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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 * *

       

       

       

       

       

       지금 중국이 늪에 빠진 망아지마냥 허우적거리며 내전에서 피를 흘리면, 오히려 통일은 더 멀어질 거다.

       

       그렇게 힘들게 싸웠는데, 군벌들이 권력을 내려놓을 리 없으니.

       

       

       “어려울 건 없겠죠. 오히려 그렇게 하면 연성 자치에 힘이 붙을 테니까요. 애초에 제 목적은 중국을 갈라두는데, 있습니다. 이렇게 내전에서 시간을 끄는 것 자체가 후일 중국이 하나로 묶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죠.”

       “분명 갈라둔다고는 하셨습니다만. 군벌 상태에서 갈라둔다는 것이었습니까?”

       “그래야 서로 영원토록 서로 견제하지 않겠습니까? 나중 가서 권력을 쥔 천중밍이 이놈 저놈에게 여긴 네가, 여긴 네가 하면서 연성 자치를 시키고 기어이 훗날 합중국으로 거듭나면 어쩌려고요?”

       

       

       천중밍이 실제 역사에서 그리 처참하게 밀려서 그렇지. 만일 그자가 중국을 쥐게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

       

       정말 예상 외로 갑자기 당태종이나 명나라 영락제가 빙의해서 연성 자치에서 대드는 놈들 싹 다 군대로 짓밟고 베트남 조지고, 제후국인 조선을 되찾겠다 이러면서 나대는 미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물론 어디까지나 개소리이긴 하지만.

       

       빙의 급으로 천중밍이 갑자기 각성할 수도 있는 일이다.

       

       연성 자치인 중국이 어떤 나라가 될지는 모르지만, 뼛속 깊이 새겨진 그 중화주의는 버릴 수 없거든.

       

       당장 중공만 해도 매번 그 지랄이었잖아.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 혹시 중국에 관해서 보신 것이 있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 신이 말입니다. 그래도 폐하께서는 성녀기도 하시니, 중국이 악의 축이 된다. 그런 걸 보셨다는 뜻이 아닙니까?”

       

       

       성녀인 당신이 중국을 그리 찢어 놓으려는 이유가 중국이 악당이 되어서냐.

       

       지금 요약하면 그런 뜻인데.

       

       

       “총리께서는 그것을 믿으신다는 말씀입니까?”

       

       

       대체 두마에서는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나 정말 이거 입헌군주제 황제가 맞는 건가?

       

       

       “개인적으로는. 정말 개인적으로는 말입니다. 힘을 가진 중국은 패권주의를 보일 겁니다. 그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산업화를 하고 여유가 생기면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주변국에 힘을 과시하려 할 겁니다. 백군부에도 말해둔 거지만, 중국은 방심해서는 안 되는 나라에요.”

       

       

       외교부도 항상 그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로켓인 게 확실해지자, 러시아도 중공에 의존하는 처지가 되었었으니까.

       

       그 이후에는 대만 침공이 본격화되고 핵전쟁으로 번진 거지만.

       

       

       “그렇군요. 하지만 천중밍은 폐하께서 선택하신 자인 만큼. 뭔가 있는 인물이 아닙니까?”

       “실제로 뜻대로 다 되어가지 않습니까?”

       “으음. 하지만. 이게 영 음.”

       

       

       그래. 말하지 못하는 그런 게 있지.

       

       왜 뭔가 그런 거. 찝찝한 게 있다 그런 거다. 저렇게 내버려 둬서 러시아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거 말이다.

       

       아니, 잠깐만. 지금 이 사람들 설마?

       

       어지간하면 그냥 넘겨보려고 하는데, 이 사람들 그냥 내 말만 믿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다가 이제 와 불안해졌다 이건가.

       

       아니.

       

       좀 길을 잡아줬으면 그건 두마에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천중밍을 내 신도로 만들어 해결해 줬으면 그 정도는 알아서 좀 하지.

       

       여기서 내가 가만히 있으면, 차리나는 자기가 일 벌여 놓고 두마에게만 나 몰라라 떠넘겼다! 이럴 수도 있잖아.

       

       어휴. 그건 좀 그래.

       

       그러니까. 최대한 밝게, 정말 얼굴마담 차리나로서의 역할은 다 해주겠다.

       

       두마가 제대로 바로 설 때까지만이라도 말이지.

       

       내가 이래 보여도 책임은 확실히 지는 편이라고.

       

       그러고 보니 지금 일본도 북양 정부에 열심히 무기를 팔고 있다고 했지.

       

       

       “하지만, 두마의 걱정도 이해는 갑니다.”

       “그렇다면.”

       

       

       총리의 얼굴이 환해지고 있다.

       

       흠, 그럼 가능성은 하나겠지.

       

       연성 자치와 전쟁도 끝낼 좋은 방법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도 제가 지원하는 파벌이 그 모양이면 좀 그렇겠죠. 직접 중재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일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일본도 북양정부의 돤치루이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내전이 심화하면 다른 열강도 개입할 수도 있고요.”

