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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

     그 시각, 지브롤터 백작성 서재.

     “급히 보고드립니다! 현재 축제 현장에서 사고 발생! 마법사가 쏜 폭발마법의 불씨가 그대로 거리를 덮쳤습니다!!”

     “아르쉔 길라루스. 그 자인가.”

     크림슨 변경백은 허리에 찬 검을 이미 뽑은 채 검날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모르가니아의 수작인가….”

     그 말에, 서재 내부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아르쉔 길라루스는 남작이다.

     귀족이며, 사흘 동안 500만 골드의 보수를 약속받은 중급 마법사다.

     심지어 그냥 아무나 지브롤터가 고용한 것도 아니고, 그레이의 요청에 따라 카르멘 모르가니아가 직접 보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지브롤터의 축제에서 이런 사고를 일으킨다?

     “일부러군.”

     사고일 수가 없다.

     이미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르쉔 남작을 데리고 협곡에서 폭발 마법을 사용한 걸 몇 번이고 확인하고 보고했기에, 사고가 생길 수가 없다.

     “축제에서 사용되는 불꽃은 일반 불꽃이 아니지. 마법의 불꽃이야.”

     

     마법으로 터뜨린 불꽃이기에, 허공에서 폭발하며 흩어질 때는 자연스레 불씨가 사라지도록 출력을 조정할 수 있다.

     “처음부터 터진 게 아니라 중간부터 그랬다면, 더더욱 의도한 행위지.”

     결론이 나왔다.

     “모르가니아의 짓이든 아니든, 아르쉔 길라루스는 즉시 제압한다. 말콤. 그 자는 우리 지브롤터의 적이다.”

     “즉시 매뉴얼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서재에 있던 집사장 말콤이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 아버지!”

     “그래. 왔느냐.”

     곧 말콤과 교차하듯 한 무리의 소년소녀들이 들어왔다.

     머리가 하얀 메이드 셋에게 둘러싸여 들어온 누아르.

     졸린 듯한 얼굴을 애써 감추려는듯 충혈된 눈을 깜박이며, 옆에 부축하듯 선 에단의 도움을 받아 들어오는 레타르.

     “어머니도…!”

     “나는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단다. 네 아버지와 함께.”

     당연히, 샤를로트 백작부인과 막내인 루비는 서재에 있었다.

     “…그레이 형은 어디로?”

     “광장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크림슨 변경백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검을 만지작거렸다.

     “위험 요인은 어디에 더 있는가….”

     크림슨이라는 한 사람에게 있어, 위험도에 따른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서재가 우선이다.

     샤를로트, 누아르, 레타르, 루비.

     혹시나 이 소란을 틈타 백작저택을 공격하려고 하는 암살자나 납치범이 있을 경우, 무조건 이곳을 지키는 것이 맞다.

     설령 그레이가 사고 현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한 명과 다수의 차이는 저울질을 할 필요도 없으니.

     

     그러나.

     “엘리와 자베스는 어디에 있지?”

     “그, 그 둘이라면 그레이 도련님과 같이 나갔습니다…!”

     어깨에 파란색 끈을 두른 백발 메이드가 다급히 답했다.

     

     “그렇군. 너희들, 그레이가 너희를 어떻게 부르지?”

     “저는 36입니다. 이쪽은 54, 72입니다.”

     사람을 숫자로 부른다는 것이 당연히 이상하지만, 그걸 ‘그레이가 불렀다’라는 변경백의 말에 서재 안의 사람들은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숫자로 불린 메이드들이 좀처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특이할 게 없었다.

     “너희 셋은 지금부터 즉시 광장으로 가라. 그리고 그레이에게 전해.”

     크림슨 변경백은 한동안 붙잡고 있던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은 다음.

     “이 검을.”

     검집째로, 세 메이드에게 뻗었다.

     “나는 직접 가지 못하지만, 이 검을 대신 보내겠다는 말도 전하도록.”

     * * *

     흡혈귀.

     흔히들 인간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아넣고 그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마족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흡혈귀 중에서도 저들, ‘뱀파이어’라는 족속들은 다르다.

     나는 알고 있다.

     저들의 기원을.

     저들이 주로 모여있는 곳을.

     그리고 저들이 누구를 따르고, 누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지.

     ‘황제구나.’

