데 그분들도 설마…?”

    “아마 네 짐작이 맞을 거다. 교수의 명령을 받고 미로에 버릴 쓰레기들을 들고 왔다가 얼떨결에 인명구조를 했겠지. 아니면 전에 무단투기한 쓰레기들이 미로를 뛰쳐나오지는 않았는지 점검했다거나.”

     

    위어드 교수의 교관들이 불쌍한 2학년을 자진해서 순찰을 돌며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사고 치고 쫄려서 범행 현장을 서성거린 범인이었던 셈!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는 981기 사이에서도 도서관 원정대로 소문이 돌아서 알고 있어요. 거길 거르면 나머지 중에 잠복할 만한 곳이 있나요?”

    “솔직히 위험한 건 죄다 똑같다. 그래도 그나마 덜 위험한 곳은 있지.”

    “정말요?”

    “교장의 유적지다.”

     

    이름만 들으면 제일 위험하게 들리는 시설을 당당하게 손꼽아 버리니 불신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진지하게 하는 말이니까. 유적지가 애초에 뭐냐.”

    “역사적 잔존물이 남은 터전이죠.”

    “그럼 교장이 진심으로 빡쳐서 날뛴 자리에 잔존물 같은 게 남아있겠냐?”

    “죄다 잿더미가 되었겠죠?”

    “바로 그거다. 교장의 유적지는 교장이 때려부순 게 아니라 거꾸로 교장이 드래곤의 긴 세월 동안 사라진 것들이 재밌고 아쉬워서 만든 일종의 기억박물관이자 디지털 아카이브다. 4학년이 되면 정규 강의로 그 안의 기억을 하나씩 체험하기도 하지.”

     

    스노우빌은 혼란에 빠졌다.

     

    “그럼 4학년 강의 수준의 미친 위험도를 자랑하는 거 아닌가요? 근데 왜 이게 제일 안전해요?”

     

    올로스트는 쓴웃음을 지었고, 스노우빌은 곧 선배의 의도를 깨달았다.

    여기가 난이도가 낮은 게 아니라 나머지가 여기보다 심한 미친 장소였던 거구나.

     

    “참고로 내 추측을 더하자면, 오크노디가 교장의 수제자로 소악룡다운 후계강의를 듣고 있다는 소문이 교내에 떠돌더군. 이 장소를 들락거리는 이유도 아마 그런 후계수업의 일환이 아닐지 싶다.”

    “저 혹시 안에 안 들어가고 교장의 유적지 앞에서 오크노디가 나올 때까지 존버하면 안 될까요?”

    “오크노디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돈 되는 정보를 그냥 풀어주겠냐? 적어도 후계수업을 돕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겠지. 그래도 어지간한 4학년보다 강한 내가 함께 가주니 안심해도 좋다.”

     

    스노우빌은 선배의 호언장담만 믿고 용기를 냈다.

     

    “그래요. 까짓것 한번 들어가 보죠! 청색마탑의 후계자에 4학년급 교관이 있는데 뒤만 쫓아가는 게 힘들겠어요? 게다가 심마에 빠져서 요즘은 강의도 제대로 안 듣고 설렁설렁 놀러 다닌다고 하는데요. 막상 가보면 난이도도 쉽고 그러겠죠. 정원은 운이 없었던 거고요!”

     

    교장의 유적지에 도착하기 무섭게 때마침 오크노디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쓰실 거세요?”

    “마침 3인팟을 짜려던 참이었다. 같이 돌겠나?”

     

    교장의 유적지는 보통 여럿이 함께 돌지 않는다.

    그만큼 난이도가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4학년 평균보다 강한 올로스트는 오크노디 또한 어지간한 4학년보다 강할 것이라 계산하고 스노우빌도 그렇게 크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전력계산을 마쳤다.

     

    “음, 좋아요! 안 그래도 들어가보고 싶은 3인팟 유적지가 하나 있었거든요.”

     

    오크노디가 신이 나서 유적지 곳곳에 굴러다니던 마나보드 하나를 집었다.

    올로스트의 눈에 마나보드 위에 고대어로 적힌 제목이 보였다.

     

    <인형놀이>

     

    의외로 아이다운 취향이구나.

    안도감도 잠시, 이 제목이 <오모시로이> 교장이 적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아이가 적은 인형놀이는 바라만 봐도 흐뭇하지만, 교장이 적은 인형놀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했다.

     

    <스파이 아이>

    <염탐안>

     

    교장 몰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남긴 표식을 찾아보자 생환자들의 후기, 체험담이 보였다.

     

    -너도 인형이 될 거야

    -내려놔. 이 마나보드는 진짜 아니야

    -인형놀이 하자. 아, 인형은 너야^^

    -이 앞, 파산이 기다린다

    -교장이 악룡인 이유가 오늘도 하나 늘었다…

     

    “다른 걸로 하지 않을래?”

    “벌써 전원 켰는데요?”

     

    올로스트의 부탁이 무색하게도 정신체 전이를 알리는 화려한 빛이 세 사람을 덮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늘어나는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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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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