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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흠.”

        

       제니퍼는 레나와 내가 가지고 온 총기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리 제니퍼라고 해도 교과서를 이용한 수업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파견 실습이 끝난 후에는 계속 교과서를 통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서야 다시 실전 같은 대련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문제는 우리 두 사람의 총기가 여러모로 ‘모의전’으로 써먹기에는 애매한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볼트액션 소총, 산탄총은 큰 문제가 없다. 어차피 한 발, 혹은 두 발 쏘고 차탄을 장전하는 행위가 필요한 총기들이었고, 멀리서 보아도 눈썰미만 좋다면 부정행위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 판단할 수 있다.

        

       내가 쓰는 리볼버도 마찬가지였다. 더블액션이라서 방아쇠 한 번만 당겨도 해머가 깔짝깔짝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이니까.

        

       하지만 자동권총은…… 내부에 있는 탄약이 연소하지 않는 이상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 방아쇠를 당긴다고 외부에서 해머가 움직이는 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공방장이 만들어낸 이 신형 자동권총은 뒤에 해머가 나와 있기는 했지만, 작동방식은 싱글 액션이었으니까.

        

       하지만 ‘실전’을 상정한 상황에서 자동으로 차탄이 장전되는 총을 두고 비비탄 쏘는 것처럼 한 발 쏘고 장전하는 동작을 하라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게다가 탄창을 모두 비우고 재장전하는 것과 모두 비우지 않고 장전하는 것, 남은 탄창을 다시 쓰는 것까지 생각하면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나와 레나 모두 그런 총 하나만 쓰는 것이 아니다. 레나는 자동권총을 두 정 쓰고, 나는 자동권총 한 정, 리볼버 한 정, 소총 한정과 산탄총 한 정을 쓴다.

        

       여기까지만 해도 사람이 기억할만한 수준이 아닌데, 심지어 우리는 마르마로스를 직접 가공한 탄환까지 사용한다. 탈락일지 아닐지를 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

        

       결국 제니퍼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두 사람은 주말에 따로 실습하도록 하지.”

        

       엑.

        

       *

        

       “마이어가 쓰는 것은 그렇다 치고, 네가 쓰는 것은 처음 보는 총이군.”

        

       그야 프로토타입이니까. 아직 이름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서 슬라이드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공방장에게 받은 총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탄환도 처음 보는 탄환이고. 지난번에 만났을 때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 하더니, 이게 그 총인 모양이군.”

        

       “…….”

        

       나는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제니퍼니까 이 정도로 대답할 수 있었던 거지, 사실 기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한테 세세한 정보를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지고 온 총이었다.

        

       내가 전장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은 한 발짝 늦게 제도까지 전달되었다. 군용 총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느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었으니, 공방장이 나에게 총기를 맡긴 이유도 어느 정도 상상이 가긴 했다. 여러 상황에서 엄청나게 쏴댈 것이 분명한 나였으니, 테스트 겸해서 빌려준 것이다.

        

       게다가 이 총은 브라우닝 공방에 보관되어있는 예비용 몇 자루 빼고는 세상에 돌지 않으니 결국 수리하려면 그 공방장에게 가지고 가야 했다. 고장 났다면 고장 난 이유를, 탄이 걸렸다면 걸린 이유를 다 듣게 된다는 말이다.

        

       “뭐, 좋다. 그 공방장 실력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네가 직접 선택한 총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

        

       제니퍼가 나에게 총을 돌려주는 것을 받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98식은 이미 알고 있다. 이렇게 보여도 북부 전장에 있던 몸이니까.”

        

       제니퍼가 그렇게 말하자,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두 사람의 실력을 측정할 방법을 고민해봤다만…….”

        

       제니퍼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 둘 다 실탄이 아니라면 거의 무의미한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테스트도 실탄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니퍼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통나무를 쌓아 올려 만들어진…… 참호라고 해야 할지, 집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곳이었다.

        

       땅을 파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기 좋도록 땅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통나무로 쌓아 올려진 안쪽을 보면 실제 참호와 비슷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안쪽에는 내가 봤던 실제 참호처럼 옆으로 빠질 수 있는 곳도 있었고, 방처럼 생긴 곳도 존재했다. 운동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으니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지만 한 번 들어가면 반대쪽으로 나오는 데 1분은 걸릴 것 같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여도 위쪽에서 바라보면 안쪽이 훤히 보이도록 만들어졌지.”

        

       그렇게 말하는 제니퍼의 표정이 묘하게 뿌듯해 보였다.

        

       뿌듯할 만 했다. 고작 이틀 만에 이런 훈련장을 만들어낸 것이니까.

        

       생김새가 전형적인 세계 대전식 참호라서 그렇지, 용도 자체는 현대의 사격훈련장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이런 게 있으면 다른 학생들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귀족’이면서 총기를 사용하는 이가 없어서 굳이 훈련장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사실상 나와 레나 아니었다면 이런 곳도 없었을 거라는 소리다.

        

       “실탄을 사용한 훈련이 되겠다만, 두 사람 다 괜찮겠지? 아, 하지만 마르마로스는 사용하지 마라. 이틀 동안 고생한 인부들이 불쌍해지니까.”

        

       “…….”

