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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2

    <852 – 억울한 아이(7)>

     

    올로스트는 자신에게 파고드는 힘을 느꼈다.

     

    -당신은 혼자서도 강해질 수 있지만,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욱 빨리 강해져야만 하죠.

    -그 시간을 제가 앞당겨 드리겠어요. 계약의 각인을 받아주세요.

     

    찰나의 번뜩임.

    순간의 미몽.

    올로스트는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억으로 재구성된 거짓된 세계 속 정지된 시간이 밀려나는 순간, 계약의 각인도, 그를 유혹하는 힘도 모두 떠밀려 사라질 것을.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계약의 각인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무모하게 들리는 스노우빌의 제안을 따른 것도, 막대한 자금을 통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니까.

     

    화아악!

     

    정지된 시간이 흐른 뒤.

    선신 아타락시아의 힘은 눈 녹은 듯이 사라졌다.

    아타락시아의 수녀원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뻔뻔하게 뙤약볕을 쬐었다.

     

    “저게, 와, 진짜, 사람이, 어떻게, 저런, 와.”

     

    말도 제대로 못 잇는 스노우볼 대신, 싱이 오크노디에게 물었다.

     

    “교장의 기억은 이걸로 끝난 거냐?”

    “대충은요!”

    “뭔가 지치는군. 당분간 아카데미에 얼쩡거리는 교단들은 눈에 담기도 싫을 정도로.”

     

    살아남은 수녀들은 괴물이 된 동료들을 어찌 취급해야할지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여기, 로미에의 목걸이를 가진 몬스터가 있어.”

    “로, 로미에? 우리 실수를 커버한다고 대신 수녀장에게 끌려갔던 그 로미에가?”

    “므우우에에에에…”

    “우아아아아!”

     

    염소가 되어버린 동료 수녀의 모습에 자신을 감싼 동료 수녀의 말로를 보고 울부짖으며 달려가는 수녀.

     

    “위험해!”

    “누가 미나를 말려!”

    “정신 차려, 미나. 저건 이미 로미에가 아니야!”

    “으아아아아! 내가, 내가 그날 조금만 더 용기를 내었다면, 로미에, 로미에에에!”

     

    끔찍한 비극 앞에 무너져 우는 어린 수녀와 그녀를 달래며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 수녀들.

    그 끔찍한 광경을 앞두고 스노우빌은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우리가 도움을 줬으니까 다른 지역은 언제 어디를 개발할 계획이냐고.

    도저히 돈이니 투자계획이니 그딴 소리를 꺼낼 타이밍이 아니다.

    심지어 그녀가 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아, 맞당. 근데 갑자기 스노우빌이랑 올로스트 선배는 여기 왜 돌려고 하셨어요?”

    “응? 투자… 핫!”

    “투자요??”

    “그, 그게 그러니까.”

    “…니가 사람이냐?”

     

    아무리 돈이 급해도 여기서 투자 소리가 나오냐는 올로스트 선배의 따가운 시선 앞에서 스노우빌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이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교장의 유적지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투자를 해주고 싶어서!”

    “네에? 선배도 참. 여긴 기억 속 가상세계이고 실제세계랑은 별개잖아요. 여기에 투자를 한다고 뭐가 나오지는 않는다고요?”

    “마음이, 내 마음이 편해져요!!”

     

    차마 쓰레기가 될 수는 없었던 스노우빌의 눈물겨운 허공에 돈 붓기 투자선언!

    오크노디가 아 그거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거 가끔 해요! 포인트 준다고 하고 어중간하게 밥 사먹을 돈 주고 놀리는 그거 맞죠?”

    “아니야!! 완전 많이 줄 거야!!”

    “얼마나 쓰시려고요?”

     

    아마도 스노우빌이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 여기였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후원해주실 건가요?

     

    스노우빌의 머릿속에 문득 언젠가의 앳된 얼굴의 아이린이 떠올랐다.

    가난과 고통, 절망에 찌든 북부 주민들을 위해 후원을 독려하던 아이의 모습이.

    돈을 허공에 뿌린다며 비웃고 조롱하던 다른 귀족자제들의 비웃음이.

    옛적의 스노우볼은 어리석은 북부대공녀와 같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아이린과의 관계를 잃고 싶지도 않아서 1골드와 1500평이라는 애매한 투자만을 벌였다.

     

    -고마워요.

     

    아이린의 얼굴에 떠오르던 쓰디쓴 웃음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1골드는 당시의 스노우빌이 지닌 전재산이었다.

    마탑의 지원은 없어도 나는 널 지지한다.

    그런 선언이 있었기에 아이린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갑부가 될 기회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어떤가.

    돌아올 수 없는 돈.

    허공에 돈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

    여기서 주머니에 잡히는 돈만을 꺼내 든다면 그 옛날, 한평생을 후회했던 그 순간의 결정과 대체 무엇이 달라지는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오크노디와 적당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되, 그저 지인의 사이에 그치는 애매한 관계.

    그런 어설픔에, 혹여나 놓쳐버린 기회에 여생을 모두 후회할 뿐이다.

    인생에 보통 기적은 세 번 찾아온다고 한다.

    스노우빌은 이미 두 번의 기적을 겪었다.

    청색마탑주의 수제자가 될 재능을 얻은 것.

    아이린과 함께 갑부가 될 기회를 얻은 것.

    그때의 후회를 양식으로 삼아 과거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 것.

     

    “전부.”

    “네?”

    “청색 마탑의 후계자로서, 저 스노우빌이 다룰 수 있는 전 재산을 투자하겠어요!!”

     

    어마어마한 투자선언이다.

    마탑의 후계자에게 선을 대는 모든 파벌, 조직의 기대와 미래 가치에 대한 평가를 아타락시아 수녀원 피해자들에게 몰빵한다.

