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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누구의 신뢰도 깨지 않고 말입니까?”

       “아, 물론 범인에 대한 신뢰는 깨지겠죠. 만약 범인이 이 안에 있는 게 맞았다면요.”

       “범인이 길드 내부에 없다면요?”

       “그럼 좋은 거죠 뭐. 원하시는 대로 된 거 아닙니까.”

       

       나는 범인이 길드 내부자임을 알고 있지만, 증거가 없는 이상 어떤 말을 해도 길드장은 듣지 않을 거다.

       

       그러므로 내가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은 범인이 길드 내부에 있든, 아니든 간에 리스크 없이 써 볼 수 있는 방법뿐이다. 

       

       “증거 없이 내부자들을 심문하지 않는 동시에 만에 하나 내부자가 범인일 경우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느 쪽이든 손해는 안 보는 방법이죠. 들어 보시겠어요?”

       “그런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길드장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요.”

       

       나는 다시 한번 자신 있게 아르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일단 누가 기존에 금고 암호를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암호는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알려 주셨는지. 그것부터 말씀해 주시죠.”

       “뀨우.”

       

       ***

       

       결국 길드장 반하임은 내 방법에 동의했다.

       

       계약서도 썼다.

       이번 일로 리스크 없이 조용히 범인을 잡고 성유물 조각을 되찾는다면 원래 의뢰하려던 금액에 추가금을 두둑하게 얹어 주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흐음. 좋아. 원래 의뢰하려던 금액도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군.’

       

       이렇게 추가금 같은 걸 준다고 할 때는 추가금 비율이 높아 보이게 하기 위해 원래 의뢰 금액을 좀 깎아 부를 법도 한데, 반하임은 정직하게 원래 의뢰 금액도 정가로 불렀고 추가금도 상당한 액수를 약속했다.

       그것뿐 아니라 일을 시작할 때 바로 주는 착수금까지 일부 챙겼으니, 나로서는 상당한 이득을 본 셈.

       

       ‘그만큼 이번 일에 진심이라는 소리겠지.’

       

       고집불통처럼 굴었던 것만큼의 값은 한 셈.

       

       “착수금까지 받았으니, 저희는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까요? 어차피 입질 오려면 이삼 일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쀼웃!”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말에, 길드장실에서 다소 지루한 시간을 보냈던 아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푸흐, 레온 씨는 이런 일을 벌여 놓으시고도 태평하시네요. 그렇게 호언장담을 해 놓으셨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상대가 수상함을 눈치채고 한 발짝 물러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실비아의 말은 타당했다. 

       내가 한 건 일종의 함정 파 놓기다. 

       물기 좋게 던진 떡밥이긴 하지만, 막상 물고기가 낮은 확률로라도 그걸 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방법이란 뜻이다.

       

       “괜찮아요. 그럼 그때 가서 다른 방법으로 잡으면 되죠.”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난 이 사건의 범인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범인이 누군지만 알고 있다면, 그를 잡을 맞춤 솔루션은 몇 가지라도 낼 수 있다. 

       

       내가 길드장에게 지금 제안한 방법도, 아마 내부자의 소행이란 걸 확신하지 않았다면 바로 생각해 내기 어려운 방법이었으리라. 

       

       “여튼, 오늘은 날고기 한 번 먹으러 갈까요? 지난번에 육사시미가 괜찮아 보이는 집이 있어서 봐 뒀거든요.”

       “후우. 그만큼 자신이 있으신 거겠죠. 좋아요. 믿을게요. 그리고…. 육사시미는 저도 찬성이에요.”

       “쀼우!”

       

       아르도 육사시미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기라고 하니 벌써 군침이 도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서 옵쇼!”

       

       내가 봐 뒀던 가게에 도착하자 주인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여기 육사시미 3인분 주세요.”

       “예이!”

       

       가게는 주방이 오픈된 형태로, 생고기를 먹기 좋게 써는 과정을 손님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주방이 이런 식으로 오픈되어 있는 가게는 일단 믿고 먹을 만하지.’

       

       그만큼 위생에도 자신이 있고, 과정에서 켕길 게 없다는 소리니까. 

