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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용병들이 우릴 데려간 곳은 길드에서 관리하는 커다란 창고였다. 

       

       “이걸 좀 보십시오!”

       

       용병은 창고 문을 열자마자 안쪽을 향해 팔을 휘두르며 처절하게 외쳤다. 

       

       넓은 창고 안은 물건 분류에 따라 구획이 나뉘어 있었고, 꽤 비싸 보이는 것부터 잡동사니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창고 안을 둘러본 우리는 입을 열었다.

       

       “…봐도 모르겠는데요.”

       “우리가 언제 여길 와 본 적이 있어야 바뀐 게 뭔질 알지.”

       “아하! 그러고 보니!”

       

       용병 길드에 있는 용병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해당 도시의 용병 길드와 짧게는 1년, 길게는 몇 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머무는 상주 용병.

       그리고 용병 길드에서 단순히 용병패만 발급을 받고 떠돌아 다니며 의뢰를 수행하는 일반 용병.

       

       일반 용병은 자유롭게 도시를 오가며 하고 싶을 땐 의뢰를 하고, 별로 관심이 없을 땐 하릴없이 노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큼 고정된 최소한의 급여 같은 보장된 것이 없고 수주자에게 떼는 수수료도 감면 받을 수 없어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몇 날을 공치면서 밥만 축낼 수도 있다. 

       

       그래서 평범한 실력의 용병들, 특히 먹여 살릴 가족이 있는 용병들은 가족들이 사는 도시에 눌러 앉아 길드와 계약을 하고 기본급 지원 및 수수료 감면 혜택을 받는 쪽을 택한다. 

       

       ‘혹은 길드에서 실력 있는 용병을 잡아 두기 위해서 거액의 계약금을 내걸기도 하지.’

       

       길드 입장에서도 괜히 상주 용병들에게 기본급을 지원하고 수수료를 깎아 주는 게 아니다. 

       

       의뢰가 제때 제때 수주되고 해결이 되어야 길드도 수수료로 돈을 버는데, 고정적으로 길드에 눌러앉아 있는 용병이 없으면 의뢰의 순환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의뢰의 순환 문제는 재정적인 문제뿐 아니라 용병 길드에 대한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우리한테도 얼마 전에 부길드장이 와서 계약금을 내밀면서 상주 용병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었고.’

       

       우리처럼 신속 정확하게 의뢰를 해결하고 등급도 높은(이건 실비아 씨 쪽이지만) 용병들이 상주해 주면 길드 입장에서는 더없이 든든할 테니까. 

       

       ‘하지만 바로 거절했지.’

       

       곧 다른 도시로 떠날 예정인 데다, 이렇게 길드 시설을 관리하고 귀찮은 일이 생기면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주 용병은 나랑은 맞지 않는다. 

       

       물론 아르를 데리고 한 곳에 눌러 앉는다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여튼, 우리가 캐머해릴에 머물며 이 길드에서 의뢰도 꽤 처리하고 수련장도 전세 내듯이 이용한 건 맞지만, 이렇게 길드가 운영하는 창고에 들어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내 물음에 용병이 창고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꽤나 커다란 금고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금고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돈을 털린 거예요?”

       “그게….”

       “돈만 털렸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길드장님!”

       

       그때 뒤에서 들린 중후한 목소리에 우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이쿠, 길드장까지 행차하셨네.’

       

       뒤에서 나타난 건 캐머해릴 용병 길드의 길드장, 반하임이었다. 

       

       다른 길드장들도 그렇지만 여기 길드장은 특히 웬만한 일이 아니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잘 없는데, 아무래도 어지간히 귀찮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물론이고, 저희 길드에서 보관 중이던 성유물聖遺物 조각 하나를 도난 당했습니다.”

       “성유물 조각이요?”

       

       그 말에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도난 당한 물품이 귀중품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이 사건이 벌써 일어난다고?’

       

       물론 성유물 조각을 도둑맞은 것도 큰일은 맞다.

       성유물 조각은 단순히 아티팩트의 재료라는 걸 넘어서서, 아티팩트에 성聖 속성을 담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기 때문에 가치가 상당하니까.

