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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아, 만족스러웠다.”

       

       2층의 내 방으로 올라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워 그리 중얼거렸다.

       

       리디아의 가슴은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한데, 좋은 향기까지 나서…….

       

       “중독성 있었지.”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어지는 흐뭇한 미소.

       

       다만 자연스레 엘리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은근 즐기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분명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잠깐 가슴에 정신이 팔렸다가 다시 돌아보자 묘하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더라.

       

       예방주사를 놓을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마약이라도 투약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

       

       10분이 지난 뒤에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다리를 배배 꼬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던 엘리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리디아도 이게 맞나 싶어 한참을 머뭇거리다 돌아갔고 말이다.

       

       “뭐, 괜찮겠지.”

       

       판 대륙은 사랑의 여신의 영향이 지대한 세계. NTR 취향 정도는 비교적 흔하지 않을까?

       

       어쨌든 엘리도 즐겼던 것 같으니 아무튼 괜찮은 걸로 하자.

       

       “으그극….”

       

       침대에서 팔다리를 쭉 펴고 이리저리 뒤틀어 한바탕 기지개를 켠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이런저런 일이 있어 피곤하기 짝이 없지만…그래도 자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이번 토벌 작전을 위해 가진 돈을 전부 가챠에 꼬라박아 한동안은 가난하게 살아야 할 줄 알았으나.

       

       황혼을 삼키는 자들의 시체를 뒤져보니 제법 쏠쏠한 금액이 나오더라.

       

       야수신의 신물인 단검은 교황을 속이기 위해 신전에 제출해야 한다면서 카렌이 가져갔지만….

       

       그 외의 전리품은 전부 나와 엘리, 리디아가 나눠 가졌다.

       

       도망자 놈들이 대체 어디서 돈을 벌어오는 건지, 삼등분했음에도 32실버에 달하는 금액.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0연챠만 돌리고 자야지.

       

       “오늘도 잘 부탁해.”

        

       그리 중얼거리며 아공간에서 꺼낸 풀돌 여신상. 그런데 어쩐지 그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다리를 W모양으로 오므리며 주저앉은 자세. 팔은 자기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듯 가슴께에서 교차했고, 자연스레 가슴이 짓눌려 삐져나온다.

       

       덤으로 자애로웠어야 할 눈은 공허하게 비어있었고, 볼에는 짙은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마치 조금 전의 엘리가 보여준 것과 비슷한 모습.

       

       “이게 뭔……아.”

       

       설마 그건가? 사랑의 여신보다 조금 더 좋아한다고 해서 질투하는 건가?

       

       그래서 이런 NTR당한 것 같은 포즈를 취하는 거고?

       

       “이 음침 스토커 여신.”

       

       마!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와서 말해! 이렇게 빙 돌려 알기 어렵게 어필하지 말고!

       

       뭐어. 정말로 그랬다가는 미궁이 엉망이 되며 안에 들어간 모험가들이 위험한 건 물론, 일부 몬스터들이 밖으로 뛰쳐나오며 판그레이브 전체가 난리 날 테니 절대 안 될 일이지만 말이다.

       

       결국 내가 사랑의 여신 앞까지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한숨을 푸욱 내쉬며 여신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았다. 쓸데없이 다리를 잘 오므린 탓에 팬티는 보이지 않았다.

       

       “칫.”

       

       혀를 차며 여신상을 전용 케이스에 넣어둔 뒤에야 가챠 시스템을 열었다.

       

       띠링!

       

       

       

       [1층 클리어 특전! 무료 뽑기 10회 티켓 증정!]

       

       [1층 계층 수호자 토벌 특전! 무료 뽑기 10회 티켓 증정!]

       

       

       

       “헉.”

       

       예전에 받은 생존 1주년 특전을 제외하면 처음 받아보는 무료 티켓.

       

       예상치 못한 알림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한 박자 늦게 사료를 받은 것임을 깨닫고 전용 장식장 속 사랑의 여신을 향해 넙죽 절했다.

       

       “사랑의 여신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우며, 지금까지의 행위는 스토킹이 아니라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아름다운 순애다…!”

       

       내 아부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자세를 취한 여신상이 밝게 빛나더니, 어느새 본래의 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이를 확인하고서야 알림을 치웠다. 그제야 드러나는 본래의 뽑기 창.

       

       

       

       [통상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1회 뽑기] [10+1회 뽑기]

       

       ※보유 티켓: 20장

       

       

       

       “좋아! 50연챠 가즈아!!!”

       

       한껏 HIGH해진 기분으로 연챠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도수 없는 안경]

       [1성: 최하급 회복 포션]

       [1성: 잘 말린 마력초]

       .

       .

       .

       .

       .

       [1성: 사용감 있는 여성용 레이스 팬티]

       .

       .

       .

       .

       .

       [1성: 권능 – 촉촉한 피부]

       

       “아니….”

       

       50연챠 전부 1성이라고? 2성짜리마저 하나도 없어??

