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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잔류 방사능을 조금이라도 씻어내기 위해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 냇가에서 물을 묻혔다.

       

        이것만으로는 방사능을 모두 제거할 수 없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낫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까지는 씻겨 내려갔겠지.

         

        [다른 세계에 와서도 환경오염을 하시네요.]

         

        자연아, 미안해!

         

        겉옷까지 잘 닦아서 말린 뒤 최소한의 옷차림으로 저택에 돌아갔다. 도착한 건 새벽이슬이 다 말라갈 즈음이었다. 저택 후문으로 들어간 나는 시녀와 집사의 눈을 피해 2층까지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방문을 열자마자 살리에르 영애께서 팔짱을 끼신 채로 날 노려보고 계신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잔물결 하나 없는 호수처럼 잔잔한 어조였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는 불신과 분노가 한 아름 담겨있었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피치블렌드 산.”

        “오밤중에 거긴 뭐 하러 간 건데?”

        “마석 주우러.”

        “위험하게 그게 무슨 짓이야! 마수나 도적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랬어!!”

         

        로테가 얼굴을 확 구기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뒤로 반 시간이 넘는 동안 그녀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사귄 지 3개월이 듣는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꾸중을 듣고 있으니 나도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산에 오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기엔 변명거리밖에 안 된다. 고농축 우라늄 얻으려고 오전 2시부터 10분 동안만 열리는 던전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말하면 그걸 누가 믿겠냐고.

         

        그러니 여기선 해명 대신에 다른 말을 꺼내야 한다.

         

        “미안해.”

         

        바로 사과였다.

         

        방바닥 패턴을 관찰하고 있었던 내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 보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로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윽….”

         

        로테는 헛숨을 삼키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석류석처럼 빛나는 영롱한 눈동자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기색이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 나와 눈 마주치는 걸 피하는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얘기하고 나갈게.”

         

        고개를 다시 한번 숙이는 걸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나는 살리에르 가문에게서 아침 식사를 받은 뒤 로테와 함께 영지 주변을 산보하기로 했다.

         

        따사로운 오전. 밤샘에 식곤증까지 겹치니 죽을 맛이다.

         

        몽롱한 정신으로 강가를 거닐고 있던 나에게 로테가 말을 걸어왔다.

         

        “에테르는 쌍둥이 동생 있어?”

        “없는데.”

         

        그보다 가족관계는 저번에도 물어보지 않았나?

         

        내 대답에 로테는 눈가를 찌푸렸다. 그 표정에 담긴 의미를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산책 후에도 자유시간은 계속됐다.

         

        나와 로테는 저택 내 도서관에서 책을 펴고 둘러앉았다. 각자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 시간만큼은 어떤 걸 해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다. 원한다면 다음 학기 진도를 예습해도 좋고, 교양서적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도 된다. 아니면 야설 읽어도 되고.

         

        우리 둘이 선택한 건 연구였다. 각자 마전지와 식각용 펜을 들고 그래픽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듯 연성진 초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너, 그거…. 피치블렌드 마석으로 뭐 하는 거야?”

         

        내 앞에서 굴러다니던 우라니나이트를 본 로테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꽤 써먹을 만하거든. 연구해 보려고.”

         

        그러자 로테의 안색이 전 재산을 비트코인에 때려 박은 사람처럼 변했다.

         

        오늘따라 로테가 이상하다. 정확히는, 내가 피치블렌드 산에 다녀온 이후로 은근히 내 시선을 피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변하겠는가. 그러려니 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고 보니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뭔데?”

        “나 내일 중으로 여기 떠나려고.”

         

         

        **

         

         

        아직도 그 소녀의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숲속에서 만났던 에테르의 자칭 쌍둥이 여동생. 그 금안족의 살기 어린 눈동자가 눈앞을 자꾸만 서성거린다.

         

        그 당시 로테가 순간적으로 읽어낸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포.

         

        또 다른 하나는 살기였다.

         

        전자는 자신의 감정이고, 후자는 백발 소녀의 감정이었다.

         

        펜릴은 재앙급 마수다. 여태까지 인류는 하급 마수조차도 제대로 테이밍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마당에 펜릴을 가볍게 제압하고 꼬리까지 내리게 했다?

         

        설마. 아니겠지.

         

        로테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잡념을 떨쳐냈다. 그리고 때마침 돌아온 에테르의 머뭇거리는 얼굴을 보자마자 조금은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안해.”

         

        에테르와 정면에서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본능적인 회피였다. 절대로 자신의 의지로 눈을 피한 게 아니었다.

         

        “에테르는 쌍둥이 동생 있어?”

        “없는데.”

         

        에테르와 그 소녀의 말은 여전히 맞고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말을 동시에 참으로 만드는 가설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눈앞의 친구가 가족사에 관한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가정이었다.

