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음을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온다. 마치 내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호기심이 동한다는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감시받는 듯한 느낌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터였다.
주인공의 자리를 뺏었다는 건 모든 이목이 내게 쏠린다는 뜻이니까.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
허나 한때 내 몸을 뒤덮고 있던 갑옷보다도, 기사로서 짊어졌던 의무보다도 무겁지는 않다.
“저어…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조금의 두려움과, 얼떨떨함이 섞인 목소리. 나는 다소 심약해 보이는 인상의 도사에게 포권을 하며 물었다.
“그쪽이 학운 도사님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학종이고, 학운도사는 제 사형이십니다.”
“…제가 학운입니다. 헌데 사자검협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도복을 입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학운이 앞으로 나서 입을 떼자, 도사들이 전부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런 연이 없던 내가 뜬금없이 말을 거는 상황 자체가 신기한 거겠지. 나였어도 웬 외국인이 갑자기 와서 말을 걸면 그럴 터였다.
“평소에 무당무공부주진공, 연이역불가경이침범(武当功法不主进攻,然而亦不可轻易侵犯, 무당의 무공은 공격적이지 않으나 감히 침범할 수 없다)이라는 무당의 검을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본디 저번 비무대회에서 비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했으나…아쉽게도 무산되어서 말입니다.”
“위 대협의 말은, 비무를 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학운 도사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갑작스럽게 비무 신청이 걸려 온 것이니 당연한 반응. 나는 그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맞습니다. 가벼운 비무형식으로 검으로 친교를 다지고 싶습니다.”
“검으로 교분을 나눈다라! 본디 무인은 입이 아니라 무로써 친분을 다지는 것! 사자검협께서는 진정 무인이신가 보오! 하하하!”
예상했던 대로, 이런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남궁휘가 우리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은근슬쩍 분위기를 돋구었다.
학운도사는 여전히 난감하다는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밀어붙이는 걸 거절할 명분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가벼운 비무라면…”
“이번 용봉지회의 첫 친선비무는 사자검협과 송문검룡 학운 도사가 되겠군!”
“무당의 검과 서역의 검이라!”
“아주 기대되는 비무로다!”
사람들의 열띤 반응 속에서 나는 방의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갔다. 학운 도사도 동료에게 이런저런 물건을 건네더니, 검만을 들고 가운데로 걸어갔다.
전부 예상대로 흘러갔군.
나는 스무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검을 뽑아 들고 기수식을 취한 학운 도사를 쳐다보았다. 그의 검날에 있는 소나무 모양이 불빛을 반사하여 기이한 빛을 흩뿌렸다.
“좋은 비무 부탁합니다.”
“질 좋은 자양분이 될 비무가 되길 바랍니다.”
허리춤에 걸어두었던 롱소드를 뽑아 든다. 내가 롱소드를 뽑아 들고 옥스 자세를 취하자, 곳곳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이제 시작인가.
우리가 준비를 끝내자, 남궁휘는 손수 심판역할을 자처하며 우리 사이에 섰다.
“용봉지회 친선비무의 전통대로, 검기의 사용은 불가하며, 살수를 쓰는 것도 금지요! 그 외에 규칙은 없으나, 명확하게 승패가 가려지는 순간 개입할 터이니 마음껏 자신의 검을 보여주시오!”
드디어 무당의 검을 볼 수 있는 건가.
어쩌면 내 경지상승에 가장 도움이 될지도 모를 비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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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비무를 하게 될 줄은…’
학운은 거리를 두고 자신을 쳐다보는 거구의 사내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8강에서 승리했다면 싸웠을 상대와 이런 식으로 싸울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세간에서 사자검협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는 색목인.
위리엄(衛利淹).
어떤 의도로 비무를 신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 푸른 눈에 담겨있는 것은 순수한 호승심과…열망.
‘제가 무슨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검수가 검으로 친교를 다지는 것은 당연한 것. 서로 얻어가는 비무가 될 수 있다면…좋겠습니다.’
“비무를 신청한 것은 저이니,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윌리엄의 발이 가볍게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학운 도사와 윌리엄의 거리가 좁혀졌다. 스무 걸음이라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가 순식간에 4걸음 안쪽으로 줄어들자 광경을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의 시선이 학운 도사에게로 향했다.
학운 도사가 즐겨 쓰는 검법은 유운검(柔雲劍). 무당의 검 중에서도 상승 절기의 입문에 해당하는 검공이지만, 그 수준 높은 세간의 유명한 검법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부드러운 구름 같은 움직임을 자랑하는 무당의 검.
학운 도사의 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윌리엄의 검을 막아냈다.
‘은공의 검과 무당의 검은 본질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검리를 가지고 있으니, 오히려 강검끼리의 싸움보다 더 치열하게 부딪히는군요.’
목경은 두 사람의 부드럽고 깃털같이 가벼운 검무에 눈을 번뜩였다.
본디 이화접목의 원리를 채용하는 무당의 검은 비슷한 류의 검법을 찾기가 힘든 편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기 쉬운 무림에서 숙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살상보다는 제압에 이점이 있는 검리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속도를 추구하는 쾌(快).
극한의 변화를 추구하는 환(幻).
강한 힘을 추구하는 강(强).
무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쓰이는 세 가지 검리가 아닌, 유(柔).
