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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9

    <849 – 억울한 아이(4)>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기분좋게 사료를 배급하는 오크노디와 달리, 스노우빌은 내가 여길 뭐 하러 왔지 여긴 어디 난 누구의 심정이 되었다.

     

    ‘웃는 얼굴에 까맣게 속았지만 오크노디는 그 무시무시한 재단 이사장의 후계자. 다크프린세스였어요. 그 사악한 본성은 몬스터를 봐도 애완동물 보듯이 웃음이 나오는 건가요!’

     

    뱁새가 황새 따라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다리 짧은 뱁새처럼 힘없는 스노우빌이 다리 긴 황새처럼 보법부터가 다른 다크프린세스를 따라하려고 한 결과가 이 마수배급소 사육사 노릇이었다.

     

    “꾸에에에에엑!!!”

    “키야아아아악!!!”

    “가르르르르르!!!”

     

    앞다리살을 던져주기 무섭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마구 물어뜯는 악어몬스터.

    그 뒤로 레어메탈 부리가 달린 거대 닭들이 근처 몬스터들을 날개로 마구 후려치며 밀치고는 파다닥거리며 얼른 밥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겁먹은 스노우빌이 떨리는 손으로 고기를 던져주기 무섭게 몇 마리의 닭들이 초당 십여 번에 달하는 날개짓 난타전을 벌이더니 피투성이가 된 동족을 짓밟은 승자가 먹이를 부리로 꿀떡 삼켰다.

     

    “구우우?”

     

    두려움에 먹이를 주는 것마저 잊고 우뚝 멈춘 스노우빌 주변 몬스터들의 흐리멍텅한 눈에 점점 흉포한 기색이 어리기 시작했다.

    매료의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먹이 주는 노예 대하듯 바라보던 시선이 아 얘도 먹이였지? 하는 자각으로 점차 변해가는 것이다.

     

    “라, 라아아…”

     

    급히 노래를 불러보려 애쓰며 먹이를 나눠주는 스노우빌이었지만 두려움에 몸이 굳은 나머지 그만 실수로 먹이통을 놓치고 말았다.

    철퍼덕

    와르르르르

    콸콸콸

    난장판이 된 바닥에 우르르 달려드는 몬스터들에 놀라 더욱 기겁하며 뒤로 자빠진 스노우빌.

    그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람 하나는 한입에 삼키고도 남을 5m 크기의 자이언트 터틀이 군침을 흘렸다.

    끈적한 침이 얼굴을 적시자 스노우빌의 얼굴에 울음기가 감돌았다.

     

    “라, 라아… 라아아…!”

     

    울음기가 커질수록 노래와 음정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아타락시아의 수녀원에 깃든 노래 기도술 보정의 판정도 점차 어긋나는 음정에 의해 보정이 들어갔다 취소되기를 반복했다.

    동나버린 먹이통과 흔들리는 판정에 점점 흉성이 깨어나고 있는 몬스터들의 눈빛이 변했다.

     

    ‘제발, 전 먹이가 아니에요. 노래, 노래 부를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그니까 제발!’

     

    보는 이가 측은지심이 들 정도로 불쌍해져가는 스노우빌.

    그녀의 위기를 눈치챈 올로스트 교관이 급히 다가와 먹이를 던졌다.

    그러나 이미 스노우빌을 먹이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몬스터들은 좀처럼 고개를 뗄 줄 몰랐다.

     

    ‘젠장. 이런 위험한 소굴 한복판에서 기어이 실력을 드러내야 하는 건가?’

     

    결사항전마저 각오하려던 순간, 구원의 손길이 두 사람에게 내밀어졌다.

     

    “얘는 내 친구야. 먹으면 안 돼!”

     

    노래를 부르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하는 오크노디.

    같이 먹힐 작정인가?

    아니면 어그로를 분산해서 살리려는 속셈?

    올로스트는 두 배로 사태가 꼬였다며 기겁했지만 정작 몬스터들의 반응은 그의 우려와는 달랐다.

    오크노디까지 먹이 취급하고 달려드는 대신, 도로 탁한 눈이 되어서 얌전히 제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라아아…?”

     

    노래를 부르며 의아함을 드러내는 올로스트에게 오크노디가 태연하게 말하며 대답했다.

     

    “노래는 매료를 거는 매개체일 뿐, 신성술을 다룰 수 있다면 영창 없이 무영창으로 마법을 쓰는 것처럼 정해진 형식 없이도 신성술 효과를 볼 수 있죠!”