         

        그래. 잡념을 떨쳐버리기에는 공부만 한 게 없지.

         

        강가를 한 바퀴 산책하면서 마음을 다잡은 로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마도를 연구하기로 했다.

         

        피치블렌드 마석을 활용한 새로운 화계마도의 개발. 그것이 그녀가 아버지에게서 나눠 받은 과제였다.

         

        마전지를 사각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바로 앞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에테르는 피치블렌드 조각이 들어 있는 병을 꺼내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설마.

         

        로테는 친구가 적어놓은 마전지를 흘겨봤다.

         

        화계마도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기본적인 연성식이 작성되어 있었다.

         

        ‘설마, 진짜로…?’

         

        피치블렌드 마석을 연구한다는 것.

         

        화계마도에서 사용하는 연성식을 사용해 시험 회로를 구축하는 것.

         

        이 두 가지 정보가 시사하는 바는 하나다.

         

        “너, 그거….”

         

        로테는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덜덜 떨며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적이기 그지없었다.

         

        “이거 꽤 써먹을 만하거든. 연구해 보려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에테르는 피치블렌드 마석이 화계마도에 쓰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뭘 연구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에테르는 그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때 로테의 머릿속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단어가 하나 생겼다.

         

        플레어.

         

        로테는 에테르의 권유로 프레이와 함께 최상급 화계마도인 플레어를 개발하는 일에 참여했다. 비록 한 일은 적었지만 그래도 값진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좋아하고 있었다.

         

        그 연구를 하스펠트 가문에서 먼저 하고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플레어는 하스펠트 가문에서 비밀리에 연구 중인 마도였다. 마도 자체가 기밀이었던 만큼 에테르가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로테도 플레어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학계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로테는 클라이스 선생님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만약 에테르가 그때 클라이스 선생님이 개발하고 계셨던 플레어를 도의적으로 빼앗은 것이라면.

         

        ‘내가 미쳤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물증도 없이 심증만으로 타인을 의심하는 건 나쁜 일이다.

         

        저번 일은 그저 우연일 게 분명하다. 이번 것도 분명 우연이겠지.

         

        그리 생각하던 로테의 합리화를 일순간에 무너뜨린 건 다름 아닌 에테르였다.

         

        “나 내일 중으로 여기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왜?”

        “너무 신세를 지는 것도 미안하다 싶어서. 이거 연구는 다른 곳에 가서도 할 수 있으니까.”

         

        왜일까. 저 말이 왜곡되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에테르가 자신에게 눈을 맞췄다. 숲에서 만났던 백발 소녀가 보였던 눈동자가 겹쳐 보였다.

         

        로테는 미심쩍은 웃음을 지으며 눈을 피해야만 했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애썼지만, 단어가 도무지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질 않았다.

         

        진짜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다음 날이 되기 무섭게 에테르는 도개교를 건너 강 너머로 향했다. 저쪽은 수인족이 사는 야만의 땅이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요호족이 부족을 통합하고 인간들과 교역하려 했기에 위험도가 많이 내려갔다. 걱정이 들면서도 로테는 손을 흔들어 친구를 배웅해주었다.

         

        그래도 이상하단 말이다.

         

        연구 여건은 이쪽이 여러모로 더 나은데 왜 굳이 저런 척박한 땅으로 넘어가는 걸까.

         

        “수상해.”

         

        로테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방금 뭐라고 말한 거지?”

         

        안 되겠다. 머리가 완전 뒤죽박죽이다.

         

        이게 다 야밤에 그 소녀를 만난 탓이다.

         

        그래, 답은 연구뿐이다. 책을 보면 머리가 좀 식을 것이다. 서재로 돌아온 로테는 피치블렌드 마석을 정제하는 법을 아버지에게 배워 회로 기판에 하나씩 꽂아보기 시작했다.

         

        “…벌써 다 써 버렸네.”

         

        동난 마석을 다시 모으기 위해 로테는 로브를 두르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피치블렌드 산이었다.

         

        뾰족둥글한 잎사귀들을 감상하며 산자락에서 마석을 주웠다. 시원한 공기를 맡으니 에테르에 관한 의심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마석을 줍다 보니 어느덧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슬슬 돌아가야….”

         

        툭, 툭, 툭.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쏴아아아!

         

        그냥 비가 아니라 스콜이었다.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자 자신은 불과 수 초 만에 홀딱 젖은 생쥐처럼 변했다.

         

        “이 근처에 동굴이 있을 텐데….”

         

        어린 시절 이곳에서 종종 놀았을 때 발견해두었던 작은 동굴이 하나 기억났다. 그곳에서 몸을 숨기기로 한 로테는 옛날을 되짚어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찾았다!”

         

        로테는 어둡고 칙칙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동굴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따라서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듯한 소리를 코앞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잠깐. 모닥불 타는 소리라니?

         

        “뭐야. 또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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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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