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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제갈 소저도 어느 정도는 눈치챘으리라 생각하는데. 아니야?”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들여다보면 누구나 가슴에 말 못 할 고민 하나쯤 품고 산다.

         

       아무리 이타적이라 해도 그들 모두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가 한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진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일 터다. 그리고 그 둘의 사이가 남녀라면 십중팔구는 애정이 밑받침될 것이다.

         

       “마, 맞아요. 예상은…, 했었어요.”

         

       그녀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머리 회전이 빠른 그녀가 위와 같은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백우진이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을 꺼냈을 때부터, 불길함을 느꼈다.

         

       다만 모른 척하려 했다. 구태여 묻지 않으려 했다. 실체 없는 불안까지는 얼마든 껴안을 수 있지만, 그 불안이 구체화하여 몸을 옥죄는 순간 지금껏 행복했던 순간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까 두려웠다.

         

       조막만 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저는, 저는…, 안 되는 거예요…?”

       “어…?”

         

       당황하는 음성이 그녀를 더욱 아프게 했다. 모든 게 착각이었나 싶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서로 껴안았고, 입맞춤도 나누었고, 좋아한다는 말까지 전했다.

         

       말로 꺼내지는 않았으나 반쯤은 연인 사이라고 여겼건만,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걸까.

         

       그녀의 어깨가 힘없이 늘어졌다.

         

       “그렇죠…, 저, 저보단 당 소저가 더 백 공자랑 어울리죠….”

         

       실의에 빠진 그녀는 애써 자기 합리화를 시도했다.

         

       키도 작고, 소심한 자신과는 달리 그녀는 모든 걸 갖췄다. 백우진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무척이나 닮아 있어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이기도 했다.

         

       남이 보아도 그토록 어울리는데 본인은 어떻겠나. 분명 그토록 매혹적인 미소에 끌리지 않을 남자는 없으리라.

         

       훌쩍!

         

       눈치 없이 줄줄 새는 콧물을 들이마시고,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바보 같이 웃는 얼굴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아, 알겠어요. 백 공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겠으니까….”

         

       저는 이만….

         

       “거기까지.”

         

       백우진이 손을 들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이가 없었다. 혼자 슬퍼하고, 납득하더니 이제는 자기 버려두고 당선영과 행복하라는 식으로 말을 이어가고 있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입을 틀어막고 있는 백우진의 손을 따뜻하게 적셨다.

         

       “나 당 소저한테 보내주려고?”

       “읍으으으웁웁웁…!”

         

       그 말 한마디에 잠시 멈췄던 눈물을 다시 왈칵 쏟아내는 제갈연지.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틀어막힌 입으로 옹알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입을 살짝 떼어보자 말문이 트인 그녀가 속사포처럼 쏴대기 시작했다.

         

       “그럼 어떡해요오…! 당 소저가 좋다면서어, 나는, 나느은… 흐끅! 아무것도 잘난 게 어, 없는데…!”

         

       서럽게 우는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살짝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엉엉 울어대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뒤 양손으로 볼을 붙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닌데.”

       “에…?”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백우진을 올려다보는 제갈연지.

         

       “내가 지금 이 말을 꺼내는 건 당 소저가 좋아서 제갈 소저를 떠나겠다는 게 아니라, 둘 다 좋아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였는데.”

       “어, 아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버려질까 지레 겁먹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보내주겠다느니, 둘이 더 어울린다느니 했던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라 쥐구멍이 있다면 그곳에 얼굴을 들이밀고 싶을 지경이다.

         

       백우진은 떠나겠다는 게 아니라 양해를 구하려던 것뿐이었다. 그 말인즉, 그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연인 또는 그에 준하는 사이로 보고 있었다는 뜻이고.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안도하는 한편, 백우진에 대한 원망도 생겨났다.

         

       “요, 욕심이 마, 많은 거 아닌가요….”

         

       한 번에 두 여인과 연인 관계가 되고 싶다는 과감한 발언 때문이었다.

         

       내부의 사정이야 어떻든, 두 사람은 무림에서 가장 드높은 다섯 가문의 딸들이다. 그런 이들을 동시에 연인으로 맞이한 이는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욕심이 아닌가…?’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는 능력을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마음은 이미 기울었다. 그가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면, 똑같이 사랑해줄 자신만 있다면 다른 여자 한둘쯤이야 너그러운 마음… 까지는 안 되겠지만, 질투 섞인 눈물 몇 방울, 이빨로 베갯잇 몇 장 뜯는 정도면 충분히 받아줄 수 있다.

         

       ‘그래도 바로 허락은 안 돼…!’

         

       백우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탐독한 연서에는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줄 수 있는 쉬운 여자는 매력이 없다고 적혀 있다.

         

       “시, 시간이 필요해요.”

         

       고개를 돌리며 최대한 새초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우진은 이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너무 앞서갔나.’

         

       그녀의 말대로 욕심이었다.

         

       혼자 울고 있는 그녀를 더 이상 마음 졸이게 하지 않기 위해 모든 걸 터놓으려 했다, 라는 허울 좋은 구실을 통해 두 여인을 동시에 만나고픈 욕심.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중혼이 허용되는 세상이라고 해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법이 허용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냐, 없냐를 먼저 따졌어야만 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여인이 나 말고도 다른 남자와 혼인하겠다는 말을 꺼내면 어떨지.

