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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마왕군에 감염된 야만족이 제국 중부까지 침입해 벌어진 전투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이고!”

     

    습격 이벤트에서 바위족이 당첨되어 한 도시의 시내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중이었다.

     

    무식한 도끼질을 피해 몸을 굴리다 보니 우연히 옷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워어어!!

     

    내가 맛있어 보였는지 한 야만족이 집요하게 쫓아왔다.

     

    다리를 다쳐서 더는 도망가기 힘들어졌고, 이번 도전은 이대로 [야만족 침공] 엔딩을 보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쿵, 쨍그랑!

     

    그런데 이놈이 바닥을 구르는 나를 내버려두고 주변의 거울을 부수기 시작했다.

     

    바위족은 거울에 비친 상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이들이 내 생각보다 더 지능이 낮다고 알게 된 순간이었다.

     

    “라스!”

     

    덕분에 시간을 벌었고, 나를 구하러 와준 용사가 야만족을 쓰러트려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고마워. 항상 신세 지네, 용사님.”

     

    “신세는 내가 지지 뭘. 조금만 더 힘내자!”

     

    얼굴에 검댕이를 잔뜩 묻히고도 기운차게 움직이는 용사님이었다.

     

    뭐, 그 회차도 결국 아셀라에게 예의를 안 지켰다가 죽었던가.

     

    아직 몇 번 도전하지 않았을 때라서 아셀라를 잘 몰랐던 때였다.

    야만족 침공 이벤트는 초반부에 발생하기도 했고.

     

    잘 기억은 안 나네.

     

    “라스?”

     

    그 아셀라가 지금은 내 눈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거울을 이용해서 바위족의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아셀라와 기사들에게 말했다.

     

    “바위족은 거울에 맺힌 상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거울이라, 그럼 저희 군을 전부 거울 뒤에 숨긴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만한 양을 바로 공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2연대장이 턱을 긁적였다.

     

    이 자리에서 아셀라만이 내 말을 바로 이해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간단하네.”

     

     

     

    ***

     

     

     

    “워어어!”

    “우워어!”

     

    중앙 성채 외곽에서 망을 보던 야만족 둘이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방금 발견한 백작가 기사의 시체를 누가 먹을지 다투는 것이었다.

     

    결론을 보지 못한 그들이 별안간 이마를 쾅쾅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약삭빠른 한 명이 시체에 머리를 파묻는다.

     

    “크크크크.”

     

    오랫동안 제국의 국경을 지켜온 전통 담긴 성벽은 그들의 분뇨로 오염된지 오래였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오직 본능에 의해 행동한다.

     

    그야말로 야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종족이다.

     

    그나마 중앙 성채에 남은 이들은 바위족의 엘리트 무리다.

     

    족장이 직접 명령을 내리는 부하들임에도 이런 수준이다.

     

    ―퍼억!

     

    시끄럽게 싸워대던 두 야만족에게 덩치 큰 한 야만족이 다가가 냅다 주먹으로 얼굴을 갈겼다.

     

    머리에 더욱 큰 마물의 뼈를 쓰고 두꺼운 모피를 입었다. 족장의 오른팔이다.

     

    “조용! 족장, 잔다. 너, 여기 지킨다.”

     

    오른팔에게 혼난 둘은 그제야 바닥을 둘러보지만 이미 시체는 약삭빠른 놈이 뜯어먹은 후였다.

     

    그들은 본전도 못 찾고 투덜대며 서쪽 성채로 향하는 다리를 흐리멍텅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그으…”

     

    다리 끝은 안개에 가려 서쪽 성채는 시야에 닿지 않았다.

     

    “그르르?”

     

    도중, 다리 위가 마치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보초는 머리를 긁적여 이를 떼어내고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번쩍!

     

    별안간 다리에서 강한 불빛이 쏘아져 보초의 눈을 강타했다.

     

    “그라악! 그락!”

     

    눈이 따가웠던 보초가 소리를 지르다가 제풀에 지쳐서는 망치로 벽을 내리쳤다.

     

    조금 지나니 일렁이는 움직임이 점점 성채로 다가온다.

     

    때때로 다리에서 산이나 하늘이 보이기도 한다. 그게 뭔지 알 리가 없던 보초들은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콰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화려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라락!!”

    “가락!”

     

    습격을 알게 된 야만족들이 커다란 이빨을 부딪치며 날뛰기 시작했다.

     

    북쪽과 동쪽 다리가 연기가 나며 무너진다.

     

    상황을 확인하려 보초가 성벽 위에서 다리를 향해 뛰어내렸다.

     

    “그라락― 카악!!”