     

    놀랍게도 오크노디는 아타락시아의 신성술을 노래 없이도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아타락시아의 수녀원에 깃든 술식보정효과 없이 그녀가 개인적으로 신성술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세상에,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최악의 외신숭배자 다크프린세스가 신성술을 익혔다니!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마치 마왕이 인간들의 신의 힘을 빌리는 것처럼 골때리는 상황이었지만 아무튼 오크노디의 도움 덕분에 스노우빌이 목숨을 건진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아이였기에 더욱 마음이 쓰였던 올로스트는 너무 놀라 넋이 나간 스노우빌 대신 고마움의 감정을 담아 눈인사를 보냈다.

     

    “오크노디 신입수녀, 신입들의 실수를 완벽하게 커버했더군요. 아주 훌륭했습니다.”

    “헤헤. 멀 이런 걸로 칭찬하세요. 동기 끼리는 서로 돕는 거죠 머.”

    “다른 신입들도 많이 놀랐을 텐데 끝까지 열심히 살아남아서 감사해요. 보충받은 수녀를 바로 잃으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거든요.”

    “전임자는 먹힌 건가요?!”

    “먹혀요? 아. 네 뭐, 여기서 그럴 수도 있죠.”

    “…”

     

    여기가 아닌 곳에는 또 뭐가 있는데?!

    스노우빌의 겁에 질린 시선에도 선임수녀는 휘파람을 불며 스윽 시선을 피했다.

    이젠 그냥 세상이 다 미워지는 스노우빌이었다.

     

    “선배님들. 저희 식사는 언제 하나요…?”

    “아,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밤에 눈을 감고 있으면 저절로 영양이 보급되거든요.”

    “…네?”

    “참고로 눈은 절대로 뜨지 마시길 바랍니다. 일어나자마자 빈자리를 치우기는 귀찮거든요.”

    “혹시 저 집에 가도 되나요?”

    “집이 여러 개가 있는데 어디가 좋으세요?”

    “저희 집은 하나인데요…?”

    “아니에요. 오늘부터는 여러 개랍니다. 저희 수녀원에 가입하신 분들은 다들 다주택자 만들어드려요.”

    “집이 어디에 있는데요…?”

     

    고참수녀가 아타락시아 수녀원의 다주택 복지혜택을 알려주었다.

     

    “우선 사시사철 언제나 시원하고 신선하게 보관되는 냉장고가 있답니다.”

    “아 집에 냉장고가 있구나.”

    “아니요. 냉장고가 집이에요.”

    “네?”

    “거기서 사는 거예요.”

    “저 그런 집 싫어요…”

    “아 추운 거 싫어하시는구나? 그럼 화장터도 있어요.”

    “몬스터 사체 소각하고 불멍 때리는 곳인가요?”

    “아뇨 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거 그냥 죽는 거 아닌가요?”

    “당연하죠. 들어올 땐 마음대로여도 나갈 땐 죽어서 나가는 게 수녀원인 거 모르셨나요?”

     

    진짜 집에 가고 싶다.

    현타가 온 스노우빌이 힘없이 주저앉자 고참수녀가 상냥하게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비좁아도 안락한 관도 있는데 거긴 추천 안 해요. 배고픈 식객분들이 간식 먹으려고 수녀원 근처 공동묘지를 자꾸 파거든요.”

    “…”

    “아직도 집에 가고 싶으세요?”

    “아니요…”

    “그럼 앞으론 잘하자. 알았지?”

     

    시종일관 존댓말로 일관하던 고참선배의 반말에 정색이 더해지니 바짝 얼어붙은 스노우빌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훌쩍훌쩍 소리를 죽이며 침상에서 울던 스노우빌은 옆에서 툭 날아와서 머리를 때리는 무언가에 서럽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해서 홱 돌아봤다.

    옆 침상에는 꼭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나와서 밤에 잠 안 자고 옆 사람 깨우는 못된 친구처럼 졸음기가 하나도 없는 말똥말똥한 눈망울의 오크노디가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툭툭 던지고 있었다.

     

    “자요?”

    “잘 거예요.”

    “지금 자면 내일도 하루일과 똑같이 이어지는데.”

    “…안 자면 뭐가 달라져요?”

    “수녀원의 비밀을 더 빨리 찾아내고 일찍 돌아갈 수 있죠!”

