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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불타는 거대 해골 위로 내리쬐는 빛의 기둥의 빛이 점점 강해진다.

    그리고 그 빛의 기둥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 붉은 달. 

    점점 빛기둥에 먹혀가는 붉은 달은 마치 개기 월식을 일으키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붉은 달이 빛기둥으로 전부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기겠지.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해골 주변에 모여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많은 사람도 분명 그런 생각을 하면서 뚫어져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거겠지.

    짙은 붉은 색의 빛기둥에 가려서 붉은 달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순간.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사막과 서울을 양분하던 돔이 무수한 파편으로 부서져 내렸다.

    투명하면서도 지구의 태양이나 달만큼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던 하늘에서 평소에 보던 달이 보였다.

    투명한 돔은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변해 쏟아져 내리며,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장관을 연출했다.

    옷깃을 흔드는 시원한 바람.

    차가운 달빛.

    상쾌한 공기.

    덥고 건조하고 답답한 사막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빛기둥이 사라지고, 불타는 해골도 가루로 변해서 흩어졌다.

    불길한 빛을 뿜어내던 붉은 달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사막에서의 일이 꿈인 것만 같은 느낌.

    “끝이다!”

    “드디어 살았어!” 

    긴장 속에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숨을 토해내며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끝이 난 거야.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고 있던 황금 사신이는 해골이 있던 자리로 폴짝폴짝 뛰어나갔다.

    황금 사신을 쫓아서 뿌연 흙먼지를 헤치고 도착한 곳.

    해골이 놓여있던 곳에는 황금 사신들이 잔뜩 모여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황금 사신들의 중앙. 

    회색 사신이 대자로 뻗어서 누워있었다.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평소보다 몇 배는 피곤해 보이는 표정.

    “사신아!”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서 사신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사신이는 반겨주기는커녕, 움직이기도 싫은지 온몸에 힘을 쭉 빼고 축 늘어져 있었지만. 

    귀찮아 보이는 것도 사신이의 매력이니까 괜찮아!

    “이제, 세희 연구소로 돌아갈 수 있겠네!”

    드디어 까치산 출장이 끝났다.

    첫 출장인 만큼 교훈을 크게 얻을 수 있던 출장이었다.

    이번 출장의 교훈은 두 가지!

    1. 세희 연구소가 제일 안전하다.

    2. 다음 출장을 갈 때는 무조건 회색 사신을 데려가야겠다.

    ***

    검은 요원이 눈을 뜨니 어두운 밤하늘과 평범한 달이 보였다.

    붉은 달이 없다.

    시야 저 멀리에 익숙한 현대의 건물들이 보였다.

    붉은 사막에서 벗어난 건가 싶기도 했지만, 바닥에 잔뜩 깔린 붉은 모래들이 그 생각을 부정하고 있었다.

    “아저씨, 일어났어요?”

    물에 푹 젖은 금발 소녀가 방긋 웃으며 검은 요원을 반겨줬다.

    “아가씨?”

    검은 요원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저는 분명히 죽었을 텐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자신은 분명 배가 뚫려서 사망했을 텐데!

    소녀는 눈을 뜨고 요원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제가 살린 거예요. 왜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왜 살아있는지, 왜 이런 걸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금발 소녀의 홍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붉은 달처럼.

    “아가씨, 눈이?”

    “아아, 이거요?”

    금발 소녀는 근처 호수에 얼굴을 비춰보면서 말했다.

    “죽었다가 깨어나니까, 눈 색깔이 변했더라고요? 뭐, 눈 색깔이 변하는 쪽이 죽는 것보다는 낫죠.”

    다시 고개를 돌려서 소녀는 요원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자, 빨리 움직이죠. 붉은 달이 없어졌으니, 이제 저는 태양 빛을 받으면 재가 되어버려요.”

    “네? 그게 도대체 무슨?”

    “자자! 빨리 일어나서 가요. 제가 재가 되어버리기 전에 안전한 곳을 찾아주세요.”

    금발 소녀는 검은 요원을 재촉했다.

    검은 요원은 소녀의 재촉에 당황하는가 싶더니, 금세 진지하게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럼, 협회장님댁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안 돼요. 아마 할아버지는 제가 오브젝트라는 걸 알면 연구소에다가 격리해 버릴 거예요.”

    “협회장님이 조금 그런 경향이 있으시긴 하지만, 설마 손녀에게까지 그러겠습니까?”

    “아뇨. 절대로 해요. 아마 해부를 직접 할지도 모르죠?”

    소녀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히히 웃으면서 모래밭을 걸었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제가 마련해 둔 안가로 가죠. 그곳이라면 잠깐 정도는 머물 수 있을 겁니다.”

    검은 요원은 결론은 내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금발 소녀는 그런 요원을 빤히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저씨, 이제 계속 함께예요.”

    소녀는 살포시 웃으면서 검은 요원의 등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

    격리실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치광이 3명이 나를 꼭두각시 인형처럼 흔들고 있었다.

