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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85 – 스노우볼>

     

    깃발경쟁전에서 학생들이 모은 깃발은 총 498개.

    그중 300개가 가짜이니 진짜는 198개가 남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중 진위유무가 이미 드러난 안전한 깃발인 오크노디 팀의 깃발을 노렸다.

    무려 63개나 되는 진짜 깃발들.

    그 근처에서는 대충 집어도 고확률로 진짜 깃발을 붙잡을 수 있다.

     

    “우리거만 대충 챙기고 빨리 오크노디네 깃발을 잡으러 달려!”

    “저희 팀의 진짜 깃발은 챙길 테니까 오크노디 팀의 깃발은 여러분이 가서 주우세요.”

     

    대부분의 팀의 전략은 같았다.

    마킹을 해둔 우리 팀 진짜깃발 몇 개를 한두 명이 챙기고 바구니를 지키는 사이, 오크노디 팀의 깃발을 가능한 한 많이 털어온다.

     

    “오크노디. 지고쿠는 총알이 없고 롯토는 머리털이 뽑혔어. 수치스럽지만 나도 힘이 꽤 떨어졌어. 깃발을 지키기는 힘들어 보여.”

    “괜찮아요. 우리 깃발은 전부 버려도 되니까요.”

    “우리 깃발을, 63개나 되는 걸 전부 버려?”

    “안 돼! 뭘 위해서 머리카락이 뽑히도록 저항했다고 생각하는 건데. 과제를 포기하지 마!”

     

    롯토가 울먹이며 외쳤다.

    팀이 깃발을 포기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뽑힌 고통이 남아서 그런지, 둘 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아파보이긴 한다.

     

    “걱정 말아요. 저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정말이지?”

    “저, 실은 진짜깃발을 구분할 수 있어요.”

    “뭐어어?!”

    “쉿! 다들 이리로 모여 봐요. 진짜 깃발을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게요.”

     

    진짜 깃발을 구분하는 법.

    그건 아주 간단했다.

     

    “진짜 깃발은 자세히 보면 빛의 투과율이 10%에요. 조금이지만 깃발 밑에 빛이 비쳐요!”

    “가짜 깃발은?”

    “가짜 깃발은 빛의 투과율이 20%부터 90%까지 엉망진창으로 섞여있어요. 깃대는 어떻게 구했어도 정작 깃발에 필요한 원단은 구하지 못한 거죠!”

     

    빛의 투과율이라니!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네?”

    “빛의 투과율. 원단 밑에 빛이 비치는 정도.”

    “조, 조기교육으로?”

    “굉장하네. 그런 걸 가르칠 생각을 하는 집안도, 그걸 배워서 실전에서 써먹은 장본인도.”

     

    격투기나 조금 배우고 그마저도 오크노디만도 못했던 롯토 입장에서는 진짜 천재란 저런 아이를 가리키는 건가 싶었다.

     

    “근데 투과율 10%랑 20%를 어떻게 구분해? 그게 그거처럼 보이는데.”

    “네? 그게 어떻게 헷갈려요? 완전 두꺼운 스타킹이랑 살짝 두꺼운 스타킹 차이잖아요.”

    “에엣. 그렇게 말하니까 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약속했던 시간이 됐다.

    급히 깃발을 뒤지는 학생들 사이로 급히 달려드는 오크노디 팀.

    가장 먼저 깃발을 거침없이 건져내는 사람은 역시나 에이스인 나였다.

     

    [당신은 뛰어난 안목으로 진짜깃발을 10연속 건져냈습니다.]

    [관찰 경험치+10]

    [시각 경험치+1]

     

    [당신은 뛰어난 안목으로 진짜깃발을 20연속 건져냈습니다.]

    [관찰 경험치+10]

    [시각 경험치+2]

     

    [당신은 뛰어난 안목으로 진짜깃발을 30연속 건져냈습니다.]

    [관찰 경험치+10]

    [시각 경험치+3]

     

    거침없이 쭉쭉 늘어나는 경험치.

    굳이 제 손으로 모은 깃발을 리셋이라는 강수를 둬가면서 다시 줍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짜 깃발을 고르는 방법만 알면 이 방법이 최대효율을 얻을 수 있으니까!

     

    “끄응…. 스타킹이랑 같은 투과율, 스타킹이랑 같은 투과율…….”

