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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EP.85

     

   이건 도대체 무슨 영문일까.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그저 평화로울 뿐인 작은 단칸방.

     

   그저 무심하게 솟아 있는 창밖 풍경을 보니 지금까지 있었던 것들이 모두 꿈이 아니었나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의 멸망도, 튜토리얼도……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 끔찍한 경험들이 그저 한순간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기 시작할 쯤. 모든 혼란을 잠재울 음성이 들려왔다.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나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의 메시지.

   뒤이어 튜토리얼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기다란 메시지가 나의 시야를 가렸다.

     

   —

   『4층 – 트라우마』

     

   주제 : 극복

   난이도 : A

     

   설명 : 잊고 살았던 지나간 시간. 누군가가 탑에 당신의 과거를 재현해냈습니다. 기억 속 저편에 잔류한 당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십시오. 당신의 미래가 역변하게 될 그 순간, 5층으로 가는 문이 열릴 것입니다.

     

   임무 : 트라우마 극복

   제한 : 30일

     

   보상 : 성좌 계약

   실패 페널티 : 제한 시간 안에 성공하지 못할 시, 사망합니다.

   —

     

   “……”

     

   빠른 납득이라는 정신 보호 스킬을 가졌음에도 한순간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하는 희망이 부풀었다.

   만약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이 평화를 누리고 싶다는 유혹에 빠졌으리라.

     

   아니… 시스템을 보고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우리에게 일상은 소중한 것이 되어 버렸고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낯선 기억이 되고 있었으니까.

     

   토끼가 4층에 들어오기 전, 우리에게 ‘그곳은 탑의 4층입니다’라고 강조한 이유가 이 때문인 듯했다.

     

   ‘정신 못 차리면 죽는다.’

     

   실패 페널티가 사망이었다.

   그나마 30일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막상 일을 진행하기 시작하면 그 30일도 부족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제야 들어오는 임무 내용.

     

   “트라우마를 극복하라는 건 뭔 소리야?”

     

   사실 나에게는 딱히 트라우마라고 할 것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 자체가 그다지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기에 특별히 불행했던 기억도 없었다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었다.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해 봐야 하나?”

     

   다시 말해, 지금 나에게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20살 언저리에 살고 있는 나의 시간을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의 시선이 구석에 곱게 충전 중인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과연 실제가 아닌 세상의 스마트폰이 제기능을 할지는 몰랐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터치했다.

     

   반짝.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오는 액정.

   거의 8~9년 전에 쓰던 물건이라 더 어색한 감도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달력부터 확인했다.

     

   —

   20XX년 8월 3일 여름.

     

   일정

   – 12시~20시 편의점

   ……

   —

     

   태어난 이후로 누구도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기에 스스로를 보살피기 위해 들였던 기록 습관이 이렇게 빛을 발했다.

     

   일정이라고는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 정도밖에 없었지만 당시의 나를 생각하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정이었다.

     

   “그럼 일단 편의점부터…”

     

   4층의 임무는 나의 트라우마를 찾고 그것을 막아 내는 것.

   평소의 일상을 보내다 보면 뭔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으음……”

     

   편의점에 도착한 이후, 나는 솟아오르는 어색함을 억누르며 편의점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점장님?”

   “아, 어 시인이구나?”

     

   앞머리가 살짝 밀려 올라가 이마가 넓어진 50대의 중년남성.

   당시에는 그저 일만 하고 돈만 받으면 된다고 여겼기에 지점장의 외모를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푸근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 응? 오늘 좀 일찍 온 거 같은데? 허허, 평소에는 칼 같이 맞춰서 오더니 웬일이야?”

   “아…”

     

   다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확실히 당시의 나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기억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무심하고 시간은 정말 칼 같이 지키던 학생.

   물론 그 성격이 만들어진 데에는 중, 고등학생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과거가 한몫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했다.

     

   “그냥 오늘따라 바람이 좀 쐬고 싶어서요.”

   “별일이네…… 뭐, 사실 나는 네가 빨리 와주니 고맙구나. 사실 오늘이 늦둥이 딸 생일이라서 말이야. 가능하면 조금 빨리 오라고 하려다가 미안해서 말을 못 하고 있었지 뭐냐.”

     

   나의 말에 지점장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조금 이르지만 오늘만 좀 부탁하마. 수당은 챙겨줄 테니.”

   “아,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지점장은 편의점 유니폼을 벗으며 문을 벗어났다.

     

   평범한 하루.

   그렇게 나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와 하루를 보냈다.

     

   ***

     

   4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과거에서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되돌아온 일상, 다시 만난 세상과 사람들.

   하지만 플레이어 모두가 김시인과 같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

     

   이제 갓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소녀 한가민.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과거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가졌던 안일한 생각임을 깨달았다.

     

   챙그랑!

