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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두 영감에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상식적으로 귀족의 작위를 거절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하다.

        ​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

        “그럼요.”

        ​

        당장 나에게 있었던 일만 보아도 다른 직업은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

        사냥꾼 마저도 그렇기에 못했던 것이 아니던가.

        ​

        별의별일들이 다 생기며 내 사냥을 막았었다.

        ​

        “신관들 중에 귀족인 사람이 있던가요?”

        ​

        알루어드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

        “없습니다.”

        ​

        “제국의 작위는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작위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네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네.”

        ​

        “바로 그게 문제예요.”

        ​

        몸주신인 할머니가 허락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

        무당으로 살면서 편안한 삶?

        ​

        그렇게 살면 무당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

        “제가 위로해드리는 영혼들을 보면, 대부분이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

        “음?”

        ​

        “평민들이 대다수죠. 보통 걱정거리나 미련, 풀지 못한 한들을 가지고 있어요.”

        ​

        “그것과 귀족이 되지 못 하는 것에 큰 연관이 있는가?”

        ​

        당연히 넘치고 넘친다.

        ​

        “예를 들어서, 굶주리다가 아사하신 어르신들을 달래준다고 생각하면…”

        ​

        “….”

        ​

        “제가 잘 먹고 잘 사는데 어디 설득이나 되겠어요? 코웃음치고 말지.”

        ​

        배고파 죽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의 위로를 듣겠는가.

        ​

        그 사람에게는 위로조차 위선으로 느껴질 것이다.

        ​

        “그리고 영혼들 대부분이 평민인데, 제가 귀족이면 무서워서 오기나 하겠냐는 거죠.”

        ​

        내가 지금까지 만난 영혼들만 봐도 평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

        가끔 기사의 영혼이 있을 뿐.

        ​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대륙에 귀족보다 평민의 영혼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

        다시 말하면, 내 주 고객들은 가난한 평민들이라는 것이다.

        ​

        “밥줄 끊길걸요?”

        ​

        위로를 못 하는 무당이 무슨 무당인가.

        ​

        돌팔이지.

        ​

        “…그렇군.”

        ​

        “허어…”

        ​

        영감님들이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옆에서 알루어드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서 있었다.

        ​

        “넌 뭘 그러고 있어?”

        ​

        “그…”

        ​

        “너희도 그러라고 성 없애고 이름만 남기는 거 아니야?”

        ​

        알루어드의 얼굴에 경악이 들어찼다.

        ​

        떠억 –

        ​

        “신에게는 다 같은 인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

        “참나…”

        ​

        매번 느끼지만 공부가 부족한 놈이었다.

        ​

        “어쨌든, 제가 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거예요. 허락을 안 해주실 거라서…”

        ​

        “자네가 모시는 신께서 말인가?”

        ​

        “네.”

        ​

        파라몬 영감이 깊게 고민하는 기색으로 나와 기사들을 쳐다 봤다.

        ​

        “사실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라네. 폐하께서 내리시는 작위를 거절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세.”

        ​

        영감의 말대로 깃발아래 서 있는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

        하얗게 질린 안색.

        ​

        떨리는 손.

       

       임무를 완수 하지 못하면 저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

       아니나 다를까, 벌써 겁살에 비인살이 잔뜩 끼기 시작했다.

        ​

        “비인살이라… 이대로 보내면 칼 맞겠네.”

        ​

       명령을 완수하지 못해 받는 처벌이라고 해야 할까.

        ​

        사정이 딱하기는 했다.

        ​

        적당한 핑곗거리라도 만들어 주는 수밖에….

        ​

        “어디, 줘 봐요.”

        ​

        “…..?”

        ​

        “작위 준다면서요.”

        ​

        높은 확률로 받지 못할 테지만, 받으면 좋은 것 아닌가?

        ​

        명색이 황제가 내리는 작위라는데 최소 남작은 주지 않겠는가.

        ​

        황제 폐하의 체면이 있지, 준남작 같은 걸로 사람을 보낼리도 없고 말이다.

