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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그만 떠나시죠 아가씨. 여기 남아있다간 저희 역시 위험합니다.”

        “아뇨, 이걸로 끝이어요. 마탑도, 홀크로프트도.”

       

        마리엘은 무너지는 계단을 바라보며 노트를 덮었다.

        마탑이 서서히 기울자 그녀의 몸도 뒤따라 휘청였다.

        더글라스는 다급히 마리엘을 부축했다.

        새하얗게 질린 머리칼과 메마른 입술, 그리고 미약해져가는 고동은 본인의 말처럼 홀크로프트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케했다.

       

        “아가씨, 이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신비를 과용한 대가여요. 이게 제 한계인 거겠죠.”

       

        수 차례 시간을 되돌린 결과였다.

        주로 갤러리에서 념글을 확인해 강탈하는데 사용되었고, 덕분에 10억포인트라는 거금을 모을 수 있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복수에 눈이 멀어 홀크로프트의 긍지를 저버리고 말았다.

        정보부로부터 도망친 순간부터 이런 최후는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탑이 무너지면 4황자도, 그를 따르던 세력도 모두 사토에 파묻히겠죠.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안 됩니다! 이런 곳에서 포기하셔서는……!”

        “솔직히, 마탑 생활은 최악이었어요. 당신들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눈을 감는 순간까지 마리엘의 표정에는 회한과 후회만이 가득했다.

        서서히 식어가는 주군의 손을 붙잡으며 더글라스는 그저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하룻밤의 질 나쁜 꿈이기를.

       

        무너진 천장이 자신들을 덮치기 전에 운명이 바뀌기를 하염없이 바랐다.

       

       

       

        *

       

        “정보부장님, 행정부로부터 긴급한 연락입니다!”

        “마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무슨 소릴! 코앞까지 와서 적을 놓치겠다는 건가!?”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주둔지로 연달아 비보가 날아들었다.

        회백색 하늘은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것처럼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 수습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하고 말고.

        6일째 되는 날 마탑이 무너지는 것쯤이야 시련에 몸을 날릴 때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 트리거가 마리엘이 내가 만든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해야 하는 일에는 변함이 없었다.

       

        ====

        흑발미소녀팬클럽회장

        [시엔쟝복사뼈핥는사진 인증]

       

        (사진)

       

        념글가게 개추점

       

        — 떴냐!!!

        — 오

        — 너 이 자식 또 개추라고

        — 이번만입니다…….

        — 네가 뭔데 정보부장 복사뼈를 핥아……?

        — 진짜였네 ㅋㅋㅋㅋ 컨셉도 이 정도면 병이다

        — 흠, 사진이 너무 흔들리는데 누구 복사뼈인지 모르는 거 아닌가?

         ㄴ 저걸 못 알아본다고? 너 패션 시엔당이지

        — 응 어차피 마탑 망했어~ 비추 누를 거야~ 어차피 마탑 망했어~ 비추 누를 거야~  어차피 마탑 망했어~ 비추 누를 거야~ 어차피 마탑 망했어~ 비추 누를 거야~

         ㄴ 도배충 컷!

        ====

       

        모든 마법사가 패닉에 빠진 와중 나는 약속대로 인증샷을 올려 념글을 보냈다.

        팬클럽 회장의 권한을 이용해 마지막 댓글을 쓴 도배충 하나를 쳐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 마탑이 무너진다 해도 하나의 분탕을 차단하는 것이 주딱의 의무였다.

       

        ‘어차피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기감에 따르면 남은 사탕은 딱 하나였다.

        위치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메릴린이 지금부터 천천히 걸어가도 닿기에는 충분한 거리.

        즉, 시간상으론 마탑이 부서지는 것보다 세계선이 삭제되는 쪽이 먼저였다.

       

        “야! 너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마법사 위치 토해내!”

        “발바닥 한 번만 더 보여주시면…….”

        “이익! 지금이 장난할 때인줄 알아!?”

