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5

        

         

       피어나는 연꽃은 그 자체로 태양과 관련된 상징을 품었다.

       에너지가 발현되며 우주가 피어나듯 꽃이 되고, 태양의 빛을 받아 피어나 화사함으로 태양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선순환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청아함과 고결함은 공물의 순수함을 더해주며 인신공양 의식의 효과를 증폭시켰다.

         

       그뿐이 아니다.

         

       계향충만(戒香充滿).

       더럽고 역겨운 물속에서 피어난 연꽃은 그 자체로 향기를 퍼뜨린다.

       그 향기는 악취를 모두 덮어버릴 정도로 강하고 향기로우며, 이는 오직 하나의 몸으로 온 세상을 밝히는 태양과 같다.

         

       수도 없이 피어난 연꽃은 그 자체로 타오르는 불꽃에 떨어지는 장작이요, 거세게 솟구치는 불기둥에 부어지는 기름과도 같은 것.

       가장 아래쪽에서 태양을 품으며 그 힘을 증폭시키며 위에서 하고 있을 의식을 강화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증폭만 될 뿐, 통제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닐 터.

         

       그렇기에 진성은 또 다른 것을 준비했다.

         

       진성은 손에서 삼매진화를 뿜어내어 흙탕물 중앙에서 피어난 연꽃을 태우기 시작했다. 연꽃은 순식간에 삼매에서 비롯된 불꽃에 휩싸여 빨갛고 파란 불빛을 내며 타올랐고, 물질과 비물질을 태우며 연꽃과 연꽃에서 뿜어지는 미약한 태양 빛을 먹으며 크기를 키웠다. 그리고 그것이 불기둥의 형태가 되었을 때, 천장 부근이 일제히 빛이 나기 시작했다.

         

       빛은 새빨간 색이었다.

       각막에 빨간 셀룰로오스 필름을 덧바른 것처럼 땅속은 빨갛게 물들었고, 그 근원에는 보석이 있었다.

         

       루비.

       태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보석.

       보석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는 값비싼 보석이었다.

         

       짙은 다홍색(Pigeon blood)의 최고급 루비들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큐빅처럼 빼곡히 천장에 붙어있었고, 삼매진화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색은 보석을 통과하며 새빨간 빛으로 변해 땅속을 물들였다.

       그 색은 너무나 선명할 정도로 붉어서, 그 어떤 붉은 것을 들고 온다 한들 이 또렷한 색채에 모두 묻혀버릴 것만 같았다.

         

       콰르르릉!

         

       “눈치챘구나.”

         

         

         

        * * *

         

         

         

       “이건 장소나 시일의 문제가 아니다!”

         

       점술사는 단정 짓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제 얼굴에 씌워진 황금 가면을 매만졌다.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지요.”

         

       그는 여자 말투와 남자 말투를 번갈아 말하며 대화를 하듯 혼잣말을 하고 있었는데, 당황스러운 듯 말을 빠르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 의식을 했거나, 의식을 하려던 장소일까요?”

       “그럴 리가! 장소 선정을 얼마나 철저하게 했는데!”

       “그렇지요. 이 숲에는 그 어떤 의식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러면 점성술의 문제…는 아니고.”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는가 싶으면 그것 또한 아니다. 아무리 풍수지리를 모른다고 한들 지형의 특이성도 모를 정도는 아니니까.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그래요.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황금 가면 안쪽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그는 품속에서 카드를 뽑았다.

         

       그 카드는 헐벗은 여인이 넝마조각 하나를 걸친 채 등불과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여인은 왠지 모르게 지쳐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메이저 아르카나 9번 카드, 은둔자(The Hermit)였다.

         

       점술사의 손에 든 은둔자 카드에 그려진 등불은 마치 실제 등불이라도 되는 것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등불 안에서 비치는 다윗의 별은 천천히 흔들리며 포근한 빛을 뿜어내었고, 이 빛은 어둠을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일제히 중력의 손에 몸을 맡기듯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빛은 바닥에 떨어지는 것으로도 멈추지 않고 아래로. 땅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그것을 본 점술사는 이를 악물며 카드를 뽑아 주술을 사용했다.

         

       지팡이가 새겨진 카드에서 거대한 기둥이 떨어져 땅에 박혔고.

       오망성이 땅에 새겨지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그의 공격은 집요했다.

       오직 땅을 깊게 파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듯 비슷한 곳을 계속해서 때리고, 터뜨리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그 집착의 성과가 드러났다.

       떨어지는 기둥이 허공으로 떨어지듯 모습을 감추고, 거대한 구멍과 함께 땅속에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空洞)이 드러난 것이다. 작은 구멍 하나가 생기자 기다렸다는 듯 땅은 우수수 무너져내리며 공동의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모습은 마치 숲속에 싱크홀이 생긴 것 같은 모양새였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제단을 중심으로 가장자리만 무너지는 것이 마치, 도넛 모양 같았다는 점이리라.

         

       “너어어어어!”

         

       공동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저에 만들어진 구조물이라고 해야 할까.

         

       무너진 흙더미는 가장자리로 곱게 쌓였고, 그 중앙에는 더러운 흙탕물이 찰랑거리며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중앙에서는 수많은 연꽃이 떠 있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가장 큰 연꽃은 붉고 푸른 불꽃에 타오르고 있었다.

       무너진 흙더미에서는 루비가 규칙적으로 박혀서 삼매진화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는데, 그 불빛이 어찌나 빨간지 붉은색 서치라이트를 켠 것이 아닐까 생각될 수준이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반사된 빛이 곧게 하늘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 마치 나치 시절에 서치라이트로 만들었다는 빛의 대성당(Cathedral of light)을 보는 것 같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하얀빛을 사용해 신성해 보였던 빛의 대성당과는 달리, 루비에서 나오는 새빨간 빛은 왠지 모르게 불꽃과 피를 연상케 하는 불길함을 연상시키고 있다는 것.

