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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아, 그래, 그러니까 멋진 건 인정하겠다.

        

       양손에 20세기 특유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고스란히 반영한 자동권총을 들고, 심지어 각 권총에 서로 반대되는 속성탄을 장전해두고 사용하는 것을 보면 조바심이 생길 것 같다.

        

       게다가 그 실용성 따위 전혀 따지지 않은 것 같은 로망 넘치는 무장을 두고 생각하면, 내가 컨셉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생겼다.

        

       개머리판과 총열 덮개가 나무로 된 볼트액션 소총은 21세기에 쓰면 고풍스러운 멋이라고 할만하지만, 플라스틱이 공산품에 제대로 쓰이지 않던 20세기 초반 기준으로는 그냥 흔하디흔한 소총이었다. 게다가 내가 쓰는 것은 제국군 제식이기까지 하니 더욱 특별한 것이 없다. 사실 이걸 고른 것도 제국 내에서 총알을 구하기 가장 쉽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산탄총도 엄밀히 따지면 ‘기사도’에 어긋나는 총기다. 그저 실용성 하나만 보고 고른 총이었고, 사실 생긴 건 그냥 매우 흔한 펌프 액션 산탄총이라 뭐 멋지고 말고 따질 것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멋으로 고른 것은 웩슬러 리볼버 한 정뿐인데, 사실 이것도 제국에서는 군용으로 널리 쓰이니 다른 사람 기준으로 보기에는 특별히 고풍스럽다고 할 것도 없다.

        

       레나가 사용하는 두 정의 ‘코흐 98식’은 물론 자치국에서는 군용으로 사용되는 총이다.

        

       하지만 제국 기준으로 보면 낯선 모양새의 다른 국가의 총이다.

        

       양손에 권총을 쥐고 싸우는 것도 20세기 기준으로는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 시기에 권총은 그냥 한 손에 쥐고 쏘는 총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한자로 주먹 권자를 쓰고 영어로는 핸드건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양손에 한 정씩 쥐고 사용한다는 건, 이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그만큼 사격에 자신 있다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지 모른다. 게다가 레나는 실제로도 잘 쏘기도 했고.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내가 이쪽 세상에서 10년 이상을 살았고, 나름대로 잘 적응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쌍권총은 로망의 범주에 있었다. FPS에서 굳이 효율도 떨어지는 아킴보가 자주 나오는 이유가 뭐겠는가? 양손에 모두 총을 들고 시원하게 갈기는 것이 그만큼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아도 사람들이 게임에 그런 기능이 있는 것을 원하는 이유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레나가 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사실 얘도 나와 같이 빙의한 인간이고, 그래서 원작에 없는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캐릭터를 보고 놀려먹자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했던 것이다.

        

       하지만 며칠간 수업 끝나고 레나를 꾸준히 관찰해보아도 별다른 이상은 없다. 레나는 방 안에서는 인형을 끌어안는다던가, 걸어 다니며 자세를 연습한다던가, 침대 위를 뒹군다든가 하면서 착실하게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창문 바깥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찾아가서 제발 창문 닫고 좀 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쭉 관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이 뻔했기에 차마 말해주지는 못했다.

        

       ……하긴, 나처럼 굳이 고성능 망원경이나 쌍안경을 준비해 10대 소녀의 창문 안을 자세히 관찰하는 인간이 또 있겠는가.

        

       …….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 날, 나는 레나를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

        

       “이걸 전부 총알로 가공해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공방 장인은 조금 멍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안됩니까?”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공방장은 내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야 당연하지.

        

       레오와 클레어는 절대로 지치지 않는 페어였다. 주말마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조금 강한 짐승들이나 의뢰를 엄청나게 열심히 수행하고 다녔으니까.

        

       심지어 최근에는 다른 사람들을 몇 명 더 끌어들여서 넷이서 다니고 있었다. 레오와 클레어를 빼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때그때 달라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원작에서 퀘스트를 나갈 때마다 파티원을 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렇게 적용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덕분에 나는 작은 마르마로스라도 얻기 위해서 정말 새벽 일찍 일어나서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 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후에 던전으로 나올만한 곳까지 죄다 돌아다녔다. 혼자 던전을 완벽하게 공략한 것은 아니지만, 기억을 더듬어 초입부에 마르마로스를 얻을 수 있을법한 곳은 한 번씩은 다 가 본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모아온 마르마로스는, 개인이 공방에 맡기기에는 꽤 많은 양이었다.

        

       이 정도라면 탄환으로 가공하면 스무 발은 족히 나오지 않을까? 탄두의 크기와 마르마로스 하나하나의 크기 차이를 보고 혼자 가늠해봤을 뿐이긴 하지만.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공방장은 더 자세하게 물어보는 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내가 접수 테이블 위에 올려둔 마르마로스들과 소총, 그리고 리볼버를 내려다보던 공방장은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총기의 총알로 만들어드릴까요?”

        

       “그건…….”

        

       흠.

        

       사실 재장전을 위한 것이라면 소총보다는 리볼버 탄이 제격이다. 한 발 한 발 따로 장전하기도 편하고, 필요할 경우 문 클립을 이용해 한 번에 장전하면 소총보다 빠르게 장전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역시 내 기준으로는 에르겐센 소총 쪽이 주무기였다.