        “악, 좋아요……!”

       

        대의를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도 필요하기 마련.

        마음이 급해진 시엔의 발자국을 몸에 아로새기면서도 끝끝내 메릴린의 위치를 불지 않았다.

        100층을 통과한 마법사 치고는 다소 무력한 모습이지만 어디까지나 시련을 강제로 뚫고 오며 상당한 대가를 치렀기에 가능한 일.

        그마저도 아직 여력이 남아 있는지 시엔은 내게서 발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쯧, 이건 싸움을 대비해 아껴 두려고 했는데…….”

       

        품에서 꺼낸 것은 금빛을 띄는 영석(靈石).

        마법제 때 3등을 했던 나 역시 프리나를 통해 받은 적 있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마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제를 갖고 무슨 짓을 하려나 싶었던 나는 이내 시엔이 읊조리는 말을 듣고 곧장 십자가에서 내려오기 위해 발버둥쳤다.

       

        천칭에 바친다-.

       

        점성학파의 신비를 통해 메릴린의 위치를 알아내려 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이름, 성별, 소속 등 모든 것이 가짜이기에 대가가 만만치 않겠지만 상등품의 영석이라면 차고 넘칠 노릇.

        어떻게 해서든 시엔을 막아야 했다.

       

        “앗, 방금 생각 났습니다! 지금 서쪽 방향으로 칠백 미터만 가면 고목나무 한 그루가 나옵니다!”

        “네 말은 더 이상 안 믿어. 이제 와서 보면 그 마법사 놈이랑 한 패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야.”

        “그런 심한 말씀을! 전혀 아닙니다, 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시엔 님의 발이라도 핥겠습니다!”

        “그건 단순히 네가 핥고 싶은 거잖아!!”

       

        기어이 천칭에 영석을 올리며 메릴린의 위치를 확인하는 시엔.

        그 타이밍에 맞춰 구속을 푼 나는 십자가에 꽂혀 있던 창으로 손을 뻗었다.

        최악의 경우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이곳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을 상대로 시간벌기를 감행할 생각이었다.

       

        파직!

       

        그러나 마침내 창을 뽑았을 때, 내가 꿰뚫어야 하는 표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번갯불 하나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감과 동시에 캠프에 남아있던 추격조가 모조리 기절해 버렸으니까.

       

        “큰일 났습니다 정보부장님. 밖에서 엄청난 마력이…… 커억!”

       

        다급히 달려온 콜튼의 사지가 마치 마비된 것처럼 한 차례 부들대더니 이윽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윽고 쓰러진 그의 로브를 밟고 한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넓다란 챙을 한 낡은 고깔모자에 양갈래로 묶은 금발머리.

        한손에는 사탕을, 다른 한손에는 예식용 장검을 쥔 다소 특이한 조합.

       

        “이제야 좀 해볼만 하겠네. 오래 기다렸지?”

       

        뇌명의 주인이자 태초의 칠현자 중 하나였던 메릴린 다프네스.

        그녀가 나와 시엔 사이에 살살이를 던지며 나타난 것이었다.

       

       

       

        *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너구나, 마탑을 멸망시키려는 마법사가.”

        “멸망? 난 그딴 건 모르겠고.”

       

        메릴린은 전투적인 미소를 띠며 사탕을 이빨로 깨부쉈다.

        그것만으로 조금 전보다 한층 더 강한 마력이 공간 전체를 점유했다.

       

        아직 기감에는 찾지 않은 사탕이 하나 남아 있는데 왜 여기로 온 거지?

        계획이 틀어진 것에 의아함을 품던 나는 메릴린과 시선을 마주치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소중한 것이 망가지는 걸 두고볼 수 없을 뿐이야.”

        “예?”

        “네가 고초를 겪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미안해, 너무 늦게 와서.”

        “…….”

       

        애써 담담한 척 하려는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였다.

        십자가에 묶인 채 추격조에 의해 끌려다니고 시엔의 발을 싹싹 핥던 모습을 보고 크나큰 오해를 한 듯했다.