       땅이 무너져내리며 위에서 찰랑거리는 핏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어 그 불길함은 배가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구조물은 제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

       마치 처음부터 이런 구조물로 만들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게 무슨짓이야아아아아아악!”

         

       점술사는 절규했다.

         

       그는 일생일대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너, 너! 이 괴물 새끼가!”

         

       점술사는 지금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버렸다.

       인신공양을 여러 번 하면서 수많은 지식을 쌓아왔기에,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태양’의 상징의 증폭.

         

       스스로 빛을 발하는 연꽃.

       태양에서 가져온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꽃.

       새빨간 색을 품고 하늘로 쏘아지는 빛의 기둥.

       그 자체만으로 태양의 상징을 품고 있는 루비.

         

       이 모든 것이 그의 인신공양 주술 의식을 강화해주고 있었다.

         

       연꽃에서 뿜어내는 향기는 피비린내와 함께 숲을 가득 메웠고, 쏟아지는 핏물 속에서도 한 점 더러움 없이 피어나며 풍요로움의 상징마저 머금고 있었다. 크롬 크루어히가 태양과 풍요를 상징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한 재료였다.

         

       게다가 뿜어지는 붉은 빛은 점술사가 준비했던 황금에 반짝이며 강해지고, 타오르는 횃불마저 먹어치우며 숲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일 정도였으니.

         

       이는 절대로 소규모 의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대규모 주술 의식에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소규모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주술의 규모가 커질수록 치러야 하는 대가는 커지게 되는 법.

         

       그리고 지금, 점술사는 본의 아니게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는 의식을 진행하고야 말았다. 도저히 제단에 눕힌 희생양 하나로는 끝낼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왜, 좋지 않으냐. 기쁜 마음으로 의식을 도와줬건만 어찌 그런 태도를 보이는고?”

         

       진성은 눈이 반쯤 돌아가 있는 점술사를 보며 웃었다.

         

       “다만 의식이 좀 커져서 저것 하나로는 모자라겠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바쳐야 할 것인즉. 자네 정도는 바쳐야 수지가 맞지 않겠는가?”

         

       그는 주머니에서 하얀 가루 같은 것을 한 주먹 집었다.

       작지만 굵은 몸통을 가지고 있는 그것들은 살아보겠다고 다리를 꿈틀대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으며, 강인한 주둥이로 진성의 피부를 뜯어버리려 날뛰고 있었다.

         

       후-우-.

         

       진성은 자신의 손에서 꿈틀대는 흰개미에게 작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흰개미에 날개가 돋아나더니 하늘을 날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진성의 주머니에서 흰개미들이 끝도 없이 튀어나오며 제단을 향해 움직였다.

         

       “네가 이런다고! 저 아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모습을 본 점술사는 목이 갈라지듯 크게 소리를 지르며 패용했던 나무로 만든 도끼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왼쪽 손목을 내려쳤다.

         

       콰드득!

         

       툭!

         

       가벼운 데다가 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도끼였기에 몇 번을 내리치고서야 손을 자를 수 있었으나, 점술사는 광기 때문에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는 도끼를 다시 패용하고는 떨어진 왼쪽 손목을 주워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찌이익!

         

       가죽과 살이 뜯기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은 그의 입속으로, 목구멍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진성은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호오.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 쪽에도 조예가 있었는가?”

         

       아즈텍 제국에서는 인육(人肉)에 대한 미학(美學)이 있었다.

       

       그들은 인육에서 가장 맛있고 귀한 부위를 구분해 놓았다.

         

       넓적다리는 가장 맛있고 귀한 부위이므로 황제에게.

       손과 발은 사제와 통치자들에게.

         

       “이 내가! 아름다운 손을 스스로 자르게 하다니!”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 내가 이대로 당할 줄 아느냐?!”

       “난 살아남아야 해!”

       “영웅이 될 것이다!”

         

       점술사는 손을 뜯어먹음으로써 의식을 주관하는 사제로서, 제사장으로서의 상징을 강화한 것이다.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거대한 의식을 어떻게든 해보고자 실행한 자구책(自救策)이었다.

         

       하지만 점술사가 다시 의식을 통제하기 시작한다면 진성이 나선 보람이 없다.

         

       그는 품속에서 방울을 꺼내 흔들었다.

         

       딸-랑.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제단 주위에 앉아 있던 흰개미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개미는 제단 주변에 크고 작은 원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막에서 발견된다는 페어리 서클(Fairy circle)과 같았다.

         

       딸-랑.

         

       진성이 다시 한번 방울을 흔들자 이번엔 엘라의 손목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여러 색의 비즈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었고, 전부 새하얀 빛을 띠고 있는 치아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툭.

       촤르르륵.

         

       팔찌의 줄은 원래 그래야 했다는 것처럼 끊어지며 꿰어있던 이빨을 바닥에 쏟아지게 했고, 쏟아진 이빨은 데굴데굴 굴러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원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원 하나에 이빨 하나가 자리 잡으며 눈알 같은 모양새가 만들어졌으며, 이윽고 거기서 새까만 형체의 자그마한 요정들이 튀어나왔다.

         

       이빨 요정(Tooth Fairy)이라고 부르는 요정이었다.

         

       진성은 요정이 나오자 품속에서 MP3 하나를 꺼내서 음악을 재생시켰다.

         

       감미로운.

       아주 감미로운 선율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