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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1.

       

       “으엑, 느낌 이상하다니까.”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 벌써 한 달이 넘었거늘. 이쯤 되면 적응될 때도 됐느니라.”

       “그러니까 할 때마다 느낌이 이상한데 이게 어떻게 적응이 되냐고.”

       “한 달이면 슬슬 익숙해질 때가 됐대도.”

       

       누가 들으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한 발언이었지만, 사실 실제로는 별거 아니었다.

       

       목덜미는 진짜로 느낌이 이상해서, 싫다고 격렬하게 도리질을 친 끝에 팔을 내주는 것으로 극적인 타협에 도달한 결과물.

       

       하지만 이런저런 의문점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아르웬.”

       “응?”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흡혈은 어쩌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행위였다. 그러니까 인간이라고 치환해서 생각하면 단순히 밥을 먹는 것 뿐인데, 쓸데없이 품위 있고 우아하게 팔을 깨물고 있던 아르웬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진조 정도 되면 한 달 정도는 굶어도 문제 없지 않아?”

       “……?”

       

       아르웬이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면서 고개만 갸우뚱.

       

       이렇게 풀어놓고 보면 귀엽게 비칠 만한 구도이긴 한데, 입가에 새빨간 피를 묻히고 있어서 그런가 실제로는 호러물에 가까운 비주얼이었지만.

       

       어쨌든 이게 내가 줄곧 생각하고 있던 의문점이었다.

       

       진조.

       

       달리 불리는 이름은 엘더 뱀파이어, 혹은 모든 뱀파이어의 왕.

       

       그러니까 그냥 쉽게 생각하면 최초의 뱀파이어라고 이해하는 게 편했다. 괜히 내가 아르웬이 특히, 실피아랑 싸우는 걸 싫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거든.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 감정의 골이 깊지는 않겠지만, 둘이 수틀려서 전력으로 싸우기 시작하는 순간 황궁은 확실하고 잘만 하면 수도가 통째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어쨌든 그런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아무리 뱀파이어라고 해도 그렇지, 흡혈 충동을 이기지 못하거나 며칠 정도 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리는 게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손수건을 꺼내, 특유의 우아한 동작으로 입가를 훔친 아르웬이 되물었다.

       

       “뱀파이어에게 피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고 있느냐?”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게 키득거린 아르웬이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를 마신다는 건 단순히 인간이 음식을 먹어 영양분을 얻는다는 것과 동일한 선상으로 두고 이해할 수 없느니라.”

       “그러면?”

       “잘 생각해 보거라. 다른 조건은 전부 배제하고, 인간이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우선 당연히 숨은 쉬어야 하고…… 그리고 밥도 먹어야겠지? 수분도 보충해야 하니까 물도 마셔야 할 거고.”

       “뭐, 대충 그렇지 않을까 싶구나. 하지만 여기에 흡혈 행위를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발생하느니라.”

       “……뭔데?”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아르웬이 즉답했다.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마시는 이유는 허기를 달래기 위함이니라. 그 허기가 심해지면 충동이 생기게 되는 셈이구나. 헌데 그렇다면 뱀파이어는 어째서 피를 마셔야만 허기를 달랠 수 있는지 아느냐?”

       “그걸 모르니까 내가 물어본 거잖아.”

       “인간의 피에 담긴 마력으로만 그 허기를 달랠 수 있느니라.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구나.”

       “아, 그런 거야?”

       

       내 물음에 아르웬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사실 뱀파이어가 피를 마신다는 대전제 자체는 동일해도,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창작물 별로 설정이 다르기 마련이었다.

       

       인간의 피밖에 소화시킬 수 없어서 피를 마셔야 한다는 따위의 설정들 말이다. 그게 이 세상에서는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에 담긴 형태로밖에 마력을 보충할 수 없어서 그런 모양이었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데.

       

       그건 평범한 뱀파이어가 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인 거지, 진조인 아르웬이 주기적으로 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는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진조인데 한 달 정도는 피를 마시지 않고 굶어도 멀쩡하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아직까지는 증거가 없는 추론의 영역이었다. 원작의 설정이고 뭐고 사실 이제는 가물가물해서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냥 잊고 지내던 게 불현듯 떠오르듯이 자잘한 설정이 한두 개 떠오르거나, 계기가 되는 뭔가가 있으면 연관이 있는 게 아! 그랬었지! 하면서 갑작스레 생각나는 정도.

       

       그래서 내 추리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는, 단순한 심증의 영역이었지만…….

       

       천연덕스레 대꾸하는 아르웬을 향해 시선을 맞췄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아르웬도 지지 않고 내 눈을 마주 보며 물었고.

       

       “그런데 아르웬, 너는 진조잖아.”

       “그렇다마는.”

       “평범한 뱀파이어들이 그렇다는 건 알겠는데, 너는 며칠 피 좀 안 먹는다고 자제할 수 없는 충동이 들고 이런 건 아니잖아.”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구나.”

