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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괴물서커스를 보러 온 사람 대부분은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신문마다 잡지마다 사진이 실린 데다, 홀의 입구에 마야가 그린 간판까지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금발에 푸른 눈과 조각 같은 얼굴.

       큰 키에 잘 빠진 몸매.

       서글서글한 미소.

         

       이 시대의 사진은 흐릿해서 사람의 생김새를 어렴풋이 파악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초상화는 워낙 성형 사기를 치는 일이 흔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를 직접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한 소문에는 과장이 없다고 했다. 그의 신분을 가지고 빈정대는 사람들조차 그 부분은 인정했다.

         

       그래서 수려한 미남자를 기대하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난데없는 광대의 등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와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다른 서커스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재판 때 그를 옹호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그를 제대로 된 업계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다.

       괴물 서커스는 업계에서 천시당하는 공연이었다.

       불쌍한 사람들을 끌고 쇼를 한다는 것도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데, 거기다 수상쩍은 마술로 약장수 같은 짓을 하며 여인들을 홀리고 다닌다고 하니 사람이 더 하찮게 보였다.

         

       오늘 공연을 보러 온 것도 한껏 비웃고 씹을 거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괴물 서커스 따위 뻔하지 뭐.

       대충 특이하게 생긴 사람 전시하고 말겠지.

       어떤 사람을 내놓아도 절대 놀라지 말아야지.

         

       그래서 그가 자신들에게 ‘충격’을 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멀끔한 얼굴로 헤픈 웃음이나 흘리고 다닐 줄 알았던 그가 고농축 폐기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꼴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아니, 분장뿐만이었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분한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 역시 훌륭하게 해냈다.

         

       그의 캐릭터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첫 번째 괴물이었던 ‘역병 걸린 미라’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인상을 남가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럼 두 번째 괴물을 소개해볼까요?”

         

       그의 진행 방식은 외양과 달리 특별한 점이 없었다.

       그는 평범하게 인사했고, 평범하게 농담을 던졌고, 평범하게 단원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는 어딘가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그는 게임에서 나온 ‘검은 마도사 원더스타인’의 동작과 대사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묘하게 거슬리는 시선 처리에, 어딘가 포인트가 어긋난 웃음, 보는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동작 등.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불쾌감을 주었던 장치가 여기서도 비슷한 효과를 발휘했다.

         

       웃는 남자는 입을 가리는 듯 마는 듯 기괴한 자세로 키득거렸다.

         

       “하하핫, 남자분들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분은 식성이 좀 까다롭거든요. 소개합니다. 괴물 단원 중 유일한 여자, 거미 여인!”

         

       사사삭.

       무언가 기어가는 소리가 천장에서 들렸다.

         

       사람들이 위쪽을 올라봄과 동시에 조명이 모두 꺼졌다.

       보라색 불길이 일렁거렸다. 그 너머로 여러 개의 팔다리를 지닌 존재가 그 실루엣을 드러냈다.

         

       -맛있어 보이는 남자들이 가득한데요? 아, 물론. 여자도 싫진 않아요. 우후후, 씹을 거리도 가끔은 필요하니까요.

         

       유라크네의 목소리는 평소의 덜렁대는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색기를 담고 있었다.

       엘라의 지도에 따라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어스름한 조명이 천장을 밝혔다.

       사람들은 몇 초 사이에 변한 홀 안의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저, 저게 뭐야?”

       “거, 거미집이다…….”

       “으으, 나 이런 건 싫어…….”

         

       하얀 실들이 뒤엉켜 복잡한 무늬를 그리며 천장의 철골 프레임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

       끈적끈적한 점액들이 실을 타고 흘러내렸다.

         

       거미줄 군데군데에는 사람만 한 크기의 고치들이 매달려 있었다.

       고치는 안에 무언가가 바둥거리는 것처럼 요동쳤다.

         

       “지, 진짜 움직이잖아…….”

       “걱정하지마. 부, 분명 소품일 거야.”

