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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정령기에 대한 설명.

    루키우스와 로즈마스, 그리고 드로니엘에 대한 조절.

    ‘끝났다!’

    이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마친 나로서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나를 방해할 수 있는 요소는 없어.’

    잠은 필요 없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에 정신적인 고통은 상당했고, 내게는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

    약간의 휴식.

    머리를 쓰는 자로서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나중에 대가리가 깨질 일이 생기기 마련.

    아무리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며 앞으로의 일을 준비한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여러모로 힘들어지는 법.

    그러므로.

    마왕의 초필살기.

    멍-

    전력으로 멍 때리기.

    아세디아고 뭐고, 내 본신의 육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루키우스가 로즈마스와 짝짜꿍을 하든 말든, 그걸 드로니엘이 지켜보고 이를 갈지만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까 말까 고민을 하든 말든, 래피드 경이 열심히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오드론의 중심지 리그레트와 연락을 꾀할 방법을 찾든 말든, 릴리에즈가 다시 결계를 치든 말든.

    제파르가 나를 노리든 말든.

    지금의 나는 오직 휴식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고민도 하지 않으며, 이 잠깐의 명상을 즐긴다.

    잠이 오는가?

    그건 아니다.

    이 몸은 죽은 몸이라서 잠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수면은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지금 넋 놓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 또한 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집에 가고 싶다.’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나의 마왕성에 누워 느긋하게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계속 지내고 싶다.

    대마왕으로서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 왜 또 여기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냥 숨만 쉬고 살고 싶을 뿐인데.

    마계의 멸망.

    천족과 마족의 대립.

    중간계에서 펼쳐지는 천마의 대립.

    그사이에 끼어있는 인류의 생존.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이전, 세계를 창조한 두 여신이 만들어낸 일곱 개의 힘과 그 힘을 다루는 정령들.

    그 정령들을 가둔 정령기.

    그런 것들은 모두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들 뿐이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제파르에 대한 복수.

    감히 나를 귀찮게 만든 일에 대한 죄는 받아야 한다.

    500년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던, 그리고 세계의 멸망 앞에서 순순히 패배하기로 정했던.

    마왕군의 수장으로서 쌓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간계의 존속을 선택했던 마왕이 피로에 지쳐 죽겠는데 굳이 사람을 강제로 현역으로 끌고 나오게 한 제파르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

    멍하니 있으려고 하니, 그것도 쉽지 않다.

    멍하니 있기에는 신경 쓰이는 요소가 많다.

    머리가 아프지 않으려고 일부러 가만히 침대에 누웠지만, 머리를 아프게 하는 요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루키우스나 로즈마스, 드로니엘이나 다른 용사들에 대한 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건가?

    사탄이 말했다.

    -내가 육신을 단련하는 이유는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함이지. 루시퍼가 육신을 단련하는 이유는 육체미를 위한 거지.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운동을 하는 거지?

    -체력을 단련하는데 이유가 있나?

    -당연하지. 건강한 삶을 오랫동안 영위하고자 한다면, 그 삶을 이어나갈 세계를 구해야 하지 않겠나?

    사탄이나 루시퍼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마계는 이제 멸망하게 될 걸세. 불과 그 시간이 이백 년도 채 남지 않았어. 우리는 중간계로 넘어가 중간계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해. 이미 이 세계는 죽어가고 있어.

    -그래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그대만큼 훌륭한 지도자가 또 없지 않나. 인간들의 관점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마왕이고 그대는 대마왕이지. 당연히 더 강한 자를 따르는 게 마족의 기본 아닌가?

    -맞짱 뜨면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고 벼르는 놈이?

    -무력으로 치면 그렇지. 하지만 그대의 진가는 무력이 아니지 않나? 집단을 다스리는 능력. 그 능력은 이미 중간계를 지배하기 직전까지 간 거로 증명되었네. 만약 마지막에 용사가 세계를 걸고 자폭을 시도하지만 않았다면-

    -그만. 심장에 환상통이 느껴지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

    쇠질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던 게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마계의 지옥, 루시퍼의 영토에서 제련한 강철 바벨을 쇠봉에 달아 들었다 내리며 했던 이야기지만, 나와 무력만 두고 보면 정말 비슷한 힘을 낼 수 있는 육체파 마왕 사탄은 언제나 내게….

    아니, 사탄뿐만 아니라 모든 마왕들이 물었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가서 복수할 생각은 없나?

    라고.

    마지막 한 발자국을 앞에 두고 미끄러진 게 억울하지 않으냐고.

    언제까지 그렇게 게으르게, 삶의 이유도 목적도 없이 숨만 쉬고 살아갈 거냐고.

    -살아가는 목적도 없이 행성과 함께 죽어가기를 바라는 자. 이 자를 과연 살아있는 자라고 할 수 있을까?

    -마계는 파멸한다. 마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건 네가 되겠지. 나는 중간계로 넘어가 무한한 삶을 영위할 것이고, 그대는 파멸할 것이다.

    -같이 가는 게 좋지 않겠어? 네가 다시 간다고 하면 마족들 모두가 일어나서 네 뒤를 따를 거야.