       

       “뀨우우.”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날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을 본 아르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빨리 먹고 싶어, 아르?”

       “쀼!”

       “푸흣. 우리 아르 기다리는 동안 배가 아주 등가죽에 붙겠네, 붙겠어.”

       

       나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평소보다 조금은 덜 뚠뚠한 아르의 배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녀석. 누가 드래곤 아니랄까 봐 날고기 보자마자 침을 뚝뚝 흘리네.’

       

       이제 나름 용맹한 드래곤이라 이건가.

       고기를 보는 눈빛이 다르긴 다르네.

       

       “3인분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쀼우!”

       

       대답도 가장 먼저 한 아르는 앞접시 앞에 앉아 어서 내가 고기를 덜어 주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며 꼬리로 식탁을 톡톡 두드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는 젓가락으로 육사시미 한 점을 집어 바로 아르의 입 앞에 가져다 주었다. 

       

       “자, 아르야. 아, 해 봐.”

       “쀼!”

       

       아르는 내가 고기를 먹여 주자 앞발을 꼬옥 모은 채 행복한 얼굴로 받아 먹었다. 

       

       “뀨움. 뀨우!”

       

       신선한 날고기를 입에 넣은 아르의 눈이 커졌다. 

       

       “뀨우!”

       “입에서 살살 녹지? 후후. 하지만 그건 아직 맛보기에 불과하단다.”

       “뀨움?”

       

       고기를 생으로 한 점 먹었으면, 이제는 소스의 맛을 첨가할 차례. 

       

       나는 인당 두 개씩 따로 나온 소스 그릇을 보며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름장이랑 초고추장 소스 둘 다 훌륭해 보이네.’

       

       먼저 고기를 기름장에 찍어서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아르의 입에 넣어 주었다. 

       

       “뀨, 뀨움!”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기름장이 어우러진 육사시미를 한 점 먹은 아르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푸흐.”

       

       옆에서 고기를 맛있게 집어 먹던 실비아도 그 모습을 보고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르는 충격적인 맛에 씹는 것도 잊은 채 잠시 굳어 있다가, 몇 초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감동 받은 얼굴로 고기를 챱챱 씹어 넘겼다. 

       

       “자, 이번엔 초고추장 소스야.”

       

       매운 걸 잘 못 먹는 아르였기에 일부러 살짝 찍어서 입 안에 넣어 주었다. 

       

       “뀨우…!”

       “안 매워? 괜찮아?”

       “뀨!”

       

       아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새 실비아가 앞접시에 덜어 준 고기를 집어서 이번에는 초고추장을 좀 더 찍어서 자신의 입에 쏘옥 넣었다. 

       

       “뀨움…!”

       

       살짝 매운 듯 아르의 볼이 다소 상기되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물을 한 모금씩 마셔 가면서 꽤나 잘 먹었다. 

       

       “쀼!”

       

       마치 ‘아르 이제 매운 것도 머글 수 이써!’라고 말하는 듯, 아르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래, 그래. 아르 다 컸네. 매운 소스도 다 먹고.”

       “쀼웃!”

       

       아르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식탁을 꼬리로 두드리며 고기를 집어 먹었다.

       

       ‘사실 초고추장을 물 한 모금씩 마시면서 먹는 걸 보면 아직 멀긴 했지만….’

       

       이러한들 어떠하고 저러한들 어떠하리.

       귀여우면 그만인 것을. 

       

       “레온 씨도 드세요. 아까부터 아르만 보고 있고….”

       “아하하. 그래야죠.”

       

       마냥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실비아의 말에, 나는 이제야 젓가락으로 내 몫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역시 일단 처음에는 생으로.’

       

       균일한 두께로 먹음직스럽게 썰려 있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자, 자동으로 목울대에서 만족스러운 으음 소리가 나왔다. 

       

       ‘쫄깃해서 씹는 맛이 있으면서도 절대로 질기지는 않은 적당한 식감.’

       

       잡내가 하나도 나지 않는 싱싱한 고기를 음미하며 씹어 넘긴 나는 곧바로 한 점을 더 집어 들어 기름장에 찍어 먹었다. 

       

       ‘와….’

