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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7

    <857 – 신앙메타(1)>

     

    모브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한계인 걸까?’

     

    오크노디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성장 속도는 상급반의 강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자신도 느꼈다.

    이 차이는 앞으로도 좁혀질 수 없을 거라고.

    그런데 오크노디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더 희생하고 있었다.

     

    ‘분명 앞이 안 보였어.’

     

    누구도 몰랐다.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왜 그렇게 된 걸까.

    사실 짐작은 간다.

    사방에 산적한 강적들.

    학생 수준으로는 믿기지 않는 분투를 벌여왔던 오크노디.

    그녀가 감당하던 일상 또한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혹한 일정을 견디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심장이 멎거나 미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 처지에 이제는 재단의 잔당들을, 그녀만 믿고 따르는 이들을 모두 책임져야만 했다.

    그 작은 어깨로.

    그 작은 몸으로.

    정말 분이 치밀었다.

     

    “모브. 너 괜찮냐?”

    “괜찮아.”

     

    그의 기분을 알아차린 자쿠가 무어라 조언을 건넸지만 귀에 들어오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고작 위로 따위로 오크노디가 겪는 가혹한 현실이 달라지는 일도 없고, 자신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으니까.

    오히려 모브를 가르치기 위해 오크노디가 할애하는 시간이 그녀를 더 괴롭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녀에게 절실한 시간을 빼앗지는 않을까.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를 한 걸음 더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놀고 싶어도, 쉬고 싶어도, 포기하고 싶어도.

    하루도 쉬지 않고 거듭했던 훈련조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브는 정처 없이 교정을 거닐었다.

    어디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입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도.

    동기들의 쓴웃음 섞인 격려도.

    선배들의 죽어가는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 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바닥에 그려진 깊고 커다란 원.

    그 테두리를 따라 새겨진 여러 술식들.

    두서없고, 번잡하고, 높낮이가 다르고, 담긴 마나 속성도 천차만별이다.

    쓰다 지운 글씨도 있고, 비바람에 쓸려나간 글씨도 보인다.

    모브는 아카데미 2학년 경험을 토대로 이것이 마법술식 연습장임을 알 수 있었다.

     

    ‘버려진 시설인가.’

     

    마법 술식을 원형을 따라 그리는 원형마법진은 효용가치가 없고 경제적이지 못하다며 버려진 지 오래인 시대였다.

    대세는 편리한 마나보드 위에 사각형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술식을 만드는 시대.

    원형마법진의 정교함과 치밀한 계산 능력이 없어도 마나보드가 일정 부분 부족한 재능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 과거의 기술이란 그저 고리타분하고 낡은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내 처지나 다를 바가 없구나!’

     

    재능이라고는 정말 더럽게 없어서 직관으로 빠르게 해답을 찾는 대신, 반복 수련과 고행으로 부족한 재능을 대신해야 하는 모브.

    그가 걷고 있는 무투 수련 방식이 원형마법진과 다를 바 없는 전통 수련법이었다.

    오크노디는 거기에 그녀만의 특별한 ‘경험’을 접목하여 도전과제를 달성할 때마다 성장속도를 올려주는 맞춤형 도전과제 커리큘럼을 짜주기는 한다.

    그러나 도전과제도 날이 지날수록 난이도가 올랐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주일을 들여 하나도 넘지 못해 정체된 지가 어언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압축되는 링의 중력을 찢어 부수며 돌파하고 역장의 벽을 돌파하는 돌파력의 시험이라니. 이딴 짓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일격기나 절명기, 필살기를 잔뜩 연마한 고급 무술의 소유자라면 거뜬히 역장을 벌리고 찢고 돌파하겠지.

    설령 그것을 돌파한들 오크노디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노력의 흔적만이 남고 버려진 훈련장처럼 그의 마음 또한 황폐해질 뿐이었다.

     

    “어라. 이런 버려진 곳에 사람이 찾아오다니, 드문 일이군요.”

    “…방해가 됐다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야말로 사색의 시간에 폐를 끼쳐서 죄송하지요.”

     

    흰 장포에 왼손은 주먹을 쥐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세워 맞대며 고개를 숙이는 포권지례.

    모브는 그가 자신과 같은 981기이자 동방제국에서 넘어온 몇 안 되는 유학생 혁무린임을 알아차렸다.

     

    “저 역시 고민이 많으면 이 훈련장을 이용하곤 했습니다. 멋대로 라이벌이라고 여긴 녀석이 말도 안 되게 강해서 말입니다.”

    “동방의 강자라면 싱이겠군요.”

    “맞습니다. 더럽게 강한 녀석이죠. 더럽게 불쌍한 녀석이기도 하고요.”

     

    불쌍한 녀석.

    머릿속을 스치는 오크노디의 모습에 모브는 약간의 관심이 생겼다.

     

    “싱. 그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고강한 검술과 드높은 경지. 하다못해 그 싸가지를 가지고도 은근히 흠모하는 여자들이 많을 외모까지,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아닙니까?”

