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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86화. 앞으로, 한 걸음 ( 4 )

       

       

       

       

       

       한 걸음,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한스는 멈추지 않았다. 비틀거리고 다리가 떨려올지언정, 멈추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느릴지라도 확실하게 그리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인간이 맞는 건가? 나에게 다가온다고?》

       

       

       턱끼리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너글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인간이 자신의 위신(僞身)을 보고도 제정신을 유지하는게 신기한데, 다가온다고?

       

       자신에게?

       

       검을 들고?

       

       

       《그렇게나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마.》

       

       

       너글의 몸이 크게 부풀었다.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가지각색의 벌레들이 몸의 표면으로 툭툭 튀어나온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너글은 일제히 숨을 뱉으며 입으로 수많은 벌레를 뱉어냈다.

       

       

       

       ㅡ 촤하악!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독을 가진 독충들이 한스를 향해 무리 지어 달려들었다. 단 한 마리의 벌레에게 스치기라도 한다면, 한스는 2분도 지나지 않아 싸늘한 시체가 되리라.

       

       

       “후…”

       

       

       한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독충들을 침착하게 눈으로 좇았다. 두근거리며 맥박치는 용기의 글자가 한스를 보조했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던 근육은 부드럽게 풀렸고, 적당한 고양과 흥분이 피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벌레의 겹 날개가 보인다. 무언가 방울방울 맺혀있는 독침이 보이고, 날카로운 턱을 잔뜩 벌리고 달려드는 벌레가 보인다.

       

       마치, 자신을 제외한 온 세상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고양감.

       

       

       ‘… 지금!’

       

       

       한스는 재빨리 아래로 몸을 던지며 굴렀다. 몸을 던지기 무섭게 무수한 벌레들이 한스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ㅡ콰앙!

       

       

       일개 벌레들이 동굴과 부딫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충격음. 동굴이 가볍게 흔들리며 잔돌이 떨어졌다.

       

       

       《음? 피했나.》

       

       

       무심하게 바라보던 너글의 몸에서는 무수한 관절 마디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차르륵하고 무언가 흐르는 소리가 났다. 자신의 공격을 피한 한스가 흥미로운 걸까.

       

       구정물처럼 까만 액체가 부글거리며 땅을 긴다. 아니, 액체가 아니다. 한스는 무심코 그 물을 바라보았다가 사람의 얼굴을 발견했다.

       

       

       – “주… 주인….님…”

       

       – “자아… 비….르…을….”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퍽퍽 터지는 공기방울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의 얼굴이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람의 얼굴이 기포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퍽ㅡ하고 터진다.

       

       그리고 다시 부풀어 오르고, 터진다. 거품 여러 개가 모두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너… 도대체 뭔 짓거리를 한 거냐.”

       

       

       한스가 너글을 향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너글은 자신을 노려보는 한스가 마냥 흥미로운지 저 혼자 고개를 까딱거렸다.

       

       

       《흠, 영혼도 평범한 인간이고… 육체는 발달하기는 했다만, 격을 올릴 수준은 아닌데. 재밌구나, 그 괴상한 파동을 흘리는 글자가 너의 격을 끌어 올리고있어. 아주 흥미로워. 그 글자는 뭐지? 뭔데 너 같은 인간의 격이 올라가는거냐?》

       

       

       너글은 한스의 롱소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흥미가 섞인 눈빛, 탐욕과 탐구욕 그리고 질척한 소유욕이 느껴졌다. 온몸을 끈적하게 핥아오는 듯한 너글의 시선에 한스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너 같은 악마 새끼한테 허락된 힘이 아니다.”

       

       

       한스는 나지막하게 읇조리며 검을 굳세게 잡았다. 

       

       두근거리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맥박에 집중한다. 마치 두 개의 심장이 펌프질하며 온몸으로 피를 내달리게 하는 듯하다.

       

       

       《아주 재밌구나. 웬 쭉정이가 들어와서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너라면 아주 흥미로운 실험체가 되겠어.》

       

       

       쭉 찢어진 입술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졌다. 그 사이로 혓바닥처럼 꿈틀거리는 벌레가 튀어나와 둑물을 뚝뚝 흘렸다. 

       마치 한스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 듯한 모습. 

       

       

       《특별히 죽이지는 않으마. 기묘한 네 몸뚱아리도 그렇고, 저 글자도 그렇고… 한동안은 심심하지 않겠어.》

       

       

       ㅡ 촤하아악!!