       

       “이런 건 현실이 아니야앗…!”

       

       머리를 부여잡으며 세상의 부조리함을 부르짖는 것도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번 가챠 결과는 운이 없긴 해도 그리 이상한 결과는 아니다.

       

       애초에 이놈의 가챠는 기본이 1성이고, 2성만 나와도 잘 뜬 거고, 3성이면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극악의 확률을 자랑하던 녀석 아닌가.

       

       실제로 미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소매치기를 제외하면 전부 1성만 나왔었고.

       

       3성 여신상이 11개 연속으로 나온다거나,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시기적절하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4성 장비와 권능이 나왔던 요즘이 이상했던 거다.

       

       본래 가챠란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것. 천장과 픽뚫이 난무하는 비인외도의 마경이 바로 가챠의 다른 이름이었으니.

       

       작금의 1성 파티는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챠 확률이 평균 회귀했을 뿐이다…!

       

       “후우. 이제야 좀 마음이 편해지네.”

       

       평균 회귀는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무수히 많은 가챠를 돌렸을 때나 붙일 수 있는 말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냥 단어 자체가 뭔가 안심되지 않는가.

       

       내가 뭔가 잘못해서, 혹은 오늘따라 재수가 없어서 폭사했다기보다는 저번에 잘 나왔으니 이번에 안 나오겠지 하는 게 훨씬 그럴듯하니까.

       

       “아무튼 평균 회귀임. 내가 그렇게 정했음.”

       

       속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도 잠시. 돌연 피부가 타는 듯 아프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차갑게 식는다.

       

       맞다. 그러고 보니 1성이지만 권능도 하나 뽑았지?

       

       몇몇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권능은 다다익선이다. 같은 1성이라도 그 가치는 마력초 따위와 비교할 수 없으니까.

       

       각인이 완전히 끝나자 머리속에 밀려 들어오는 권능의 사용법.

       

       언제 어느 때나 피부가 촉촉함을 유지한다.

       

       “???”

       

       이걸로 끝이라고? 향기로운 체취 때도 그랬지만 이건 그냥 미용 권능이잖아!

       

       사랑의 여신의 권능이 대부분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물론, 피부가 촉촉하면 좋겠지. 지금이야 어려서 괜찮다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건조해지고 이런저런 트러블이 생기는 법 아닌가.

       

       “그래도 기왕 주는 거 같은 1성 권능이라도 좀 쓸만한 걸로 주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뽑혀버린 것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야지.

       

       그보다 지금은 권능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잖은가.

       

       우수수 떨어진 잡동사니들. 그중 유일하게 바닥이 아닌 내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을 잡아 내렸다.

       

       보드라운 질감. 잡티 하나 없는 순백의 천. 그 가장자리에는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챠밍 포인트인 묘하게 따뜻한 팬티.

       

       [1성: 사용감 있는 여성용 레이스 팬티]

       

       “대체 이런 걸 어디에 쓰라고……어? 잠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시장에 있던 여신상을 꺼내 뒤집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세 때문에 보이지 않는 치마 속.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 없나.

       

       “순순히 팬티를 보여줬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한탄하듯 그리 중얼거리며 검지를 여신상의 등 뒤에 댔다.

       

       꾸욱.

       

       너무나 사실적인 촉감. 심지어 체온까지 구현되어 있어 크기만 줄어든 사람을 만지는 것 같다.

       

       잠시 툭 튀어나온 견갑골의 감촉을 즐기다 천천히 손가락을 내렸다.

       

       등에서 시작되어, 허리를 지나 다다른 엉덩이.

       

       한층 볼륨감있고 탄력 있는 느낌이 선명히 전해진다. 그래. 너무나 선명히 전해진다. 마치 천 한 장 너머로 만지는 것처럼.

       

       혹시나 싶어 손가락을 슥슥 쓸어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만져보았지만…어떠한 걸림도 없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손놀림.

       

       즉, 팬티 라인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소리다.

       

       “사랑사랑아…이 음습한 변태 여신아…이거 혹시 네 팬티니?”

       

       …….

       

       당연한 말이지만 여신상은 대답이 없다. 왜냐면 여신상이기 때문이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여신이란 작자가 몰래 팬티 같은 걸 보내고 그러진 않겠지. 내가 오늘 팬티 뭐 입었나 들여다보긴 했지만 그건 피규어에게 하는 인사 같은 거잖아.”

       

       …….

       

       여전히 말이 없는 여신상. 다만 자연스레 뿜어내고 있던 신성력의 농도가 갑자기 치솟는다.

       

       화아악!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미니 성역을 펼쳤을 때와 비슷할 정도로 밝은 신성력에 휩싸인 여신상.

       

       그 압도적인 광량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그곳에는 제 발로 다시 진열장에 들어간 여신상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자세로 말이다.

       

       “쪽팔린 건 아나 보네….”

       

       한숨을 푸욱 내쉬며 온기가 남아있는 팬티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혹시 모르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밤샘너구리 주거욧…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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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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