무당의 검은 언제나 부드러움(柔)을 담았으니, 이는 무당의 검이 무림의 일절로 불리는 이유이며 그들이 남존무당(南尊武当)이라 불리는 평가의 근원이리라.
‘역시 무당. 다른 검사들과는 느낌이 전혀 달라.’
윌리엄은 생각 이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검에 감탄하며 학운 도사의 검을 흘려냈다. 벌써 스무 번째 합이었지만, 두 사람의 검은 마치 검무를 추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대단한 검이십니다.”
“무당의 검이 천하 일절이라더니, 그 말이 틀린 게 없습니다.”
두 사람은 검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답지 않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불똥이 튀고 가열차게 싸움을 벌이는 비무가 아닌, 합을 맞춰 같이 추는 검무.
무림인들은 그 기이한 비무를 보며 그저 탄성만을 흘렸다.
무당의 검이 비슷한 검리를 추구하는 검과 비무를 벌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니까.
‘내 선택이 맞았군.’
검술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선, 그리고 경지의 상승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경험.
그는 단순한 깨달음보다, 경험을 더 중요시했다. 그가 단기간에 경지를 끌어올렸던 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속에 쌓아온 경험이었으므로.
그렇기에 그는 한 번 한 번의 검격을 두 눈에 담으며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자연스럽게 상대의 검격속으로 몸을 들이민다.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때로는 과감한 행동도 필요한 법. 그는 학운도사의 검이 순간적으로 멈춘 것을 보곤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운 것을 제외하면 이전과 별 차이 없는 검격.
학운 도사는 조금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윌리엄의 검을 부드럽게 흘려내려 했다.
‘지금인가.’
윌리엄은 검을 굳게 쥐고 있던 손을 하나 떼고 학운 도사의 손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금나수법?!’
검을 휘두르는 도중에 금나수법이라니. 기이한 수법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학운 도사의 손이 윌리엄의 손과 어우러졌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과, 거칠고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얽혔다 떨어졌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음을 확인한 윌리엄이 감탄하며 물었다.
“혹시, 그게 태극권입니까?”
“송엽수입니다만, 근본을 따지자면 태극권이지요.”
“듣던 대로 대단한 권법입니다.”
“기초적인 권공일 뿐입니다.”
‘과연 무당. 이 정도의 권법이 기초공에 불과하다니…’
둘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한 손으로 공수를 반복했다.
당기고, 밀고, 꺾고.
단순히 손만을 사용하는 접전이었음에도, 후기지수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손의 얽힘 속에 얼마나 많은 노림수가 들어가 있는지 모르는 자가 없었으니까.
혹자는 자신이라면 어떻게 저 수에 반격해야할지 고민하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샌가 검법이 아닌 금나수법을 겨루는 비무가 된 상황. 두 사람은 이대로는 싸움이 끝나지 않음을 직감하고 서로 세 발짝 뒤로 물러섰다.
“슬슬 끝을 봅시다.”
“그러지요.”
윌리엄의 몸이 자세를 낮추고 학운 도사를 향해 짓쳐 들었다. 마치 물소의 돌진처럼 그를 덮쳐오는 윌리엄의 모습에 학운 도사는 차분한 눈빛으로 기수식을 취했다.
윌리엄의 검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둘러진다. 전형적인 횡베기. 허나 그 누구도 그의 검이 정직하게 휘둘러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운도사는 검을 수직으로 세워 윌리엄의 검을 부드럽게 받아냈다.
‘가볍다.’
이것은 실초가 아니다.
그 사실을 파악한 순간 윌리엄의 손목이 돌아가며 반대쪽 검면을 노렸다. 학운 도사는 그 기이한 동작을 가까스로 흘려냈다.
‘노림수를 흘려냈으니, 이젠-’
그 순간, 학운 도사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흔히 철판교라 불리는 자세.
아슬아슬하게 세 번째 검격이 그의 몸 위를 지나간다. 막은 자세 그대로 몸을 앞으로 내밀어 찌르는 공격. 허를 찌르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학운 도사는 자세를 되돌리고 검을 휘둘렀다.
허나 윌리엄의 검은 어느샌가 회수되어 다음 출수를 준비한 상태. 윌리엄은 학운 도사의 검을 막으려는 듯이 앞으로 내밀고는, 갑작스레 칼날을 잡고 코등이와 손잡이로 학운 도사의 검을 받아냈다.
‘이런?!’
“검을 거꾸로 쥐다니?!”
“저런 기이한 초식이 존재하다니, 서역의 검술은 신묘한 구석이 있군!”
“저렇게 칼날을 쥐고 있는데 손이 베이지 않는다니, 내공으로 보호한 것인가? 아니면…”
유검에는 모든 것을 부드럽게 타고흐르는 물 같은 흐름이 중요한 법.
허나 움직일 곳 없이 고정된 상태라면, 유검은 제대로 펼쳐질 수 없다. 윌리엄은 검을 옆으로 올려 학운도사의 자세를 무너트리고는, 한 바퀴 검을 돌려 코등이를 학운 도사의 목에 살며시 갖다댔다.
“…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코등이가 목에 닿은 상황.
학운 도사는 숨을 내쉬며 패배를 선언했다.
부드러우나 살인을 위해 연마된 검법.
제압을 위해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검법.
미묘하게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