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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이크, 눈 마주칠라.’

     

   크라슈는 냉큼 블라비에게서 눈을 뗐다.

   블라비가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돌아봤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볼라비는 크라슈를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왜냐하면 크라슈가 변장한 크라드의 모습은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달링의 약물은 본질을 꿰뚫는 성안이나 마법이 아니고서야 진실을 볼 수 없었다.

     

   [ ……그 아이는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이 약물을 만든 거냐? ]

     

   그 집념을 눈치챈 크림슨가든만이 황당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뭔 소리야?”

     

   정작 연금술의 조예가 없는 크라슈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반갑습니다. 세이랑 세피라.”

   “저도 반가워요! 릴리쉬 발하임 님이시죠?”

     

   그사이 세이랑과 릴리쉬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일단 각 집단의 수장 격 역할이니 말이다.

     

   그사이 크라슈는 세이랑을 바라보았다.

   블라비의 폭주는 그녀의 죽음이 계기다.

     

   블라비의 천살성을 해결해주는 점성술은 대대로 1계급관에게 내려오니까.

   그녀가 죽음으로써 분노를 주체 못 한 블라비의 폭주는 세계 침식자가 전쟁을 결심할 만큼 미쳐 날뛰었다.

     

   ‘잠깐만, 혹시.’

     

   눈꺼풀 너머 크라슈의 눈동자에 아주 잠시 이채가 지나갔다.

     

   기왕이면 블라비는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려고 했던 문제다.

     

   그에게 접근 자체가 힘들기도 하고, 원인인 세이랑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엇보다 블라비는 크라슈도 그리 잘 아는 인물이 아니었다.

     

   ‘세피라의 충견일 뿐이니까.’

     

   창공의 세대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서는 블라비의 폭주를 역이용해 세피라를 장악했었지.’

     

   세피라가 아서의 개로 탈바꿈되었던 건 블라비의 폭주 덕이었다.

   블라비의 족쇄를 다시 채우려다 이성을 잃은 그에게 도리어 박살 날 뻔한 걸 아서가 대가를 받음으로써 구해줬으니까.

     

   ‘그러니 당장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크라슈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나한테는 블랙 후드가 있어.’

     

   천살성을 훔친다.

   그 생각이 말이다.

     

   그 당시에는 블라비의 폭주도 예견 못 했고, 천살성을 훔칠 엄두도 못 냈다.

   천살성을 훔쳤다간 크라슈의 저주들이 아주 좋다고 난리를 칠 테니 말이다.

     

   ‘천살성은 지닌 저주의 효과를 더 강하게 만드니까.’

     

   지닌 저주들이 천살성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낼 걸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천살성을 머릿속에 두지 않았었다.

     

   앞으로도 저주의 힘을 계속 빌릴 거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 몇 가지.

   위험한 것을 제외해 본다면 천살성도 상당히 괜찮았다.

     

   천살성은 타인을 향한 세상을 향한 살의가 강해지는 만큼 소유자 또한 강해지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크라슈는 이 살의 부분을 해결할 기막힌 방법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

     

   ‘눈인형은 천살성의 살의를 억누를 수 있어.’

     

   그뿐만이 아니다.

     

   천살성이 지닌 저주의 증폭.

   거기에는 분명 눈인형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눈인형을 증폭시키면 세계 침식의 광증이 더 강해져도 억누를 수 있다.’

     

   크라슈의 눈빛이 번뜩였다.

     

   본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으나.

   계획이라는 건 상황 따라 수정하는 법이다.

     

   ‘차라리 이걸 기회로 삼는다.’

     

   블라비에게 대놓고 블랙 후드를 쓸 순 없다.

   그라면 스킬 대상이 된 즉시 저쪽이 무슨 짓을 하러 올지 모르니까.

     

   ‘그럼 결국 노려야 되는 건.’

    

   세이랑 세피라.

   그의 목줄을 쥐고 있을 공주님을 설득해야 한다.

     

   이렇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본래 모습으로 왔다면 어떻게 한 번쯤 접근해 봤을 텐데.

