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모시는 신당이란 무당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다.
항상 정성을 다해 가꾸어야 하며, 삿된 마음이 아닌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 바탕 신당을 청소하고 나온 나는 끓어오르는 혈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와글 와글 –
웅성웅성 –
“확실하오, 이것은 마법이 잘못되어 일어난 현상이 아니오.”
“역시!”
“이곳에 보시면 교지의 겉면에 있는 룬어들이 멀쩡한 것이 보일 것이오.”
자작이 서 있던 곳.
그곳의 주변으로 긴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울타리 밖으로 마법사들이 줄을 서 있었고 말이다.
무려 열 명씩이나.
“이번의 사건 또한 마법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임을 밝히는 바요.”
“놀랍군.”
“이곳엔 저런 일들이 가득하단 말일세.”
웅성웅성 –
무슨 성지순례라도 온것처럼 어디선가 마법사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죄다 가슴의 큰 마나를 가진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목상인가 보군.”
“장군이들이라고 하네. 운디네의 물만 먹지.”
“이번에는 저것을 조사해보도록 하지.”
우르르 –
“….”
진지하게 다 쫓아내 버리고 싶었다.
좀 쉬려나 했더니 마당이 이렇게 북적거려서야 뭘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마법사들 뿐이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 …..
– …..
“야 대가리.”
– …?
“얘네 다 뭐냐?”
잡귀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었다.
마당이 마치 잡귀들의 시장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를 봐도 잡귀, 저기를 봐도 잡귀.
“저기는 또 왜 저래? 기사출신 잡귀야?”
한쪽에서 일렬로 머리를 박고 있는 잡귀들.
그 앞에 묘지의 어르신들이 쪼그려 앉아서 팔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한번기사는 죽어서도 기사. 뭐 그런 거야?”
웅성웅성 –
스으으윽 –
장난이 아니라 영혼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신당 근처에 음기가 잔뜩 끼어 있었다.
이렇게 음기가 잔뜩 낀 곳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멀쩡한 사람이 헛것을 본다던가.
흔히 말하는 귀신이 나오는 폐가 같은 느낌이 바로 이곳일 것이다.
순간, 허공으로 파이어볼이 떠올랐다.
“아까부터 어깨를 건드린 마법사가 누구요?”
“….?”
“중요한 연구중에 마법사를 건드리다니, 상도덕도 없소?”
“이런 중요한 현장에서 마법이라니, 현장이 훼손되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절로 한숨이 우러나오는 광경이다.
개판이 이런 개판이 있을까.
클로셀 영감에게 부탁해서 다 쫓아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당사자 부터가 저기 끼어 있는데 가능할 리가 없었다.
“저번에 물 주던 그 친구들도 데려오시게.”
“마탑으로 통신을 걸겠습니다.”
“어디까지 크는지 보고 싶군.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때까지 쥐어짜게.”
정령사가 무슨 걸레도 아니고 쥐어짜긴 뭘 쥐어짠다는 말인가.
영감님의 말에 의하면 내가 받기로 한 작위는 자작이라고 했다.
무려 자작.
수여되기로 한 영지는 없지만, 아마 전투가 있었던 북부의 마을 중 하나를 받을 거라 했던가.
이제는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남의 영업장에서 뭘 하는 거야 도대체.”
“크리스님!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넌 또 뭔데?”
알루어드의 차림새가 요상해졌다.
항상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던 은빛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허름한 사제복을 입고 있는 알루어드.
조금 더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함이라나?
“루나님의 교육을 위해 근처에 신전을 건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무당집 옆에 신전을 짓는다고?
“절대 안 돼.”
“…예?”
“남의 장사 다 망칠 일 있어?”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또 다시 피가 끓어 올랐다.
신당 옆에 신전이라니?
“짓기만 해 봐. 아주 그냥 불 질러 버리려니까.”
“크리스님…?”
“아주 눈부시고, 춥고 난리네 난리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라나고 했던가.
도저히 이 시장바닥을 보기가 싫었던 나는 마을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볼일도 있었고.
“루나야? 이제 방울 줄래?”
츄읍 –
“아우…?”
사탕이라도 되는 듯이 방울을 먹고 있는 루나.
귀여운 와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까득 –
츄읍 –
까드득 –
“….?”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
“설마?”
루나에게서 방울을 빼앗아 든 나는 포데기를 풀어서 루나를 앞으로 돌렸다.
“아우우! 아우! 바우!”
작은 입술을 손으로 살짝 벌린 나는 놀라운 걸 목격하고 말았다.
“벌써 이가 난다고?”
“이, 이럴 수가! 루나님께 이빨이…! 당장 교단에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꺄르륵!”
작은 잇몸 밖으로 조그만 이빨이 자라고 있었다.
“…성녀라서 성장이 빠른가?”
“저기 업혀 있는 아이가 성녀시라는군. 벌써 이가 난다는 말인가?”
“지금 성녀가 문제인가? 이 목상이 자란다니까 그러네. 아기는 원래 자라는게 맞네.”