       

       

       너글의 말과 함께 한스를 향해 수많은 벌레떼가 날아들었다. 동굴 벽을 까맣게 채우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독충들이 빼곡하게 날아든다.

       

       한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를 향해 독충의 파도가 덮쳐온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과 달리, 용기의 글자는 차분하게 맥박치며 한스를 달랬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해내야 한다.

       

       

       ‘무릎을 낮추고.’

       

       시선을 아래로ㅡ

       

       ‘손에 힘을 주고’

       

       허리에 체중을 실어서ㅡ

       

       ‘벤다!’

       

       

       ㅡ 촤하아악!!

       

       

       한스의 검이 벼락처럼 뛰쳐나가며 긴 선을 그어냈다. 몰려드는 독충의 무리에 비하면 바늘처럼 얇고 가느다란 선이 수평으로 그어진다.

       

       그리고, 독충의 무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머리가 잘리고, 몸통이 양분되고 다리가 잘린다. 가지각색으로 잘린 독충들이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허윽ㅡ!”

       

       

       한스는 참았던 숨을 내뿜으며 숨을 골랐다. 너글은 한스가 탐나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도대체 뭐지? 미약하지만 격이 더 올라갔다. 정말 아주 흥미롭구나! 아주 재밌어, 재밌어!! 하하하!! 간만에 흥이 오르는구나!!》

       

       

       잔뜩 흥분한 너글의 심리를 나타내듯, 그의 몸을 이룬 벌레들이 빠르게 기어다니며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너는 내가 가져야겠다. 그 육체도, 영혼까지! 너희들이 말하는 신의 무기도! 모조리 내가 가져서 파헤쳐야겠어.》

       

       

       한스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너글. 한스의 본능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지만, 애써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무섭고 도망치고 싶을 때,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용기는 두려움을 알고 극복하는 것.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너 같은 벌레새끼한테는 천 년이 지나도 이르지.”

       

       《너의 잘난 주둥아리가 언제까지 나불댈지 궁금하구나.》

       

       

       한스는 성큼 앞으로 나섰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크게 한 걸음.

       이어지는 걸음이 빨라지더니 어느새 달리기 시작했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영혼을 먹어 치우는 악마 그리고 죽음.

       

       설령 진다고 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자신에게는 검을 들 이유가 생겼으니까.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팔부터 자르고 시작하지.》

       

       

       너글의 몸에서 기다란 앞다리가 나오더니 공기를 찢으며 휘둘러졌다. 사신의 낫처럼 생긴 앞다리가 한스의 어깨를 향했다.

       

       

       ㅡ 캉!

       

       “크으읏!”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속도였지만, 잔뜩 예민해진 직감이 한스를 이끌었다. 가까스로 막아낸 낫 모양의 앞다리. 

       충격을 받아낸 어깨와 팔이 불타는 것처럼 시큰거린다.

       

       상대는 한스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너글은 여섯 개의 낫 발톱을 더 뽑아내 미친 듯이 휘둘렀다.

       

       사방을 점하며 다가오는 낫 발톱.

       

       

       

       ㅡ캉, 카캉!

       

       

       한스는 그야말로 극한에 다다른 본능과 직감에 의지해 모든 공격을 흘리고, 튕겨내고 막아냈다.

       

       튕겨 나간 낫 발톱은 동굴 벽을 종이처럼 찢어발기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계속해서 격이 올라가는구나! 하하하!! 미약하고 불안정하지만, 전투를 통해서 성장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너글은 몸을 작게 움츠렸다. 숨을 뱉어낼 때와는 다르게 작게 몸을 모으고 압축하며 무언가를 꾹꾹 만들어내는 듯했다.

       

       그리고 너글의 몸을 이루고 있는 벌레들이 무언가를 푸우욱ㅡ하고 내뿜기 시작했다.

       

       

       ㅡ 치이이익

       

       

       불길한 보랏빛 독무가 뿜어져 나온다. 연기에 닿은 동굴의 바닥과 벽이 까맣게 녹아내리며 곰팡이가 생기고, 알 수 없는 종양이 자라난다.

       

       

       “미친…!”

       

       

       그 모습을 본 한스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 했다.

       

       

       《어딜 가시나.》

       

       

       너글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다시금 낫 발톱을 휘둘러 한스를 묶어두는 너글. 한스는 매섭게 날아오는 낫 발톱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저 새끼, 날 가지고 놀고 있어.’

       

       

       한스는 알 수 있었다. 저 악마는 지금 자신으로 실험하고 있는 거다.

