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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니 프레이와 아서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나나 칼 같은 경우에는 이보다 더한 강행군에 적응이 되어있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지만 저들은 아닌 것이다.

   

   하여간에 요즘 애들은 근성이 부족하다니까.

   

   포셀 단장님의 기사 키우기를 경험해보면 그래도 잠은 재워주는 게 어디냐는 생각을 하게 될 텐데.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알른 가문의 훈련을 경험해 볼 생각이 없냐고 꼬셔볼까.

   

   내가 어떻게 강해졌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 넘어올 것 같지 않아?

   

   “루시 알른. 그래서 이제 뭘 할 건가.”

   

   34층 안전구획에 막 도착했을 무렵에는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니 이제 살만하다 그거야 아서?

   

   의욕적인 모습이 아주 보기 좋네.

   

   ‘몬스터를 사냥할 거에요!’

   “허접한 마물들을 학살해야죠.”

   

   “허?”

   

   내 계획은 아주 단순하다.

   

   34층과 35층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지금 레벨 대에서는 여기서 사냥을 하는 게 제일 효율적이거든.

   

   30대 층계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무장한 오크인데 오크의 특성 때문인진 몰라도 얘네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

   

   개인의 스펙보다는 물량으로 승부를 보는 놈들인 것이다.

   

   본래라면 숫자의 폭력이라는 무시무시한 컨셉이지만 게이머의 입장에선 다르지.

   

   젠이 많이 된다 라는 말은 곧 노가다하기 좋다 라는 소리니까.

   

   오늘 던전에서 강제 퇴거당하는 시간까지 죽어라 오크를 잡다 보면 레벨이 좀 많이 올라가지 않겠어?

   

   “겨우 그거야?”

   

   내 계획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프레이가 시시하다는 듯이 물었다.

   

   “오크 따위 상대해봐야 지루할 뿐이잖아.”

   “본인도 동감한다. 이 정도 파티 수준에서 오크와 싸우는 게 경험이 되는가?”

   

   대체 뭘 기대 한 거야?

   

   던전에 들어왔으면 던전 공략 아니면 노가다지.

   

   그 두 개 말고 할 일이 있을 리 없잖아.

   

   그리고 말야.

   

   여기까지 달려오는 것만으로 지친 기색을 보였던 두 사람이 저렇게 투덜투덜 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너네들 노가다가 쉬운 줄 아나본데.

   

   RPG 게임에서 제일 힘들고 고된 구간이 노가다거든?

   

   직접 해보면 느낌이 전혀 다를 걸?!

   

   ‘시시한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겠죠.’

   “시시하다고요? 정말로? 자신 있어요?”

   

   내 말에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아서는 슬며시 눈치를 봤지만 프레이는 달랐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녀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오크따위 아무리 상대해도 문제없어.”

   

   ‘정말이죠? 아무리 많아도 괜찮은 거죠?’

   “허접 검사. 정말이지? 허접한 오크들이 쏟아져도 아무 문제없는 거지?”

   

   “응. 당연.”

   

   방금 고개 끄덕였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작될 강행군에 동의한 거네? 그렇지?

   

   그럼 이제 난 아무 죄책감 없이 너랑 아서를 굴려도 되는 거구나.

   

   고마워. 프레이.

   

   네 덕에 마음의 짐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럼 시작하죠!’

   “자아. 움직일까요? 여기에 못하겠다고 징징대는 허접은 없을 것 같으니까.”

   

   *

   

   루시가 이야기한 사냥이 시작되고 나서 3시간이 지났을 무렵.

   

   아서는 자신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루시 알른은 현재 대륙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무가인 알른 가문에서 태어나 훈련을 받은 사람이란 걸.

   

   알른 가문에서 시행되는 훈련은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꽤 이름을 알린 기사들조차도 버티다 못해 부러져 기겁하며 도망치는 일이 잦다지.

   

   그런 곳에서 기사들과 함께 훈련을 받은 루시다.