     

    입고 있던 스타킹을 벗고 깃발이랑 비교를 해가면서 진짜 깃발을 고르는 롯토.

     

    “롯토. 스타킹 반대쪽도 벗어줄 수 있어?”

    “당신 건 어쩌고 나한테 달라 그래?”

    “보다시피 난 다리가 굵어서 스타킹을 안 입느라.”

    “…그 굵기면 사이즈에 맞는 스타킹도 없겠네.”

     

    롯토는 순순히 반대쪽 스타킹도 벗어줬다.

    그러나 그것이 예상치 못한 파급효과를 일으키기 시작할 줄은 그들은 물론이고 나도 꿈에도 몰랐다.

     

     

    * *

     

     

    롯토가 스타킹을 벗는 모습을 본 학생들이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롯토, 귀족영애로서의 체면도 없는 건가요?!”

    “변방의 힘센 깡패에게 협박당했다고 스타킹까지 벗고 있다니!”

    “세상에! 너무 끔찍해요!”

     

    괴롭힘, 이지메, 성추행의 광경!

     

    “잠깐. 헤스티아라는 저 고릴라 여자, 오크노디의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았어?”

    “오크노디, 저 무서운 아이! 입학식 전에 자신에게 덤볐던 롯토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자신의 팀에서 나왔던 것이군요!”

    “우와, 솔직히 좀 깬다……. 변방 애들은 저 정도로 독종이야? 제국귀족보다 더하잖아.”

     

    오크노디의 만행을 성토하는 학생들 사이로 매스각키가 빽 소리쳤다.

     

    “다들 바보야~? 스타킹이랑 깃발로 비교를 하고 있잖아. 저게 공략법이라구♥ 너희도 벗어♥ 빨리♥”

    “과연, 스타킹을 쓰면 알 수 있구나!”

    “앗, 용사는 이미 스타킹을 벗고 있었어!”

     

    매스각키가 추종자들을 재촉하는 사이, 용사 이슈타르는 이미 자신의 스타킹을 벗어 깃발과 빛의 투과율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칫. 이 방식으로는 안 돼. 속도가 붙지 않아.”

    “아니, 우리한테는 잘 됐어요. 어차피 손대중으로 무게차이를 느끼고 진짜 깃발을 고를 수 있는 건 이슈타르 당신밖에 없었는걸요.”

     

    성녀 유피가 이슈타르를 따라 스타킹을 벗자 다른 여학생들도 구분법을 하나 둘 깨닫고 허벅지까지 올린 스타킹을 손가락을 끼워 조금씩 붙잡아 내렸다.

     

    “헉.”

    “야, 저기 봐.”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남학생들은 깃발을 찾아 헤매다말고 제 눈만 껌뻑거렸다.

    사방에서 스타킹을 벗으려는 여학생들이 바닥에 등을 대고 엉덩이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낑낑거리며 우아한 하반신을 드러내고 있다.

    눈이 즐겁다는 말이 실감되는 광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제국의 3대 공신가문 후계자들도, 변방의 안데르센 대공자도, 흑심 많은 원숭이수인 손오천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누가 찾아낸 방법인지는 몰라도 정말 고맙다!”

    “변태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저도 동감입니다.”

    “헛소리 말고 빨리 와서 도와줘, 지젤.”

     

    이사벨이 손짓하자 지젤의 실눈이 두 배는 커졌다.

     

    “도, 도와달라니. 뭐를?”

    “뭐겠어? 스타킹을 빨리 벗어야하는데 내려오질 않잖아. 난 레깅스 파라서 스타킹은 어렵다고.”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은 동료라도 무려 스타킹을 벗겨달라는 제안을 받으면, 과제에서 유리한 고점을 점하기 위해서임을 이해해도 마음이 떨리게 된다.

     

    ‘보통 이런 부탁까지 하나?’

     

    옆에 선 록펠이 은근한 시선을 보내자 도로시가 눈을 세모꼴로 만들며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꿈도 꾸지 마. 내 다리에 손대는 일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니깐.”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성희롱이니깐!”

     

    저 새침한 반응을 봐서 역시 스타킹을 벗겨달라는 부탁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었다.

     

    ‘모험가의 다리는 의외로 부드럽구나.’

     

    살집이 잔뜩 붙은 허벅지부터 손바닥에 착 감기는 종아리 근육, 부드러운 여자의 다리에 왠지 모르게 나는 달콤한 향기.