    -우리들의 진정한 지도자, 마신이 될 길이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

    마신.

    그걸 떠올리고 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세계의 진실을 속에 품고 있던 자로서, 마신으로서 마왕들을 통솔하여 중간계를 지배하자고 하던 그들의 제안은 정말이지….

    “스승님.”

    “……루키우스.”

    상념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나를 부르는 루키우스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나는 바로 침대에 놓아둔 지팡이를 붙잡았다.

    “적습이야?”

    “…예. 완전히 다른 개체입니다.”

    루키우스는 창 밖을 가리켰다.

    릴리에즈의 결계 너머, 얼음의 성벽 너머에는 나라그 독충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가 결계 주변을 돌고 있었다.

    “……!!”

    그 모습에 나는 손발이 덜덜 떨렸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형태.

    중간계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존재.

    “…저게 뭐야?”

    “스승님께서도 모르십니까?”

    “…….”

    홍련의 마술사는 모르지만, 대마왕 벨페고르는 알고 있는 괴수.

    벨제부브의 권속, 디프테라.

    인간 크기의 초파리 괴인 군단에 나는 지팡이를 붙잡은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루키우스. 여기서부터는 나도 지식의 영역이야.”

    “네?”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책으로 본 내용이라고.”

    거짓말이지만.

    “저건 대마왕과는 다른 마왕의 권속같아.”

    “…다른 마왕이요?”

    “그래. 아무래도 벨페고르와는 다른 마왕이 소환된 것 같아.”

    머리가 아파진다.

    지금까지 나타난 벨제부브의 흔적과 아세디아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최악의 가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아세디아가 마왕을 조종하고 있을 지도.”

    “가능합니까…?”

    “불가능할 건 없어. 내가 지난번에 설명했잖아. 진명계약. 그걸 마왕급이 당했다고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

    정신마법에 있어서 마계 최고인 나도 당할 뻔했다.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지만, 만약 내가 그 어떤 경우에도 저항할 수 없는 ‘진짜 이름’으로 소환되었다면 나도 육체를 버리고 다른 육체로 갈아타는 게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귀찮네.”

    -적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몰아쳐라.

    적은 마왕군의 핵심 전술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전부 종합해봤을 때, 아마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

    제파르가 마왕 벨제부브를 조종하고 있다.

    만약 이게 나의 억측이어도 상관없다.

    차악이라고 해도 ‘마왕 벨제부브가 제파르를 도와주고 있다’ 수준이고, 조종하든 도와주든 그건 현재 용사 파티의 일원인 내게 최악의 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저게 내가 아는 그놈들이라면.

    “릴리에즈한테 당장 달려가서 전해. 결계의 강도를 최대한으로 올려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루키우스는 ‘예?’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지시에 대한 의문을 품기 전에, 내 지시를 빠르게 이행하고 난 뒤에 움직일 뿐.

    “릴리에즈님! 스승님의 전언입니다! 결계의 강도를 높이라고 하셨습니다!”

    “예? 갑자기 무슨….”

    문제는 루키우스는 내 말을 순순히 듣지만, 릴리에즈는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루키우스가 제일 좋아.’

    뭔가 지시를 내리고 빠릿빠릿하게 이행하는 걸 보면 루키우스가 갑이다.

    베어네스도 릴리에즈도 어느 정도 자신만의 짬이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려고 하지 수동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완벽한 지시에 따르기 전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놓친 순간, 적의 공격은 시작되겠지.

    끼이익!!

    디프테라들이 비명을 지르며 결계에 달라붙었다.

    성검의 힘으로 만들어진 얼음의 결계에 하나둘 달라붙어, 놈들은 날카로운 손톱을 박아넣고 날개를 마구 펄럭이기 시작했다.

    “!!”

    “늦었어요. 릴리에즈.”

    나는 창문을 이용해 날아서 밖으로 나왔다.

    당연히 내가 날아오는 것보다 루키우스가 바람처럼 뛰는 게 빨라 릴리에즈에게 지시를 내렸지만, 이 짧은 타이밍을 그녀는 놓치고 말았다.

    “지금부터 결계를 강화하려고 해도 늦었어요. 보통 저런 놈들은….”

    사각, 사각, 사각.

    디프테라들은 얼음의 벽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몸이 얼어붙든 말든, 일단 몸을 얼음벽 안으로 비집고 밀어 넣었다.

    “결계를 강화할 수 없게 만드는 놈들일테니.”

    “설마….”

    “놈들에게서 마력이 느껴지나요?”

    “…확실히 마력이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너무나도 사악한 마력이.”

    “그걸 느꼈다면…. 하아, 미안해요. 잠깐 눈 감고 일어나서 지금 저기압이라.”

    몸 안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이제야 돌리기 시작해서 조금 신경질적이 되어버렸다.

    “…저기 있는 마수들 있잖아요. 저거.”

    결계 안으로 파고든 디프테라의 몸이 서서히 붉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폭탄이에요.”

    콰ㅡㅡㅡㅡㅡㅡㅡ앙!!!

    폭발했다.

     마왕 벨제부브.

     권능.

     자신의 권속으로 만든 생물을 폭발물로 만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왕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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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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