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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어째서 아기고래와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걸까?”

         

       파스텔은 비공정 난간에 기대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 친화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았던 거야? 이래선 인기인을 자칭할 수 없어!”

         

       은발의 소녀가 옆에서 당혹스러워했다. 앨시어는 혹여나 있을 비상 상황을 대비해 승선한 상태였다.

         

       “원래 새끼 고래와는 친구가 못 되는 게 정상 아니야……?”

         

       공작 영애의 가차 없는 지적.

         

       신분제적 압박이 느껴진다.

         

       파스텔은 홱 돌아봤다. 놀란 표정으로 앨시어와 시선을 마주치다가 신분 계급상 자신이 더 높다는 걸 깨닫고 안심했다.

         

       휴우.

         

       갑의 잘못된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을이 될 뻔했어.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갑이니 옳은 말을 해줘야지.

         

       “틀렸어! 우리 모두는 친구가 될 수 있어! 저기 봐봐!”

         

       난간에 떨어질 듯이 기대 하늘 저편을 가리켰다. 비공정은 뭉게구름을 우회하지 않고 직선 항행하고 있었다.

         

       “쟤는 구름구르미야! 구름구름 말고 구름구르미! 헷갈리면 안 돼!”

         

       둘은 다른 애니 꼭 명심해야 돼.

         

       안 그러면, 안 그러며언…….

         

       서운해하니까!

         

       허억.

         

       서운해한대!

         

       꼭 기억해야겠다!

         

       “내 친구 중 하나인데 오늘 항행 소식을 듣고 마중 나와줬어! 안녕 구름구르미! 우리 오랜만이다, 그치?!”

         

       파스텔은 구름 친구에게 양팔을 휘저었다. 처음 본 애한테 괜히 친한 척하는 태도였다.

         

       앨시어가 구름 친구를 멍하게 바라봤다. 은색 눈동자가 떨리는 게 이 후작 각하의 말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비공정이 뭉게구름을 관통했다. 시야가 흐릿한 안개로 뒤덮였다. 시원한 촉촉함이 온 피부를 덮었다.

         

       “우와아!”

         

       에어컨에 분무기 뿌리고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기분.

         

       “구름구르미! 이렇게나 열렬히 환영해 주다니 나도 기뻐! 우리의 우정은 영원, 콜록! 콜록!”

         

       말하다 수증기 안개를 잘못 들이켠 파스텔은 기침했다. 어째 시원함도 과한 게 으슬으슬했다.

         

       “구름구름! 환영이 과해애!”

         

       인기인의 숙명이지만 이건 집착이 과하다고 할까!

         

       앨시어가 준기사급의 설렁이는 손짓으로 수증기를 밀어내다가 돌연 쳐다봤다. 은색 눈동자의 강렬한 시선.

         

       입술을 달싹이더니 직설적으로 말해왔다.

         

       “이름 틀렸어.”

         

       허억.

         

       파스텔은 그대로 굳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비공정은 뭉게구름을 뚫고 나왔다. 구름이 솜털처럼 비공정을 휘감았다가 흩어졌다.

         

       선원이 외쳤다.

         

       “곧 하늘고등어 영역입니다!”

         

       어미고래가 고등어에게서 무단 점거한 영역이었다.

         

       앗.

         

       파스텔은 굳었던 몸이 풀렸다. 선원을 돌아봤다가 경악하며 앨시어를 돌아봤다.

         

       “고등어래! 하늘고등어! 하늘을 나는 고등어라는 의미야!”

         

       앨시어도 외친 선원을 보다가 파스텔을 돌아봤다.

         

       “그보다 이름 틀렸-”

       “고등어라니!”

         

       으아아!

         

       파스텔은 분홍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 머리만 한 크기의 고등어라구! 가로 사이즈 말고 세로 사이즈가 머리만 해! 그거 완전 참치 아니야?! 왜 고등어야?!”

         

       명칭에 이의 있음!

         

       앨시어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야 고등어니까.”

         

       앨시어는 북부 산맥에서 지내느라 친구를 제대로 사귄 적이 없는 게 확실해 보였다.

         

       아니라면 이렇게 사교성 없는 말만 할 리 없어.

         

       하지만 괜찮아!

         

       인기인 파스텔은 산전수전 다 겪었기 때문에 이런 친구와도 맞춰줄 수 있었다.

         

       능숙한 흘려듣기 전략으로!

         

       “흐윽. 가난했던 내 과거가 생각나.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늘을 항행했었어. 하지만 그때 날 막아섰던 사악한 무리가 존재했지!”

         

       양손을 휘저었다.

         

       “바로바로!”

       네가 어서 말해보라는 의미로 앨시어에게 손짓했다.

         

       막상 대화의 판을 깔아주자 앨시어는 머뭇거렸다. 대화 템포 떨어지게 눈치 없이 길게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해적이 강하긴 한-”

       “그건 바로 고등어 떼!”

         

       파스텔은 비명을 질렀다.

         

       “무수히 충돌하는 굉음과 부서질 듯 흔들리는 비공정 위에서 나는 겁에 질린 채 떨 수밖에 없었어!”

         

       덜덜덜.

         

       머뭇 주춤 상태던 앨시어가 순간 자신 있어졌다. 본인도 고등어 떼를 겪어본 표정이었다.

         

       “고등어가 그 정도는 아닌-”

       “공포의 무리가! 내 삶에 찾아오자 나는 등푸른생선만 보면 입에서 침을 흘리게 됐어.”

         

       흐윽.

         

       서글픈 인생.

         

       앨시어가 멍해졌다. 잠시 비공정 난간 저편의 하늘을 보더니 돌아봤다.

         

       “그건 그냥 네가 먹보인 게-”

       “신께선 어찌하여! 이 세상에 저를 태어나게 하시고도 고등어를 만드셨나이까!”

