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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4

    <854 – 만신의 자객(1)>

     

    만신의 대리인의 8번째 분신 롬멜.

    그는 <소멸>의 권능을 지닌 옛신과 <접촉>의 권능을 지닌 옛신의 능력을 하사받았다.

    만신의 시대에 두 신은 상극과도 같았다.

     

    나르그레시Nargresh.

    소멸의 신은 접촉하는 모든 것을 즉시 소멸시켰다.

    그녀는 무엇에도 닿지 않았고, 모든 영혼과 기억, 존재의 흔적까지 잊으며 스스로 망각의 각에 몸을 담그며 차원 틈새를 떠도는 혼돈이 되었다.

     

    에레시스Ereshis.

    접촉의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접촉시켰다.

    그의 인자한 성품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시키며 치유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과도한 연결욕망은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에 연결된 존재들을 파멸시키기도 했다.

    그에게 불린 나르그레시가 얼마나 많은 존재를 소멸시켰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금지된 조합.

    공존해서는 안 되는 신들.

    급기야 대륙 전역에서 금기로 지정된 두 신은 신앙을 지닌 신자가 모두 추살되기에 이르렀다.

     

    [옛신 에레시스가 “반가운 것이다!”라고 인사합니다.]

    [옛신 나르그레시가 침묵합니다.]

     

    고대의 암살자 빌드를 탄 분신 롬멜은 자신을 매개체로 오가는, 정확히는 한쪽의 일방적인 수다로 이어지는 신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에게 감정 따위는 없고, 그저 자신에게 담긴 신의 권능을 만신의 대리인의 적에게 퍼붓는 인간형 신앙폭탄에 불과했으니까.

     

    “어이어이, 여긴 우리가 정비한 도로에 손수 뚫은 터널이다. 이용하려면 요금을 내라고!”

    “강을 건너고 싶다면 1골드를 내놔라. 바다괴수가 날뛰는 요즘 같은 때에 정기편은커녕 노를 쥔 뱃사공은 나밖에 없다고? 큭큭큭.”

     

    겁도 없이 롬멜을 영업대상으로 삼고 다가왔던 산적과 해적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쓰러진 그들의 입에서는 <접촉>으로 이어진 산의 흙이나 호수의 물이 새어 나왔다.

    그 흔적은 <소멸>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이것이 고대의 암살자 빌드이자 금지된 신앙으로 대륙에서 지정된 이유이기도 했다.

     

    [옛신 에레시스가 “성실한 도적들인 것이다!”라고 안쓰러워 합니다.]

    [옛신 나르그레시가 침묵합니다.]

     

    옛신 에레시스는 자신들의 신앙을 지닌 유일한 매개체의 잔인한 손속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신자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했다.

    만신의 대리인의 분신 롬멜의 요청을 무시하고 그를 잃는 순간, 자신이 모든 신자를 잃고 영원히 그 이름을 잃어 소멸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멈춰라. 우리는 기프트 아카데미로 정기 납품을 하러 가는 상단이다.”

    “수상한 놈. 길을 비키지 않거든 공격하겠다.”

     

    롬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짐마차 주변을 성의 없는 눈으로 서성거리던 검사 몇이 눈에 살기를 품으며 마주 달려들었다.

     

    <접촉의 권능>

    <폐>+<토사>

     

    고유영역으로 자신을 지킬 역량이 없는 검사 다섯이 쓰러지고, 둘이 핏발 선 눈으로 달려들었다.

    기프트 아카데미 정규보급상단의 호위쯤 되면 영역화에도 나름 일가견이 생기기 때문이다.

     

    <접촉의 권능>

    <검술의 기억>

     

    호위들에게 불행이 있다면 그들이 일격에 롬멜의 숨통을 끊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권능이 발현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숨을 끊는다면 롬멜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범용한 돌진기는 권능을 펼칠 충분한 시간을 허락했고, 롬멜은 아카데미 학생들의 검술을 이해하고야 말았다.

     

    카앙!

     

    <카운터>

    <완전상쇄>

     

    “…!”

     

    검의 달인이나 벌일 법한 힘의 상쇄라니.

    검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모조리 간파하고 정확히 같은 힘을 주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억울함을 피력하기도 전에 진흙보다 질척한 롬멜의 눈자위에 신성각인이 떠올랐다.

     

    “도망…!”