     황제가 움직였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것처럼 보이던 자가 드디어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상급 흡혈귀를 몰래 침투시켜 아르쉔 길라루스를 권속으로 만들고 세뇌한 거야.’

     축제로 몰려든 사람들 속에 숨어든 흡혈귀를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밤에 몰래 들어왔겠지. 낮에는 어디 상자나 마차 짐칸 같은 곳에 숨어있다가.’

     아무리 태양빛에 직접 닿으면 재가 되어 사라진다고 한들, 태양이 떨어진 밤에 활동하면 그만.

     아르쉔과 언제 접촉을 한 걸까.

     밤에 몰래 호텔 방에 침투를 한 걸까? 

     아니면 아르쉔이 밤에 사람이라도 부른 걸 바꿔치기 한 걸까?

     ‘곤란한데.’

     곤란하다.

     “흐아아압!!”

     상급 기사인 카를로스가 전력을 다해 앞으로 검을 휘두르지만, 좀처럼 아르쉔을 베지 못한다.

     “키힛, 히히힛…!”

     베이면서도 웃고 있다.

     옷이 검에 잘리고 살점이 움푹 파일 정도로 검에 베이는데도, 아르쉔은 검게 물든 눈동자로 웃기만 하며 계속 마나를 끌어올리고 있다.

     ‘나도 당장은 카를로스를 믿을 수밖에 없나.’

     아무런 힘도 없는 그레이 지브롤터.

     나서봐야 하급 기사의 힘밖에 없고, 그마저도 직접 선보인다면 오전-오후의 축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누아르의 명예를 지켜야 해. 지금까지 3년 동안 왜 무능을 연기해왔는데.’

     나서봤자 한 줌이라면, 차라리 꾹 참는 게 맞다.

     ‘고작 흡혈귀 하나 때문에 계획의 근본을 거스를 수 없어.’

     앞으로의 포석을 위해서라도.

     ‘대응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뱀파이어의 권속이 된 자는 신체 능력이 월등해진다.

     한 마디로 ‘인간초월’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 자체가 아니라 아예 다른 종족-‘아인(亞人)’이 되어버리기에, 당연히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월등한 신체능력을 자랑한다.

     그 숲에 사는 엘프들이 팔다리는 얇아보여도 인간보다 몇 배는 더 강한 것처럼, 뱀파이어는 겉모습이 사람일 뿐인 괴물이다.

     ‘제압은 가능해.’

     상급 기사는 허명이 아니다.

     비록 술에 살짝 취해있고 갑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실력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실제로-

     “흐아압!!”

     서걱!

     카를로스 경이 전력을 다해 두 손으로 잡은 검을 휘두르자, 아르쉔 남작의 팔이 뭉텅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크아아아!!”

     흡혈귀의 권속이 된 와중에도 고통은 느끼는 건지, 지팡이를 한 손으로 쥔 아르쉔 남작이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끄르륵…!”

     피분수는 없다.

     몸 안에 흐르는 피는 마치 왁스처럼 진득하여, 잘려나간 팔의 단면에서도 핏방울조차 흐르지 않았다.

     흡혈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기사가 나서야 한다.

     그냥 검을 휘두르면 흡혈귀의 피가 검신에 달라붙어 검날에 끈적한 점액을 묻혀버리는 셈이라, 그걸 방지하기 위한 ‘마나’가 필요하다.

     아니면 흡혈귀의 기원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금속 중 하나를 사용하거나.

     “쳇.”

     나는 품에서 금화를 꺼냈다.

     지름이 6cm나 되는 10만 골드.

     제국산 위조 골드처럼 정교하지 않은, 다소 깎여나간 부분이 있는 진짜.

     마나를 담아, 팔을 어깨 너머로 넘긴다.

     그리고 그대로 원반을 던지듯 날린다.

     부ㅡㅡ웅!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금화는 순식간에 카를로스 경의 옆을 스치듯 날아가 아르쉔 남작의 미간에 수직으로 꽂혔다.

     푸ㅡㅡ욱!

     말 그대로 꽂혔다.

     정정. 박혔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허억…!”

     

     금화가 절반 가까이 아르쉔 남작의 이마 속으로 파고든다.

     미간의 두개골이 단단했다면 마나를 담은 금화도 튕겨내겠지만, 흡혈귀인 이상 이야기는 다르다.

