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감에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식적으로 귀족의 작위를 거절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하다.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그럼요.”
당장 나에게 있었던 일만 보아도 다른 직업은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사냥꾼 마저도 그렇기에 못했던 것이 아니던가.
별의별일들이 다 생기며 내 사냥을 막았었다.
“신관들 중에 귀족인 사람이 있던가요?”
알루어드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제국의 작위는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작위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네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네.”
“바로 그게 문제예요.”
몸주신인 할머니가 허락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무당으로 살면서 편안한 삶?
그렇게 살면 무당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제가 위로해드리는 영혼들을 보면, 대부분이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음?”
“평민들이 대다수죠. 보통 걱정거리나 미련, 풀지 못한 한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과 귀족이 되지 못 하는 것에 큰 연관이 있는가?”
당연히 넘치고 넘친다.
“예를 들어서, 굶주리다가 아사하신 어르신들을 달래준다고 생각하면…”
“….”
“제가 잘 먹고 잘 사는데 어디 설득이나 되겠어요? 코웃음치고 말지.”
배고파 죽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의 위로를 듣겠는가.
그 사람에게는 위로조차 위선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영혼들 대부분이 평민인데, 제가 귀족이면 무서워서 오기나 하겠냐는 거죠.”
내가 지금까지 만난 영혼들만 봐도 평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가끔 기사의 영혼이 있을 뿐.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대륙에 귀족보다 평민의 영혼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내 주 고객들은 가난한 평민들이라는 것이다.
“밥줄 끊길걸요?”
위로를 못 하는 무당이 무슨 무당인가.
돌팔이지.
“…그렇군.”
“허어…”
영감님들이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옆에서 알루어드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서 있었다.
“넌 뭘 그러고 있어?”
“그…”
“너희도 그러라고 성 없애고 이름만 남기는 거 아니야?”
알루어드의 얼굴에 경악이 들어찼다.
떠억 –
“신에게는 다 같은 인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참나…”
매번 느끼지만 공부가 부족한 놈이었다.
“어쨌든, 제가 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거예요. 허락을 안 해주실 거라서…”
“자네가 모시는 신께서 말인가?”
“네.”
파라몬 영감이 깊게 고민하는 기색으로 나와 기사들을 쳐다 봤다.
“사실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라네. 폐하께서 내리시는 작위를 거절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세.”
영감의 말대로 깃발아래 서 있는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얗게 질린 안색.
떨리는 손.
임무를 완수 하지 못하면 저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겁살에 비인살이 잔뜩 끼기 시작했다.
“비인살이라… 이대로 보내면 칼 맞겠네.”
명령을 완수하지 못해 받는 처벌이라고 해야 할까.
사정이 딱하기는 했다.
적당한 핑곗거리라도 만들어 주는 수밖에….
“어디, 줘 봐요.”
“…..?”
“작위 준다면서요.”
높은 확률로 받지 못할 테지만, 받으면 좋은 것 아닌가?
명색이 황제가 내리는 작위라는데 최소 남작은 주지 않겠는가.
황제 폐하의 체면이 있지, 준남작 같은 걸로 사람을 보낼리도 없고 말이다.
“허험, 본인은 폐하의 명을 받아 파견된 알레인 자작이오.”
묘하게 태도가 이상했다.
어쨌든 나도 귀족의 작위를 받기로 되어 있는 몸이니 존중을 해주는 것 같았다.
“클로셀님과 파라몬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감님들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는 자작.
그런데 영감님들의 표정이 묘했다.
마치, 고생 할 후배를 바라보는 표정.
파라몬 영감이 슬며시 운을 띄웠다.
“자작이면 많이 힘들겠군. 고생하시게.”
“제국을 위한 일! 두 분이 이루신 업적에 비하면 먼지만도 못합니다.”
“그것을 말한 것은 아니네만… 자작으로 감당이 될지는 모르겠군.”
잠시 의아함을 띄던 자작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아이를 업고 폐하의 명을 받을 셈이오? 그것은 상당한 무례라오.”
탓하는 어조였지만 호의가 가득했다.
평민인 나를 배려해 알려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나름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때, 알루어드가 당당히 나섰다.
“교단에 소속된 알루어드라고 합니다.”
“경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지금 크리스님의 등에 업혀계신 분은 당대의 성녀님이십니다.”
“서,성녀…! 정말로 성녀라는 말씀이시오?”
“내려오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자작이 눈알을 굴렸다.
예상치 못한 듯 당황스러움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대로 진행하시게. 자네가 감당할 일이 아니니.”
“감사합니다. 파라몬님! 이, 이례적이기는 하나 이번만은 넘어가도록 하겠소.”
곧이어, 알레인 자작에게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리스는 황제 폐하의 교지 앞에 예를 갖추라!”