아무래도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는 게 루나의 교육에 더 좋지 싶었다.
“루나야, 저런 사람들은 보고 배우면 안 돼. 이상한 사람들이야.”
“꺄륵.”
다시 포데기를 두른 나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간만에 걸어보는 집 앞이랄까.
세레나도 꽃을 심겠다며 어디론가 가 버렸으니,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한적한 시간이었다.
“아우우!”
“신당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러 갈 거야.”
슬슬 제대로 된 물건들을 좀 마련해야 했다.
지금 신당에 있는 물건이라고 해 봐야 싸구려 그릇과 초.
그리고 작두로 쓰던 롱 소드 하나와 성검이 고작이었으니까 말이다.
“백작 저택 근처라고 했는데…”
제사용 그릇을 만들기 위해 클로셀 영감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실력 좋은 대장장이를 소개해 달라고.
그런데 덜컥 소개해준 대장장이가 상상 이상의 인물이었다.
“드워프가 만든 제기들이라…”
아스테르 영지는 마법으로 이름을 날리는 곳.
아티팩트 제작을 위해 데리고 온 드워프라고 했던가.
영감님들과 친한 사이라고도 했으니, 훌륭한 물건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릇들이랑, 촛대랑, 쓰읍…”
“자우!”
“작두는 이미 좋은 게 있어서 필요 없어.”
“바우!”
“방울도 똑같아.”
아무래도 그냥 아는 단어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루나 먹을 까까도 구해 보자.”
“까?”
스멀스멀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북적거리는 마을이 보였다.
여기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조만간 돗자리 한번 펴야겠네.”
음기가 강한 곳에 있다가 사람이 많은 곳에 오니 따듯했다.
밝은 기운들이 넘실거리는 것이다.
신당이 묘지에서 내려오는 음기를 막아준 덕분에 아주 편안한 광경이었다.
“아니? 자네는!”
“음?”
“저번에 그 점쟁이 아닌가? 요즘에 통 안 보인다 했더니.”
나무꾼 아저씨 였던가?
점을 두어 번 정도 봐줬었던 것 같다.
“안보였던 이유가 있었구만! 축하하네!”
“예?”
“아빠가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
힘을 내라는 듯이 어깨를 두드려 주는 아저씨.
루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빠!”
“아기가 아주 똑똑하군. 부럽네, 부러워. 나도 딸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군.”
“저기…”
“나는 아들밖에 없단 말이지.”
“그게 아니라…”
아까부터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강한 직감.
공수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원하던 딸이 곧 생길것이라는 걸.
“아저씨한테 딸이 찾아온 것 같은데요?”
아저씨에게서 얼빠진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허어?”
“빨리 가서 확인해 보세요. 딸 맞는 거 같은데?”
시시각각 변하는 아저씨의 표정.
찌푸려졌다가 펴졌다 하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자네 말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겠군! 당장 가 봐야겠어.”
달려가려던 아저씨가 멈춰 섰다.
“참, 복채라는 것을 줘야 하지 않는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점을 봐준 것도 아니고, 몸주신의 공수도 아니었다.
애초에 느낌이 받지 않아도 되는 복채다.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경사네 경사야. 우리도 저분 처럼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곧 찾아오지 않겠소?”
옆을 지나가던 부부.
여관을 운영하던 부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어라?”
아주머니의 뱃속에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힘차게 뛰는 생명력.
강인한 기질.
“아들이네?”
“음?”
“저를 보고 그러신 건가요?”
보아하니, 생명이 자리 잡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충분히 모를 만한 시기라는 것.
“혹시, 아는 신관 있나요?”
“네?”
“얼른 찾아가 보세요. 아드님이 찾아오신 것 같은데…?”
“….네?”
곧 부부의 표정 역시 나무꾼 아저씨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요상한 표정을 짓다가 세상을 다 얻은 듯 밝게 웃는 얼굴로.
신관들 보다 더 눈부신 미소였다.
“원하시던데로 딸은 아니고, 아들인 것 같아요. 기운이 강직한 게 튼튼하게 자라겠어요.”
“허억…!”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어떻겠어요!”
신이 난 부부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아마, 내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러 가는 것이리라.
“근처에 신관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얼마 안 가 아기를 가진 징후들이 나타나겠지만, 그전에 확인하려면 신관이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신기한 일이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두 번이나…”
고개를 든 나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
눈앞을 지나가는 젊은 여자의 배에도 생명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가니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금술 좋게 붙어 다니는 부부들.
함께 일하고 있는 부부들.
함께 미소를 짓고 있는 부부들에게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지난번 보다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설마?”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그걸 모를리도 없는 사람이고 말이다.
“신명이 무거운 이유가 있었네.”
입에 다 담기도 전에 피를 토했다.
확실히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보면 그럴 만 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제일 필요한 세상이라는 건가…”
전쟁으로 대륙의 반이 황폐화 되었던 곳.
많은 생명이 사그라진 세상.
“크게 삼신상을 차려야겠네.”
“꺄르륵!”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