     

    어느새 그의 몸에 검과 창이 꽂힌다.

     

    “전군, 성채로 진입한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함성이 산지에 메아리쳤다.

     

    야만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기사들이 말 그대로 땅바닥에서 갑자기 솟아났기 때문이었다.

     

    “돌격, 돌격!!”

     

    철제 장화가 돌바닥을 뛰는 무수한 화음과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

     

     

     

    “중앙 성채에 진입 시작했습니다.”

     

    기사단장이 아셀라에게 보고했다.

     

    “방패기사의 모든 방패에 거울화 인챈트를 걸다니, 괜찮은 아이디어였어.”

     

    아셀라의 말대로 우리는 방패를 거울로 만들어 방패기사가 머리 위로 들게 해 전군을 전진시켰다.

     

    다리의 양쪽 난간 벽돌 무늬와 성채 벽면을 반사해 바닥처럼 보이게 하는 작전이었다.

     

    급히 만든 작전이라 한두 명이 자세를 흐트러트려 중간중간 하늘이나 산도 보였겠지만, 역시나 바위족은 알아채지 못했다.

     

    빠르게 반대쪽까지 이동한 이들이 폭탄을 설치해 다리를 무너트렸다.

     

    “여기부터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부상자를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요. 중앙 성채에 잔존한 야만족의 수를 생각하면 저희 쪽도 피해가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내가 아셀라에게 의견을 피력했다.

     

    “황녀님, 저희 치유사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하겠습니다만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셀라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는 심호흡을 한 후 대답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마.”

     

    “알겠습니다. 클로에, 황녀님을 부탁해.”

     

    “마, 맡겨주세요…!”

     

    브루노가 기사 몇을 데리고 와 우직하게 내 곁을 지켰다.

     

    “선생님, 호위부대를 편성했습니다. 치유사 분들의 안전은 걱정 마십시오.”

     

    “좋아. 움직이자.”

     

    나는 휴고를 포함한 치유사들을 데리고 중앙 성채 정문을 향해 이동했다.

     

     

     

    정문 앞에서는 성채 안에서 몰려나온 야만족들과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맞붙어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부상자입니다!”

    “이쪽에도!”

     

    아니나 다를까 성채 안에서 피해를 입은 기사가 속속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신성기사는 부상자 발생 즉시 이쪽으로 호송하라! 지역 점령 상황은 보고해서 바로 공유해라!”

     

    대대장이 체계적으로 전장의 세부요소를 지휘한다. 황실 기사단다운 전투 체계였다.

     

    덕분에 큰 부상을 입은 기사들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내 앞까지 실려올 수 있었다.

     

    “진단. 골절. 왈드, 에이다 둘이 맡아. 부분마취 먼저 하고 뼈를 붙여. 진단. 자상. 이건 지금 봉합하는 게 빠르겠어.”

     

    상태가 안 좋은 기사에게는 손목을 걷어붙이고 직접 나서기로 했다.

     

     

    [수술 C가 발동합니다]

     

     

    치유사 조수의 보조를 받아 마취, 소독한 후 바늘을 들었다.

     

    “층계 위다! 주의해라!”

    ―그라라락!!

    “2진, 돌입해라!”

     

    사방에 가득 울리는 전투 소리로 귀가 먹먹해진다. 집중하기에는 딱 좋은 소음이었다.

     

    익숙하게 손을 움직여 상처를 꿰맨다.

     

    환경상 위생 문제로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전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우선 응급처치 수준의 봉합만 해놓고 나중에 경과를 볼 수 있도록 표시한다.

     

    “으윽, 감, 감사합니다….”

     

    “아프면 참지 말고 얘기하고. 뒤로 빠져서 쉬고 있어.”

     

    내게 인사하는 기사에게 대답해주고 치유사들에게 치유주문을 부탁했다.

     

    바로 다음 환자를 진단한다. 내가 진단 스킬을 써서 상태를 파악하는 쪽이 대처법을 즉시 알 수 있기에 효율적이다.

     

    그 도중.

     

    ―휘익, 깡!

     

    브루노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돌도끼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쳐냈다.

     

    어디선가 도탄된 모양이었다.

     

    다시 묵묵히 내 주위를 지키는 브루노.

    덕분에 이어서 환자에 집중할 수 있었다.

     

    “2층, 점령했습니다!”

    “북쪽 망루, 점령 완료했습니다!”

     

    버티고 있으니 점점 희소식이 들려왔다.

     

    진입한 기사들이 훌륭하게 활약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포로는 발견했나?!”

    “아직입니다!”

     

    백작은 아직 못 찾았나.

     

    슬슬 전투도 종반부에 접어들어 밀려오는 부상자의 숫자도 줄어들 때 즈음.