       

       과연 아르가 먹자마자 충격으로 씹는 것도 잊어버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잠깐 묻힌 것만으로도 벌써 고기에 스며든 적절한 짭짤함.

       그리고 참기름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진짜 이 조합만으로도 세 끼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소고기는 금방 질린다고들 하지만, 두 점 세 점 먹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감탄을 거듭하며 젓가락을 열심히 놀렸다. 

       

       “여기 3인분 추가요!”

       “예이! 금방 해 드리겠습니다!”

       

       기름장의 맛이 워낙 기가 막혀 계속 집어먹다 보니 어느새 초고추장은 찍어 먹어 보지도 못하고 1인분이 동나 버렸다. 

       

       나에게 체하겠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하던 실비아도 어느새 자신의 몫을 다 먹어치웠고, 아르도 이제는 아예 양손으로 집어 한 점은 기름장, 한 점은 초고추장에 동시에 찍어서 입에 넣고 있었다. 

       

       “여기 추가 3인분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쀼웃!”

       

       고기가 나오자마자 초고추장에 찍어 한 점을 맛본 나는 다시금 감탄을 뱉지 않을 수 없었다. 

       

       ‘식초 배합 비율이 예술인데?’

       

       너무 시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덜 들어가 고추장 맛이 강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다진 마늘까지 들어갔어. 이거 주인장이 소스 잘알이시네.’

       

       여기 요리들을 맛보며 아쉬웠던 옥의 티를 여기서는 다진 마늘이 말끔하게 메꿔 주고 있었다. 

       

       ‘게다가 보통 이런 가게에서는 손님들 입맛 때문에 설탕을 많이 첨가하는데, 여긴 그렇지도 않아.’

       

       그만큼 고기 본연의 맛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 

       소스는 거들 뿐, 고기의 맛 자체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고기의 질 자체도 아주 훌륭하기도 했고. 

       

       ‘반찬들도 고기를 서포트하기에 딱 적당한 정도로만 나왔어.’

       

       이것 또한 곁가지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 3인분 더 추가요!!”

       “예이!!!”

       

       결국 일 인당 3인분씩을 먹고 나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만족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먹던 1인분보다 1인분의 양이 많았던 걸 생각하면 정말 꽤나 많이 먹은 셈.

       

       “쀼국.”

       

       간만에 과식을 해서 배가 아주 뚠뚠해진 아르의 등을 두드려 주자, 아르가 트림을 했다. 

       

       “아, 잘 먹었다. 얼마죠?”

       “18실버입니다!”

       

       확실히 고급 육사시미 집이라 그런지 가격은 꽤나 살벌했지만, 이미 착수금으로만 40실버를 받은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화도 시킬 겸 좀 돌아다니면서 산책이나 할까요?”

       “좋죠.”

       “쀼우!”

       “그렇게 먹고 아이스크림을 또 먹고 싶어, 아르야?”

       “쀼!”

       

       내게 안긴 채 ‘아이스크림 배는 따로 이써!’라고 하는 아르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지나가다가 아르에게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서 먹이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을 하던 중.

       

       “헉, 헉. 여기 계셨군요! 레온 님!”

       “네?”

       

       우리를 찾아온 건 아까 우리를 창고로 데려갔던 용병이었다. 

       

       그 용병은 숨을 고르고는 우리에게 봉인이 찍힌 작은 편지를 내밀었다.

       

       “길드장님이 전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용병은 편지만 전달해 주고는 금세 가 버렸고.

       

       주변 골목으로 들어가 보는 눈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봉인을 뜯었다. 

       

       <말씀하신 대로 금고의 암호를 바꾸고, 간부들에게 알렸습니다. 나머지도 말씀하셨던 대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 뒤에 찍혀 있는 점이 진한 걸로 보아, 잠시 감정의 동요가 있었던 듯했다.

       

       <오늘 저녁, 간부 중 하나가 저에게 너무 급하게 마음 가지지 말고 식사하며 술이나 한 잔 하고 풀자고 하더군요. 간부의 이름은 게콘입니다.>

       

       편지를 읽은 내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이거, 입질이 좀 빨리 오는구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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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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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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