     

    <접촉의 권능>

    <의식접촉>

    <소멸의 권능>

    <의식소멸>

     

    지푸라기처럼 풀썩 쓰러진 검사들의 모습에 상행 대장 카라반 리더Caravan Leader가 전쟁의 뿔피리를 불었다.

     

    부우우우우!

     

    뱃고동처럼 널리 울려 퍼지는 소리에 마차의 방수포를 찢고 석궁사수들과 배틀메이지가 일제 사격과 고속영창을 개시했다.

     

    파바바박!

     

    벌집이 된 롬멜의 신체에 대기주문 썬더볼트가 꽂히며 전격의 스파크가 롬멜의 신체 주변에 연신 피어올랐다.

     

    파지직━

    파직!

     

    “해치웠나?”

     

    기우뚱거리던 신체는 단숨에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를 감싸던 <접촉:대지방패>의 신성보호주문이 허물어졌다.

     

    “신성마법이다!”

    “교관님, 직접 나오셔야 합니다!”

     

    지원요청이 끝나기도 전에 석궁사수 몇이 흙을 토하며 쓰러졌다.

    감이 좋고 마나량이 많아 영역을 보유한 전투마법사만이 마차 뒤로 은엄폐를 하며 빙결술식을 결합한 아이스볼트를 날렸다.

     

    쩌적

     

    마비 상태이상을 선사하는 썬더볼트를 가볍게 떨쳐낸 것과 달리, 동결 상태이상이 롬멜의 걸음을 저지하자 전투마법사는 안심했다.

     

    “아, 젠장. 귀찮아 죽겠네. 마족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기프트 아카데미로 향하는 수송마차를 습격하다니, 어느 간 큰 놈이냐?”

     

    술에서 깬 교관이 푸념과 함께 후방마차에서 머리를 긁으며 나왔다.

    동시에 다른 방면의 상단 호위병들이 몰려왔지만, 5위계 이하의 병력들은 롬멜의 눈에 포착되는 족족 가슴을 부여잡고 흙을 토하며 쓰러졌다.

     

    “금기마법?”

     

    극도로 실전적인 살인마법의 운용.

    교관이 즉시 고정술식이 새겨진 마나보드 세 장을 허공에 던지며 삼면에서 공격을 날렸다.

     

    <마비 – 성대>

    <마비 – 손가락>

    <마비 – 다리>

     

    성대가 봉쇄되어 마법주문이 막히고, 손가락이 봉쇄되어 즉석주문구현도 막히며, 다리가 봉쇄되어 도망조차도 불가능해진다.

    속수무책으로 행동이 봉쇄된 상대에게 교관의 가차 없는 살인마법이 이어졌다.

     

    <폐쇄의 숨결>

     

    6위계 살인마법 폐쇄의 숨결.

    횡경막과 늑간근을 동시에 마비시키며 근육마비와 신경차단의 효과로 즉시 호흡이 박탈된다.

    공포와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도 끝내 뇌로 가는 산소 공급마저 중단된 채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극도로 위험하고 비인도적인 마법.

    그 실전성에 의해 고학년이 되어야만 습득할 수 있고, 사용에도 엄격한 조건이 따르는 술식이지만 교관은 살인마법의 면허를 취득한 지 오래였다.

     

    ‘재단의 전성기 시절에야 놈들의 수작으로 이런저런 습격을 받는 경우가 잦았지만 설마 이사장 사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다크프린세스의 소행일 리는 없다.

    이번 수송품은 그녀에게도 도움이 될 보급품이 많으니까.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공백.

    재단과 이사장의 빈 자리를 틈타 그간 음지에 억눌려 지냈던 암흑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다.

    만신의 대리인 역시 그런 음지세력 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교관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롬멜에게 살인마법을 자력으로 해제할 수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소멸의 권능>

    <폐쇄의 숨결>

     

    숨통을 조여드는 잔혹한 마법과 신체마비를 이루는 모든 술식을 소멸시켜버린 롬멜.

    그가 검지와 중지를 모아 지면에서 수직으로 손을 올리는 순간, 날카로운 창처럼 솟구친 지면이 세 개의 마나보드를 모조리 꿰뚫었다.

     

    “?!”

     

    4학년에게도 통하는 수준의 실력의 소유자.

    한 번 적중하면 혼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대인봉쇄&살상기술의 달인.

    교관은 그런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놀랐다.

     

    불과 1초 남짓한 동요.

    교관과 롬멜의 손이 서로를 가리켰다.

