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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그 시각.

    어둠 속, 나라그 독충들의 알이 잔뜩 모여있는 동굴 속에 검은 정장을 입은 마족이 나타났다.

    마족은 마치 결혼식의 신랑과도 같은 턱시도 차림이었고, 왼손 약지에는 반지가 두 개 끼워져있었다.

    결혼을 앞둔 새신랑.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아직 유부남이 아니다.

    마인 제파르.

    아세디아의 지도자이자 마왕 벨 페고르를 다시 지상에 소환한 존재.

    호시탐탐 벨 페고르의 정절을 노리는 남자가 지금, 오드론 백작령에 있는 한 작은 동굴에 도착했다.

    “많긴 하군.”

    푸화아악.

    알을 찢고 하나둘 기어 나오는 나라그 갑충의 유충들은 나오자마자 먹이를 찾았다.

    동족을 포식하는 경우는 주변에 아무런 먹이가 없을 때.

    당연히 지금은 먹이가 눈앞에 있으니 동족끼리 서로 잡아먹을 이유는 없다.

    키샤아앗.

    유충들은 일제히 제파르를 향해 달려들었고, 제파르는 가볍게 지팡이를 휘둘러 유충들을 제압했다.

    고오오.

    유충들의 이마에는 검보랏빛 인장이 새겨졌다.

    마치 드래곤의 날개와도 같은 모양의 인장에 유충들은 잠시 두통을 겪는 것처럼 괴로워했으나, 곧 인장의 빛이 사그라듦에 따라 행동이 얌전해졌다.

    “일일이 세뇌하기는 귀찮군. 에이, 이런 건 그 고블린같은 놈에게 맡기는 게 딱 좋은데 말이야.”

    이름조차 잊어버린 존재.

    고블린에게 있어서 제파르는 유일무이한 존재지만, 아세디아와 제파르의 입장에서는 고블린 따위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고블린이 며칠에 걸려 간신히 지배한 나라그 독충 무리는 제파르가 손짓 한 번을 하자마자 바로 제파르의 충실한 부하가 되었다.

    키릭, 키릭.

    그러나 아직 유충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성충이 되려면 번데기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제파르는 고블린처럼 가축들의 내장을 뿌려 유충들이 우화할 먹이를 구할 수 없었다.

    너무 바쁘기도 하고, 귀찮아서.

    “난감하군요. 이래서야 기껏 건네준 마도골렘이 쓰레기가 되었지 않습니까.”

    제파르는 한탄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이 수많은 벌레를 마냥 쓰레기로 만들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이걸 쓰레기가 아닌 자폭병으로 쓰기로 하죠.”

    제파르는 낄낄 거리며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커몬. ‘벨제부브’.”

    그의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보랏빛 안개는 어떤 인장을 만들었고, 제파르는 인장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자, 벨제부브여. 그대의 힘으로 저 벌레들을 다시 진화시키는 겁니다.”

    끼이익.

    인장이 미친 듯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아직 인장일 뿐이지만, 안개와도 같은 인장은 격렬히 흔들리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카앙!

    오히려 인장에서 흘러나온 날카로운 사슬낫 같은 것이 제파르를 위협했다.

    제파르는 지팡이를 뻗어 사슬낫을 가볍게 막았다.

    “어허. 건방지기 짝이 없군. 고작해야 가짜 마왕 주제에 감히 나 제파르의 명을 무시해?”

    제파르는 저항하는 듯한 인장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의 명을 따르라. [바알세붑].”

    “!!”

    인장의 떨림이 멈췄다.

    마치 격렬히 저항하던 자가 마비에 걸린 것처럼, 인장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래요. 그겁니다. 감히 그분과 함께 일곱 마왕이라고 엮인 것만으로도 불쾌한데, 감히 소환사인 제게 저항을 하다니요. 후후,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제파르가 지팡이를 수평으로 휘두르자, 동굴 안에 있는 나라그 독충들을 향해 인장에서 흘러나온 안개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변모하라. 바알세붑의 권속으로.”

    키이익!!