    스타킹을 벗겨주고도 손에 남는 감각에 지젤은 진심으로 오크노디를 향한 고마움이 들었다.

     

    ‘오크노디.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지젤 외에도 좋은 구경을 했다며 사방에서 오크노디를 향해 날아드는 남학생들의 진심어린 감사의 시선!

     

     

    * *

     

     

    -1분 남았다.

     

    드래곤 교장의 무신경한 재촉에 무언가에 한눈 팔렸던 남학생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들의 경계가 헐거워진 틈을 타 한발 먼저 튀어나온 인물이 있었으니.

    줄곧 숨을 죽인 채 개입할 때를 기다리던 위험한 동방검객 싱이 그 주인공이었다.

     

    “검객의 안목이란 누구를 죽이면 될지 고를 때에 쓰는 것.”

     

    동방검객 싱이 깃발을 리셋하는 동안에는 서로 싸우지 말고 깃발이나 줍자는 암묵적인 휴전을 무시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흥. 누가 당해준대요?”

     

    [당신은 적의 기습을 사전에 파악하고 작전을 세워두었습니다.]

    [행동예측 경험치+8]

    [작전수립 경험치+4]

     

    기습을 당할지 모른다고 미리 헤스티아에게 언질을 해둔 덕분에 싱의 움직임을 헤스티아가 막았다.

     

    “오크노디는 건들 수 없어!”

    “방해다, 계집.”

    “크윽.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팔에 힘이…!”

     

    앞선 전투로 팔에 피로가 누적되었던 헤스티아.

    그녀의 손에서 도끼가 튕겨져 나갔다.

    무기를 잃은 일순간의 동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든 싱이 헤스티아의 한쪽 다리를 걷어차며 자세를 무너뜨리고, 검손잡이로 턱을 가격해 쓰러뜨렸다.

    헤스티아가 쓰러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그녀를 돌파하는 싱.

    번개처럼 날아든 그의 일격이 기어이 내 깃발을 노렸다.

     

    ‘깃발을 놓지 않으면 팔 채로 벨 셈이구나!’

     

    하지만 깃발을 놓거나 검을 뽑으면 용사의 깃발 줍는 페이스를 따라갈 수 없다.

    도망친다고 떨쳐낼 수 있다는 믿음이 안 생길 정도로 싱의 보폭은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선 다른 수를 내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

    나는 열심히 눈을 깜빡거렸다.

    230cm 근육떡대남캐가 아닌 133cm 단신미소녀여캐이기에 가능한 요망한 대응.

    일명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베겠다고?> 작전!

    싱은 내 필사적인 윙크를 보며 말했다.

     

    “죽어라.”

     

    윙크의 효과는 하나도 없었다.

    ……이 녀석, 방금 “죽어라”라고 말했다.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팔이 아니라 목까지 벨 기세잖아!

     

    “오크노디를 지켜라!”

    “배은망덕한 놈!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동방의 천것은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는구나!”

     

    그런데 구해달라고 애교를 부린 싱 대신 엉뚱한 제국 3대 공신가문의 자제들이 윙크의 효과를 받았는지 불쑥 내 앞에 달려와 싱을 가로막았다.

     

    카가가가강!!

     

    일순간에 무시무시한 검음이 울리며 레프 철판숯불갈비의 갑옷이 갈라지고, 체다 포테이토피자의 커다란 손을 감싼 건틀릿이 쪼개졌다.

    마지막으로 내 앞에 난입한 호너 후라이드치킨의 창만 세 번의 충돌 끝에 창대로 간신히 싱을 뒤로 훌쩍 밀쳐내었다.

     

    “이 자식. 갑옷을 검으로 베었어?!”

    “이쪽은 조금만 더 깊이 검이 들어왔으면 손이 날아갈 뻔했다고!”

    “내 창도 부러지는 줄 알았다.”

     

    기겁하는 제국 3대 공신가문 후계자들.

    싱은 그들을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물소새끼들 때문에 절호의 기회를 놓쳤군.”

    “뭐라고?!”

     

    성난 삼인방이 무어라 항변하려던 그때, 교장의 목소리가 강의실 전체에 울렸다.

     

    -30분이 지났다.

    -모두 바구니를 제출해라.

     

    싱은 강했지만 물소 3형제 덕분에 살았다.

    고마워요 물소 3형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남학생들의 우상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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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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