       “그, 그래. 환상이거나.”

         

       관객 중 한 명이 그 말을 꺼내기 무섭게 고치 하나가 쩍 갈라지며 안에서 무언가가 철퍼덕 쏟아져 내렸다. 피가 섞여 붉은 기를 도는 녹색의 끈적한 점액질이었다.

         

       괴물 서커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젖은 자리(Wet Seat)’ 항목에 서명했다.

       그것은 관객들을 쇼에 동참시키거나 객석까지 무대로 삼는 서커스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즉, 옷이 더러워질 수도 있으니 감수하라는 뜻이다.

         

       괴물서커스는 특이하게도 ‘관객들이 유발하는 수분’에 대한 항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무서워서 지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었다.

         

       관객들은 아무리 서명을 했다고 해도 저런 정체불명의 액체까지 거리낌 없이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무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질색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이 유발하는 수분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했다.

       무대 위에 쏟아진 점액질 사이에서 무언가가 꿈틀댄 것이다.

         

       “우아악!”

       “저, 저기에!”

       “사, 사람이다!”

         

       피부가 다 녹아내린 해골이 고치 찌꺼기 사이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의 몸에는 군데군데 아직 덜 녹은 살점이 붙어 있었다.

       그는 신음을 내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 살려줘……. 이, 이건 쇼가 아니야……. 저 단장 놈은 진짜 악마…….”

         

       그때, 천장에 늘어진 실들이 요동쳤다.

       위를 올려다본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거미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진짜 거미를 연상케 하는 분장을 하고 있었다. 우중충한 빛을 내는 화장은 사이한 요부의 이미지와 딱 알맞았다.

         

       그녀는 복잡한 그물망 속을 두 개의 다리의 여섯 개의 팔을 써서 기어갔다. 여덟 개의 다리를 써서 움직이는 진짜 거미 같았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거미줄을 타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초조해했다.

       천장에 드리워진 거미줄은 대부분 진짜가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천장을 거미줄로 다 뒤덮을 순 없었다.

         

       대부분 마야가 만들어낸 환상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줄타기용으로 진짜 밧줄이 숨겨져 있었다.

       유라크네가 긴장해서 혹시나 밧줄이 없는 가짜 거미줄을 집지 않을까 걱정됐다.

       다행히 그녀는 조금의 실수도 없이 거미줄을 타고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팟.

       그녀의 손바닥 사이에서 거미줄 하나가 뻗어 나오더니 천장에 붙었다.

       상당한 고난도의 동작이었지만, 그녀에게 준 유령의 ‘마법의 올가미’ 덕분에 쉽게 천장의 중앙부를 휘감을 수 있었다.

         

       그녀는 올가미 밧줄을 쥐고 그대로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다.

       거미줄이 관객들의 머리 위로 우아한 곡선을 그렸다.

         

       무대 근처에 다다른 그녀는 줄이 공중으로 오르며 속도가 0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대로 줄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벽에 착 하고 달라붙었다.

       관객들이 보기에는 거미가 벽에 붙은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벽에 걸친 거미줄 사이에 숨은 밧줄을 붙잡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붙잡고 여덟 개의 다리로 다다다 기어서 내려왔다.

       분명 사람의 형태를 한 것이 엎드려 기어 다니는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관객들은 숨죽이며 그녀의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그녀는 바닥에서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 해골의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으으, 사, 살려……살려 주시오……. 괴물…….”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긴.”

         

       거미 여인은 그녀의 등과 허리에 달린 4개의 팔로 해골의 사지를 붙들었다.

       그리고 남은 두 팔로 그의 목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분질렀다.

         

       콰직.

         

       “커으으으…….”

         

       살점이 주변으로 튀었다.

       해골의 머리통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적막한 홀을 울리는 그 소리는 분명 가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거미 여인은 객석을 둘러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어머, 호호호. 내가 좀 흉한 꼴을 보였네. 반가워요, 맛있어 보이는 인간 여러분.”