        

       뭐 그렇겠지.

        

       아무리 돈 받고 만들었다지만 그 결과물이 고작 한 번 사용하고 활활 타버리면 나라도 허탈할 거다.

        

       *

        

       먼저 투입된 건 레나였다.

        

       탄창에 여덟 발, 약실에 한 발 들어가는 총기를 양손에 들고 있으니 생각보다 탄에 여유가 있었다. 상대라고 해봐야 스프링에 의해 갑자기 튀어나오는 판자였으니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았고.

        

       전기도 없는 세상에서 튀어 오르는 표적을 어떻게 만들었나 했는데, 하나하나 다 태엽으로 감아서 뒤로 내려놓은 결과물이었다. ……제니퍼가 마르마로스를 쓰지 말아 달라고 한 것에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아무리 봐도 용도에 비해서 엄청나게 비싸고 고장도 잘 날 것처럼 생겼으니까.

        

       게다가 다른 학생들도 쓰기에는 하나하나 다시 내리는 데 시간이 걸렸고.

        

       “열심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레나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갑자기 들려온 레나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의지가 가득한 레나의 두 눈이 보였다.

        

       “황녀님께서 활약하신 전장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만, 그 편린이라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일부러 멕이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면 절대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오, 그래?”

        

       그리고 때마침 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던 제니퍼가 말했다.

        

       “그러면 저 위쪽에서 같이 봐도 괜찮다만.”

        

       “정말이십니까?”

        

       “…….”

        

       레나에게 쓸데없는 제안을 하는 제니퍼를 가만히 바라보았지만, 제니퍼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

        

       뭐, 좋아.

        

       나도 나 나름대로 해결책을 생각해보았다.

        

       만약 레나가 로망을 챙긴 캐릭터라면, 나는 어떤 캐릭터가 되어야겠는가.

        

       로망의 반대말, 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택티컬’이라고 하면 어떨까.

        

       극도로 실용적인 택티컬은 오히려 로망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존 ●이라던가. 뭐, 그 캐릭터는 다른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럴싸하게’ 보이면 된다는 소리다. 막 전술이 전열 보병에서 현대전으로 넘어오는 시점이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현대식 사격을 이용하면 된다.

        

       가령, 예를 들자면.

        

       철컥.

        

       태엽이 작동하며 적의 타겟이 올라온다. 그것도 한 번에 두 명이 옆에서 튀어나오는 형태로.

        

       나는 그중 하나를 산탄총으로 사격했다. 마르마로스가 달린 내 개인용 산탄총이 아닌, 학교에서 빌린 것이므로 평범한 산탄이 나갔다.

        

       하지만 그런 산탄총이라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산탄총이다. 일부 부품만 내가 쓰던 것으로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적 하나를 쏘면서 비어버린 산탄총을 그대로 놓았다. 산탄총 개머리판 바로 앞쪽에 달아둔 멜빵 고리 끈이 아래로 늘어졌지만, 이 세계의 일반적인 소총 끈이 총 끝과 끝을 길게 연결하는 것과는 다르게 내가 걸고 있는 끈은 목과 어깨를 지나는 슬링 백 스타일이었다. 총이 완전히 아래로 늘어지지 않고 금방 다시 잡을 수 있도록 가슴 조금 아래까지 내려와 멈췄다.

        

       그대로 빠르게 오른손을 내려 허리 홀스터의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권총을 감싸 쥐고,

        

       탕탕!

        

       두 발을 가슴에 쏘았다.

        

       그리고 전진.

        

       다음, 그다음의 적도 두발씩 쏘고, 빈 탄창을 장전. 총에 일곱 발을 장전한 뒤 다시 홀스터에 넣고, 아까 적이 나왔던 곳으로 쏙 들어갔다.

        

       오른쪽 허벅지 쪽에 차고 있는 산탄 홀스터에는 두발, 두발, 두발, 이렇게 총 여섯 발이 줄지어 들어있었다.

        

       거기서 두 발을 동시에 꺼내서, 탄 삽입구에 그대로 줄지어 넣었다.

        

       그렇게 두 번을 반복하고 총을 장전한 다음 밖으로 나온다.

        

       다시 튀어나오는 두 적에게 빠르게 한 발씩.

        

       ……쏘고 나니, 사격장 끄트머리였다.

        

       “후우.”

        

       작게 숨을 내쉬고는 위쪽을 보았다.

        

       제니퍼가 내 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저게 무슨 표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보고 있는 레나가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공방장을 닦달해서 군장류를 만든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밤새도록 재장전을 연습하고 돌린 것도.

        

       ……어젯밤에 다 지어진 훈련장에 몰래 들어와서 혼자 엄청나게 뛰고 돌리고를 반복했던 것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후원 감사합니다!

    소설 쓰는 내내 독자 여러분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로 칭찬해주시는 것, 선작을 해주시고 추천을 눌려주시는 것, 모두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후원까지 해주시는 것은 더 말알 것도 없지요. 월정액 이상의 돈을 내지 않아도 본편을 다 읽을 수 있는데도 제게 따로 후원을 해주시는 것은 그만큼 저의 글이 마음에 드셨기 때문이겠죠?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글을 읽는데 쓰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반드시 훌륭하게 완결낼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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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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