       

       

       제 아무리 중국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고 해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면 그렇지 않냐.

       

       러시아와 일본이 무기만 내다 팔고 있다. 딱 군침 싹 한번 다시지 않을까?

       

       중국 따먹어서 국내 불만을 해결하려 할지도 모르고.

       

       

       “일본이랑 적당히 협상을 해야겠죠. 아마 일본도 마냥 거부하지는 못할 겁니다. 다른 열강이 개입하는 것보단 차라리 러시아와 중국 이권을 챙기고 싶을 테니까요.”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 호법 정부가 조금씩 유리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겠죠?”

       “예. 분명 이대로 있으면 승리는 하겠습니다만.”

       “그럼, 지금 끊어버리고 이참에 연성 자치로 한번 해봐야죠.”

       “천중밍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천중밍이 안 받아들이면 어쩔 건가.

       

       어차피 쑨원 갈 날이 머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전쟁에서 호법정부를 우위로 두고 너무 애매하게 끝내버리고, 그 책임을 쑨원에게 넘기면 되겠지.

       

       그렇게 모호하게 끝내고 적당 수준에서 군벌들과 협의해 연성자치를 이루게 하면 되는 거다.

       

       낮은 단계의 연성 자치.

       

       

       “작은 단계에서 연성 자치로 가는 방안을 해보는 거죠. 일본도 나쁘게 보지만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일본 쪽이 더 반길 거다.

       

       호법정부가 중국을 다 집어삼키면 뭐 나중에 반일 정부라서 조지기 쉬운 명분 만들기 쉽다고 해도. 어쨌든 통일된 중국과 싸워야 할 테니까.

       

       일본으로서도 지금 적당히 내부에서 분열의 싹이 튼 중국이 더 나을 거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내부분열을 주도하면서 중국을 정벌할 테니까.

       

       그리고 이것은 일단 표면상의 연성자치를 이루고 싶은 천중밍에게도 나쁜 건 아닐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쪽에서 한번 어떻게 해보죠. 천중밍에게는 친서를 보내겠습니다. 총리께서는 외교부에 전해서 일본에게 중재해보자는 말을 해보죠,”

       

       

       단독으로 중국에 중재하는 것은 일본이 괜히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아시아 관련해서는 일본과 계속하는 것이 맞지.

       

       이런 일 하나하나 자기들과 상의한다는 걸 알게 되면 일본 놈들은 둘 중 하나다.

       

       러시아가 생각보다 약해서 자기들에게 저자세로 군다.

       

       러시아가 우호 관계가 되었으니 함께 중국을 따먹자. 던가.

       

       개인적으로 나는 후자를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간 내가 저쪽에 신경 써준 게 많으니 말이지.

       

       

       “예. 폐하.”

       

       

       자, 그럼,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 * *

       

       

       호법 정부

       

       

       아나스타샤의 친서는 호법 정부를 돕고 있는 러시아 백군 군사고문단을 통해 천중밍에게 전해졌다.

       

       

       “차리나께서 친서를 보내셨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오로지 천중밍 사령관만이 보라 하셨소.”

       

       

       백군 군사고문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읽은 천중밍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 중재할 테니 받아들이라는 내용이니까.

       

       물론 그 속내가 편지에 다 담겨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것이 정녕 차리나의 뜻입니까?”

       “그 편지의 내용을 내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본국에서 내려온 훈령대로라면, 이대로 가면 열강들이 개입할 수 있으니, 차라리 지금 승기를 잡은 상태에서 중재하고. 천중밍 사령관이 쑨원의 자리를 탈취할 수 있게 도우라 하셨소.”

       

       

       열강의 개입.

       

       확실히 영국과 프랑스 같은 놈들이 중국이 지금 피를 흘리고 있을 때를 놓칠 리 없다.

       

       같은 유럽국가인 러시아의 차리나가 이를 모를 리 없을 터.

       

       

       “으으음.”

       “명분은 우리가 다 갖춰줄 것이니, 사령관께서는 쑨원 그자를 설득하기만 하면 되오. 듣자하니, 요즘 건강도 안 좋다던데?”

       

       

       차리나의 말이 틀린 건 어느 하나 없다.

       

       애초에 이 전쟁이 끝나면 결국 쑨원은 끌어내려 지게 되어있고, 그다음은 후계자 다툼이 있을 터.

       

       그 다음은 무엇이겠는가?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연성 자치에 찬성할 인물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지금 단계에서 중재로 애매모호하게 끝을 내고, 쑨원에게 책임을 씌운 뒤, 다른 군벌들과 협상해서 각자 지역을 개발시켜 나가자고. 하는 것. 이게 답일 것이다.

       

       천중밍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일단 쑨원을 설득해야겠지.