         

       ‘…다 죽여버릴 거야.’

         

       아마 곧장 칼부림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녀에게 이해를 강요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두 여인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면,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무리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당장 뺨을 후려쳐도 모자랄 판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먼저 꺼낸 그녀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받아들이기 힘들 거 알아. 하지만, 한 번만 진지하게 생각해줘.”

       “으읏.”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백우진의 눈빛이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슬프고, 고독하게 보였다.

       

       반칙이나 다름없는 외모 공격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이러면 시간이고 뭐고 가질 수가 없잖아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던 그녀가 긴 머리카락 뒤에 숨은 눈을 빛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심사숙고할 시간 대신, 그보다 값진 것을 받으면 되지 않은가.

         

       “배, 백 공자는 저한테 허락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게 이, 있거든요?”

       “그런 게 있나?”

       “이, 있어요.”

         

       작게 심호흡을 내쉰 뒤, 새빨개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 우,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백 공자는 아직 명확하게 매듭짓지 아, 않았잖아요.”

       “아…?”

         

       그야 당연히 연인, 이라고 말하려던 찰나.

         

       서로의 마음을 내비치기만 했을 뿐, 그것을 말로 꺼내어 관계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미친놈, 미친놈…!’

         

       아직 고백도 제대로 하지 않은 여인에게 다른 여인을 허락해달란 말을 했다니!

         

       두 여인을 모두 좋아하기는커녕, 둘 모두에게 소박맞게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 그녀와의 관계 정립이 우선해야 했다.

         

       “후우….”

         

       불안정하게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사정 없이 흔들리는 두 눈을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제갈 소저.”

       “네, 네헷….”

         

       덩달아 긴장한 그녀가 우스꽝스런 목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조금이나마 긴장감을 덜어낸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살면서 내 것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어.”

         

       지구에서는 고아로 자랐다.

         

       보육원에선 모든 것이 공용이었고, 스무 살이 되어 사회에 내던져지다시피 했을 때도 고시원, 월세방 생활을 전전하며 무언가 진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한 낙이었던 웹소설을 보다가 떨어진 세계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명예, 명성 등 부질없는 것들은 채워졌으나 남의 몸으로 내 것, 내 사람을 갖기란 어려웠다.

         

       그렇기에 언제나 간절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백우진’일 때보다 지금의 자신을 좋다고 해준 여인이, 온전히 나로부터 시작된 여인이,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지고 싶다.

         

       “그래서 난 내 것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해. 한 번 내가 품은 것, 지닌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놓아주고 싶지 않아.”

         

       제갈연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이었다. 무인에게 지고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영약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던 그에게서 강렬한 집착과 욕심을 느낀 것은.

         

       몸이 한껏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누구도 자신을 이토록 강렬하게 바랐던 이는 없었기에.

       

       그것이 무척 생소하면서도 매력적인 감각을 자아냈다.

         

       “앞서 말했듯, 한 번 나와 연을 맺게 되면 더 이상 벗어날 수 없어. 아니, 벗어나게 두지 않을 거야. 먼 훗날…, 제갈 소저가 나를 싫어하게 된다고 해도 절대로.”

         

       너무 진심을 드러낸 것 같다. 과연 이게 고백이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해야 할 말이기도 했다. 백우진은 진심으로 그녀의 인생 전부를 저당 잡을 셈이었다.

         

       “도망가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근데.”

         

       이게 과연 같이 있자고 고백하는 사람이 꺼내도 될 말인가.

         

       어딘가 엉켜있고, 꼬여 있는 말들을 만회하기 위해 멋들어진 말로 끝맺으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

         

       산전수전 다 겪어온 그에게도 모자라고, 서툰 점은 있었다. 인간 관계가 그러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었음에도, 지금껏 누군가에게 이토록 제 마음을 절실하게 고백해본 적이 없었다.

         

       화룡점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용을 그린 다음 가장 마지막으로 눈을 섬세하게 찍어내듯, 이 고백의 마침표 또한 맛있게 꾸며내고 싶은데 머릿속이 눈 덮인 설산마냥 새하얗기만 하다.

         

       ‘내 주제에 무슨.’

         

       이내 포기한 채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급하게 호리병을 열어 술을 들이켰다. 술기운이 몸에 돌자 괜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던 용기가 부풀어 오른다.

         

       다시 돌아서서 제갈연지를 향해 그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웬만하면 전부 감수하고 내 옆에 있어주라!”

         

       부탁하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인공은 산전수전 다 겪어왔지만, 고백에는 서투릅니다… 마치 저를 투영한 것 같군요.

    그리고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집착 태그를 내걸었지만, 주인공 또한 여자들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뭐랄까, 개인적으로 남의 몸에 빙의되어 살다 보면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내로남불임을 알면서 나는 하고 싶은 면모도 보이고,,, 아무튼 누가 만든 놈인지는 몰라도 주인공은 좀 복잡하게 꼬인 놈인 것 같습니다.

    제가 잘 풀어서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더 공감하실 수 있도록 써보겠습니다… 엣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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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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