     “도, 도련님. 지금 그건…?”

     “은화는 아니지만, 금화도 효과가 있지.”

     원래라면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은화다.

     “뱀파이어가 은에 제일 약하고, 그 다음으로 통하는 게 금이지.”

     순도 높은 은과 금일수록 효과는 좋다.

     대신 전자는 마나가 없어도 은 그 자체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후자는 마나를 담아야만이 지금처럼 타격을 넣을 수 있다.

     “과연…!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카를로스가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낸 다음, 자신의 검날에 대고 쭉 그었다.

     “우오오오!!”

     가운데가 긁힌 10만 골드 금화가 바닥에 떨어지고, 카를로스가 금가루가 묻은 검을 들고 크게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허리.

     척추를 끊어내며 반으로 가르기 위함이었으나-

     “아이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금화에 탄식이 절로나왔다.

     ‘금가루가 아니라 구리가루였고.’

     “뭣?!”

     대검이 옆구리를 가르고 안으로 잘 들어가다 멈춘다.

     ‘중급 마법사면 몸에 마나도 많으니, 그게 다 방어력으로 치환되었고.’

     

     흡혈귀의 뼈와 근육이 단단한 것도 있지만.

     ‘멘테 경이랑 전력으로 싸우고 회식 중에 뛰쳐나왔으니 마나 응집도 온전하지 못하긴 해.’

     검에 깃든 마나의 양이 아르쉔 남작의 몸을 일검에 양단할 만큼 강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래도 진짜 금화였으면 척추까지는 갈랐을텐데.’

     검날에 긁은 금화에서 흘러나온 가루가 금이 아니었기에, 검은 그만 옆구리에 박히고 말았다.

     “키히힛…!”

     아르쉔 남작은 척추 직전까지 검날이 박혔는데도 웃기만 했다.

     한 쪽 팔이 어깨부터 잘려나가고 허리에는 검이 박혔으나, 그는 오직 한 손에 쥔 지팡이에 마나를 계속 흘리며 마법을 쏘려고 했다.

     화르륵!!

     하늘을 향해 다시 불꽃이 발사된다.

     이전보다 못하지만,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듯한 불꽃은 무대 경기장 관중석을 넘어 거리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크윽!!”

     “카를로스 경!”

     역시나.

     “마력이 다한 송장이다! 토막을 내서라도 제압해!!”

     “…예!”

     나는 카를로스에게 지시를 내린 다음, 바로 무대의 출구로 달려 불꽃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향했다.

     생각했다.

     아르쉔을 이용해 누군가를 노린다면, 과연 누구를 죽이려고 할까.

     지금 광장, 거리에 있는 이들 중에서 누군가를 죽이려고 한다면, 가장 죽였을 때 효과가 좋은 이가 누가 있을까.

     “멘테 경!!”

     불꽃이 떨어지는 방향, 멘테 경이 불꽃을 올려다보고 있다.

     “적의 목표는-”

     불꽃이 정확히.

     “나리아!”

     금발의 소녀를 향해, 유성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 * *

     그 시각.

     저벅, 저벅.

     군청색 머리칼의 한 남자가 잠옷에 코트만 걸친 채, 굳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화, 황태자 전하! 지금은….”

     “비켜.”

     “꺄악!”

     끼이익.

     앞을 가로막는 메이드를 손으로 밀치고, 노크도 없이 문을 좌우로 열어젖히며 황태자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폐하.”

     “이 늦은 밤에 이렇게 무슨 일인가. 옷도 제대로 입지도 않고.”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이긴.”

     창 앞에서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는 자.

     “모든 것은 제국을 위해서지.”

     “미치셨습니까? 평화협상 중에, 적국에 테러를 일으킨 겁니까?”

     “내가 테러를 일으켰나? 흡혈귀가 일으킨 것이지.”

     테르시안 제국의 황제.

     그의 앞, 책상 위에 최근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 여러 보고서가 놓여있다.

     “황태자가 왜 지금까지 이런 고급 정보를 본인에게 숨겼는지는 모르겠군. 아. 알아서 그런가? 본인이 이런 행동을 할 거라는 걸.”

     “폐하…!”

     “평화협상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암살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황제는 붉은 와인이 든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유일한 왕족, 나리아 공주가 죽으면 노스트럼의 왕좌는 계속 세인트 지오가 차지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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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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