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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흑색으로 도색된 소형 헬리콥터가 회색빛 하늘을 가르며 나아갔다.

         

       “개판이네.”

         

       “그러게.”

         

       헬기 안에 탑승한 두 여자가 씁쓸하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창문 아래로 내려다본 보스타니아 공화국은 황폐함 그 자체였다.

         

       간간히 보이는 고속도로에는 완전히 불타 방치된 차량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안 그래도 겨울이라, 변변찮은 녹지도 없어 공화국의 전경은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라 부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방문한 타국이 이런 모습이라니.

         

       레아의 꿈이 또 한번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레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샬롯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아빠가 해줬던 말이 있어.”

         

       샬롯 에버그린은 언젠가 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저 바다 너머 보스타니아 공화국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

         

       구름조차 맞닿을 거대한 마천루가 산맥과도 같이 줄을 지어 이어져 있는가 하면, 인류 문화와 기술 발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국가라 하였다.

         

       그 당시에도 티탄의 존재가 보고된 이후였던 만큼, 그녀의 아버지는 티탄을 물리치는 데에 주축이 될 국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공화국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처음 종전이 선포되고 바다 건너 타국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당시, 샬롯은 보스타니아 공화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기까지 했던 것이다.

         

       “정말 그 말대로더라고. 예쁘더라. 세인트 프랜시스는. 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멋이 있었어.”

         

       “응?”

         

       “그랬는데….”

         

       마치 가본 적이 있다는 말투, 몇 번의 회귀 동안에도 타국과는 단 한 번도 접촉해본 적이 없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던 그녀가 퍼뜩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레아가 곧장 질문을 삼킨다.

         

       보스타니아 공화국을 완전히 끝장낸 장본인이 바로 샬롯 에버그린, 그녀였으니까.

         

       “씨발.”

         

       샬롯이 홀연히 욕설을 내뱉었다.

         

       창가에 가져다가 댄 그녀의 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레아는 그런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괜찮아, 샬롯. 필요한 일이었어. 아무것도 모른채로 사령관님이 또 한번 회귀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정말 그럴까 레아? 난 아직도 내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려….”

         

       “그런 생각하지 마, 샬롯. 애초에 총통이 개수작만 부리지 않았어도 네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거야.”

         

       공화국의 중추이자 주요 교통로나 다름없는 세인트 프랜시스 지하철에 티탄들을 박아놓았다.

         

       그저 공화국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말이다.

         

       “아 생각해보니까 화나네! 개 씨발 미친 새끼, 그 전쟁광 새끼!!”

         

       레아 길리아드가 드물게도 욕설을 내뱉으며 화를 냈다.

         

       생각보다도 찰진 그 말투에, 점점 생기를 잃어가던 샬롯의 눈동자가 다시금 되돌아온다.

         

       “너….”

         

       “그러니까 내 앞에서 자주 욕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거 어떡할 거야?”

         

       레아가 놀란 미어캣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샬롯을 향해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다.

         

       지금 와서 제 손에 묻은 수많은 피를 향해 사죄하며 후회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

         

       그녀들은 그저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갈 뿐.

         

       전쟁이 끝난 이후, 이 세계에 도래할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그레이브야드 아카샤에 이식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의 영웅은 그것을 발판 삼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제국을ㅡ 아니, 인류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이끌어줄 것이다.

         

       인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라.

         

       루터스 에단이 언제나 강조하던 가치.

         

       레아 길리아드와 샬롯 에버그린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진짜 바보같이 착해서는….”

         

       레아의 진의를 알아차린 샬롯이 그녀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덜덜 떨리는 손을 꽉 말아, 주먹을 쥔다.

         

       “곧 있으면 도착이니까 준비해. 방사능에 피폭되서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으면.”

         

       일부러 틱틱거린 말에.

         

       “그것도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레아의 부드러운 답변이 돌아온다.

         

       곧, 완전히 망가져버린 도시의 전경이 창문 너머 들어왔다.

         

       세인트 프랜시스.

         

       그녀들은 지금 그곳에 남아있는 ‘티탄’의 잔재를 찾으러 도착했다.

         

         

         

       ***

         

         

         

       “너희 둘이 왜 여기에….”

         

       하인츠 비스마르크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모두 홀연히 자취를 감춘지 꽤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샬롯 에버그린은 총통 취임 이후, 가장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이었다.

         

       지금 당장 잡아넘기는 순간, 군인 신분으로는 과분할 정도의 보상금을 수령받을 수 있다.

         

       게다가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 모두 비무장이었으니, 제압하기는 하나도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하인츠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파병 이후로 좀처럼 펴지지 않았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하인츠가 냅다 소리를 내지르며 두 여인에게로 달려갔다.

         

       “야!!! 너희들ㅡ!!!”

         

       설마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는지, 레아와 샬롯이 당황하기도 잠시.

         

       어느새 빠르게 다가온 하인츠가 두 사람을 꽉 끌어안았다.

         

       “얼마나 걱정했는줄 아냐!? 레아는 갑자기 전역서 내고 실종되지를 않나! 샬롯은 수배범이 되질 않나!!”

