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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0

    <850 – 억울한 아이(5)>

     

    공포영화나 공포게임을 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귀신이니, 살인마니, 광신도니 하는 것들.

    저거 그냥 패버리면 안 되나?

    왜 도망만 다니지?

    아니지.

    저것도 겁을 주면 놀라기는 할 텐데.

    거꾸로 내가 놀라게 하면 안 되나?

    지금, 그 오랜 꿈을 해소할 기회가 찾아왔다.

    지구에서와 달리 게임이 현실이 된 이쪽 세계에서는 그 꿈을 실현할 충분한 무력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오크노디 신입수녀. 꼭두새벽부터 수녀들을 모두 기상시키다니, 제정신인가요? 이미 경고했을 텐데요. 밤에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야 영양보급을 받을 수 있고, 보급을 받는 도중에 눈을 뜨면 청소만 고달파진다고요.”

    “그게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한 손에 쥔 싱이 반대쪽 손으로 인큐버스의 수급 여러 개를 동시에 쥐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기도, 거꾸로 불어넣기도 하며 마음에 드는 존재를 서큐버스로 타락시키는 존재.

    사랑의 신의 권속에 가장 어울리는 종족 서큐버스를 양산하는 마의 종족이 신성술에 의해 보정받는 생전의 외모 대신, 추한 몰골을 고스란히 보였다.

     

    “으악 징그러!”

    “저게… 설마 우리들의 왕자님?”

    “밤마다 찾아오는 영양보급셔틀이 저런 추레한 것들이었다니!”

     

    수녀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밤에 영양보급을 받는 도중에 눈을 뜨면 죽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영양보급을 하는 도중에는 외모 변형의 신성술에 집중할 수 없는 탓에 잘생긴 외형을 가장할 수 없고, 제 본 모습이 들킨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죄 없는 수녀들을 죽여 왔던 것이다.

     

    “죽어버리세요, 이 추한 것들!”

    “이건 로빈의 몫! 이건 미나의 몫!”

    “시체를 반으로 쪼개버리겠어요!”

     

    날마다 흉악한 괴물의 먹이를 사냥하고 배식하며 단련된 수녀들의 힘과 배짱은 그녀들의 폭력성을 증대시켰다.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사람 좋은 말을 하고 다녀도 주변 환경이 글러먹었으면 내면의 폭력성은 수용한도의 역치가 알게 모르게 꾸준히 올라가는 것이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가장 겁에 질린 사람은 우리 파티였다.

    스노우빌이야 티토소가에 맞먹는 겁쟁이니 그렇다고 쳐도 다른 한 명은 좀 의외다.

    놀랍게도 두 번째 겁쟁이는 악성향 동방검객으로 많은 피를 보아왔던 싱이었다.

     

    “시아. 괜찮아요? 왜 그렇게 놀라요?”

    “인큐버스의 영앙공급 말이다.”

    “네?”

    “인큐버스는 수컷이지?”

    “그렇죠?”

    “밤에 영양 보급을 한다고 했고.”

    “맞아요.”

    “그럼 그 보급은 무엇으로, 대체 어디로, 어떻게 주입이 되는 거지…?”

     

    굳건한 신체를 지녔음에도 오금이 저리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싱의 모습은 그가 전율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슬쩍 마인드리딩 주문을 걸어 살펴보니 싱의 내심이 참으로 복잡했다.

    인큐버스에게 당해버릴 뻔했다는 공포에 뒤섞인 차마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기대감.

    그 기대감이야말로 가장 큰 공포가 되어 싱은 자기자신에게 전율하고 있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즐거워 보이니 그냥 마저 즐기시라고 못 본 척해줬다.

    후, 오늘도 착한 짓을 해버렸구나.

    역시 난 착한 아이야!

     

    “근데 이거 들키면 저희 다 큰일나지 않을까요?”

    “너희가 저지른 일이잖니.”

    “제가 수녀장님이라면 관리에 실패한 고참수녀분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 같은데요!”