    세희와 예린 그리고 새로 생긴 미치광이 서아.

    춤을 추는 3명과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같이 춤을 추는 황금 사신들.

    TV에서는 내가 춤추는 모습이 무한 반복 재생 중이었다.

    아니.

    왜.

    왜, 그게 찍힌 거야?

    붉은 달이 만든 돔이 가리고 있어서, 사막 중앙은 안 보이는 줄 알았는데!

    붉은 달! 일 제대로 안 해?

    영상에 비치는 어설픈 동작으로 팔다리를 뻗고 춤을 추는 모습.

    춤도 못 추는 영상인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뉴스를 하면 꼭 한 번쯤은 틀어주고 있었다.

    저 영상을 보면 왠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어서, 요즘 뉴스를 못 보고 있었다. 

    요즘 대인기 동영상이라면서, 세희 연구소에서 굿즈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평소라면 협회에서 판매를 막을 게 뻔한 회색 사신 굿즈였지만, 인기가 너무 많아서 이번에는 차마 금지하지 못했다.

    며칠 지나면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관심과 인기가 식을 생각을 안 했다.

    동영상의 내가 춤추는 모습에 맞춰서 내 팔다리를 잡고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연구소의 ‘소장’, ‘부소장’, ‘연구원’이라니.

    연구소의 미래가 어둡네.

    장작이 무섭게 불어나고는 있었지만, 이런 걸로 장작을 모으고 싶지는 않았어.

    끝날 것 같지 않은 댄스 타임 속에서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황금 사신 정원으로 도망가야겠어!

    ***

    달콤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황금 사신 정원.

    오랜만에 들린 황금 사신 정원은 예전과 꽤 달라져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원에 배치된 붉은 해골 모양 쿠션.

    붉은 사막에서 싸웠던 해골 머리통 모양의 커다란 쿠션이었다.

    그 커다란 쿠션 위에서 황금 사신이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황금 사신이 붉은 해골을 해치워서 추가된 구조물로 보였는데, 별로 실용성은 없어 보였지만 황금 사신들이 좋아하니까 됐지, 뭐.

    그 외에는 정원의 규모가 훨씬 커졌다.

    아마 황금 사신이가 처치한 오브젝트의 숫자만큼 정원이 풍족해지는 구조인 것 같았다.

    과자의 종류도 늘어났고, 공간도 넓어져서 쉴 장소도 많아졌다.

    침대로 된 들판은 이제 그 끝을 보기도 힘들 정도로 넓어졌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코코아 강물도 그 유량이 훨씬 늘었다.

    강물 위에는 황금 사신과 내가 좋아하는 간식들이 둥실둥실.

    푸딩, 마시멜로 그리고 페이스트리!

    그리고 정체불명의 구조물들도 많이 생겨났다.

    앞서 말한 커다란 해골 쿠션처럼 처치한 오브젝트에서 유래한 구조물들.

    정육면체 붉은 바위로 이루어져서 회전하던 오브젝트는 재질이 바위에서 마시멜로로 바뀌어서 황금 사신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그 외에도 초콜릿으로 된 병사들이 황금 사신에게 뜯어먹히고 있는 등, 나도 보지 못한 오브젝트들을 꽤 처치한 걸로 보였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 바삭한 페이스트리를 먹으면서 춤추는 황금 사신들을 구경했다.

    춤을 너무 오래 춰서 그런지 이제 황금 사신들의 춤 솜씨가 범상치 않아졌다.

    원본인 나는 춤을 못 추는데, 복사본이 춤을 더 잘 추다니 좀 이상한 거 아닌가?

    ***

    높은 벽으로 둘러싸이고, 수많은 경호원이 경비를 서고 있는 현대판 요새.

    협회장 오무룡의 저택. 

    현재 그 저택에는 짙은 슬픔과 침묵이 깔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찾지 못했습니다.”

    “….”

    오무룡은 입을 열지 않고 연못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중국 측에서 제공한 대역 인형의 파괴와 혈흔이 발견된 것을 볼 때, 역시 아가씨의 생존은 힘든 것이 아닐지….”

    오무룡이 말없이 돌아보자, 남자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붉은 사막 제단에 남은 흔적이 아가씨의 혈흔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혈흔의 양과 퍼진 형태등을 볼 때, 살아있는 상태에서 심장을 관통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오무룡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시체조차 찾아내지 못한 건가?”

    보고하는 중년 남자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사막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으음.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물러가게.”

    평소에 손녀를 아끼는 것과는 다르게 꽤 건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황송한 목소리로 ‘네.’ 하고선 뒷걸음질로 물러서서 밖으로 나갔다.

    보고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서 적막해진 정원.

    그곳에서 한참 동안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던 오무룡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오래 쓰긴 했지. 오래 쓰면 망가지기 마련이야.”

    오무룡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저택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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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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