     

   ‘지금이라도 바꿀까.’

     

   일단은 섣부르게 판단은 안 해도 되겠지.

     

   꾹꾹-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옷깃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크라슈가 고개를 아래로 돌리자 거기에는 왜인지 비앙카가 뚱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뭔 일 있어?”

     

   크라슈가 의아하게 묻자 정작 비앙카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기분 나빠요. 너무 오래 보고 있지 마세요.”

     

   오래 봤다는 말에 크라슈가 고개를 기울였다.

   세이랑을 바라본 걸 말한 건가.

     

   면사포를 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봐도 얼굴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만.

   비앙카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그쯤 하기로 했다.

     

   “이검, 사검, 오검, 다들 잠시 대기하고 있어라. 단장들은 따라와라. 세피라와 회의 하겠다.”

     

   그사이 릴리쉬가 단장들을 이끌고, 세피라 쪽으로 향했다.

   부단장들은 적당히 쉬라고 모두에게 전했고, 그 결과 출전 전 짧은 휴식이 생겼다.

     

   “이야, 크라드, 아까 대단하더라.”

     

   그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아까 크라드가 녹해 기사단원에게 주먹을 꽂은 이야기가 화두로 올랐다.

     

   “자기 동생 앞이니까 멋진 모습 보여준 거야?”

   “하긴, 나도 가족 건드리면 가만 안 있지.”

     

   어떤 이들은 주로 크라슈를 추켜세우듯 칭찬했다.

   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어린 크라슈이니 그 용기가 대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걱정이다. 녹해 기사단원 녀석들 이를 갈고 있을 텐데.”

   “청해 기사단원한테 맞았으니. 쪽팔린다면서 난리 치겠지.”

     

   반면에 어떤 이들은 걱정과 우려를 보였다.

     

   같은 발하임 기사단인 데다가 사검과 오검이다.

   아무래도 서로 부딪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정작 크라슈는 딴생각하느라 바빴다.

     

   아까 단장의 반응을 보건대 녹해 기사단이 자신을 건드릴 일은 절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천살성을 어떻게 훔칠지였다.

   녹해 기사단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크라드 오빠.”

     

   그 순간 비앙카가 또다시 옷깃을 당겨왔다.

     

   이번에는 안 봤다고 크라슈가 둘러대려는 순간.

   크라슈의 몸이 멈칫하였다.

     

   왜냐하면 그를 향해 똑바로 세이랑 세피라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까악!”

     

   그 순간 크림슨가든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녀의 등 뒤에는 블라비도 같이 따라오고 있었기에 발 빠르게 빠져나간 것이다.

     

   “어, 저기.”

   “세이랑 세파라 님?”

     

   청해 기사단원들도 뒤늦게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 처지에서는 세피라의 수장의 딸이 코앞까지 온 날벼락이었으니 말이다.

     

   ‘릴리쉬를 따라간 줄 알았더니 왜 여기 있는 거지?’

     

   크라슈의 머릿속에 순간 의문점이 들었다.

     

   잠깐 쳐다보긴 했지만, 자신 말고도 모두가 세이랑을 쳐다보던 상황이다.

   그건 그녀가 자신에게 똑바로 다가올 이유가 되지 못했다.

     

   ‘뭔가 걸렸나?’

     

   크라슈는 세이랑의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다.

   세피라가 아서의 개 역할을 할 당시에 세이랑이 이미 죽었으니까.

     

   그러니 그녀가 점성술을 이용해 자신에게 무언가 본 걸지도 모른다.

     

   크라슈의 머릿속이 바쁘게 굴러가는 와중.

   세이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크라슈의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뜬금없는 인사가 이어졌다.

   동시에 뒤따라온 블라비의 두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저주?”

     

   크라슈의 몸에 깃든 세계 침식의 힘을 느낀 반응이었다.

     

   크라슈가 침음을 삼켰다.

   이래서 블라비와 세이랑 건을 뒤로 미룬 거였다.

     

   가장 변수일 터인 그녀의 정보가 너무 적으니까.