     

   공중을 선회한 초록색 유리병이 벽에 부딪치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끝자락에 약간 남아 있던 소주의 향이 확하고 퍼지며 한가민의 코를 자극하자 그녀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씨XX이! 도대체 어딜 간 거야!”

     

   그녀에게 유리병을 던진 것은 바로 그의 아버지.

   그녀가 되돌아온 시점은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행패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간지 고작 일주일이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최악이었다.

   임무고 자시고 지금의 시기는 그녀가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때.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어왔지만 감히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면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씨발! 학교 안 갈 거면 빨리 나가서 네 애미나 찾아와!”

     

   그녀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악마가 지독하게 미웠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에는 독기를 풀풀 풍겨도 손찌검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술을 마시기만 하면 곧장 손이 올라갔던 악마.

     

   직장에서도 음주운전 때문에 잘린 주제에 꾸역꾸역 술은 처먹는 그녀의 혈육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다 못해 눈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고사리 같아진 손으로 작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트라우마의 극복. 탑이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벌컥!

     

   하지만 한가민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

   그녀의 어머니가 집을 나간 시기는 공교롭게도 방학과 겹쳐 있었다.

     

   ***

     

   초등학생이 집을 나와서 갈 수 있을 만한 곳은 고작해야 동네의 구석진 놀이터나 부모님이 늦에 들어오는 친구 집 정도.

     

   하지만 한가민은 어릴 때부터 머리가 비상한 꼬마였고 그것은 나이를 먹은 지금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어- 시원하다.”

     

   대로변에 세워져 있던 익숙한 은행.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은행에 들어선 한가민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공사판의 인부마냥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역시 흙바닥 놀이터 보다는 에어컨도 빵빵한 은행이 낫지.”

     

   심지어 은행은 초등학생이 오래 앉아 있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각자의 일도 바쁜데 사고도 안치고 얌전히 앉아 있는 초등학생을 굳이 왜 건드리겠는가.

     

   “그나저나……”

     

   한가민은 주변을 슬며시 돌아봤다.

     

   은행원과 뭔가 상담을 진행 중인 할머니.

   은행에 살며시 들어와 번호표를 뽑아가는 아주머니와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온 꼬마아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대화가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평화롭네.”

     

   얼마만의 평화란 말인가.

   대학교 교양 과제로 게임 회사를 찾아가 괴물을 만난 이후, 단 한순간이라도 멍하니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린 날이 있었던가.

     

   “……쳇.”

     

   한가민은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종이컵에 남은 물을 비워냈다.

   어차피 벌어진 일. 돌아오지 못 할 일상이다. 괜히 미련만 남겨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천장에 밝게 빛나는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트라우마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겨 내라는 말일까.

     

   “그나저나 아저씨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한가민의 머릿속에 묘하게 훤칠한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저히 과거가 상상이 가지 않는 인물. 자신과 같은 사람은 맞는지 비정상적으로 침착하고 지능적인 사람이다.

     

   그녀의 기준으로 그는 롤모델에 가까웠다.

   똑똑하고 행동력이 강하며 자신이 맞다 여긴 신념이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심지어 얼굴도 잘생긴 완벽에 가까운…

     

   “……내가 미쳤나?”

     

   아무도 뭐라고 한 사람이 없지만 혼자 얼굴이 붉어진 한가민이 괜히 고개를 털어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 김시인이 어떤 트라우마를 보고 있을지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걸 알아야 해결 방법도 떠오르고 그러니까! 아무튼 흑심이 생겼다거나 그런 게 아닌……

     

   쾅!!!

     

   “으익! 깜짝이야!”

     

   잡생각이 길어지는 순간.

   은행 내부에서 귀를 강타하는 소음이 들리자 한가민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안 되냐고요!!!”

     

   은행 직원의 맞은편에 앉은 학생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뒤를 돌아있는 상태였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복장이 교복이라 한가민은 그가 고등학생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아, 저 녀석.’

     

   한가민은 다시 의자에 앉으려다가 슬쩍 일어나 그들의 대화가 들리는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과거에 은행에서 쉬다 보면 한 번씩 저 학생이 나타났던 기억이 있었다.

     

   당시에는 고등학생쯤 되는 오빠가 소리를 질러대니 무섭기도 하고 딱히 관심도 안 갔기에 입을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쯤 되니 저런 학생이 도대체 왜 하루가 멀다 하고 은행에 찾아와 저런 행패를 부리나 궁금해진 것이다.

     

   그런데.

     

   “……엥?”

     

   그 학생이 답답한 마음에 슬쩍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 당시에는 당연히 못 알아봤겠지만 지금은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얼굴.

     

   은행 직원을 향해 무언가 요구하고 있던 고등학생은 그 게임회사에서 만나게 된 박조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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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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