         

       여기저기서 바람 빠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정말 안전한 거 맞지?”

       “마, 말했잖아. 괴물들은 단장의 통제에 잘 따른다고…….”

       “어디서 저런 흉측한 것들을 데려왔을까?”

         

       원더스타인은 바닥에 떨어진 해골의 머리통을 흘끗 내려다보며 미소지었다.

       해골의 턱관절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도 웃고 있었다.

         

       그렇게 쇼는 거미 여인 덕분에 고조되기 시작했고, 원더스타인이 죽은 해골에 인간의 껍질을 씌어 되살려 세우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기세를 올렸다. 이어서 공연은 세쌍둥이, 저주받은 페어리를 지나 적혈귀의 등장에서 절정에 달했다.

         

       많은 사람이 젖은 자리에 ‘관객들이 유발한 수분’ 항목이 들어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

       랫맨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더니 시트 몇 곳을 갈았다.

         

         

       ***

         

         

       엘라가 호텔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은 월요일 오후가 되어서였다.

       적어도 일주일은 누워있어야 한다는 의사를 설득하기 위해 그녀는 그 앞에서 재주넘기까지 해 보였다.

         

       “진짜 괜찮다니까요. 보세요.”

       “어엇! 아, 안됩니다! 이, 이런!”

         

       그녀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기더니 허공을 돌았다.

       그녀는 어려운 땅재주를 연이어 선보였다.

         

       외팔 물구나무, 번개 곤두, 자반 뒤집기…….

         

       그녀는 가구 모서리에 부딪힐락 말락 가까운 위치에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점점 더 아슬아슬해졌고, 그에 따라 의사의 비명도 점점 커졌다.

         

       그녀의 병시중을 들던 호텔 직원들은 엘라가 펼치는 유려한 동작들을 넋을 잃고 지켜봤다.

       좁은 실내에서 휙휙 몸을 비틀어 가며 사람과 가구 사이를 절묘하게 피해내는 그녀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좋습니다, 좋아요.”

         

       마침내 의사도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녀가 외출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허락을 내리면서도 의사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외출을 허락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2층에서 공중 낙법을 보여주려는 것을 뜯어말리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지, 정말로 그녀가 건강을 회복했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무대에는 오르지 마십시오.”

       “네네. 알겠습니다!”

         

       엘라가 기운차게 외쳤다.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더니 호텔 직원들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한 엘라는 헉하고 숨을 내쉬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등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몸살로 전신을 가누기 힘든 상태에서 무리해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순식간에 진이 빠져버렸다.

         

       마지막에 2층에서 공중 낙법을 펼치려고 덤빈 것은 의사를 향한 협박에 가까웠다.

       정말로 뛰어내렸다면 중심을 못 잡고 크게 다쳤을 것이다.

         

       엘라는 땀에 젖은 파자마를 벗어 던지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샤워기를 틀어놓고 벽에 이마를 기댔다.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그 인간이 정말로 안 치료해줬네.’

         

       의외였다.

       그라면 바로 자신의 몸에 손을 댈 줄 알았는데.

         

       당연히 그가 자신의 몸을 걱정해서 그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엘라는 알고 있었다.

       그의 친절은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것임을.

         

       평소도 아니고 예선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든 그는 자신을 치료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이면 오늘의 마지막 회차를 시작했을 시간이네.’

         

       엘라는 샤워실의 벽에 등을 기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따뜻한 물이 몸을 데웠다.

         

       피로를 푸는 데 일주일은 걸릴 거라는 의사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대로 기절해서 잠들고 싶었다.

       방금도 무리한 탓에 몸을 가누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단원들이 연습한 대로 잘하고 있는지, 그 인간이 사회자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가봐야 했다.

         

       그가 단장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단장인 자신의 역할이니까.

       그게 계약이니까.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워기를 끄는 순간, 한기가 들이닥쳤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다시 따뜻한 물을 틀고 바닥에 누워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샤워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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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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