   그러는 사이 세이랑은 크라슈의 앞에 자세를 낮췄다.

     

   “당신은 왜 스킬을 세 개나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속삭이듯 그녀의 물음이 이어진 순간 크라슈의 얼굴이 굳었다.

   면사포 너머 크라슈가 변장한 모습과 똑같이 감긴 복숭앗빛의 속눈썹이 드러났다.

     

   이 여자는 세상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크라슈가 지닌 제 육감과 엇비슷한 수준의 무언가 다른 감각.

   세피라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점성술은 일반적인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그것을 통해 세이랑은 지금 크라슈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자신이 스킬을 세 개나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

   그리고 그 사실을 들킨 시점에서 크라슈의 굳었던 얼굴빛이 한순간에 변했다.

     

   세이랑 또한 크라슈의 기색이 변했음을 눈치챘다.

   그의 얼굴에 깃든 것은 당혹감이 아닌 기회주의자의 모습이었다.

     

   “세이랑 세피라.”

     

   그러니 크라슈는 강수를 던지기로 했다.

     

   “나랑 대화 좀 하자.”

     

   변수는 맞부딪쳐 직접 부수는 게 크라슈였다.

     

   “대화라.”

     

   세이랑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곧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띄웠다.

     

   “좋아요. 즐거울 것 같네요!”

     

   뜬금없는 대화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 * *

     

     

   청해 기사단원은 물론 다른 기사단원의 눈빛을 한 번에 받으며 크라슈는 그렇게 두 사람을 따라 나왔다.

     

   비앙카는 크림슨가든에게 맡겨 뒀다.

   그녀가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낄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이랑과 함께 크라슈가 이동한 곳은 세피라가 마경 앞에 지어놓은 막사였다.

     

   “당신도 이쪽이 대화하기 더 편하겠죠?”

   “그래.”

     

   남들 귀에 다 들려주며 대화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크라슈는 블라비의 힐끗 보았다.

     

   다행히 처음 저주라는 반응을 보인 이후.

   그는 크라슈에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오직 세이랑의 명령을 따르고, 지키는 데에만 있으니.

   세이랑이 대화하기를 원한 시점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자자, 편히 앉으세요!”

     

   막사 안을 자유롭게 다니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적당히 의자를 빼어 앉았다.

   그사이 세이랑은 쿠키가 든 통을 하나 챙겨와 크라슈 앞에 두었다.

     

   “단 건 좋아하시나요?”

   “딱히.”

   “아, 소녀는 좋아하는데. 아쉽네요.”

     

   그녀는 냉큼 쿠키 하나를 베어 물고는 곧 웃음을 지었다.

     

   “달콤한 건 참, 기분 좋게 해줘요. 그래서 소녀랑 대화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녀의 대화는 제멋대로였다.

   기분파라고 해야 할지, 아님 계산된 의도인지.

     

   크라슈도 잘은 몰랐다.

   대신 그는 더 말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세이랑의 손에 쥐어져 있던 쿠키가 사라졌다.

   그럼과 동시에 그 쿠키가 나타난 곳은 크라슈의 손 위였다.

     

   절반이 먹힌 쿠키는 분명 세이랑이 먹던 쿠키였다.

     

   스릉-

     

   그 순간 귀걸이를 검으로 변환한 블라비의 검이 크라슈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크라슈가 스킬을 사용한 즉시 그가 움직인 것이었다.

     

   베려고 했다면 멸화침식까지 써서 피했겠지만.

   크라슈도 그저 그 검이 위협용임을 알고 있었다.

     

   세이랑 앞에서 허락 없이 멋대로 스킬을 쓰지 말라는 거겠지.

     

   “블라비, 치워요.”

     

   블라비는 그녀의 말이 떨어진 즉시 검을 회수했다.

     

   ‘하여튼 노망난 영감 같으니.’

     

   앞에 험한 시대를 살아와서인지 행동에 뒤가 없다.

     

   크라슈가 블라비를 헐뜯는 사이.