       “내가 너 때문에 최근에 빈혈이 생겼는지, 아니면 기립성 저혈압이라도 왔는지 앉았다 일어서기만 하면 어지럽거든?”

       “흠흠…….”

       

       아르웬이 머쓱한 듯이 헛기침을 했지만, 진짜로 빈혈이 왔는지 아니면 기립성 저혈압이 생겼는지 앉았다 일어설 때 어지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피를 빨리는 행위는 헌혈이라고 이해하는 게 편했다.

       

       보통 헌혈을 한 번 하면 최소 8주 정도는 철분이 회복될 때까지 헌혈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최근 들어 빈번해진 흡혈이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는 게 확실했다.

       

       사실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거든.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르웬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지만, 다른 사람을 속여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드디어 잡았다.

       

       사실 그동안 뭔가 이상하다고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긴 했었다. 얘가 정말로 피를 마셔야 해서 마시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었던 건지.

       

       그리고 그게 단순히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고 결론이 나는 순간이었다.

       

       “상처는 마법으로 치료할 수 있어도, 줄어든 피까지 채울 수 있는 건 아니거든? 회복 마법이 만능은 아니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진조라고 하여 아예 피를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건 아니니라.”

       “그럼 뭔데.”

       “그저 그 주기가 조금 길 뿐이지, 아예 마시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건 똑같…….”

       “리커버리.”

       

       지혈하지 않아서 그런지, 송곳니에 뚫리는 바람에 여전히 피가 배어나고 있던 팔에 치유 마법을 걸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슬슬 서열 정리를 한 번 할 필요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르웬.”

       “…….”

       “너 한 달 동안은 인간 모습으로 있는 거 금지.”

       “……에.”

       “그리고 한 달 동안 너 피도 안 줄거야.”

       “……!”

       

       충격을 받았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아르웬.

       

       그래, 사실 생각해보면 애완동물처럼 방에서 데리고 있던 거잖아.

       

       아르웬은 고양이야. 기어 오르면 안 돼.

       

       사실 별로 상관은 없지만, 진짜로 최근에 계속 피를 빨렸더니 이러다간 없던 빈혈까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서.

       

       “왜 변신 마법 안 써?”

       “……므으읏.”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르웬이 조용히 변신 마법을 발현하더니 고양이로 변했다.

       

       일단은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앉았으면서도, 묘하게 억울해 보이는 표정.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이게 옳게 된 주종관계였다. 무릎 위에 앉은 아르웬의 털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이 좋게 좀 지내.”

       “……뭐가 말이더냐.”

       

       여전히 조금은 뚱한 목소리.

       

       “왜 자꾸 못 싸워서 안달이야. 너희 회귀 전에도 그렇게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으르렁거리고 그랬던 거야?”

       “……오히려 지금이 전보다 나은 편이다마는.”

       “사실 그 정도였으면 내가 시한부 판정 받고 죽은 게 아니라 화병 나서 죽은 게 아닐까?”

       “……비약이 심하구나. 아무리 그래도 선은 지켰느니라.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아르웬이 억울한 듯이 항변했다.

       

       뭐, 전이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엘레나에게 회귀 전에 있던 여러 에피소드에 대해 들은 지금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

       

       “별궁 부쉈잖아.”

       “……?!”

       “너랑 실피아랑 순간적으로 폴리모프 풀고 싸웠다가 별궁 부쉈다면서. 그래서 엘레나가 별궁 다시 짓는 비용 받아냈다고 했는데.”

       “그, 그걸 어떻게…….”

       “다 들었어.”

       

       충격 받은 얼굴의 아르웬이 멈칫했다. 사실 고양이 모습으로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다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하지만, 일단은 그랬다.

       

       엘레나로부터 들었던 주옥 같은 에피소드들이 아직 한 보따리는 남아 있었으니까.

       

       아무튼.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정도의 생각으로, 모처럼 아르웬에게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히히덕거리고 있었는데.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아르웬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튼 너도 슬슬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구나.”

       “준비? 무슨 준비?”

       “제국의 황제가 곧 승하하느니라.”

       “……뭐?”

       “회귀 전에는 황녀가 내전을 선택했었지만…… 뭐,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마는. 어떤 선택을 하든 루드릭, 그대의 몫이니라.”

       “……갑자기?”

       

       이런 분위기에서 꺼내기에는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슬슬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느니라. 다만 방금 전까지는 당사자인 그 황녀가 있던 탓에 얘기할 타이밍만 찾고 있었다마는.”

       “…….”

       “황제의 병세가 점점 중해지고 있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렇긴 한데…….”

       

       잠자코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아르웬이 조용히 덧붙였다.

       

       “우선은 네가 가서 황녀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겠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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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로판 주인공 하기 싫습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reincarnated as the eldest son of a noble family with nothing to do.

Even if I put aside the fact that the world I was reincarnated into is a little strange.

– Northern Grand Duchess Eileen is confused after realizing she has regressed.

– Admiral Lassiel realizes she has regressed and immediately turns the fleet around.

– Princess Elena prepares to inspect the Weiss County, chewing over the past.

What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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