    “디프테라. 너희들에게 우화의 과정을 박탈한다. 너희는 바로 바알세붑의 권속으로, 디프테라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지어지.”

    키이익!!

    독충들은 하나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본래의 작은 벌레들도, 날개를 잃고 강철같은 피부를 가진 벌레들도 모두 비슷한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태.

    하지만 그들의 외형은 마치 나라그 독충을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탄생한 파리괴인과도 같았다.

    그래.

    강철과도 같은 갑주를 입은, 기사와도 같은 모습이지만, 그 외형과 등 뒤에 달린 날개는 마치 파리와도 같은 모습인.

    벨제부브, 탐식의 군단 정예병.

    [디프테라].

    인장을 통해 만들어진 병사들의 힘은 하나 하나가 기사에 필적할 정도.

    제파르는 하나둘 일어나는 디프테라의 사이, 아직도 나라그 독충의 형태를 유지하는 벌레를 찾았다.

    “오호. 여기 여왕벌이 있군. 아니, 나라그 독충이니까 여왕독충이라고 해야 하나? 흐흐.”

    제파르는 가장 몸집이 큰 벌레를 향해 다가가 지팡이를 뻗었다.

    “암컷이 되어라, 벨제부브.”

    여왕독충의 미간을 향해 스며든 인장은 보라색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곧 여왕독충의 눈동자 또한 보라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키잇, 키이잇…!!

    “어딜 저항하느냐, 바알세붑. 내 너의 진명을 알고 있거늘, 어찌 진명을 알고 있는 자에게 저항하는 것이야.”

    키이익…!!

    바알세붑은, 벨제부브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진명계약을 맺은 이상, 너는 내 노예일 뿐이다. 노예가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고통만 남을 뿐이지.”

    키아아악!!

    “너는 얌전히 나라그 독충들을 이끌고 가서 다시 용사들을 습격하라. 최소한 물의 용사를 죽이고 그 성검을, ‘마신’을 빼앗지 않으면 네놈은 평생 여왕독충으로 수컷들에게 교미당하다 죽을 것이다.”

    키익, 키이이익…!!

    인장이 격렬히 반짝일수록 벨제부브의 저항은 거칠어졌다.

    제파르는 그런 벨제부브를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명령이다. 암컷이, 군단의 여왕이 되어라.”

    어차피.

    그 어떤 마족도 진명계약을 저항할 수 없다.

    그건 제파르 자신이 더 잘 알기에, 설령 마계에서 마왕급으로 묶이던 괴물을 상대로도 자신감이 있었다.

    “목표는 물의 용사 릴리에즈 시저크로스. 그리고 감히 마왕님과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홍련의 마술사, 벨.”

    펄럭.

    “그리고 대마왕 님을 배신한 이 땅의 모든 인간들.”

    제파르가 망토를 휘날리며 지팡이를 크게 휘두르자, 새롭게 변모한 나라그 독충들이 천장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종이처럼 얇지만, 강철과도 같은 날개를.

    “가라, 벨제부브. 가서 용사를 쓰러뜨리고 물의 성검을, 물의 마신 셀시우스를 회수해오는 거다.”

    위이잉.

    “대마왕 벨 페고르께서 모두 모으셨다가 인간들에 의해 빼앗긴 마신소환기, 성검을 모두 회수해야 진정한 마족들의 시대를 만들 수 있으니.”

    제파르는 보았다.

    마신의 힘을.

    비록 그가 봤던 마신은 셀시우스가 아니었지만, 마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보여주는 강력한 힘은 그 어떤 누군가가 오더라도 이겨낼 수 없을 터.

    “마신을 제압하는 자가 바로 진정한 마왕. 마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강의 마족, 벨 페고르. 아아, 어디에 계십니까. 나의 마왕이시여. 당신께서 제게 힘을, 마신들을 넘겨주신다면….”

    재파르는 황홀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 간악한 세계들을 부숴버리겠나이다.”

    제파르의 손가락 사이에는 붉은달과 푸른달이 걸려있었다.

    “당신을 위하여.”

    ****

    “갑자기 웬 파리가.”

    화륵.

