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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당신을 단죄하겠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에게나 내리는 선고를, 올리비아에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

       – 그 자는 악마입니다!

       ​

       프란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 그 결계만 없었어도, 모두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작자가…….

         

       ​

       아득한 높이의 해일이 밀려오던 그날, 리브가도 이카일에 있었다. 그녀가 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려던 그 순간.

       ​

       “나가 있으렴.”

       ​

       올리비아의 손 끝에서 빛이 점멸했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어딘지 모를 풀밭이었다.

       ​

       “여긴…….”

       ​

       주변에는 호위 역을 수행했던 성기사들이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올리비아가 그들 전부를 이동시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였다.

       이카일의 시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명도.

       ​

       그 때, 리브가의 귀에 무언가 애타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 번이고, 다시 몇 번이고 애타게 두드리는 소리가.

       ​

       – 쿵쿵쿵쿵쿵!

       ​

       희뿌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몇 번 눈을 부비고 나서야, 시야가 흐려진 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에 끝을 알 수 없는 반투명한 결계가 있었다.

       ​

       [■■■■■■■■■!]

       ​

       결계 속에 갇힌 사람들이 리브가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비명이었고, 절규였고, 기도였으며, 또한 부탁이었다. 그들은 주먹이 터져라 결계를 두드렸고, 제 자식의 손을 잡고 오열했다.

       ​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결계는, 목소리마저도 새어나가길 허락하지 않았다.

       리브가에게 닿는 것은 오로지 진동 뿐이었다.

       ​

       ‘대체…….’

       ​

       리브가는 저도 모르게 그 표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단단했다.

       마치 갑옷을 만지는 것 같았다.

       ​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저들이 저렇게 공포에 떨 이유가 없다.

       이 정도 크기의 결계라면, 아무리 높은 파도라고 한들 능히 막아낼 수 있을…….

       ​

       리브가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

       쿠구구구구구…….

       ​

       그동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진동이 울려퍼졌다. 그 울림이 어찌나 강했는지, 기절해있던 성기사들 대부분이 정신을 차렸다.

       ​

       “저, 저건……!”

       ​

       성기사들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등대가 있는 방향이었다. 다음 순간, 등대가 그림자에 파뭍히더니, 그대로 해일에 쓸려나갔다.

       ​

       그 순간, 리브가는 사람들이 어째서 결계를 그토록 애타게 두드렸는지를 깨달았다.

       ​

       이건 파도를 막는 용도가 아니었다.

       파도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는 용도였다.

       ​

       ‘안 돼.’

       ​

       순백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성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리브가는 망설이지 않고 성창을 손에 쥐었다.

       ​

       그리고 내질렀다.

       ​

       쩌엉!

       ​

       리브가의 성창이 그대로 튕겨나갔다. 일격에 꿰뚫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리브가의 눈이 크게 떠졌다.

       ​

       엄청난 반탄력에 손목이 아려왔다.

       ​

       ‘이건…….’

       ​

       리브가는 이것이 평범한 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마력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닿는 순간 신성력이 흐트러졌다.

       ​

       이 결계는 신성력으로는 뚫을 수 없다.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결계라고, 리브가는 직감했다.

         

       “……왜.”

         

       리브가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수만 마법사 중에, 이 정도 크기의 결계를 만들 수 있는 마법사는 한 명 뿐이었으니까.

         

       수만가지 생각이 리브가의 머리를 지배했다.

         

       악마에 먹힌 것인가?

       결국 그렇게 되버리고 만 것인가?

         

       전조 따위는 없었다. 반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아스모데우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낙관한 적은 없었지만, 안심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결계는.”

         

       프란츠가 내뱉었다. 다른 성기사들 또한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들은 한참 동안 결계를 두드리다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성녀님! 저희 힘으로는 깨뜨릴 수 없습니다! 성창으로!”

       “이미……해봤어요.”

         

       실시간으로 변하는 성기사들의 얼굴을 보며, 리브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다.

       결계에 마기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성기사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건 올리비아의 짓이 아니라고.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은 악마의 짓이라고.

       하지만 악마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조금의 마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하하…….”

         

       리브가는 허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자신조차 혼란스러울 지경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성기사들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뻔했다.

       리브가가 눈꺼풀을 들어올렸을 땐, 온 성기사들의 얼굴에 타는 듯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슬픔을 느끼는 것은 그녀 한 명 뿐이었다.

       ​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올리비아는, 언니는 저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란 말이다.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하지만 그런 의지와 다르게, 리브가는 성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프란츠는 지금 당장 성국으로 복귀해서 원군을 청해오세요. 최대한 많이요. 지금 막지 않으면 피해가 더 커질겁니다.”

       “예, 성녀님.”

       “다들 물러나세요.”

       

       리브가는 다시 성창을 들었다. 그리고는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된 것처럼 창을 내질렀다.