        

       그런 이유로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공방장이 말했다.

        

       “만약 탄환의 속성을 여러 개 섞어 쓰고 싶으시다면 소총을 조금 손봐드릴 수 있습니다.”

        

       “소총을?”

        

       “예.”

        

       공방장은 내 소총의 왼쪽 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탄창 차단 장치를 설치해서, 차탄이 자동으로 장전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평소에는 탄창 안에 장전된 탄환을 발포하다가, 필요할 경우 탄창을 차단하고 단발식 총기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요.”

        

       오.

        

       꽤 그럴싸한 소리이긴 했다.

        

       하긴, 2차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클립 식 총기라면 총알이 들어가는 곳이 탄피 나오는 곳과 같아서 한 발씩 따로 장전하는 게 어렵지만, 내가 쓰는 소총은 탄환이 들어가는 곳과 탄피가 배출되는 곳이 다르니까. 탄창에서 총알이 약실로 가는 것만 막는다면 한 발씩 넣어 쓰는 단발 소총처럼 쓸 수 있다.

        

       “마르마로스 탄환은 아무래도 비싸니까요.”

        

       “개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군용 부품으로 남는 것이 있어서요.”

        

       “군용으로 탄창 차단 장치를 달아서 씁니까?”

        

       “예전에, 탄환 제조가 지금보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그랬죠. 군대를 지휘하는 입장에서는 연발로 허공에 날아가는 탄환들이 전부 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전군에 무조건 단발 사격만 가능한 총기를 배급하면 후에 연발용 총기를 따로 만들어야 하니, 일단 연발 총기를 만들고 차단 장치를 추가한 거죠. 지금이야 차단 장치를 추가해봐야 부품값만 더 나가는 셈입니다만.”

        

       “그렇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 말에 곧장 작업에 들어가려는 듯 허리를 굽혀 물건을 가져가려던 공방장이 다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았다.

        

       “혹시, 신뢰성이 괜찮은 자동권총이 있습니까?”

        

       “자동권총이요? 웩슬러 권총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나는 잠깐 말을 망설였다.

        

       사실 신뢰성이라고 해봐야 큰 차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작동방식이 더 복잡한 98식 쪽이 고장 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은 더 무기처럼 생긴 걸 쓰고 싶은데.

        

       “혹시 리볼버 수준의 작동성과 신뢰성을 원하신다면 그런 총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차마 ‘그것보다는 예쁜 권총 없냐’고 물어볼 수 없었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방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황녀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리고 괜히 주변을 둘러본 뒤 공방장은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말했다.

        

       “사실 제가 새로운 군용제식 권총을 지정할 거라는 뒷소문을 들었습니다만.”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런 소문을 들었다면 제니퍼 쪽에서 흘린 거겠지. 제니퍼는 이 사람의 실력을 그만큼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었으니까.

        

       “크흠, 그래서 사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을까 제가 설계한 프로토타입이 있습니다만.”

        

       내가 이야기를 계속해보라는 듯 가만히 바라보자, 공방장은 조금 주저하는 표정으로 서랍을 열어 총기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기존 탄환보다 조금 더 대구경에, 제가 생각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어본 권총입니다. 약실에 한 발 들어가고, 탄창에 일곱 발이 들어가니 최대로 채우면 여덟 발로, 구경을 줄인 8연발 리볼버보다 화력은 강하면서 장전되는 탄 수는 같죠.”

        

       “…….”

        

       나는 홀린 듯이 그 권총을 주워들었다. 꽤 묵직했다. 아마 1kg는 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쓰는 리볼버와 무게 차이가 유의미하게 나지는 않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흔히 자동권총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슬라이드 달린 권총이었다.

        

       ……그러니까 설명을 보태자면, 문자 그대로 권총이라고 했을 때 ‘흔히’ 생각해내는 그 총이었다. 이쪽으로 아주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알 법한 45구경 자동권총. 슬라이드 뒤로 튀어나온 해머가 21세기에 유행하는 총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형태였지만, 반대로 예스러움을 더해서 총기 디자인을 기품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군에서 요구하는 대로 안전장치도 두 개나 있습니다. 그립 쪽에 손이 닿지 않으면 방아쇠가 뒤로 당겨지지 않아서—”

        

       “공방장.”

        

       “예, 예. 황녀님.”

        

       내가 중간에 말을 끊어버리고 그렇게 부르자, 공방장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혹시라도 유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총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 총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공방장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니퍼한테 소개받을 때도 ‘유능한 공방장’이라는 말과 공방 위치만 들었다.

        

       “아, 예.”

        

       갑자기 자기 이름을 물어봐서 당황했는지 잠깐 망설이던 공방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임스 브라우닝이라고 합니다.”

        

       브라우닝.

        

       ……아니, 이름을 너무 대놓고 따온 거 아니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째서 1911 이전에 브라우닝이 만든 수많은 명총들을 제치고 시간을 거스른 총기가 선정되었는가 하면, 당연히 그 총이 가장 예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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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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