    “…돕겠어요. 이 무서운 수녀원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어요.”

     

    밤이 되자 침대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걷는 오크노디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런 스노우빌의 뒤로 어느새 자연스럽게 남자 일꾼 전용 숙소에서 올로스트가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수녀원에 남자는 어떻게 있는 건가요? 금남의 구역 아닌가?”

    “노예는 남자가 아니다. 도구지.”

    “아앗.”

     

    정말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시설이었다.

     

    그르르르릉…

    크르르르르…

     

    코고는 소리조차도 위협적인 몬스터 숙소를 지나치니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마다 새겨진 술식을 자연스럽게 걸음 한 번마다 상쇄하는 오크노디를 따라 내려가니, 쇠창살이 달린 어두컴컴한 감옥들이 있었다.

     

    “이얍!”

     

    오크노디가 감옥 안으로 조명마법을 날리자 스노우빌이 기겁하며 지팡이를 툭 쳐서 조명을 바닥에 깔아버렸다.

    그러나 이미 빛에 어그로가 끌린 감옥 안 죄수가 네발로 후다닥 달려와 창살에 매달렸다.

     

    “누구세요? 저 좀 꺼내주세요. 제발요.”

    “수녀복? 왜 거기 계세요…?”

    “전 수녀가 아닌데 수녀 행세를 안 하니까 절 여기에 가뒀어요. 기도문을 외우거나 노래를 불러서 합격점을 받지 못하면 여기에 갇혀요.”

    “이런 미친 시설이 왜 존재하는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모험가길드의 실종자 조사의뢰를 받고 왔을 뿐인데. 이런 의뢰는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흐윽. 엄마 보고 싶어.”

    “오늘 본 고참수녀님이 무섭긴 해도 막 사람을 가둘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녀장이요. 고참수녀보다 그 위에 있는 수녀장을 조심해야 해요.”

     

    죄수의 말에 무어라 대답하려던 스노우빌의 입을 올로스트가 틀어막았다.

    오크노디가 재빨리 투명망토를 펼쳐서는 모두의 위에 덮었다.

     

    구석에 모습을 감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없이 불길한 마나를 지닌 무언가가 지하 깊은 곳에서 철퍽철퍽 질척한 소리를 내며 걸어 올라왔다.

     

    “이상하다? 여기서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왜 우리 멍멍이밖에 없지? 혼잣말을 했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저 좀 꺼내주세요!”

    “그럼 사제의 입문술식을 펼쳐보아요.”

    “난 전사라고. 마법사가 아니란 말이야!”

    “저런. 신실함이 부족하니 신성주문을 아직도 사용할 수 없나 보군요. 신앙이 없는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죠. 마치 멍멍이처럼요.”

    “난 모험가길드의 은패급 모험가지, 멍멍이가 아니야. 제발 풀어줘. 길드에서 내가 실종된 걸 알아차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쉬잇.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짐승은 걱정 따윈 하지 않아요. 네 발로 걷는 것이 편하고, 사람 말을 할 줄도 모르는걸요. 잘 생각해요. 당신, 말하는 법을 잊지는 않았던가요?”

    “?!”

    “그래요. 당신은 멍멍이. 사람의 말을 하려고 하니까 목소리가 나오지 않죠. 따라해요. 멍멍.”

    “멍멍?!”

    “참 잘했어요. 앞으로도 제대로 네 발로 다니면서 멍멍하고 우세요. 배움이 느린 당신은 수녀가 되기엔 너무 부족한걸요. 그래, 이사를 해야겠다. 개집치곤 여긴 너무 좁잖아요?”

     

    공포에 덜덜 떠는 모험가가 목줄에 이끌리는 개처럼 질질 발이 끌리며 복도 저 깊은 어둠 속으로 멍멍 소리와 함께 끌려갔다.

    한참 뒤, 지하를 벗어나 투명망토를 벗은 오크노디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인형 놀이는 수녀 행세를 하지 못하면 지하로 끌려가는 컨셉인가 봐요. 히히 재밌당!”

    “이게 왜 재밌어…?”

    “그치만 궁금하지 않아요? 수녀장보다 제가 더 수녀장 연기를 잘하면 저 수녀장은 어떻게 되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오크노디의 사고방식에 스노우빌은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노디노디야.

    눈앞에서 멀쩡한 모험가를 개로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수녀장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겠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흑막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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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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