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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58

    <858 – 신앙메타(2)>

     

    “찢었어…”

     

    3주간 그를 절망토록 했던 역장의 벽을 찢었다.

    만애 교단에 가입한 당일에 이룬 결실이었다.

     

    [어느 신이 순애의 냄새에 코를 킁킁거립니다.]

    [어느 신이 군침을 흘리며 권능을 퍼줍니다.]

     

    당사자가 보면 이런 힘을 받아도 되나 떨떠름해질 메시지였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오크노디! 다음 훈련과제를 내어줘.”

    “와. 벽 뚫으셨구나!”

     

    모브의 성장에 신이 난 오크노디는 새 과제를 내주었다.

    신앙메타에 힘입어 모브는 몇 번의 과제를 단숨에 돌파했다.

    순수하게 기뻐하던 오크노디의 표정이 이게 맞나? 싶은 애매한 기쁨으로 줄었다.

     

    “이상하다. 내가 아는 모브는 이렇게 속도가 빠를 수가 없는데. 뭘 못 봤지?”

     

    눈이 안 보이던 오크노디의 중얼거림에 모브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시력을 잃고 마나탐지로 세상을 식별하는 아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게 하다니.

    난 쓰레기야.

     

    “노력의 결과겠지.”

    “흠. 그 정돈가? 아무튼 잘 됐네요. 그럼 진도를 더 올려볼까요?”

     

    오크노디의 특훈을 받는 시간이 늘었다.

    그 아이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얻은 신앙이건만, 정작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뺏게 된 신세.

    자가당착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모브는 솔직히 기뻤다.

    오크노디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

    그녀의 관심을 독점하는 시간이.

    이어지지 못하는 감정이라도 상관없다.

    이 순간의 즐거움만큼은 그만의 것이니까.

     

    “모브. 다음 학기에는 상급반 진급에 도전해보세요!”

    “내가?!”

    “지금의 모브라면 훈련용 갑옷을 벗으면 그 정도로는 강해질 수 있을걸요?”

    “그, 그건… 갑옷 안의 그게 없을 때 얘기지!”

    “아. 15강 비키니 아머요?”

     

    사다코 교수님에게 맡긴 복사기 귀신을 열심히 착취한 결과, 어느새 모브의 갑옷은 15강에 도달했다.

    갑옷에 덤으로 딸린 비키니 아머까지도.

    착용 제한 기간이 다 지나려면 앞으로 일 년은 더 보내야만 한다.

     

    “난 됐어.”

    “흠… 그래요? 아쉽당. 졸업 전에 같은 반 해보고 싶었는데.”

    “졸업…”

     

    모브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덜컥 겁마저 들었다.

     

    “오, 오크노디는… 졸업하면 뭘 할 거야?”

    “이사벨에게도 말했지만 복구 작업을 할 것 같아요. 세계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거거든요.”

    “지금까지도 꽤 여러 일들이 있지 않았어?”

    “그건 엄청난 일을 벌이기 전의 집안 청소!”

    “집안 청소?!”

    “집이 깨끗해야 벌레가 덜 꼬이잖아요? 머, 이제 청소할 건 딱 두 개 남았지만요.”

    “그건… 역시 마왕이랑 만신의 대리인이야?”

    “정답!”

     

    오크노디가 관심을 보일 거물 악당은 둘뿐이다.

    그 두 번이 지나가면…

    그때에도 오크노디의 기준치에 미달된다면.

    졸업 이후에 그녀의 곁에는 함께 설 수 없다.

    앞으로 1년 반이라는 시간적 제한.

    두 번의 대적 토벌이라는 기회적 제한.

    모브는 결심했다.

     

    ‘내게 조금만 더 오크노디에게 가까워질 힘을 허락해 주세요, 사랑의 신님!’

     

    기도를 마치고 일어났던 모브는 문득 자신이 무언가를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옷은… 어떻게 벗는 거였지?’

     

    탈의 불가의 저주.