        ​

        “허험, 본인은 폐하의 명을 받아 파견된 알레인 자작이오.”

        ​

        묘하게 태도가 이상했다.

        ​

        어쨌든 나도 귀족의 작위를 받기로 되어 있는 몸이니 존중을 해주는 것 같았다.

        ​

        “클로셀님과 파라몬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영감님들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는 자작.

        ​

        그런데 영감님들의 표정이 묘했다.

        ​

        마치, 고생 할 후배를 바라보는 표정.

        ​

        파라몬 영감이 슬며시 운을 띄웠다.

        ​

        “자작이면 많이 힘들겠군. 고생하시게.”

        ​

        “제국을 위한 일! 두 분이 이루신 업적에 비하면 먼지만도 못합니다.”

        ​

        “그것을 말한 것은 아니네만… 자작으로 감당이 될지는 모르겠군.”

        ​

       잠시 의아함을 띄던 자작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

        “아이를 업고 폐하의 명을 받을 셈이오? 그것은 상당한 무례라오.”

        ​

        탓하는 어조였지만 호의가 가득했다.

        ​

        평민인 나를 배려해 알려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

        나름 친절하다는 것이다.

        ​

        그때, 알루어드가 당당히 나섰다.

        ​

        “교단에 소속된 알루어드라고 합니다.”

        ​

        “경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

        “지금 크리스님의 등에 업혀계신 분은 당대의 성녀님이십니다.”

        ​

        “서,성녀…! 정말로 성녀라는 말씀이시오?”

        ​

        “내려오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

        자작이 눈알을 굴렸다.

        ​

        예상치 못한 듯 당황스러움이 가득 서려 있었다.

        ​

       “그대로 진행하시게. 자네가 감당할 일이 아니니.”

        ​

        “감사합니다. 파라몬님! 이, 이례적이기는 하나 이번만은 넘어가도록 하겠소.”

        ​

        곧이어, 알레인 자작에게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크리스는 황제 폐하의 교지 앞에 예를 갖추라!”

        ​

        “…..?”

        ​

        나는 자작이 하는 말에도 예를 갖출 수가 없었다.

        ​

        귀족의 예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으면 되려나?

        ​

        파라몬 영감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팔을 가슴 앞으로 들면 되네.”

        ​

        “감사해요.”

        ​

        영감의 말을 따라 한쪽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세레나가 살포시 내 팔을 잡았다.

        ​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

        “응?”

        ​

        예의를 갖추라던데?

        ​

        나를 향해 싱긋 웃어 준 세레나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며 자작을 향해 돌아갔다.

        ​

        “감히, 폐하의 은총에 간섭하는 자가 누…”

        ​

        호통을 치려던 자작의 입이 꾹 다물렸다.

        ​

        세레나가 내뱉은 소개 때문이었다.

        ​

        “하이엘프, 세레나라고 해요.”

        ​

        “하, 하이엘프라니…”

        ​

        “크리스는 엘프의 은인. 저희 종족의 명예와 직결되는 사람이에요. 아무곳에서나 무릎을 꿇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

        맹세코, 세레나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

        게다가 저 표정을 좀 보라.

        ​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완고하기까지 했다.

        ​

        “그렇다고는 하나, 크리스 또한 황제 폐하의 백…”

        ​

        이번에도 자작의 말은 마쳐지지 못했다.

        ​

        “증명이 필요하시다면 지금 당장 엘프의 이름으로 사절을 보내드리겠어요.”

        ​

        “사, 사절을 말이오…?”

        ​

        “알레인 자작이라고 했던가요?”

        ​

        기억해 두겠다는 세레나의 섬뜩한 눈빛에 자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누가 들어도 세레나의 말투가 호의적이지는 않았으니까.

        ​

        자작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

        하이엘프의 위상이 이 정도 일 줄이야….

        ​

        “폐하의 교지를 받드는데 예를 취하지 않을 수는….”

        ​

        내가 봐도 곤란해 보였다.

