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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1.

       

       “너, 지금 내가 피 못 빨게 했다고 괜히 화제 돌리는 거지.”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르웬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고양이가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리는 걸 직관하는 게, 나름 진귀하다면 진귀한 경험이기는 했는데…….

       

       “엘레나가 그런 얘기는 안 했었는데. 아, 비슷한 얘기를 하긴 했었다. 슬슬 폐하가 돌아가실 때가 되기는 했다고. 길어봤자 한두 달 정도라고 했었는데.”

       “인간의 기억력은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되느니라.”

       

       앞발을 할짝거리면서 대꾸한 아르웬이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두 달이 아니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겠구나.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느니라.”

       “갑자기 뭔가 시간 제한이 되게 촉박하게 걸린 느낌이네…….”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느니라. 뭐, 나야 인간 제국의 황제가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은 없다마는.”

       

       중얼거린 아르웬이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루드릭, 그대는 다르지 않느냐?”

       “……그건 네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니까 그렇고, 이 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갑자기 황위를 놓고 내전이 벌어진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더 드물지 않을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게 황녀와 얘기해 보라는 말을 건넨 까닭이니라. 저번의 내전은 꽤 길게 이어졌고, 제국이 완전히 반으로 갈라졌던 기억이 있구나.”

       “…….”

       “피로 피를 씻는 참극이었지. 적어도 내 기억에 의하면 루드릭, 그대는 아마 반 년 정도……?”

       “뭐가 반 년인데?”

       “그 정도는 화가 나서 황녀와 얘기도 하지 않았느니라.”

       

       말문이 막혔다.

       

       이쪽에 대한 이야기는 엘레나가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전혀 들려주지 않았던 터라, 내가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다만 내 성격 상 엘레나가 황위를 두고 내전을 일으키려고 하면 당연히 말렸겠지. 내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히 가늘고 길게 사는 소시민적인 삶을 추구했으면 추구했지, 이번 기회에 단단히 한 몫을 잡아보겠다는 둥 나서진 않았을 테니까.

       

       어렵지 않게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말린다고 해서 엘레나가 그걸 들을 사람일까?

       

       난 아니라고 봤다. 딱 봐도 지지리 남의 말 안 들을 것 같은 관상.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잖아.

       

       모르긴 몰라도 무언가에 한 번 꽂혀서 눈이 돌아간 엘레나를 말리는 것보다는 짱구를 말리는 게 더 쉬울 걸. 적어도 이번에는 아직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그런데 그게 반 년 만에 어떻게 풀리긴 풀렸네.”

       

       오히려 놀라운 건 그 점이었다.

       

       내가 아예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뜯어 말려도 기어코 내전을 일으켰으면, 게다가 아르웬이 저렇게까지 표현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죽어나갔으면 고작 반 년으로 풀릴 리가.

       

       아무리 내가 누구를 진짜 독하게 마음 먹고 미워하기 어려운 성격이라도 그렇지, 그 정도 스케일의 사고면 정말 다시는 안 볼 각오까지 했을 텐데.

       

       “뭐어…… 나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듣기로는 정말 비굴할 정도로 잘못했다고 싹싹 매달렸다고 하더구나.”

       “……내전까지 이겼으면 황제잖아. 명색이 그래도 일국의 황제인데 그래도 돼?”

       “그대와 황녀,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 그 이상 자세히는 모르니라.”

       “좋아.”

       

       일단은 여기까지.

       

       어차피 여기서 아르웬이랑 둘이 쑥덕거리고 있어봤자 결론이 날 수가 없는 이야기고, 이건 당사자인 엘레나와 직접 얘기해야 하는 문제였다.

       

       정말 내전까지 벌어진다고 한다면 당연히 제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대공인 에일린의 의중도 반영될 테고, 해군 전체를 통솔할 권한을 쥐고 있는 라실도 당연히 관여되겠지.

       

       둘 다 너무 높은 위치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의 편도 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가 없을 테니.

       

       내가 아무리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그 정도 상황도 파악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건 아니였으니까.

       

       “생각해둔 방도가 있느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사자랑 얘기해야 한다는 거잖아. 그냥 며칠 정도 기회를 보다가 엘레나와 한 번 얘기해 봐야지.”

       “잊지 말거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 아르웬이, 이내 앞발을 내 가슴에 턱하고 얹었다.

       

       원래도 자수정처럼 묘하게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보라색 눈동자가,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하자 이제는 정말 묘안석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울렸다.

       

       아까처럼 나를 빤히 응시하는 보랏빛 눈동자와 함께, 아르웬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대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나는 그대의 편이라는 것을.”

       “……고마워.”

       “천만에.”

       

       폴짝.

       

       무릎 위에서 뛰어내린 아르웬이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열린 문틈 사이로 조용히 사라졌다.

       

       

       

       2.