     

    은근슬쩍 선을 긋고 우리를 희생양으로 삼아 벗어나려던 고참수녀가 인생 망했다는 얼굴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말없이 침상 옆 서랍장을 연 고참수녀가 숨겨둔 연초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시팔.”

     

    모두가 깜짝 놀랐다. 저 바르고 고운 고참수녀님이 담배를 피우며 욕을 하다니!

    얼 타는 신입 앞에서 정색하는 모습은 봤어도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인지 다른 수녀들도 심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너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괴물이 죽으면 수녀가 사라져. 그리고 괴물이 다시 충원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하냐고.”

     

    이제는 놀람을 넘어서 공포가 만연했다.

    수녀가 괴물이 되어서 돌아온다.

    아타락시아의 수녀원에는, 실은 괴물이 없었다.

    모두가 형태만 다른 수녀였을 뿐.

    스노우빌은 아예 까무러치기 직전이라 주변에서 놀라던 다른 수녀들이 그녀를 걱정하느라 놀랄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그럼 다 함께 도망치는 게 낫지 않겠냐. 한 명이라도 힘을 합칠 동료가 많을 때 힘을 모은다면 분명 이 끔찍한 수녀원에서 달아날 가능성이 높겠지.”

     

    올로스트 선배의 권유에 고참수녀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방법이 있어. 우리는 안전을 위해 절벽지대만을 사냥터로 사용하지만, 숲에도 길이 있어. 거기에는 괴물들이, 그게 정말로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괴물들이 있고, 그걸 넘을 수 있으면 숲을 가로질러 탈출할 수 있겠지.”

    “지금까지 그걸 시도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었나?”

    “수녀원의 지하로 수녀장이 내려간 것을 보고 숲에 탈출하려던 수녀들이 있었지. 그 수녀들은 숲에서 돌아온 수녀장에게 끌려왔어. 숲의 괴물들에게 엉망진창으로 당해버린 채로. 지하로 끌려갔고,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었지.”

    “수녀원의 지하에는 숲으로 향하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말이군.”

    “수녀장 디사스트에르는 어떤 괴물도 당해낼 수 없는 진정한 괴물이야. 여신의 권능도 이 수녀원에서 가장 잘 구사하지.”

     

    문득 겁에 질려 덜덜 떨기만 하던 스노우빌이 화를 내었다.

     

    “세상에 이딴 선신이 어딨어요! 사랑의 신이라면서요. 자기 수녀들을 괴물 밥이 되고 학대당해 공포에 떨게 만드는 신이 어딨냐고요!”

    “우리도 몰라. 살기 위해 신을 믿고, 신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더 버틸 뿐이니까.”

     

    무거워지는 분위기.

    모두가 꿈과 희망을 상실해가는 모습이었다.

    근데 나 아직 할 말 끝나지 않았는데!

     

    “신과 수녀장의 뜻이 여러분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어요. 강자는 원래 약자의 미약한 의지나 공포, 사정을 고려하지 않거든요!”

    “하. 뭐, 지금 그들을 옹호라도 하는 거냐? 그래, 너라면 저 괴물 수녀장과도 협상을 맺고 수녀원을 양분할 정도는 되겠지. 아니면 하다못해 고참수녀의 지위라도 물려받거나.”

    “그런 작은 것에 만족하기엔 아쉽지 않나요? 우리의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되잖아요!”

     

    희망을 잃어가던 수녀들의 눈에 흔들림이 일었다.

    작전을 공유하자 수녀들의 눈에 결의가 일었다.

     

    “그저 아름다운 것이 죄라 하여 이 모진 곳에 끌려와 신을 받들고 강한 것이 권력이라 하여 핍박한다면, 이 근본 없는 수녀원이 한 방 먹여도 나쁜 일은 아니겠구나.”

     

    그리하여 우당탕탕 역습계획이 시작되었다.

     

     

    * * *

     

     

    오밤중에 귀청이 찢어져라 커다란 천둥이 내리치니, 그 빛이 수녀원의 지하 깊은 곳과 무성한 잎사귀에 뒤덮인 숲의 어둠마저 몰아내었다.