     

    ―콰앙!!

     

    성채 안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뭐가 무너졌어?”

     

    브루노가 상황을 확인해 오더니 내게 알려줬다.

     

    “타냐 단장님이 전투하고 계십니다.”

     

    “단장이?”

     

    “예. 그런데 조금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뭐?”

     

    타냐가 겨우 야만족과 싸우면서 애를 먹을 리가 없는데.

     

    …아니지.

     

    상대가 혹시 바위족 족장이면 아직 소드익스퍼트인 타냐로는 까다로울 수도 있겠다.

     

    마기에 오염되어서 더 강한 상태긴 했어도, 족장은 그 용사도 토벌하는데 고전하곤 했던 강한 적이다.

     

    “브루노, 혹시 타냐가 싸우고 있는 야만족이 덩치가 엄청 커?”

     

    “예. 족히 3미터는 됩니다.”

     

    “머리에 드래곤 두개골 썼어? 자기 키보다 큰 무식한 돌칼 들고 다니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브루노가 성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잠시 후에 나온 그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저는 드래곤 머리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브루노.”

     

    “칼은 컸습니다.”

     

    그렇게 생긴 바위족이 흔하지도 않고.

    족장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거 원.”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유사들, 남은 환자들 치료해 본대로 데려가. 휴고, 자네는 나 따라와.”

     

    “어디로 가십니까?”

     

    “잠깐 우리 호위기사님 좀 도와줘야겠어.”

     

    더 시간을 낭비할 새도 없이 휴고, 브루노와 함께 성채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전투의 열기가 가득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돌덩이가 공중을 날았다.

    성채 안의 중앙 홀이 부숴진 흔적이었다.

     

    “후우.”

     

    타냐는 호흡을 정돈하며 그놈과 대치하고 있었다.

     

    다만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가 한쪽 눈을 적셔 시야를 가리는 걸 보면 그다지 상황은 안 좋아 보였다.

     

    “바위족 족장이 맞아.”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타냐와 족장이 다른 곳에서부터 싸우다가 여기까지 밀려 나왔는지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계단이며 장식이며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족장이 거대한 돌칼을 휘두르니 풍압이 인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순식간에 접근한 놈이 내지른 일격에 타냐가 반격한다.

     

    ―쿠우웅!!

     

    검과 검의 충돌 같지 않은 묵직한 타격음이 울린다.

     

    힘겨루기를 버텨내는 타냐.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결국 밀려난 타냐가 공중을 날아 2층 벽을 부수며 밖으로 날아갔다.

     

    ―부웅!

     

    족장이 거대한 덩치를 날리며 바로 타냐를 쫓아갔다.

     

    “휴고, 쫓아가자.”

     

    “예.”

     

    혼자서는 이기기 힘들겠어.

     

    나 역시 휴고와 함께 계단을 올라 무너져 생긴 구멍으로 뛰어나갔다.

     

    ―휘이잉!

     

    세찬 바람이 나와 휴고를 맞이했다.

     

    탁 트인 야외였다. 성채 외벽에 위치한 상층행 외곽 계단이다.

     

    그렇게 좁지는 않았지만 까딱하면 난간 너머로 추락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지형이었다.

     

    “덩치 큰 놈을 쫓아라!”

    “에워싸서 제압해라!”

     

    몰려든 다른 기사들이 족장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층계 위아래를 오가며 검과 창이 오가는 긴박한 전투가 이어진다.

     

    그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나는 즉시 타냐를 향해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아파 보이는데, 단장.”

     

    “추태를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자네 잘못은 아니야.”

     

    나는 그녀의 피를 닦아주며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아드레날린을 주사했다.

     

    “생각보다 강한 자가 있었습니다.”

     

    “강하긴 하지. 애초에 저놈과 지금 맨몸으로 붙고 있는 단장이 대단한 거야.”

     

    바위족이 야만족을 모두 지배하면 바로 배드엔딩이 뜰 정도니까.

     

    그만큼 위험한 스킬을 가진 족장이다.

     

    “이기게 해줄게. 방법이 있어.”

     

    “어떤 방법입니까?”

     

    “저놈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 주술사야. 금단의 주술로 몸을 강화하고 있어.”

     

    “주술사, 말입니까?”

     

    “그래.”

     

    나는 휴고를 돌아보며 물었다.

     

    “해주할 준비됐어?”

     

    휴고가 내 질문에 즉시 장갑을 벗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람_219님 후원 감사해요!
    네리아는 옅은 회색인 백발, 청록안, 헤어스타일은 조금 설명드리기 힘든데 이즈미 사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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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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