        손목이 부어오를 때마다 신성력으로 근육을 재생시켰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도록, 리브가는 쉴새없이 자신을 몰아붙였다.

         

       “……성녀님.”

       

       할 수 있다.

         

       “성녀님!”

       

       해야만 한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어쩌면 아스모데우스는 이것을 위해서 올리비아의 비밀을 말해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절망하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절망하라고.

       남들이 올리비아를 악마 보듯 할 때, 그 시선들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라고.

         

       “으아아아아아!”

         

       혼신을 다한 일격은, 결계에 생채기도 남기지 못했다.

         

       ‘아아…….’

         

       비틀거리며 풀밭에 주저앉는다. 결계 너머는 이미 어깨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도시 외곽인 저곳이 저 정도라면, 해안가 일대는 이미 잠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

         

       부모들은 바닷물에 가라앉는 와중에도 자식들을 수면 위로 치켜들었다. 숨을 한 모금이라도 더 쉬게 해주기 위해서. 혹시라도 결계 너머의 성녀가 자신들을 구원해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기 위해서.

         

       무수한 눈동자들이 리브가를 보고 있었다.

       물이 차오르면 차오를수록, 그들의 눈동자는 색을 잃어갔다.

         

       리브가는 두 손으로 수풀을 쥐어뜯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감정까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지 마세요.’

         

       저들은 죽는 순간까지 올리비아를 저주할 것이다. 또한 증오할 것이며, 원망할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악마는 바로 그것을 원할 것이다.

         

       리브가는 무릎 꿇은 채로 눈물을 흘렸다. 저들의 눈에는 자신의 눈물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물 속에 있기 때문에.

         

       진동이 사라졌다.

       고개가 하나 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동자는 빛을 잃고, 그들을 삼킨 바다와 같은 색깔로 일변했다.

         

       분노한 성기사들은 애꿎은 나무에 주먹질을 했다. 미친 듯이 결계에 검을 내지르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슬퍼하는 사람은 리브가 뿐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쓰리고 아팠다.

         

       – 너는 이 몸의 주인을 잘 아는 듯이 말하지만, 그렇지 않아. 네가 아는 건 티끌뿐이다.

         

       그날, 마지막까지 올리비아를 묶어두었어야 했다.

       설령 그녀가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올리비아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에스티조차 이해하지 못했기에, 올리비아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카일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헛되었던 것은 아니다.

         

       도시 하나를 백 년 동안 수호한 대가로, 에스티는 감정을 잃었다.

       그렇다면 올리비아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을 채찍질하는가.

         

       그 정도면 최소한 세계를 구원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성녀님. 도착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을 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리브가는 그제서야 자신이 열흘 동안 쓰러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지에 도열한 수천의 성기사들.

         

       “……요한 경.”

         

       그들의 지휘관은, 최강의 성기사인 요한이었다.

       요한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한 눈빛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다.

         

       “결계가 해제될 조짐이 보입니다.”

       “……아.”

         

       그리고 리브가는 직감했다.

         

       선택의 시간이 왔음을.

         

         

       *****

         

         

       올리비아는 리브가를 응시했다.

       그녀는 허공에 떠올라 있었지만, 리브가 또한 날고 있었기에 둘의 눈높이는 동일했다.

       ​

       “……리브가.“

       “…….”

         

       리브가는 대답하는 대신 성창을 겨누었다.

         

       ‘……끝났구나.’

         

       거기서 올리비아는 직감했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봐야, 리브가는 듣지 않을 것이다.

         

       ‘아스모데우스’라면 소멸시킬 것이고, ‘올리비아’라면 명예를 이 이상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죄할 것이다.

         

       이번 단서는 망했다.

       이대로 마무리된다면, 리브가는 ‘현재’에서도 자신을 단죄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올리비아의 손 끝에 마력이 모여들었다. 이카일이 끝장날 때까지 결계를 유지했기에 몸 상태는 그닥 좋지 않았지만, 이 정도 마법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언니가 져버려서 미안해.”

        “……!”

         

       몰살 엔딩을 봐야겠다는 유혹만 이겨냈어도, 상황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테니까.

         

       날아들던 리브가가 멈칫했다. 부릅 떠진 그녀의 눈꼬리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런 리브가에게, 올리비아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미소지어 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바꿀게.”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 파도잡이 에스티를 소환합니다.

         

       리브가의 바로 옆에 에스티가 나타났다. 그녀는 갑작스런 공간 전이에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올리비아! 갑자기 이게 무슨 짓……!”

         

       에스티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정확히는, 이쪽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경고! 경고! 경고!]

       [단서 속에서는 오직 1명의 회귀자와만 접촉할 수 있습니다!]

       [단서 이용이 강제 종료됩니다!]

         

       시야가 아득해졌다.

       육체가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언니……!”

         

       누군지 모를 목소리가 들렸고.

         

       -쿠우우우웅.

         

       이내 의식이 끊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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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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