    신에게서 장비 탈착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답답함은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언제나 해왔던 일.

    불편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언제나 단련을 하는 헬창들이 중량 치기를 즐기는 것처럼 그 역시 고행을 즐기는 자세가 탑재되었다.

     

    ‘아카데미 입학 전에 검을 가르쳤던 스승님이 어떻게 생겼더라?’

     

    오래된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기억에 제약이 생겼다.

    그러나 후회는 들지 않았다.

    지금 그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기억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기쁨이 뭐였더라?’

     

    즐거움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성취감.

    죽을 만큼 힘들어도 그것을 극복할 때의 즐거움에 위로받았던 모브.

    그 성취감이 사라졌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과연, 이건 제법 뼈아프다.

    하지만 성취감이 없어도 그가 정진하도록 만드는 다른 감정의 동력원이 있다.

    감사와 보은.

    유급 직전의 하급반 학생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그리고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던 오크노디를 향한 무한한 감사함이다.

     

    [어떤 신이 기사는 역시 과묵하게 봉사해야 맛있다고 흡족해합니다.]

     

    아무리 가혹한 대가를 치러도 본인이 그것에 만족한다면 그만이다.

     

    “오늘은 거울 던전을 돌아보세요!”

    “알았다.”

     

    도플갱어와의 싸움.

    자신을 쏙 닮은 스펙을 지닌 분신과의 대결.

    그 과정을 지켜보던 오크노디는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모브가 신앙메타를 탔구나!”

     

    도플갱어도 훔치지 못하는 힘이 있다.

    신성력은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다.

    상대의 겉모습과 기능만을 모방하는 도플갱어에게 내면의 제약과 결속과 연관된 신앙심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기를 써도 베낄 수 없는 힘이다.

    도플갱어 분신과의 대결을 벌이면 그 격차는 여실히 눈에 보인다.

     

    “모브. 제 훈련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만족하냐. 네가 계속 위태로워지는데.”

    “제가 어디가 위태로워요?”

    “너 눈 안 보이잖아.”

    “나았는데요?”

     

    그렇구나.

    나았구나.

     

    “……뭐? 눈이 왜 지맘대로 멀었다가 낫는데.”

    “상태이상 지속시간이 끝났으니까?”

    “그게 말이 돼?!”

     

    오크노디는 이래서 뉴비가 안 된다며 쯧쯧 혀를 찼지만 모브는 세상 억울할 뿐이었다.

    나 그럼 뭐한 거야.

    신앙 왜 가졌어.

    내 공양물.

    아, 혈압 올라.

    어질어질해지는 충격 소식에 휘청거리는 모브의 어깨를 오크노디가 토닥여 주었다.

     

    “으휴. 그러게 빌드는 전문가한테 상담하고 짰어야죠. 열심히 맛있게 짰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나 이제 망한 거냐…?”

    “아직 늦지 않았어요. 신앙메타 타서 망했으면 신이 으악 이게 뭐야 소리가 나와서 내팽개치게 만들면 되죠. 무슨 신 믿었어요?”

    “사랑의 신…”

    “간단하네요! 이제부터 모브는 사랑의 신이 싫어할 짓을 하면 돼요.”

     

    사랑의 신이 싫어할 짓이라니.

    모브는 상상도 가질 않았다.

     

    “사랑의 신은 뭐든 다 좋아하는 거 아니냐?”

    “설마요. 신도 다 개인의 기호가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신벌도 내리는데. 신벌이 괜히 있겠어요?”

    “그건 그러네.”

    “사랑의 신은 어떤 신 같아요?”

    “관대하시지. 포용력이 넓고. 나같은 녀석의 어리광도 들어주며 힘을 주셨으니까.”

     

    비록 불필요한 희생을 하기는 했지만, 사랑의 신이 준 힘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신이 하사한 권능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힘을 하사받는 데 필요한 조건이 기억나요? 아니면 권능의 이름이라든가.”