    1초의 동요가 생사를 갈랐다.

     

    폐쇄의숨결 주문이 노리는 뇌간마비는 불과 수초 내로 호흡과 심장 박동을 정지시킨다.

    그런 최단루트의 마비가 해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교관은 상대가 보호마법으로 미리 보호한 신체부위였기에 살인마법이 통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뇌간 외에 보호하지 않은 빈틈을 찔러야 한다면 다음으로 노릴 수 있는 부위는 30초 내로 사망시킬 수 있는 심장뿐이다.

     

    ‘뇌간과 횡경막도 막은 녀석이 심장이라고 보호하지 않았을 리가 있나?’

     

    교관은 마법을 펼치면서도 어느 곳을 겨냥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롬멜은 일체의 망설임 없이 상대의 신체 내부 <전체>와 토지를 결합했다.

     

    <영역충돌>

    <주문실패>

     

    명확한 형체를 지닌 채로 빠르게 사출되지 못한 주문은 실패의 반동으로 교관의 신체에 마비술식의 반동을 선사했다.

     

    ‘안 돼!’

     

    역류하는 마비로 인해 찰나 간에 뚫린 영역방어의 빈틈으로 토사가 밀어닥쳤다.

    교관이 죽음에 이른 시간은 불과 2초에 불과했다.

     

    “…성가시긴.”

    “하, 항복하겠다. 목숨만은 살려다오.”

     

    무력이 없는 모든 상단관계자를 모은 롬멜은 그들의 경험과 기억을 자신의 두뇌와 결합했다.

     

    <소멸의 권능>

    <인격박탈>

    <결합의 권능>

    <기억결합>

     

    수많은 상단관계자가 순식간에 롬멜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이자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이는 교장의 유적지에서 수녀장 디사스트에르가 펼쳐내던 기술, 다른 주류24신의 신전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 비극과 같은 현상이었다.

    처음부터 만신의 대리인은 이러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조합의 권능을 결합하여 자신의 분신들이나 부하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명령, 오크노디에게 접근하여 암살하라. 보급품을 통해 접근 가능한 루트와 범위를 확인한다.”

     

    마차의 보급품 내역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50톤급 마법식량마차 세 대.

    학용품 및 강의재료를 담은 마차가 일곱 대.

    의류마차와 광석마차가 각각 한 대.

    그 외 에너지 자원을 실은 마차가 다섯 대.

    도합 17대의 마차의 뒤로는 평상시와 다른 특별한 보급품도 실려있었다.

    장수종 호문쿨루스용 젖병과 공갈젖꼭지, 각종 유아용품이 가득 담긴 마차.

    기존 검열절차와 달리, 비교적 여유로운 검사를 걸쳐 반입될 수 있는 마차였다.

     

    “…출발하라.”

     

    롬멜의 지시에 상단관계자들은 생기를 되찾은 얼굴로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응? 보급마차의 문이 왜 열려있지?”

    “몰라. 얼른 닫고 출발해.”

     

    만신의 자객이 아카데미 검문소에 도착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이대로 호문쿨루스 전용동에 도달하면 호문쿨루스들을 오염시키고, 자폭술식을 새긴 이들을 주변에 마구잡이로 흩뿌리며 교관과 교수들의 시선을 끈다.

    그 틈에 단숨에 오크노디에게 접근하여 숨통을 끊어버리면 임무 완료.

    롬멜에게는 그런 계획이 있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재난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부르테 글라스 님 아니십니까? 검문소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호문쿨루스 보급마차는 따로 남겨라. 저건 우리가 분배하겠다.”

     

    반 호문쿨루스 인사로 낙인찍혀 학생회장 선거에서 발려버린 부르테 글라스.

    어차피 밉보인 이상, 작정하고 반 호문쿨루스 성향의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영향력을 넓히겠다며 보급마차에 손을 대는 이가 나타나고야 말았다.

    보급마차가 벌컥 열린 장소는 장수종 호문쿨루스들이 가득한 생활동이 아니었다.

     

    “아니 시발 저게 뭐야.”

    “선배, 저거 꿈틀거리는데요?”

    “피해. 살인마법이다!!”

     

    마왕군 사천왕 토벌이라는 원치 않는 공적을 세웠던 그가 만신의 대리인의 자객 토벌이라는 새로운 공적에 도전하게 된 이유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 대신 맞아주는 인간피뢰침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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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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