         

       “그… 그, 그으래, 그래… 일단 이것… 좀 놓고….”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샬롯이 몸을 뒤트는 한편, 레아는 잠깐 당황했을 뿐 그녀도 덩달아 하인츠의 몸을 끌어안았다.

         

       “잘 지냈어, 하인츠?”

         

       “잘 지내기는, 제기랄! 이제야 전쟁터에서 좀 벗어나나 싶었는데 내가 이 먼 타국까지 끌려와야 되는 거냐고!”

         

       하인츠가 씩씩거리며 외쳤다.

         

       과장 하나 없이 100% 진심이었다.

         

       같은 그레이브야드 출신인 사람들이기에 보여주는 모습.

         

       적어도 그들 앞에서는 여단장의 품위나, 총통의 먼 친척이라는 신분을 염두에 두고 행동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레아는 좀 살이 빠진 것 같고, 샬롯은….”

         

       그제서야 한창 반가움에 들떠있던 하인츠의 시야에 샬롯 에버그린의 모습이 완전히 들어온다.

         

       “너, 눈 왜 그러냐.”

         

       “아… 이거 말이지.”

         

       누가 보아도 수상한 안대였다.

         

       적어도 눈병 같은 것으로 착용한 이유가 아님은 틀림없다.

         

       샬롯 에버그린이 어깨를 으쓱이며 안대를 뺐다.

         

       그러자 여전히 푸른 왼 눈과는 달리, 색을 잃고 혼탁해진 오른쪽 눈이 나타났다.

         

       “…!!”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 아쉽게도 우리 둘도 일일이 설명해줄 시간은 없고, 이것 좀 가져가.”

         

       놀랄 새도 없이 샬롯이 단말기 하나를 하인츠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세인트 프랜시스에서 들려오고 있는 티탄에 대한 소문은 들었겠지.”

         

       “샬롯, 네가 그걸 어떻게…!!?”

         

       “소문은 사실이야. 정확하게는 반만 사실이지만.”

         

       하인츠 비스마르크가 다급하게 단말기에 담겨있는 내용을 확인했다.

         

       도시 내부에 들어가 직접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에는 티탄의 사체 몇 구가 지하철역 인근에 늘어져 있었다.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샬롯과 레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이건….”

         

       “아직 놀라긴 이른데 말이지. 옆으로 계속 넘겨볼래?”

         

       그 말에 하인츠가 홀린 듯이 단말기를 조작했다.

         

       그 뒤로 이어진 사진은 완전한 폐허가 된 세인트 프랜시스의 전경.

         

       오른쪽 하단에 적혀있는 날짜는 바로 오늘이었다.

         

       “너희 오늘 여기에 들어갔다가 온 거야? 무슨… 특수부대라도 되는 거냐? 총통 직속에?”

         

       “그런 거였으면 이런식으로 접근하지도 않았겠지. 대관절 수배당하지도 않았을 거고.”

         

       “설마 그렇다면 정말로 네가 세인트 프랜시스에 핵폭탄 테러를 저질렀다고?”

         

       오랜만에 만난 전우들에 대한 반가움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느새 하인츠의 머릿속은 무수한 의문으로 가득찼다.

         

       “계속 돌려봐.”

         

       다만 샬롯은 그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고개를 까딱거릴 뿐이었다.

         

       예전 그레이브야드의 얼음마녀가 절로 떠오르는 이미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하인츠가 제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뭐야… 왜 웃어, 기분나쁘게.”

         

       “아니 예전 모습이 생각나서 그ㅡ.”

         

       단말기의 사진을 슥슥 넘기던 하인츠의 손길이 어느 한 사진에서 떡 하니 멈춰선다.

         

       “잠시만.”

         

       화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시험관.

         

       그 시험관에 담겨져 있는 존재를 알아차린 하인츠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설마.”

         

       “설마가 바로 그 설마야.”

         

       하인츠의 손가락이 또 한번 화면을 흝었다.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사진이었다.

         

       얼핏 보이는 시험관만 하더라도 스무 개가 넘었다.

         

       거기다 한 개체는 티탄 중에서도 가장 해치우기 까다로운 ‘여왕급’도 있었으니, 소형 티탄들을 생산하는 놈들의 전진 생산 기지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가 다급하게 날짜를 확인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3개월 전.

         

       보스타니아 공화국, 세인트 프랜시스에서 핵폭발이 관측된 일자였다.

         

       “그렇다면 네가 진짜로 수소폭탄을 기폭했고, 그 폭탄을 기폭한 이유가….”

         

       제 입으로 말하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지, 말꼬리가 점점 흐려진다.

         

       “응, 맞아.”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심각한 일이었다.

         

       “이건 병기국 내부 사진이잖아. 잠깐만, 너 설마 제국이 연관되어있다고 말할 생각이냐? 씨발… 여기도 진짜 시험관이 있잖아?”

         

       하인츠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되어버린 샬롯 에버그린.

       핵테러를 당한 세인트 프랜시스와 그 지하에 잠들어있는 티탄들.

       동일하게 병기국 지하에서 관리되고 있는 티탄.

         

       그리고 성십자여단.

         

       복잡한 퍼즐이 맞춰지듯, 마지막 조각이 이어지자.

         

       전신을 꿰뚫는 감각에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총통, 이 개새끼가.”

         

       한 마디였지만,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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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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