        대적할 수준이 되자 뒤늦게라도 구하러 와준 건 고맙지만, 차라리 그럴 바엔 아예 사탕을 다 모아서 이곳을 나가게 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메릴린은 마치 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모자를 고쳐썼다.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과거의 오명과 굴욕은 절대 잊혀지지 않고 네 안에 남아 끊임없이 너를 괴롭히리란 것을.”

        “괴롭혀요?”

        “만약 이대로 모든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더는 수정할 수 없는 끔찍한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게 될 거야. 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한 네게 나와 같은 전철을 밟게 할 수는…… 절대로 없어.”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니까 제발 그러지 마!

       

        30층의 시련에 있는 동안은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매일이 꿈만 같았다.

        주딱이라는 왕관을 잠시 내려놓고 갤질을 마음껏 했으며 삼시세끼 따뜻한 수프를 제공받았고 시엔의 발바닥 주름 모양까지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다.

        허나 갈 때 가더라도 추격조를 완전히 쓸어버릴 생각인 메릴린에게 내 설득은 먹히지 않았다.

        시엔 역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뽑아들며 약관을 읊었다.

       

        “여기서 너를 해치워서 탑이 무너지는 걸 막겠어.”

        “해보시지? 두 개의 신비가 특이하긴 하지만 너만의 전유물은 아니야, 그년도 제법 많이 썼으니까.”

       

        숨 쉬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충돌에서 살짝 빗겨난 나는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닥에 꽂혀있던 살살이를 조심스레 집어들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 주ㄷ닥!!!

        — 악ㅁㅏ!! 인류으ㅣ 적!!! 죽ㅇㅓ!!! 당장!!!

        “그래그래, 나도 반가워 서로 하고싶은 말이 많겠지만 우리 일단 밖으로 나갈까?”

       

        메릴린이 고장난 부분을 고쳐줬는지 속사포같은 메시지가 쏟아졌지만 당장 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텐트 밖에서는 부서진 마탑의 잔해들이 하늘 위의 구름을 뚫고 서서히 낙하하고 있었다.

       

        전지의 비석에 적었던 대로 마탑이 무너지는 건 좋지만 이대로라면 내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로 세계선이 고정되고 말겠지.

        아니 그전에 마탑에 깔려 죽고 말 테니 빠르게 나머지 사탕 하나를 찾아야 했다.

       

        쾅, 콰앙!!

       

        기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하던 도중 수 차례 굉음이 들려왔다.

        8위계에 달하는 고위 마법사들의 싸움에 근처의 지형이 완전히 붕괴되고 있었다.

        하늘은 갈라지고 땅은 무너져 마치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살살아, 내가 그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 살?

        “아무래도 세상에 너랑 나 둘밖에 안남으면 완장은 네가 하는 편이 좋겠다. 난 기껏해야 20시간밖에 분탕 못 치는데 넌 잠도 안 자고 하루종일 갤질할 수 있잖아.”

        — 살ㄹㅕ줘…….

       

        구름에 닿을 듯한 산꼭대기에는 말라 비틀어진 고목나무가 한 그루 세워져 있었다.

        마지막 기감은 틀림없이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나 나무 안에 있는 사탕을 다시 캠프로 가져가 시엔과 싸우는 메릴린에게 넘겨주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잠깐, 이거 그냥 부숴도 되는 거 아닌가?’

       

       

       30층의 시련은 메릴린이 남긴 마력의 정수로 유지되는 공간.

       그렇다면 굳이 그녀에게 넘겨주지 않아도 세계선을 부수는 건 가능할 터였다.

       

        나는 시험삼아 손에 든 창에 기감을 실어 그것을 그대로 나무에 찔러넣어 보았다.

        필멸의 묘리가 담긴 창이 나무를 꿰뚫자,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만우절이네요!
    기념으로 표지를 바꿔봤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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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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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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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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