       

       아이들이 개미를 상대로 다리를 하나하나 찢으며 언제까지 살아있나 보는 것처럼.

       너글은 그저 흥미로운 실험체를 바라보듯 한스를 대하고 있었다.

       

       바닥과 벽을 타고 스멀스멀 보랏빛 독무가 기어 온다. 독무가 지나간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종양과 까만 각질, 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꾸물거리는 곰팡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자연 그 자체에 역병을 심은 듯한 모습.

       

       한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독무를 피하려면 뒤로 물러나야 하건만, 너글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자, 이제 한번 보자꾸나. 전투로 격이 오른다면, 역병은 어떠냐?》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어 온 독무가 한스의 발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 * * *

       

       

       

       

       

       “어…?” 

       

       

       상점으로 향하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용기의 룬’에 이런 효과가 있었다고?

       각인하기 전에도 그렇고, 각인된 후에도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그냥 잊고 있었는데 상태 이상을 모조리 풀어버리는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잠시 뇌가 멈췄다가, 재빨리 메시지를 읽었다. 뭐라고 길게 나와 있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울 때 물러서지 않고, 버프도 받는데 빈사 상태에서 쉽게 쓰러지지 않아?”

       

       

       설명만 들어보면 강자와 싸울 때 강해지는, 마치 거인 사냥꾼의 느낌이다. 보통 이런 건 ‘약자 멸시’던데, 한스는 ‘강자 멸시’가 붙어버렸다.

       

       효과 자체는 도박수 느낌이 강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좋았다. 한스 혼자 레이드 뛰는 상황 자체가 도박인데, 여기서 도박수 몇 번 더 나와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

       

       

       《나에게 다가온다고?》

       

       

       너글의 몸이 크게 부풀더니 벌레들이 우수수 튀어 나간다. 묘하게 생생한 그래픽 때문에 벌레들이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 “흐읍!”

       

       “와ㅡ 한스 미쳤는데?”

       

       

       한스가 롱소드를 슉 하고 한번 휘두르니, 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 모습만 보면 무슨 세계 제일의 검사가 따로 없다.

       

       분명 한스의 설정은 모험가였는데, 왜 이렇게 강한지 모르겠다. 공격력이랑 민첩 버프가 생각보다 엄청 높게 들어갔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한스는 묘기를 부리듯 너글의 공격을 막아내고, 패링하고 구르면서 아슬아슬한 전투를 이어 나갔다.

       

       보고있는 내 손에 땀이 가득 생길 지경. 어느새 다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한스야!! 내 지갑이 너한테 달렸다!”

       

       

       네가 질 것 같으면 내가 현질해야 된다고! 아까 5만 원짜리 번들 사고 왔는데, 또 사기는 싫어!

       

       그렇게 한참 동안 공방이 이어지더니, 너글이 제 몸을 아주 작게 움츠러들며 새로운 공격 패턴을 시작했다.

       

       

       《내 독에 범벅이 되어 죽어라…》

       

       ㅡ 푸쉬이이익

       

       

       맵을 가득 채우는 보라색 연기. 연기가 닿은 곳은 곰팡이와 커다란 종양, 노란 고름이 생겨났다. 누가 봐도 저 연기에 닿으면 좋지 못한 꼴을 본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피해, 한스! 제발 피해!!”

       

       《어딜 가시나.》

       

       

       내 간절한 외침에 대답하듯 들려오는 너글의 목소리. 한스는 몰아치는 너글의 공격에 뒤로 물러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보랏빛 연기가 한스의 발에 닿기 직전에ㅡ

       

       

       “후…”

       

       

       나는 조용히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상점을 열었다.

       

       늘 그래왔지만, 카드는 답을 알고 있다.

       

       이번에도 카드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수정 사항 입니다!!!>

    EP 85. 앞으로, 한 걸음 ( 3 ) 의 내용 중

    너글의 대사가 수정됩니다!!!

    《그 검은 뭐지? 끔찍한 검이군.》 => 《그게 신의 무기인가? 끔찍하기 짝이 없군.》

    으로 수정됩니다!!

    사유는 설정 오류!!! 용사를 아는데, 신의 무기를 모른다는건 말이 안되는것 같아서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굳세어라 한스!!! 파문의 힘을 사용하는거다!!! 한스가 떡상할지는!!!! 작가인 저에게도 매우 큰 관심입니다!!!!! 사랑합니다!!!!!!!!!!!!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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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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