        ​

        나름 할 일을 다 하는 중인데, 시작부터 성녀에 하이엘프라니.

        ​

        영감님들은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피식거리며 웃고 있었다.

        ​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클로셀 영감이었다.

        ​

        “문제가 되지 않도록 말해 둘 테니, 그대로 진행해 보시게. 궁금해 죽겠군.”

        ​

        “감사합니다!”

        ​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은 자작이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

        황제가 내렸다는 교지가 저것인 것 같았다.

        ​

        귀한 소재로 만든 듯 휘황찬란한 외관에 종이를 정갈하게 묶고 있는 매듭.

        ​

        마법이 걸려 있는지 마나도 느껴졌다.

        ​

        그것을 펼치려던 자작에게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

        “이,이게 왜…”

        ​

        매듭이 풀리지 않는 듯싶었다.

        ​

        부스럭 –

        ​

        부스럭 –

        ​

        벌써 부터 식은땀으로 범벅된 자작의 이마.

        ​

        나는 분명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

        그보다, 저거 계속 풀려고 하면 안될 텐데….

        ​

        “흐읍…!”

        ​

        툭 –

        ​

        자작의 손에서 두루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시작돼 버렸네…”

        ​

        갑자기 축 늘어진 양팔을 보며 당황하는 자작.

        ​

        저건 신병과 비슷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

        몸이 안움직이고 아프지만 원인은 알 수 없는 병.

        ​

        “팔에 힘이 안 들어가시죠?”

        ​

        “이게 어떻게 된 것이오!”

        ​

        “일시적인 현상이예요. 여기만 벗어나면 아무 일 없을 거에요. 오히려 미안하다고 복 좀 얹어 주실걸요?”

        ​

        “폐…폐하의 교지가…!”

        ​

        웅성웅성 –

        ​

        자작을 따라온 기사들에게서 소란스러움이 번져갔다.

        ​

        누가 봐도 괴상했기 때문이리라.

        ​

        “누가 나와서 얼른 이것을…! 아니다! 이것은 나 이외에는 함부로 만져서도 안 되는 것!”

        ​

        “계속하시면 힘드실 텐데…”

        ​

        자작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

        저런 상황에서도 교지를 줍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니까.

        ​

        물론,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

        할머니의 시선이 저쪽으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

        마음이 따듯한 신령님이라 사는 데 지장은 없겠지만, 당장은 힘들긴 할 것이다.

        ​

        푸쉬이이 –

        ​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소리.

        ​

        그것은 분명히 두루마리에서 나는 것이었다.

        ​

        “왜 연기가! 안 된다! 누가 얼른 교지를…!”

        ​

        “이렇게 될 줄 알았지.”

        ​

        사냥도 하기 힘들었는데, 저게 될 리가 있나.

        ​

        누구보다 검소한걸 좋아하는 게 우리 할머니의 성격인데 가능할 리가 없다.

        ​

        괜히 복채의 액수가 그렇게 적겠냔 말이다.

        ​

        “이제 움직여지실걸요?”

        ​

        내 말과 동시에 자작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

        슥 –

        ​

        스윽 –

        ​

        다급하게 교지를 펼쳐드는 자작.

        ​

        하지만 이미 교지의 안은 시커멓게 변해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

        “….!”

        ​

        덜덜덜 –

        ​

        자작이 보기 안쓰러울 만큼 몸을 떨고 있었다.

        ​

        황제가 내린 물건을 홀라당 태워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

        클로셀 영감이 반짝이는 눈으로 두루마리를 보며 말했다.

        ​

        “저 친구는 걱정 마시게나. 폐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네. 내 따로 연락을 취하도록 하지.”

        ​

        “부탁드려요.”

        ​

        “혹시 말이네…”

        ​

        영감님의 이런 눈빛은 오랜만이었다.

        ​

        마법적인 학구열에 불타는 눈.

        ​

        맑지만 광기와도 같은 호기심.

        ​

        영감이 입을 열었다.

        ​

        “한 번 더 받아오면 또 볼 수 있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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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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