    나는 시끄럽게 앵앵거리는 파리를 불로 태운 다음, 지하실에서 올라와 한 여인을 호출했다.

    “안녕하세요, 블랙로터스?”

    “…….”

    위험요소 A.

    나는 집착이 심하다고 정평이 난 여인, 블랙로터스를 초청하여 독대하기로 했다.

    “당신에 대해 알고 있어요. 드로니엘 오드론. 루키우스의 소꿉친구이자 오드론 백작의 딸.”

    “!!”

    “진정해요. 나는 당신 편이니까.”

    “그게 무슨….”

    드로니엘은 칼부터 뽑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아래를 가리켰다.

    “루키우스 좋아하죠?”

    “…….”

    “대답 안 하면 도와줄 수 없어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요.”

    드로니엘은 이를 갈며 내게 힘을 주며 말했다.

    “첫 사랑이에요. 루키우스가 당신에게 반해서 따라가기 전부터, 내가 10년 전부터 좋아하고 사랑했어.”

    “푸핫, 루키우스가 저한테 반해요? 당신, 단단히 착각하고 있네요. 루키우스는 저한테 반한 게 아니에요. 스승으로서 존경하고 있는 거지.”

    “…뭐라고요?”

    “저는 그를 용사로 만들어준 사람일 뿐이에요. 용사로서 정말 많은 걸 가르쳐줄 뿐. 그리고….”

    필살기 시전.

    “전 500살보다 더 나이 먹은 사람인데, 파릇파릇한 루키우스가 저 같은 늙은이를 좋아하겠어요? 자고로 여자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린 게 최고예요.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썩어 문드러질 저, 그에 비해 당신은 앞으로 살 길이 창창하고 파릇파릇한 사람. 누가 더 경쟁력 있겠어요?”

    “…그게 무슨.”

    “저는 곧 죽어요.”

    “!!”

    사실이다.

    나의 몸을 되찾든 말든, 제파르의 모가지를 뜯고 난 뒤에 이 몸과는 영영 안녕이다.

    “저는 아세디아만 쓰러뜨리면 되고, 이 몸도 아세디아를 쓰러뜨리기 전까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속에 있는 건 다 썩어 문드러지기 전이죠.”

    아직 싱싱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당신은 루키우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같은 마을 사람이니 루키우와 통하는 것도 있겠죠. 하지만 당신의 집착이 루키우스를 부담스럽게 한다면, 루키우스의 파티에 끼워줄 수 없어요.”

    “그건….”

    “독점할 수 없는 남자예요. 루키우스는.”

    마치 나처럼.

    “당신은 타협해야 해요. 루키우스는 용사고, 앞으로 정말 많은 여자들이 루키우스의 주변에 가득하게 되겠죠. 그러면 당신이 노려야 할 위치는 어디겠어요? 바로….”

    나는 드로니엘의 손을 붙잡았다.

    “정실.”

    “……!!”

    “다른 모든 여자들보다 우월한 존재. 루키우스가 어떤 여자를 들이든, 루키우스가 언제나 함께하는 존재. 세상 모든 사람이 루키우스의 반려를 생각할 때 당신을 가장 먼저 떠올릴 거예요.”

    “…후우.”

    드로니엘은 가면을 벗었다.

    이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세련되고 아름다워졌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해 보였다.

    “…루키우스가 저 싫어해요?”

    “당신이 루키우스를 구속하려고 하니까. 루키우스는 바람같은 남자예요. 바람은 함부로 붙잡아 둘 수 없죠. 하지만.”

    나는 드로니엘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래에서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아무리 바람이라고 한들, 자식이 생기면 남자는 책임감이라는 게 생긴답니다.”

    “!!”

    “제가 도와줄게요. 나와 계약해서 용사 파티의 일원이 되어주세요. 루키우스 주변에 다른 여자가 꼬이는 것 정도는 그냥 무시하세요. 어차피….”

    사락.

    나는 드로니엘의 하복부를 향해 검지를 뻗었다.

    “마왕을 쓰러뜨리고 난 뒤, 루키우스가 당신을 평생 집착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모전 끝!

    지금까지 용스마녀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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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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