   

   그녀가 단순한 오크 사냥 정도를 훈련의 수단으로 사용할 리가 없었다.

   

   처음 이 강행군을 설명할 적에 루시 알른은 학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 때 아서는 루시가 여느 때처럼 오만하고 자신 넘치는 말을 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달랐다.

   

   학살이라는 단어만큼 지금의 강행군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전방에 좆밥 오크 네 마리. 나보다 뒤처지는 허접은 없겠지?”

   “골목 돌면 꿀꿀대는 돼지 세 마리야.”

   “이번엔 여섯 마리네? 뭉치면 이길 줄 아나 봐. 허접들 주제에.”

   

   전투. 전투. 그리고 또 다시 전투.

   

   아서는 여태까지 얼마나 되는 오크를 사냥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그 수가 어림잡아도 백 마리는 가뿐히 넘기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오크를 상대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방에서 오크들의 공격을 가뿐히 받아내 주는 루시 알른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정확하게 오크의 목을 날려버리는 프레이가 함께 있는데 어려울 게 무어가 있겠는가.

   

   아서가 적절히 전위와 후위를 오가며 지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가뿐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아무리 오크의 수가 많다 한들 오크일 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중간 중간에 프레이가 혼자 튀어나가선 오크 무리를 섬멸하고 돌아올 지경이었으니.

   

   사냥이 시작된 초반부. 아서는 오크 사냥이 너무나도 쉽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것도 전투를 한 두 번 했을 적의 이야기.

   

   아무리 손쉬운 전투라도 그게 반복되면 슬슬 체력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처음처럼 움직일 수가 없는 만큼 전투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파티원 사이의 연계도 삐걱거리기 마련.

   

   어긋남이 많아지는 만큼 전투가 길어지고 처음보다 체력이 소모되는 것도 빠르다.

   

   본래 정상적인 파티라면 이렇게 되기 전에 휴식을 취하겠지만 루시 알른은 그러지 않았다.

   

   “별 거 아니라더니 벌써 지치셨어요? 역시 불쌍 왕자님은 허접 체력이시네요. 업어드려요? 우쭈쭈 해드릴까요?”

   

   쉬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저렇게 대답을 할 뿐.

   

   평소 같았으면 자신의 굴욕보다 냉정한 판단을 우선시 했을 아서였지만 루시 알른의 말엔 묘한 힘이 있었다.

   

   도저히 이 여자에게만큼은 지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든 아서는 이를 악물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 후 전투가 스무 번이 넘게 이어졌을 무렵 파티원들 간의 말이 사라졌다.

   

   루시 알른은 꾸준히 브리핑을 하고 지휘를 하지만 거기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더 이상 대답을 할 힘이 없는 것이다.

   

   프레이가 휘두르는 검은 처음보다 무디고 아서의 판단도 한 박자 늦어 오답이 되는 경우가 잦다.

   

   심지어 이 중에서 제일 체력이 좋은 루시도 실수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전투가 서른 번 가까이 반복 되었을 무렵.

   

   그들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아서는 자신의 몸 안에 머무르는 마력이 바닥나 있음을 느꼈고.

   

   프레이는 아무런 돌발행동도 하지 않은 채 숨만 들이키고 있었으며.

   

   그 루시 알른 조차도 지친 기색을 보였다.

   

   모두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칼 교수.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아무리 이 던전 안에서 안전하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죽음의 위협을 겪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상처나 부상은 얼마든 생길 수 있다.

   

   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파티에서 강행군을 유지하다간 분명 누군가 크게 다칠 터.

   

   아서가 그리 말을 꺼내자 중간에 서 있던 프레이도 귀를 쫑긋거렸다.

   

   자존심 때문에 말은 못하지만 그녀도 지친 것이다.

   

   “문제가 있나요?”

   

   말려주길 바라며 말을 꺼낸 아서였지만 칼의 대답은 그의 기대와 크게 어긋나 있었다.

   

   “이 강행군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네. 체력을 극한까지 밀어 붙이는 훈련이지 않습니까. 반드시 필요한 경험 중 하나죠.”