   세이랑은 자기 손에 묻은 쿠키 부스러기를 가볍게 핥아 먹었다.

     

   그러고는 크라슈에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

     

   “재밌는 스킬이네요. 다른 것도 보여주시려는 건가요?”

   “내가 보여주려는 건 이것 하나뿐이야. 대신, 세이랑 너에게 이득이 될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

     

   세이랑은 흥미로운 듯 자기 턱을 손으로 쓸었다.

     

   “좋아요. 어떤 제안인가요.”

   “천구성, 블라비.”

     

   대뜸 본인의 이름이 거론되자 블라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은퇴한 뒤, 수명이 다하여 죽은 인물로 되어 있었다.

   반로환동을 통해 다시 복귀한 그이나 그의 정체는 숨겨져 있는 판.

     

   그런 그의 정체를 크라슈가 밝혀 버렸으니 반응할 수밖에.

   단지, 세이랑은 뜻밖이라는 듯 미소를 그릴 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천살성을 내가 받아 가고 싶다.”

     

   크라슈는 조금 전 그녀에게 스킬을 보여주었다.

   그건 마음먹는다면 천살성을 훔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천살성이라.”

     

   그 말을 들은 세이랑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곧 입가에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블라비에게 있어서는 무척 좋은 일이네요.”

     

   서두가 좋다는 건.

     

   “세피라에게는 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요.”

     

   역시나 뒷말이 안 좋다는 뜻이었다.

     

   “블라비는 세피라의 훌륭한 수호자예요. 천살성은 그에게 저주와 같지만, 반면에 그를 세피라에 묶어둘 수 있는 계기기도 하죠.”

     

   그것을 풀어 버린다면 블라비는 세피라에 충성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 점을 세이랑은 언급해 온 것이다.

     

   “그래서 충견이어도 걸린 목줄 없이는 그를 믿을 수가 없단 거냐?”

     

   평생을 세피라를 위해 살아온 남자다.

   지금 그런 그를 못 믿겠느냐는 크라슈의 물음에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블라비를 믿고 말고는 저희가 판단할 일이죠. 단지, 소녀가 말하고 싶은 건 제안으로서의 가치는 미약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블라비에게서 천살성을 가져가든지 말든지 딱히 상관없지만.

   네가 가지고 싶다면 대가는 치르고 가져가라 이 소리였다.

     

   세이랑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대임을 눈치챈 크라슈는 곧 천천히 웃었다.

   아쉽게도 이쪽도 쉬운 타입은 아니었다.

     

   “2년 뒤, 세피라의 정원 올피드 호수에서.”

     

   크라슈가 정확한 날짜를 거론했다.

     

   “네 죽음을 내가 구해주겠다.”

     

   뜬금없는 선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감긴 눈꺼풀 사이로 크라슈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게 내 거래 조건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건 아시죠?”

   “대신 네가 내 스킬의 종류에 관해서는 모른다는 건 알고 있지.”

     

   크라슈가 처음 블랙 후드를 사용했을 때.

   세이랑은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 시점에서 세이랑은 크라슈의 스킬 갯수를 알 수 있을 뿐.

   그가 지닌 스킬은 모른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방금전 크라슈는 서두로 세피라의 주요직을 제외하면 아무도 몰라야 하는 블라비의 정체를 자기 입으로 밝혔다.

   마치, 그의 정체를 눈치챌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실은 방금전 죽음 예고와 겹치며 세이랑의 머릿속에 간단한 의문을 만들었다.

     

   크라슈는 예언과 관련된 스킬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이랑이 침묵을 택했다.

     

   천재란 하나를 던져주면 열을 생각하는 법이다.

   크라슈가 보기에 세이랑은 1왕자 힐나이더와 같은 과였다.

     

   그러니 그는 망설임 없이 수를 던진 것이다.

     

   “블라비의 스킬은 네가 가장 잘 알겠지.”

     

   세이랑의 입가가 굳었다.

     

   블라비의 스킬.

   진실을 관통하는 능력.

   베리타스.