    본인도 자각했다.

    이건 미친 짓이다.

    하지만 미치지 않으면 같은 후회를 반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계약의 신을 공증인으로 삼는 계약 선언이 완료되었습니다.]

    [스노우빌이 어떠한 대가나 약속 없이 희생과 헌신을 약속합니다.]

     

    바보같을 정도로 어리석은 투자는 고인물 오크노디에게 답도 없는 뉴비의 실수로 보였다.

    포션 100개 사오고 남는 돈은 용돈 삼으라고 돈 줬더니 삼일밤낮을 돌아오지 않아서 찾으러 나갔다가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뉴비 썰을 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지경이었다.

     

    -너 여기서 뭐하니? 포션은 왜 안 사?

    -포션비를 벌고 있어요…

    -돈 줬잖아.

    -돈이 부족하잖아요.

    -???

    -한 칸에 99개인 상급포션 100개 사려면 9900개 사야 하니까… 부족한 돈은 그간 여러 팁을 주신 대가로 알아서 벌어오라는 뜻 아니셨어요…?

     

    기특한데 멍청한, 애는 착한데 하는 짓은 좀 그런, 마치 티토소가를 바라보는 눈!

     

    “에휴, 안 되겠다. 사람이 이렇게 바보같이 순진하기만 해서 어떻게 살아요? 원래는 연계퀘스트에서 쓰려고 했는데 그냥 여기서 써야겠넹!”

     

    오크노디는 막대한 포인트를 내고 임대한 넘버즈 아티펙트를 꺼내들었다.

     

    [과거개변의 붓펜(전설)]

    [효과 : 정해진 횟수만큼 과거를 변화시키는 글을 쓸 수 있다.]

    [발동 : 이 시간을 현재로 개변한다.]

     

    “너, 그건…?!”

    “쉿. 스노우빌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붓펜을 알아본 올로스트 교관이 기겁했다.

    넘버즈 아티팩트에서도 싱글넘버 급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마도구.

    그만큼 매매가는 물론이고 임대비조차도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마도구였지만, 음지의 1인자이자 세계의 반을 장악했던 재단의 후계자답게 오크노디는 이 엄청난 마도구의 임대에 성공했다.

    심지어 그녀의 말을 분석하면 본래의 사용처가 무엇인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저것은 삼대거악의 일원 ‘만신의 대리인’의 과거를 변형시켜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개변살인의 도구였다.

     

    [과거개변의 붓펜(전설)]

    [효과2 : 잉크가 자동충전 될 때까지 재사용은 불가능하다.]

     

    오크노디의 사용으로 인해 수많은 나라나 조직, 강자들은 과거개변의 기회를 상실했다.

    차라리 오크노디가 그 기회를 누렸다면 저들도 납득했겠지, 스노우빌이 그 기회를 누린 것은 마도구의 존재를 아는 거대조직의 수장급이나 세계각국의 국왕들에게는 정말 이가 갈리는 사태였다.

    뭣도 아닌 녀석이 오크노디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순간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분에 넘치는 기회를 누리게 된 것이다.

     

    ‘저 녀석, 당장 내일부터 암살자에 시달리겠군.’

     

    딱하지만 어쩔 수 없지.

    손절하자.

    쿨하게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한결 후련해진 마음 덕분일까.

    올로스트는 잊고 있던 의문 하나를 찾았다.

     

    “그래서 이 기억의 어디에 교장이 있었던 거지? 교장의 유적지라면 이 과거의 사건도 교장이 엮인 것이어야 했는데.”

    “아, 모르셨구나! 마수배급소에 있던 자이언트 터틀이 교장님이셨어요!”

    “뭐?!”

     

    하기야 폴리모프로 외형을 바꾸는 유희를 꼭 인간의 몸으로 즐기라는 법은 없다.

    교장한테는 그냥 마수가 우글거리는 동네에 적당히 얼쩡거리기만 해도 저절로 밥이 나오는 무료급식소 비슷한 추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동네 맛집이 참 좋았는데.

    딱 그 정도의 감성.

    뭐, 이젠 다 지난 일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과거의 시간대를 벗어나 현재로 돌아와 교장의 유적지 정문을 열었다.

    이제는 아카데미 교관 올로스트로 돌아올 시간이다.

     

    “오셨습니까, 올로스트 성하.”

    “스노우빌 성녀께서도 돌아오셨군요.”

    “두 분의 무사복귀를 축하드립니다!”

     

    펑!

    파티용 폭죽을 터뜨리고 축하인사를 건네는 수녀들의 등장에 올로스트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가 어느 교단입니까?”

    “물론 사랑의 신 아타락시아 님을 모시는 만애교단입니다.”

     

    수정된 역사 속 스노우빌의 투자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청색마탑주의 수제자는 주류24신격의 일원의 성녀 지위를, 그 조력자였던 올로스트 교관은 총대주교이자 교황의 지위를 얻은 것이다.

     

    “어? 그쪽 분이 가져온 그 아이템, 왜 옛신의 기운이 묻어있어요?”

     

    심지어 오크노디가 가리킨 낡은 무명천은 신의 기운이 희미하게나마 깃든 신물이었다.

     

    “이것은 저희 만애교단의 적이자 주류24신격 모두의 적, 만신의 대리인과 그를 따르는 옛신의 숭배자들을 토벌하여 얻은 전리품입니다. 불길한 고대의 신물을 다크프린세스께 진상하여 교단과의 우호의 징표를 나누고자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만신의 대리인.

    구 삼대거악 최후의 일원이 지닌 힘과 세력이 은밀하게 힘을 기르기는커녕 역으로 사냥을 당할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억울한 아이 : 만신의 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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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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