       

       하지만 내가 진짜 놀란 이유는, 이 성유물 조각 도난 사건은 최소한 게임 초중반을 벗어날 때쯤에야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걸 이 시점부터 캐머해릴의 길드가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건은 몰라도, 시프 길드에게 성유물 조각을 도난 당하는 사건만큼은 이렇게 빠른 시기에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프 길드가 캐머해릴에서 활동을 재개하는 시기 자체가 게임 중반부 즈음이었으니까. 

       

       ‘그래서 아까 시프 길드가 어쩌고 했을 때에도 설마 성유물 조각 도난 사건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지.’

       

       근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아버리네.

       

       ‘…도대체 무슨 이변이 일어났길래 시프 길드가 벌써 활동을 시작한 거야? 뭐 돈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사실 이 사건이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이상, 이걸 해결하는 것 자체는 나에게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난 이번 사건의 범인과, 이걸 훔쳐 간 시프 길드의 아지트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범인은 게콘이라는 이름의 내부자였지. 정확히는 간부 중 하나였고.’

       

       문제는 그 게콘이란 사람이 부길드장의 측근으로 길드에서 꽤 두터운 신뢰를 쌓아 놓은 인물이라는 거고, 이 반하임이라는 길드장은 지금 이 사건이 절대 내부자의 소행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을 거라는 거였다. 

       

       ‘이 고집불통 영감. 내가 뭐라고 설득해도 결국은 ‘게콘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면서 게콘이 내부 정보까지 들고 직접 뒤통수를 치며 나갈 때까지 인정을 못 했었지.’

       

       그래서 내가 발견한, 그나마 이 사건을 가장 빨리, 귀찮은 거 없이 해결하는 방법은 곧장 시프 길드의 아지트로 쳐들어가서 도둑맞은 돈과 성유물 조각을 되찾아 반하임의 손에 쥐여 주는 것이었다. 

       

       ‘그럼 귀찮은 일 없이 돈과 성유물 조각을 찾아 준 것에 대한 보수를 받을 수 있으니.’

       

       그 뒤에 게콘에게 길드 내부 정보를 추가로 털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보수만 챙겨서 떠나는 게 정신 건강에는 가장 좋은 길이다. 

       

       ‘지금도 그 방법이 불가능한 건 아니야. 나도 지금은 실력이 꽤 올라왔고, 아르도 한 단계 성장한 데다가, 무엇보다 5성에 가까운 실비아 씨가 있으니까.’

       

       정 머릿수가 달려서 불안하면 여기서 즉석으로 용병들을 좀 더 고용해서 쳐들어가면 그만이다. 

       용병들은 돈만 주면 이유는 묻지 않고 동행해 줄 테니까.

       

       ‘시프 길드 자체가 워낙 베일에 싸여 있는 조직이라 정확한 뒷배나 규모는 나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아지트에 있는 녀석들 중에는 그렇게 강한 자는 없어.’

       

       이 정도 전력이면 지금 시프 길드 아지트에 쳐들어가도 아마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시프 길드가 벌써 행동을 개시했다는 것 자체가 좀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시프 길드는 단순한 좀도둑 집단이 아니다. 

       대륙 서부에서 어둠의 경로로 이루어지는 일들은 반드시 조금이라도 시프 길드의 손을 거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

       

       그들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뭔가 내가 모르는 스토리에서의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그리고 그러려면,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범인을 검거해서 직접 심문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시프 길드가 이쪽이 범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 잡아서 심문하고, 추가로 아지트까지 기습해서 깔끔하게 털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고.

       

       ‘흠. 문제는 저 사람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인데.’

       

       내가 고집불통 길드장을 바라보자, 길드장은 말을 이었다. 

       

       “이걸 훔쳐간 놈은 금고의 외부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잠금장치의 암호를 풀고 열어서 가져갔다는 소리지요. 이런 짓을 할 만한 건, 그리고 할 수 있는 건 시프 길드밖에 없습니다.”

       “내부자의 소행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이 금고의 암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길드의 간부뿐이고, 간부들은 전부 오랫동안 일을 같이 해 온 믿을 수 있는 이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하. 역시나. 