   

   칼은 말했다.

   

   던전에 들어갔을 때 파티가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는 없다고.

   

   필요한 순간에 쉴 수 있단 이야기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안전구획이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나온다면 참 좋겠지만 실전이 마음대로 풀리진 않죠. 던전의 공략을 끝마칠 때까지 한 번도 안전구획을 만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는 그 때를 위한 훈련이라고?”

   “예. 그러니 제지하지 않은 겁니다.”

   

   저 건방지고 오만하고 남 놀리기 바쁜 여자가 그런 걸 생각했다고?

   

   아서는 칼의 말을 듣고서 앞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애써 여유로운 체를 하며 앞장 서 걷고 있는 루시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이 자리에서 제일 힘든 건 그녀다.

   

   언제나 전위에 서서 적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그녀는 이 자리에서 제일 체력이 좋은 만큼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쉬자는 말 따위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루시 알른은 지금 자신을 지옥 속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경험을 쌓으러 간다 했던가. 이런 것이었느냐.

   

   “미안하네. 괜한 투정을 부렸군. 잊어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왕자님.”

   

   칼에게서 명확한 해답을 얻은 아서는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래. 아직은 이렇게 투정을 부릴 힘도 남아있지 않은가.

   

   루시 알른이 쓰러지기도 전에 먼저 쓰러질 순 없지.

   

   무슨 놀림을 당하려고.

   

   *

   

   생각했던 것보다 레벨업이 더뎌.

   

   문제가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 제일 큰 건 역시 체력이야.

   

   이게 게임일 적에는 파티원들의 체력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힘들다는 말을 내뱉을 줄 몰랐으니까.

   

   허나 현실이 된 지금은 다르다.

   

   아서도 프레이도 사람.

   

   저들이 아무리 평범함의 범주를 한참 뛰어넘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다.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첫 사냥과 마지막 사냥을 같은 속도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슬슬 한계가 보이네.

   

   처음엔 제멋대로 뛰쳐나가던 프레이조차 오크가 있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깨를 움찔거리는 걸 보면 슬슬 쉬어야 할 것 같네.

   

   ‘여러분들. 좀 쉴까요?’

   “거기 허접분들. 다리가 부들부들거리는 데 괜찮아요? 고개 숙이면 쉬게 해줄 수도 있는데요?”

   

   “괜찮다.”

   “문제 없어.”

   

   당연히 두 손 들고 환영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서와 프레이에게서 나온 답은 달랐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다.”

   “오크는 쓰레기. 여전히 손 쉬워.”

   

   지금 힘들어 뒤질 것 같아 보이는 데 더 강행해도 괜찮은 거야?

   

   설마 나한테 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가?

   

   뭐어. 어찌 되었든 자기들이 더 구르고 싶다는 데 내가 말릴 이유는 없지.

   

   *

   

   놀랍게도 아서와 프레이는 내 강행군을 끝까지 따라 왔다.

   

   중간중간에 칼의 주도 아래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그 뿐.

   

   마지막엔 서 있는 게 한계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내 뒤를 따라왔지.

   

   그 덕에 난 던전에서 강제 퇴거를 당할 때까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늘 하루 종일 올린 레벨은 3.

   

   그러니까 현재 레벨은 18이란 이야기다.

   

   너무 느려.

   

   하루 만에 목표치를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 정도로 처참할 줄이야.

   

   레벨이 올라갈수록 레벨업하기가 어려워지는 걸 생각해보면 레벨업에만 며칠을 바쳐야겠는데?

   

   원래 같았으면 내일도 던전에 들어가서 노가다를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내일은 선약이 있었다.

   

   내일은 소울 아카데미의 거리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

   

   한 사람의 게이머로써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는 광경은 봐야 하지 않겠어?

   

   이번에 소울 아카데미의 1학년 내내 깽판을 칠 악신님은 누구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 다치면 힐로 치료하면 그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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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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