     

   상대의 말과 의도가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이다.

     

   크라슈가 블라비의 일을 섣불리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이유 또한 이거였다.

     

   그는 거짓으로 다가가는 순간 즉시, 검을 휘두를 테니까.

   그러나 이 자리에서 크라슈는 오직 진실만을 말했다.

     

   세이랑이 블라비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블라비는 꺼림칙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슈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증거였다.

     

   “네 충견이 말한 진실이다. 네 목숨이라면 거래 대가로는 충분하다고 보는데.”

     

   크라슈는 수를 던졌다.

   남은 건 그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뿐.

     

   시종일관 여유롭게 웃던 세이랑이 그 자리에 굳은 채 침묵했다.

     

   크라슈의 스킬은 총 세 개.

   어쩌면 그중 하나가 블라비의 스킬을 상쇄시킬 무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마지막 의문점을 없애듯.

     

   크라슈는 손위에 자그마한 불꽃 하나를 일으켰다.

   검은색으로 선명히 빛나는 그 불꽃은 명백한 스킬이었다.

   

   “이걸로 의문점은 없어졌겠지.”

   “아, 하하.”

   

   

     

   크라슈가 일부러 두 번째 스킬을 보여주었다.

     

   남들이 알아낼 수 없는 정보를 지닌 크라슈다.

   그 정보들은 예언계 스킬이 아니고서야 쉽게 알아낼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

     

   세 개의 스킬이 사실상 모두 알려진 이 시점.

   그 말은 즉, 그에게 블라비의 스킬을 상쇄시킬 만한 스킬은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판에 체크 메이트가 떨어졌다.

     

   “……좀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그러지.”

     

   크라슈는 의자를 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하게 만든 것만으로 이 대화는 충분히 가치 있었다.

     

   그가 몸을 돌리는 길, 블라비와 잠시 눈이 마주쳤으나 크라슈는 그를 지나쳐 갔다.

   목줄이 걸린 그는 주인의 명령이 없는 이상 두려울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크라슈가 걸어 나가고 몇 분 뒤.

     

   “프히잉.”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세이랑이 대뜸 책상 위에 무너져 내렸다.

     

   방금까지 크라슈 앞에서 보이던 여유와 기세는 전혀 없고.

   그저 또래의 소녀와 같이 변한 그녀는 우물쭈물한 기색을 보였다.

     

   “블라비, 소녀는 그냥 스킬을 어떻게 세 개나 가졌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잘못한 건가요.”

     

   성녀도 아니고, 일반 기사인 그가 스킬을 대체 어떻게 세 개나 가졌나 싶어 궁금증만으로 접근했다가 대뜸 이런 이야기가 될 줄이야.

     

   크라슈가 말 한마디를 내뱉었을 때마다 그녀는 다급한 얼굴을 조절하느라 식겁했다.

   그래서인지 방금전 대화를 복기한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어쩌죠. 블라비.”

   “아가씨의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거래로 끌어내긴 했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괜히 건드렸어요. 얼굴도 엄청 수상쩍게 생겨서 무섭구. 무슨 동화 속에서 보던 뒷세계 흑막 같잖아요.”

     

   시종일관 눈을 감은 채 흑막 같은 포스를 비추는 크라슈를 떠올리며 그녀는 몸을 푸르르 떨었다.

   자기 얼굴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모른 채 말이다.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울상을 짓는 사이.

     

   “푸헷취.”

     

   정작 세이랑에 관해 아는 게 없었기에 도박 수를 던진 크라슈는 코를 훌쩍였다.

     

   ‘시간을 벌면 다음에 또 뭘 준비 해올 게 분명한데. 크림슨가든 녀석이랑 어찌할지 이야기 좀 해봐야 하나.’

     

   정보의 부재는 때론 상대를 고평가하기도 한다.

   세피라의 공주님까지 되니 그 사실을 잠시 깜빡한 크라슈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주라~

[ 트위치에서 삽화 작업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
!!놀러 오실 분들은 트위치에 ‘무화꽃란’ 을 입력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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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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