       

       

       * * *

       

       

       일본 제국

       

       

       러시아 대사를 통해 러시아의 중국 중재안을 받은 일본에서도 말은 많았다.

       

       총리 하라 다카시는 내각은 내각을 소집해서 중국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

       

       

       “흠, 중국 내전을 중재하자. 무슨 의미로 말입니까?”

       “아무래도 내전이 심화하면 이권을 챙기기도 힘들어서 아니겠습니까?”

       

       

       중동철도도 있고, 러시아 자국 내 정비도 있는데. 러시아가 중국 내 이권을 뭘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굳이 따지면 내전을 더 벌이게 하면서 무기를 파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야 솔직히 돤치루이가 이기는 것이 좋을 텐데요.”

       

       

       일단 형식적으로는 친일인 북양정부가 이기는 것이 일본에게는 좋았다.

       

       돤치루이는 어쨌든 북양정부의 실권자였으니까.

       

       물론 이것도 오월동주나 마찬가지다.

       

       일본은 돤치루이가 호법정부가 있어 자신들과 협력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더욱이 지금의 돤치루이가 얼마 가지 못할 거라는 것도.

       

       당장 지금만 해도 호법 정부를 따라 반발하는 군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지금 일본이 중국에서 얻는 이익은 각종 무기 지원을 해주는 것뿐.

       

       생각 같으면 직접 군대를 보내 개입하고 싶었지만, 당장 대지진의 피해도 복구하고 조선반도에 군대를 주둔하면서 만철까지 신경 쓰니 중국 개입이 힘들어졌다.

       

       그나마 만철에 파견된 무타구치 렌야가 제대로 만철의 치안을 맡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할 만하지만.

       

       슬슬 돤치루이를 어떻게 하긴 해야 한다.

       

       

       “북양정부의 돤치루이도 호법정부만 해결되면 등을 돌릴 놈들입니다. 지금은 실리를 취할 때죠.”

       “애초에 중재안이 갑자기 오다니. 무슨 의미로 하자는 겁니까? 호법정부가 이대로 이기면 러시아에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일본이 볼 때도 호법정부의 군대가 서서히 북양정부를 밀어내고 있었다.

       

       애초에 북양정부는 지금 일본에게 나라를 판 한간소리를 듣고 있으니, 점점 내전이 오래 갈수록 북양정부가 알아서 밀릴 거다.

       

       그럼 차라리 이쯤에서 발을 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러시아가 중국 문제로 함께 하자는 것은 일본으로서는 중국에서의 영향력을 나름 인정받는다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일단은 다른 열강이 올 가능성 때문이라던데.”

       “황국을 생각해주는 거 아니겠소?”

       

       

       일부 친러파 관료들은 황국을 생각해주는 거라 좋아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받은 도움이 있어서 그 둘이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면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대로 있으면 돤치루이가 먼저 영국과 프랑스에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쪽도 중재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러시아 쪽에서 이렇게 나오면 저희도 뭐 편승하는 것이 맞겠죠.”

       “음, 그래도 러시아에게 너무 양보하는 거 같은데.”

       “우리로서는 밑질 것은 없소.”

       

       

       밑질 것은 없다.

       

       일본은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 러시아와 같은 시기에 북양정부와 호법정부에 특사를 파견했다.

       

       한편, 호법정부의 임시 총통 쑨원은 러시아와 일본의 중재를 받고 대노하였다.

       

       그는 그 소식을 전한 천중밍을 노려보면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말도 안 돼. 여기서 끝내자고?”

       “그래도 돤치루이가 물러나게 했으니 된 것이 아닙니까?”

       

       

       중재안에서 돤치루이를 반드시 끌어내리는데 동의하겠다.

       

        그러지 않으면 군사적 개입을 하겠다라는 러시아와 일본의 확답까지 얻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중국의 평화는, 이 불안하게 봉합될 상처는. 전부 러시아나 일본 같은 식민제국의 힘에 달려있다는 의미였다.

       

       쑨원은 그게 싫어서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러시아의 말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에서 개입하려 했다고 합니다.”

       

       

       천중밍이 작게, 쑨원만 들리도록 조심스럽게 한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잖은가.”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 나온다는 부분에서 동요할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쑨원은 생각을 바꿔야 했다.

       

       확실히 그럴지도.

       

       더군다나 러시아와 일본이 중국을 쥐락펴락하겠다는데, 다른 국가가 가만히 있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나스타샤가 굴린 스노우볼로 중국의 역사도 꽤 바뀌었습니다.
    원래 이 시기에 북양정부의 패권을 두고 직예파와 봉천파가 싸우는 직봉전쟁이 있어야 하지만 이조차 스킵되고 호법전쟁이 길게 이어졌으니까요.
    작가가 성인물은 좀 써봐서 그런지 벨카드립이 나올 때 기분이 미묘합니다.
    +
    외전 관련해서 할 말이 있었는데 또 까먹었네요;;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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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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