         

       파스텔은 혼자 날아오는 고등어를 가리켰다.

         

       “마치 저 고등어처럼, 으아아! 고등어다……!”

         

       고등어가 하늘을 그대로 헤엄쳐 왔다. 부딪치려 하자 몸통이 회전하고 꼬리지느러미가 파스텔의 얼굴을 쳤다.

         

       “커흑!”

         

       털썩.

         

       파스텔은 붉게 지느러미 무늬가 남겨진 볼을 부여잡았다. 비명을 질렀다.

         

       “고등어의 기습이다아!”

         

       으아아!

         

       후작 암살이야!

         

       인생 최대 위기……!

         

       추락한 고등어가 갑판 바닥에서 팔딱였다.

         

       고등어 팔딱팔딱.

         

       앨시어가 고등어를 주웠다. 고등어가 버둥대자 몸통을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손길이 고등어 몸통에 묶인 작은 쪽지를 살펴봤다.

         

       “전서어네.”

         

       태평한 목소리였다.

         

       친구가 고등어에게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파스텔은 황망하게 볼을 문질렀다.

         

       전서어가 뭐야.

         

       설마 비둘기 구구~가 전서구니까 고등어 고등고등~은 전서어라는 소리인가?

         

       흐리멍덩한 생선 눈이 눈앞에 보였다.

         

       “왜 고등어를 쓰는 거야?!”

         

       멀쩡한 새를 놔두고!

         

       새가 더 멋있고 예쁘잖아!

         

       고등어는 비린내만 나잖아!

         

       쪽지를 꺼내던 앨시어가 움찔했다.

         

       “꽁치도 쓰지 않나……?”

       “꽁치도 쓴다고?!”

         

       파스텔은 두 배로 충격받았다. 격렬한 충격 속에서 양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꽁치는, 꽁치는 더 안 되는 거잖아!”

         

       왜냐하면 왜냐하면.

         

       “고등어는 비둘기와 똑같은 세 글자라 비둘기 대신 적어도 감쪽같지만! 꽁치는 두 글자란 말이야! 글자 수가 달라! 아예 달라!”

         

       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

         

       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고등어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

         

       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꽁치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

         

       으아아!

         

       꽁치 혼자만 티나잖아!

         

       앨시어가 머뭇거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파스텔은 머리를 짚고 휘청였다.

         

       이 세상은 너무 이상해애.

         

       앨시어가 눈치를 보다가 쪽지를 건네줬다.

         

       쪽지는 나쁜 의미로 살짝 축축했다. 고등어의 땀방울이 묻어있는 거 같다.

         

       파스텔은 슬쩍 냄새를 맡아봤다.

         

       비린내가 풀풀 났다.

         

       “비린내 나잖아……!”

         

       앨시어가 머뭇거렸다.

         

       “그야 고등어니까.”

         

       으아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구!

         

       파스텔은 소통 불능에 좌절했다.

         

       고개를 털썩 숙이고 그냥 쪽지를 열어봤다.

         

       공문서는 아니지만 공문서의 성격을 띤 쪽지였다. 기사단이 아카데미에 보내는 요청 사항 혹은 통보문이다.

         

       “현재 하늘고래 대응은 총장이 부재한 아카데미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다. 비상 업무를 기사단에 인계하고 돌아가달라?”

         

       쿠데타 이후 위계질서가 무너진 아카데미 상황에 우려를 표하는 문장도 스리슬쩍 적혀 있었다.

         

       우와우와.

         

       관할권 두고 싸우자는 건가아?

         

       테러 때 기사단은 내부 문제로 움직이지 못한다며 돕지 않았다.

         

       해결한 뒤에도 이유는 내부 문제라 밝힐 수 없다고 선 긋길래 당장은 넘겼는데 이렇게 나오면 무슨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학생 생명을 권력 견제에 쓰는 조직?

         

       “기사단과 관할권 분쟁이야?”

         

       앨시어가 묘하게 쳐다봤다. 어디선가 들은 예언을 상기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이!”

         

       파스텔은 웃으며 쪽지를 구겼다. 종이가 손바닥으로 굴려지자 동글게 말렸다.

         

       종이 뭉치를 난간 밖으로 휙 던졌다. 하얀 뭉치가 하늘 아래로 슝 추락했다.

         

       난간으로 다가간 앨시어가 내려봤다.

         

       “이거 버려도 되는……?”

       “뭐가아?”

         

       뭔가 있었나?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닥에서 팔딱이는 고등어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억, 고등어!”

         

       오늘 처음 봄!

         

       뭐 하는 고등어지?!

         

       서둘러 고등어를 주웠다.

         

       이 묵직한 무게.

         

       축축한 감촉.

         

       “너 혹시 비둘기의 친척인 고등어니?!”

         

       고등어가 죽은 생선 눈을 했다. 대답하듯이 입이 뻐끔뻐끔거렸다.

         

       “아니라구?”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전서어 같은 존재가 현실에 있을 리 없잖아!

         

       막막 날아가다가 전서구에게 쪼여서 도망칠 거 같은 비주얼인데 여기에 중요한 공문을 보낼 리도 없잖아!

         

       혹여 보내더라도 지나가던 하늘호랑이에게 잡아먹혔을 게 뻔하잖아!

         

       어흥!

         

       하늘호랑이다!

         

       날개는 없지만 그냥 날아다니지!

         

       파스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눈치 빠른 하늘호랑이(사병)가 벌써 아카데미 인력과 선원들의 입단속을 시작하고 있었다.

         

       “어흥! 어흥!”

         

       응응!

         

       앨시어가 광경을 보며 멍해졌다.

         

       “역시 테러범의 헛소리가 아니었구나…….”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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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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