       

       성황리에 이어졌던 탄신제가 끝났다. 사실 나야 마지막 날을 빼면 진행되는 내내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느라 바빴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붕 떠있는 것 같던 황궁의 분위기도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 말인즉슨 내 하루일과도 다시 평범한 일상처럼 돌아왔다는 의미기도 했다.

       

       “이게 랩으로 출근하는 대학원생의 기분인가?”

       

       사실 연구실로 출근이라고 해봤자 걸어서 오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심지어 같은 별궁이라 이동 동선도 굉장히 짧았다. 원하면 내 하루를 통째로 별궁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보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며칠 만에 연구실로 가서 기약 없는 마법 연구를 시작하려니 마음이 영 내키진 않았다.

       

       내 체질을 고쳐 보겠다고 회복 마법 쪽으로 연구하던 건 대차게 실패했지.

       

       사실 실패라고까지 표현하긴 뭣하지만, 실피아가 개인적으로 연구하던 방법이 전부 실패한 이후에는 마음이 꺾였다고 할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만, 노력은 꽤 한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서 그런지 푸념처럼 저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표정이 안 좋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아, 실피아.”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실피아가 인사를 건넸다.

       

       순간적으로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 인사를 받았다.

       

       실피아의 레어에서 단순히 실험만 하고 끝난 게 아니라, 다른 문제가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 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마친 상태.

       

       여전히 스승님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연구실을 대강 훑어보고는, 내 자리에 앉아 마법서를 펼치며 대답했다.

       

       “그냥 오랜만에 하려니까 왠지 하기 싫어서요.”

       “아, 어떤 기분인지 알겠네요. 이해해요.”

       “……하기 싫어도 해야죠, 뭐. 그런데 스승님은 또 놀러 가셨어요?”

       “아뇨, 오늘은 저 안에 틀어박혀 계세요.”

       

       실피아가 고개를 돌리며 스승님 연구실 쪽을 까딱하고 고갯짓했다.

       

       “뭐 중요한 연구라도 하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슬슬 연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실피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조금만 마력을 집중해서 살펴보니, 저번에 스승님이 보여줬던 그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모양인지 심상치 않은 마나의 유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그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치 동물적인 본능으로 느껴지는 불길함이라고 할까. 딱히 근거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육감이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는 불길함에 가까웠다.

       

       “마법사들의 고질적인 문제죠. 직업병이에요.”

       “네?”

       “보아 하니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네요.”

       

       중얼거린 실피아가 힐끗하고 연구실 쪽을 곁눈질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 저번에 그 재수 없는 박쥐 여자가 한 번 경고했던 것 같은데. 마법사들이 가지는 미지에 대한 갈망, 지식욕이 본능마저 이겼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네요.”

       “……무슨 의미에요?”

       “별거 아니에요. 전모를 알고 있던 건 저랑 그 박쥐 여자 뿐이거든요. 이맘때 쯤이면 황녀 전하께서는 다른 일로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미처 없으셨던 건지.”

       

       묘하게 비꼬는 투로 말을 끝맺은 실피아가 다시 마법서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짤막히 덧붙였다.

       

       “조만간 루드릭 군도 알게 될 거예요. 어차피 말로 한다고 해서 통할 단계도 아니고.”

       “……?”

       “지금 제가 뭐라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때 보는 게 빨라요.”

       

       의미를 알 수 없는 실피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승님의 연구실 쪽에서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하하하하! 루드릭 군! 실피아 양! 둘 다 이리로 와 보게! 어서!”

       “갑자기……?”

       

       타이밍이 상당히 절묘했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실피아를 바라봤지만, 실피아는 마치 올 게 왔다는 것처럼 어깨만 으쓱이고는 이렇다 할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부르는데 일단 가야겠죠?”

       “……혹시 스승님이 하고 있는 연구에 어떤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가서 보면 알게 될 거예요. 처음부터 사실 말로 해서 말릴 단계도 아니었고, 제가 충분히 수습할 수 있는 범위 안이거든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실피아가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다시 스승님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터져나왔다.

       

       “빨리 와 보게! 어서! 세기의 발견일세!”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저렇게 부르고 있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이게 맞나 싶은 얼굴로 나도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마법의 경지가 오르면서 터득한 부가적인 능력 비슷한 건데, 마력에 민감한 신체 때문인지 육감이 남들보다 조금 발달했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했다.

       

       그리고 지금은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가서 좋은 꼴을 볼 수는 없을 거라는 일종의 경고.

       

       결국, 불안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로 연구실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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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로판 주인공 하기 싫습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reincarnated as the eldest son of a noble family with nothing to do.

Even if I put aside the fact that the world I was reincarnated into is a little strange.

– Northern Grand Duchess Eileen is confused after realizing she has regressed.

– Admiral Lassiel realizes she has regressed and immediately turns the fleet around.

– Princess Elena prepares to inspect the Weiss County, chewing over the past.

What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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