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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내 삶이 지금껏 불행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깨어난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치유실에서 벗어난 적은 손에 꼽았다.

     

    그만큼 상태가 심각했다더라.

     

    아트라 교수의 품에 안겨있을 때, 치유사에게 설명을 들었다.

     

    뭐라더라… 전신복합골절에 회로파손…

     

    요약하자면 전신의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어지고 회로가 박살 나고 코어가 훼손되고 내장이 터지고…

     

    그리고 왼팔이 잘리고…

     

    아무튼 전체적으로 시체보다 더한 상태였다는 모양.

     

    그 진단을 들은 나는 의아함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왜 살아있지.’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고, 나는 확실히 살고 싶었다.

     

    희망과 별개로 현실적으로는 살아남기에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전달받은 내 몸 상태를 생각해도 그랬다. 저 정도 상태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상 시체라기보단 고깃덩어리가 더 알맞은 표현일 지경이 아닌가?

     

    스스로의 고집 때문에 몬스터에게 들이박았고, 여기까진가 싶어 이판사판으로 아에루스를 죽였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는 나도 죽을 줄 알았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번과 엇비슷한 오기를 부려, 사람 하나 구하자고 대신 트럭에 치였던 경험.

     

    그때도 죽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눈이 떠졌다. 흐릿한 눈을 끔뻑거리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자 의사가 호들갑 떨며 말하기를 뭐 기적이 어쩌고 천운이 어쩌고…

     

    요약하면 이전처럼 죽어야 했는데 살아났다는 거다.

     

    비슷한 경험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 머리에 누군가의 손이 얹어졌다.

     

    ‘으아아아아…’

     

    곧이어 무척 소중한 것을 다루듯 쓰다듬어 오는 손길에 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힘이 풀려 흐물거리고 있자 다른 손이 허리에 감겨 끌어당겨왔다. 자연스레 나는 아트라 교수의 품에 꼬옥 안겨졌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근심 걱정을 밀어버리는 감각에 애써 바로 세웠던 정신이 또다시 축 늘어졌다.

     

    머리가 쓰다듬어지고, 등허리로는 토닥임이 전해졌다. 몸은 부드럽고 따듯한 것에 파묻혀서 노곤하게 풀어져 버렸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본능이 몸뚱이를 꾸역꾸역 움직였다. 아트라 교수의 품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이제는 조금 얇아져 운신이 약간 편해진 오른팔로 아트라 교수의 허리를 감았다.

     

    몸이 꼬옥 달라붙었다. 서로의 체온이 공유되어 무척 따듯해졌다.

     

    심장소리도 들렸다.

     

    고개를 돌려 귀를 아트라 교수의 가슴께에 붙이자, 그녀의 심장소리가 이전보다도 잘 들려왔다.

     

    ‘헤헤…’

     

    첫 만남에서, 아트라 교수는 무서웠다.

     

    키는 내가 고개를 치켜들어야 눈이 맞을 만큼 크고, 공간지각으로 느껴지는 신체의 수준과 마력의 기세는 너무나 광폭했다.

     

    딱밤 한대면 파편 하나 못 남기고 터져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태도는 늘 단호하고 차가웠다. 뭐 하나 잘못하면 커다란 호통이 떨어지거나, 싸늘한 시선이 꽂힐 것 같은 인상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인상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나를 이렇게 품에 안고서는 쓰다듬고 토닥여주고 있었다.

     

    – 피식

     

    간혹 피식 웃으면서도, 그렇게 기분이 좋냐며 물어오기도 했다.

     

    안정감이 몸을 가득 채웠다. 이 품에 있는 동안은 괜찮을 거라고 근거 없는 확신이 들 지경이었다.

     

    ‘헤헤…’

     

    생각이 쭈욱 늘어졌다. 행복하다.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애써 머리를 치켜들었던 이성이 또다시 제압당했다.

     

    사람이 너무 복잡하게 살면 불행해진다고들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

    .

    .

     

     

    요 며칠간 세상이 떠들썩했다고 한다. 그 불길은 지금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타고 있었다.

     

    시프나하…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던전의 연쇄폭주.

     

    통칭 ‘시프나하 던전폭주’ 사건

    사망자가 수백여 명에, 부상자는 수천을 넘나드는 수치의 재앙이다.

     

    알게 모르게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지던 와중 일어난 큼지막한 인명피해를 동반한 던전의 폭주였다.

     

    당연하게도 조사가 이어졌다.

     

    이제는 그 테두리가 희미하지만 일단은 존속되고 있는 국가적인 조사부터, 협회에서 차출된 조사팀이 움직이기도 했다.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시프나하에서의 재앙은 엄밀히 말해 인재(人災)였다.

     

    이번 재앙에는 ‘북산의 수호자’라는 클랜이 얽혀있었다.

     

    북산의 수호자는 시프나하를 대표하는 클랜으로, 중상급 영웅 다수를 주축으로 하여 만들어진 클랜이다.

     

    중상급이면 영웅이든 헌터든 어디 가서 무시당할 수준은 결단코 아니다.

     

    하지만 상급 영웅이 부재하다는 시점에서 여타 상위 던전에 진입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요컨대 뱀의 머리였다.