       

       여기까지는 「레키온 사가」에서 반하임과 나누었던 대화와 거의 똑같다. 

       그때도 대화 선택지에 ‘내부자의 소행은 아닐까요?’라고 물어보는 내용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반하임의 단호한 반응에 더 이상은 캐 물을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즉, 내가 하기에 따라 선택지 이외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열려 있다는 말씀.

       

       “잠깐 자리를 옮길 수 있을까요? 어차피 저희에게 그 성유물 조각을 되찾는 일을 맡기시고 싶은 거잖아요? 의뢰는 받아 드릴 테니 일단 보는 눈이 없는 곳으로 가시죠.”

       “…좋습니다. 길드장실로 모시도록 하지요.”

       

       길드장은 조금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어올리더니, 곧 우리를 길드장실로 안내했다.

       

       “들어오시지요.”

       

       나와 실비아는 길드장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가방 안에 있던 아르는 내가 가방을 잠시 내려놓자 가방에서 나와 내 무릎으로 폴짝 뛰어 자연스럽게 내 배 쪽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안겼다. 

       

       “…그 사역마가 요즘 길드에서 인기가 그렇게 많다는 은색 와이번이로군요.”

       “하하, 네. 맞습니다.”

       “쀼우.”

       

       처음에야 숨겼지만, 길드에 계속 다니면서 아르를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는 법.

       비교적 최근에 용병들 사이에 공개한 아르는 이미 용병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실비아의 눈치를 보느라 볼 때마다 호들갑을 떨지는 못할 뿐.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요. 그런데 듣던 것보다 조금 더 몸집이 큰 것 같습니다만.”

       “아하하! 그렇죠. 성장기라 그런지 좀 쑥쑥 크더라고요. 이렇게 큰 지 얼마 안 됐습니다.”

       “허허, 신기하군요.”

       

       내가 아르의 맨질맨질하고 통통한 배를 쓰다듬는 모습, 그리고 내 손길을 즐기며 작게 뀨 소리를 내는 아르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갈 뻔했던 길드장은, 다시 사태의 심각성을 떠올렸는지 헛기침을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까 저희 내부자의 소행을 의심하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만, 추가 설명을 드리자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저희 간부들은 전부 소재가 명확했습니다. 알리바이가 있다는 뜻이지요. 지금도 멀쩡히 근무를 하고 있고요. 내부자가 훔쳐 간 거라면 이미 캐머해릴을 떴을 겁니다.”

       

       당연하게도 아직 길드장의 스탠스는 여전했다.

       다만 보는 눈이 없는 자리로 옮겨서일까, 그의 말에서 나는 아까와는 다른 미세한 이상 기류를 눈치챘다.

       

       “시프 길드랑 내통한 걸 수도 있잖아요. 암호를 유출해서 시프 길드가 잠입할 수 있도록 한 거면요?”

       

       그 말에 반하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 가능성은 생각하고 싶지 않군요. 길드에서 활동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모르시겠지만, 저희 길드 간부들 중에는 결단코 그럴 사람은 없습니다.”

       

       역시.

       

       “생각을 안 해 보신 건 아닌 모양이네요.”

       “…….”

       

       잠시 말이 없던 길드장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모두 이 길드에서 함께 오랜 기간 일해 온 녀석들입니다. 제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제가 간부를 심문하기 시작하면 길드 내 질서가 한 번에 무너질 겁니다.”

       “…그렇군요.”

       

       아예 확실한 증거를 잡은 뒤면 모를까, 그 전에 길드장이 간부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 명의 미꾸라지 때문에 전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예 생각이 없는 고집불통 양반은 아니었구만.’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지.

       

       “길드장님이야 당연히 간부들을 믿어 주셔야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드장의 표정이 밝아지자,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하긴요. 모든 의심은 제가 도맡아 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길드장님은 그냥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몇 가지 준비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길드장님 생각대로 철썩같이 믿고 기다리면 돼요.”

       

       나는 아르의 배를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그러면 그 누구의 신뢰도 깨지 않고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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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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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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