    “아. 생각났어.”

     

    혁무린이 분명 이런 말을 했었지.

     

    “순애의 가호.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을 높이 사, 마음이 꺾여도 스스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라고.”

    “그리고요?”

    “위기 각성의 권능. 사랑하는 이를 돕기 위해 위기의 순간에 평상시의 수어 배의 힘을 발휘한다고. 사랑하는 이가 위기에 처하면 언제나 수어 배의 힘을 발휘하는 사기 권능이라고 알려줬지.”

    “우왕. 그건 좀 귀한데. 누굴 그렇게 좋아하세요?”

    “비, 비밀이야.”

    “히히. 사생활은 존중해 드릴게요!”

     

    그래도 모브가 솔직하게 대답해준 덕분에 오크노디도 각이 섰다.

     

    “종합하면 순애의 가호와 위기 각성의 권능은 모브가 한 사람만을 좋아하기에 내려진 힘이네요! 해결책은 정말 간단해요.”

    “뭔데?”

    “모브가 악질순애충도 눈물을 뿌리치며 달아날 하렘을 만들면 돼요!”

     

    모브의 머리가 작동을 정지했다.

    하렘이라니.

    누가.

    내가?

     

    “그게 돼?!”

    “모브가 어때서요? 열심히 수련하고 성장도 쑥쑥 하고 성실함 하나는 보증된 사람인데.”

    “그 성실함도 여자 여럿을 만나면 와장창 박살 날 신세 아니냐…?”

     

    게다가 너무 쓰레기잖아.

     

    “사랑의 신을 떨쳐내려면 그 정도 쓰레기가 될 각오는 해야죠! 싫음 신앙메타 탄 김에 나중에 쫄딱 망하던가요!”

    “한다고 해도 하렘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제가 판을 깔아볼게요!”

     

    그렇게 아카데미에는 때아닌 오크노디발 하렘 소개팅 이벤트가 열렸다.

     

    “저 녀석이야? 여자 여럿과 대놓고 하렘 소개팅을 한다고 하는 녀석이.”

    “배짱도 대단하네. 모두가 상상만 하던 짓을 실제로 저지르다니. 조금 동경하게 될지도 모르겠어.”

    “안면에 철판을 얼마나 깔았나 했더니 아예 투구를 뒤집어썼네.”

     

    남자들의 반응은 흥미와 감탄, 망신당할 미래를 향한 기대감에 가까웠다.

     

    “쓰레기.”

    “여자의 적.”

    “여자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 거야.”

    “죽어버려.”

    “완전 실망이야.”

     

    여자들의 반응은 악평일색.

    천하의 역적이 다 됐다.

     

    “모브의 하렘소개팅에 모여주신 여러분 감사해요! 저는 오늘의 소개팅을 주관하는 모브의 스승 겸 사회자 오크노디에요!”

    “오크노디. 모브가 실수로 발이라도 밟았어? 아니면 가족이나 친척의 원수야? 애가 무슨 짓을 저질렀으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만든 거야?”

     

    소개팅 참가자들은 그냥 대놓고 나와서 모브를 욕하려고 모인 여자들이었다.

    험난하기 짝이 없는 소개팅이지만 오크노디에게는 없는 사랑도 만들 필살기가 있었다.

     

    “모브와 하렘커플이 된 다섯 분에게는 인당 백만 포인트의 하렘지원비를 지급해드려요!”

     

    여자들 사이에 엄청난 정적이 찾아왔다.

    가장 먼저 앞장서서 모브를 욕하던 여학생이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다.

    모브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선 여학생은 모브의 갑옷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 실은 갑옷 페티시 있어…”

    “미친년…”

     

    금전욕 100%로 이루어진 모든 걸 내려놓은 유혹 대사에 터진 누군가의 감탄!

    소꿉여신이 이딴 건 사랑이 아니야! 라고 울부짖으며 달아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하렘소개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꿉여신 기강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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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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