     

    수익은 뱀에서 상위권으로 벌지만, 눈앞에서 용의 꼬리가 아른거리니 욕심이 치솟았던 모양.

     

    결국 그들은 용의 꼬리가 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양식장이었다더라.

     

    양식장.

     

    던전을 의도적으로 붕괴시키지 않고 유지시키며 던전의 자원과 몬스터의 부산물을 주기적으로 수확하는 것.

     

    불법은 아니다. 던전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중에서 정말 금광을 비웃을 법한 자원이 생성되는 던전도 있다.

     

    그럴 경우 협회의 까다로운 검사와 관리를 통해 제한적인 양식장이 허용된다.

     

    북산의 수호자는 협회의 심사를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양식장을 운영해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다수를 말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양식장의 관리가 부실했던 탓인지, 아니면 폭주의 전조가 없던 것처럼 해당 던전이 그냥 이례적인 던전이었던 것인지.

     

    양식장은 거하게 폭주하여, 끔찍한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거기에 내가 대차게 휘말렸고.

     

    ‘시발.’

     

    그걸 설명 받자마자 해롱거리던 이성이 발딱 솟구칠 만큼 충격적이었다.

     

    아니 시발.

     

    좆같은 자연재해에 휘말려도 기분이 엿 같은데, 그게 시발 사람이 일으킨 사고였다고?

     

    만약 아트라 교수가 껴안고 제압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몸 상태로 노발대발하며 바둥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포옹으로 제압당하고도 저절로 이가 갈렸다.

     

    뿌득뿌득 악물 이빨은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빨도 새로 생겼다.

     

    분명 내가 분에 못 이겨 빠득 악물어댄 탓에 잇몸까지 박살을 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건 또 복구됐다.

     

    복구.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흥분이 가라앉았다.

     

    또 비슷한 기억이 있다.

     

    다리가 작살났을 때,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복구 되었었다.

     

    다리가 잘렸었다. 완전 찌부가 되어서 절단했다더라. 다리가 텅 비어서, 며칠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보상금을 받고, 새로 구한 집에 처박혀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 비어있을 자리로 다리가 생긴 것을 보고 꿈이라 생각해 몇 번이나 깨어나려고 노력했던가.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고서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혹시 실험체 비슷하게 취급당할까 꼭꼭 숨겼었다.

     

    정작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세상으로 와버렸지만.

     

    그 부분은 아직도 모르겠다. 고유능력이라는 이능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 내가 모르는 특별한 능력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미약한 행복회로를 돌릴 수 있었다. 기다리다 보면 다리처럼 팔도 새로 생기지 않을까? 하는 행복회로.

     

    하여튼.

     

    이번 시프나하에서 일어난 재앙의 연유와 그 끝에 남은 참혹한 인명피해가 세상 곳곳으로 퍼졌다.

     

    뉴스에서는 심심했다 하면 시프나하와 관련된 영상을 보도했다.

     

    어디 어디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여타 혼란기의 기록을 끄집어와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위험성을 재차 상기시켰다.

     

    덕분에 너무 평화에 취해서는 안되며 언제나 던전과 몬스터에 대비해야 한다는 나름 옳은 목소리도 하나둘 나오는 지경.

     

    며칠간 인터넷이 활활 타올랐다.

     

    북산의 수호자 클랜 및 해당 클랜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이득을 취한 이들도 함께 조사받고 줄줄이 잡혀가는 소식도 들려왔다.

     

    대충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득에 눈이 먼 미친놈도 있고, 적당히 욕심 있는 사람도 있고,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적당히 착한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 사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간혹 시프나하에서 발생한 사망자를 볼 때마다 자괴감이 솟구칠 때가 있었지만…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너는 칭찬받고 존경받아야 할 일을 한 거지, 침울해야 할 일을 한 적은 결단코 없어.”

     

    – 으그그긍…

     

    그럴 때마다 내 기분을 어찌 알았는지 아트라 교수는 내 뺨을 조물거리며 그런 생각 하지 말라며 일러 왔다.

     

    뺨을 조물조물 당하자 침울함이 급격하게 가라앉고, 그냥 뺨이 만져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시간도 죽일 겸,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으로 뉴스 속보를 멍하니 듣고 있을 시점이었다.

     

    [「지옥이 된 도시, 그곳에서 빛난 ‘생도 영웅’」 해당 기사를 읽어보겠습니다.]

     

    ‘?’

     

    잘못 들었나?

     

     

    * * *

     

     

    [플레이어 보정 시스템:개척도]

    [퀘스트 「인명구조 1명」 달성]

    [퀘스트 「인명구조 5명」 달성]

    [퀘스트 「인명구조 100명」 달성]

    [퀘스트 「인명구조 500명」 달성]

    [퀘스트 「인명구조 10,000명」 달성]

    [퀘스트 「4급 던전 붕괴」 달성]

    [퀘스트 「7위계 몬스터 다수 토벌」 달성]

    [퀘스트 「5위계 알파개체 토벌」 달성]

    [퀘스트 「붉은 안개의 짐승」 달성]

    [잔여 포인트가 누적됩니다]

     

     

    [세이비어 보정 시스템:개척도]

    [퀘스트 「첫 번째 시련」 달성]

    [퀘스트 「구원자의 자격」 달성]

     

    [대량의 포인트가 누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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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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