“…..?”
나는 자작이 하는 말에도 예를 갖출 수가 없었다.
귀족의 예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으면 되려나?
파라몬 영감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팔을 가슴 앞으로 들면 되네.”
“감사해요.”
영감의 말을 따라 한쪽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세레나가 살포시 내 팔을 잡았다.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응?”
예의를 갖추라던데?
나를 향해 싱긋 웃어 준 세레나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며 자작을 향해 돌아갔다.
“감히, 폐하의 은총에 간섭하는 자가 누…”
호통을 치려던 자작의 입이 꾹 다물렸다.
세레나가 내뱉은 소개 때문이었다.
“하이엘프, 세레나라고 해요.”
“하, 하이엘프라니…”
“크리스는 엘프의 은인. 저희 종족의 명예와 직결되는 사람이에요. 아무곳에서나 무릎을 꿇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맹세코, 세레나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저 표정을 좀 보라.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완고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크리스 또한 황제 폐하의 백…”
이번에도 자작의 말은 마쳐지지 못했다.
“증명이 필요하시다면 지금 당장 엘프의 이름으로 사절을 보내드리겠어요.”
“사, 사절을 말이오…?”
“알레인 자작이라고 했던가요?”
기억해 두겠다는 세레나의 섬뜩한 눈빛에 자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누가 들어도 세레나의 말투가 호의적이지는 않았으니까.
자작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하이엘프의 위상이 이 정도 일 줄이야….
“폐하의 교지를 받드는데 예를 취하지 않을 수는….”
내가 봐도 곤란해 보였다.
나름 할 일을 다 하는 중인데, 시작부터 성녀에 하이엘프라니.
영감님들은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피식거리며 웃고 있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클로셀 영감이었다.
“문제가 되지 않도록 말해 둘 테니, 그대로 진행해 보시게. 궁금해 죽겠군.”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은 자작이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황제가 내렸다는 교지가 저것인 것 같았다.
귀한 소재로 만든 듯 휘황찬란한 외관에 종이를 정갈하게 묶고 있는 매듭.
마법이 걸려 있는지 마나도 느껴졌다.
그것을 펼치려던 자작에게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이,이게 왜…”
매듭이 풀리지 않는 듯싶었다.
부스럭 –
부스럭 –
벌써 부터 식은땀으로 범벅된 자작의 이마.
나는 분명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보다, 저거 계속 풀려고 하면 안될 텐데….
“흐읍…!”
툭 –
자작의 손에서 두루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시작돼 버렸네…”
갑자기 축 늘어진 양팔을 보며 당황하는 자작.
저건 신병과 비슷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몸이 안움직이고 아프지만 원인은 알 수 없는 병.
“팔에 힘이 안 들어가시죠?”
“이게 어떻게 된 것이오!”
“일시적인 현상이예요. 여기만 벗어나면 아무 일 없을 거에요. 오히려 미안하다고 복 좀 얹어 주실걸요?”
“폐…폐하의 교지가…!”
웅성웅성 –
자작을 따라온 기사들에게서 소란스러움이 번져갔다.
누가 봐도 괴상했기 때문이리라.
“누가 나와서 얼른 이것을…! 아니다! 이것은 나 이외에는 함부로 만져서도 안 되는 것!”
“계속하시면 힘드실 텐데…”
자작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저런 상황에서도 교지를 줍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니까.
물론,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할머니의 시선이 저쪽으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따듯한 신령님이라 사는 데 지장은 없겠지만, 당장은 힘들긴 할 것이다.
푸쉬이이 –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소리.
그것은 분명히 두루마리에서 나는 것이었다.
“왜 연기가! 안 된다! 누가 얼른 교지를…!”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사냥도 하기 힘들었는데, 저게 될 리가 있나.
누구보다 검소한걸 좋아하는 게 우리 할머니의 성격인데 가능할 리가 없다.
괜히 복채의 액수가 그렇게 적겠냔 말이다.
“이제 움직여지실걸요?”
내 말과 동시에 자작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슥 –
스윽 –
다급하게 교지를 펼쳐드는 자작.
하지만 이미 교지의 안은 시커멓게 변해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
덜덜덜 –
자작이 보기 안쓰러울 만큼 몸을 떨고 있었다.
황제가 내린 물건을 홀라당 태워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클로셀 영감이 반짝이는 눈으로 두루마리를 보며 말했다.
“저 친구는 걱정 마시게나. 폐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네. 내 따로 연락을 취하도록 하지.”
“부탁드려요.”
“혹시 말이네…”
영감님의 이런 눈빛은 오랜만이었다.
마법적인 학구열에 불타는 눈.
맑지만 광기와도 같은 호기심.
영감이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받아오면 또 볼 수 있는 것인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