    티토소가의 조명대가 발산하는 조명술식을 모방한 결과물에 깜짝 놀란 수녀장이 뛰쳐나오니, 수녀들은 온데간데없고 괴물만 즐비했다.

     

    “이게 다 어디서 난 괴물들이냐.”

     

    저건 내가 만든 괴물이 아닌데.

    당황한 수녀장 디사스트에르의 귓가에 괴물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안하신가요, 수녀장.”

    “그 목소리는 설마… 안느? 안느냐?”

    “후. 후. 후. 역시 수녀장님은 알아봐 주시는군요.”

     

    기괴하게 갈라진 목소리.

    도대체 저것을 어떤 몬스터로 정의해야할지 말문이 막히는 기괴한 생김새.

    아니, 저것을 정녕 생물체로 분류해야 할지조차 고민되는 기괴한 형상 앞에서 수녀장은 강한 긴장감을 느꼈다.

    사람은 미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낀다.

    고참수녀 안느의 현재 모습은 충분히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그분의 신실한 신도인 너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실내 가득 도사리는 살덩어리가, 꿈틀거리는 혈맥이, 기괴한 가시투성이 오브제가, 찌그러진 금속이, 안면이 흘러내리는 조각상이 대답했다.

     

    “아타락시아께서 저희에게 인간을 벗어난 강함을 하사하셨으니, 이 변화한 육신이야말로 곧 그분의 사랑 아니겠습니까?”

    “저흰 너무 행복합니다, 수녀장님!”

    “수녀장님은 어째서 아직도 인간으로 계십니까?”

    “그분께서 수녀장님을 위한 특별한 신체를 준비하고 계실지도 몰라.”

    “오오. 역시 수녀장님다우세요!”

     

    오크노디의 환상 마법 장난에 어울리는 수녀들.

    싱이 보기엔 수녀들이 신이 나서 도울 만도 했다.

    날마다 거듭되는 죽음의 공포와 스트레스.

    그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된 기쁨.

    도파민을 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억압된 현실에 대한 밀린 보상을 받고자 수녀들은 더욱 열렬히 연기에 빠졌다.

    정말로 인간을 벗어난 괴물이 되어서라도 이 공포스러운 나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여도 좋지 않을까, 가슴 속 깊이 감정이입을 해버린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로!

     

    그리 궁지에 몰린 수녀장이 진심으로 당황하니, 궁지에 몰린 아이가 제 부모를 찾듯이 신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기도문을 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원점영역>

    <무극일섬>

     

    검의 기술을 검 없이도 펼치는 심의를 펼쳐내는 싱의 솜씨가 환상마법에 힘입어 한 줄기 혈관의 솟구침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경실색한 수녀장이 스스로 손을 뻗어 싱을 가리키고는 선언하였다.

     

    “추한 모습이여, 흩어져 깨져라.”

     

    연이어 심의를 펼치며 반격하려던 싱의 의지를 오크노디가 <어지럽히기>로 치웠다.

     

    [저거에는 닿으면 안 돼요!]

     

    심의를 타고 흐르는 바이러스와도 같은 침식계의 성질을 지닌 압축사출영역.

    수녀장 디사스트에르의 수법을 간파한 오크노디가 싱이 처할 수도 있었을 위기를 면해준 것이다.

    오크노디는 더욱 깔끔한 방법으로 수녀장의 수를 받아쳤다.

     

    조금 전, 싱이 펼친 심의에 베인 기도술.

    흩어지고 사라져가던 기도술이 정교하게 복원되더니, 수녀장의 압축영역과 충돌했다.

    하늘을 향해 시위에 당겨진 화살처럼 꾹꾹 압축되던 의지에 불길한 의지의 선언이 닿은 직후, 기도술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하여 실력자들은 알아차렸다.

    수녀장의 기도술에 그녀의 공격이 담긴 채, 신계에 계시는 신에게 날아갔음을.

    수녀장이 자신이 모시는 신을 추하다고 모욕하며 흩어져 깨지라고 공격하는 황당한 사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성모독을 저지른 수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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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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