    “고독으로 벼려낸 강함도 선망과 흠모를 얻을 순 있겠지만 당사자는 기뻐하지 못할 겁니다. 그의 적은 동방제국 전체나 다름없으니까요.”

     

    제국 전체가 한 사람의 적?

    말로만 들어도 눈앞이 암담해진다.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싱이었건만 그의 처지에 감정이입이 될 정도로.

    숫제 서부세계의 삼대거악이 선황토벌에 도전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싱에 대해 많이 아십니까?”

    “알죠. 녀석의 가문이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멸문을 당했고, 힘을 길러 복수하고자 서방세계로 넘어왔다는 사실도.”

     

    혁무린은 바닥에 걸터앉아 버려진 마법진을 손으로 쓸었다.

     

    “녀석의 가문을 멸문시킨 동방십문의 하청을 맡은 하위가문 중 하나가 제 가문입니다.”

    “…!”

    “인간으로서 차마 못 할 짓을 저질렀는데 그러고 토사구팽까지 당했죠. 몰락무가 신세도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뭐라 드릴 말이 없군요.”

    “괜찮습니다. 속죄를 위해, 언젠가 녀석이 자살이나 다름없는 복수행에 나설 때 미약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서 나선 것이니까요.”

     

    혁무린이 모브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서글서글한 미소가 어렸다.

     

    “도움이 되고 싶어. 하지만 힘이 부족해.”

    “!!”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나 봅니다. 당신과 다크프린세스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름 유명해서 알고 있습니다.”

     

    모브는 경계심에 뒷걸음질을 쳤다.

     

    “의도적인 접근이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에 거짓은 없습니다.”

    “내게 뭘 바라는 겁니까.”

    “마음에 빚이 있다면. 그 빚을 갚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당신이라도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암흑마나라면 됐습니다. 제 친구도, 스승인 오크노디도 그 힘을 다룹니다. 다들 말하죠. 저는 이미 늦었다고.”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은 힘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그게 뭐죠?”

    “신성력입니다.”

     

    모브는 깨달았다.

    기프트 아카데미에 주류24신격을 모시는 성직자들이 왜 자꾸 들락거리는지.

    신앙을 약자들의 마약이라고 비웃으면서도 어째서 선배들이 신앙을 가지게 되는지.

    더는 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홀로 뒤처지기 때문이다.

    한때는 동기로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들을.

    동등하다고 믿었던 천재들의 도약을 저 아래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범부로서.

    그런 애도 있었지.

    짧은 회상과 함께 사라질 인연으로서.

    천재들의 세계에서 뒤처지고, 밀려나고, 지워지고 싶지 않아서.

    신앙이 강제하는 일생의 제약을 각오하고 마지막으로 올라서는 사다리가 신앙이었다.

     

    “어떤 신입니까.”

    “사랑의 신 아타락시아.”

    “사랑의 신…? 그런 신이 대체 어떻게 힘을 허락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시간낭비였나.

    깊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서려던 모브.

    혁무린의 한마디는 그를 멈춰 세웠다.

     

    “책임감이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

    “사랑의 신은 헌신과 희생의 가치를 높이 여기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왔던 인생은 사랑의 신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보답받지 못할 마음.

    무의미한 희생.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의지.

    마치 짝사랑과도 같은 어리석음.

    그랬다.

    혁무린의 말이 맞았다.

    이 또한 사랑의 또 다른 형태였다.

    그것도 가장 비참하고 괴로운 형태의 사랑.

     

    “…사랑의 신은, 우리의 비참함을 공물로 받아 어떤 힘을 내려줄 수 있습니까.”

    “순애의 가호.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을 높이 사, 마음이 꺾여도 스스로 일어서게 만드는 힘입니다.”

    “저는… 이미 꺾였습니다.”

    “정말로 포기했다면 주저앉았겠죠. 그럼에도 일어서고 싶기에 번민하는 것이 아닙니까?”

     

    혁무린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심장을 일수에 관통하는, 검객다운 날카롭고 치명적인 찌르기였다.

     

    “또한 이런 권능도 있죠. 사랑하는 이를 돕기 위해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평상시의 수어 배의 힘을 발휘하는 위기 각성의 권능.”

    “!!”

    “당신이 오크노디를 위해 살아가고, 그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그녀가 처한 위험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라도 신앙, 오크노디를 위하는 마음의 크기에 따라 몇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가 없는 힘은 없다.

     

    “내가 잃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 당신이 지닌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성장을 앞당긴 대가로 색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가령 제게는 온 세상이 흑백이죠.”

    “!!”

    “누군가는 팔을 움직일 수 없고, 누군가는 지식을 상실합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거둬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모든 것을 잃더라도 다가서야 할 한 걸음이 있다면 제 손을 잡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떠나시면 됩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모브는 혁무린의 손을 잡았다.

    그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근력을 올려주는 신

    노벨피아에서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를 배너에 걸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배너의 맛…?
    전성기의 성적을 넘어서는 유입에 깜짝 놀랐습니다.
    완결까지 더욱 힘내서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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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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