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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하하, 하하하하하!”

         

       카아락이 호쾌하게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긴 건지 앞머리까지 쓸어넘겼다.

         

       “영웅 행차인가? 뭐, 왕자님께서 구하러 오신 거야?”

         

       스윽. 셀다스는 허리춤에 걸린 단검에 손을 올렸다.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우리 돈줄의 핵심을 구하러 온 거뿐이다.”

         

       셀다스는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 역수로 쥐었다. 새까만 오러가 단검에 흘러 들어갔다.

         

       “뭐, 됐어. 어차피 다 죽이면 되니까.”

         

       카아락이 비릿하게 웃자 셀다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야, 근데 어쌔신이 정면 싸움을 시도할 줄이야. 멍청해도 이런 멍청한 짓이 없어?”

         

       정론이었다. 셀다스는 암살과 잠입이 특기인 어쌔신. 아무리 오러를 사용할 줄 안다고 해도 정면 싸움은 다른 얘기다.

         

       게다가 이곳은 지형지물도 이용할 수 없다.

         

       명백하게 셀다스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자, 그럼 어디 엑시드의 마스터 힘 좀 보자고.”

         

       슈우욱. 카아락의 손바닥 위에 붉은색의 나선이 돌며 선풍이 만들어졌다.

         

       “일소해라.”

         

       카가가각-!

         

       닿는 모든 것을 갈아버리며 다가오는 붉은 선풍. 셀다스는 재빠르게 움직여 카자르와 프란체의 허리를 들었다.

         

       ‘이대로 도망친다.’

         

       타앗! 셀다스가 도망치기 위해 발돋움을 한 그 순간.

         

       “어이쿠, 절대 못 놔주지.”

         

       붉은 선풍이 궤도를 틀어 셀다스를 쫓아갔다.

         

       “이런.”

         

       하반신에 오러를 집중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나 붉은 선풍은 따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고, 궤도 또한 계속해서 틀어졌다.

         

       “자, 빨리 뛰어! 계속해서 빨라진다!”

         

       콰과과과-!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붉은 선풍. 이대로면 따라잡힌다. 셀다스는 쯧, 혀를 차며 카자르와 프란체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일소해라.”

         

       카가가각! 붉은 선풍은 결국 셀다스를 집어삼켰다.

         

       “크허억!”

         

       온몸을 갈기갈기 찢기라도 하는 듯한 고통에 셀다스의 동공이 위로 올라갔다.

         

       “뭐야, 벌써 끝인가?”

         

       터벅. 터벅. 카아락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가갔다.

         

       “엑시드의 마스터라길래 기대했……”

         

       쐐애액! 새까만 오러가 담긴 단검 두 자루가 카아락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일소해라!”

         

       파아앙! 이번에도 파공음과 함께 주변으로 붉은 선풍이 돌았다.

         

       “그걸 맞고 멀쩡한 건가?”

       “후우…….”

         

       셀다스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이제 수중에 남은 단검은 없다.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이만 포기하는 게?”

         

       눈알을 굴리며 카자르와 프란체의 위치를 확인하는 셀다스. 그다지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단검이야 복제 마법으로 만들면 된다. 시간을 조금만 끌면…….

         

       “…?”

         

       복제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정확히는 손끝에 마력이 모이지 않는다.

         

       “아, 혹시 마법을 쓸 생각이었나? 미안한데 그거 다 내가 차단했어.”

         

       크읏, 예상치 못한 변수에 셀다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오러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다니, 특이 체질인가 보네.”

         

       카아락은 비릿하게 웃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몸 상태는 최악이고 상성도 맞지 않는다. 어떻게든 도망쳐야 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그러나 저 붉은 선풍을 따돌릴 자신이 없었다.

         

       아까도 피하지 못했는데 너덜너덜한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 피하겠나.

         

       ‘답이 없군.’

         

       칠성의 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쓰러트리기 보다는 공녀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이놈과는 상성이 최악이어도 너무 최악이라 싸움도,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이다.

         

       “너도 이만 포기해. 저 공녀도 진작에 포기하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잖아?”

       “아까부터 쓸데없는 말이 많네. 혹시 수다쟁이라는 별명이 있나?”

         

       카아락이 피식 웃었다.

         

       “농담을 던질 상황인가? 난 잘 모르겠는데.”

         

       수중에 무기는 없다. 마력이 차단되어 속임수 마법은 사용할 수 없고 도망도 불가능.

         

       할 수 있는 거라곤 진 바렌베르크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후우, 맨손 격투는 오랜만인데.”

         

       셀다스의 주먹에 새까만 오러가 모여들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번다.

         

       “오, 격투기까지 쓸 줄 아는 건……”

         

       타앗! 셀다스는 카아락이 말을 하고 있는 틈을 타 달려들었다. 지금이 가장 방심한 시간. 이때가 아니면 한 방 먹여줄 기회가 없다.

         

       “일소해라.”

         

       파아앙! 이번에도 파공음이 치솟으며 주변에 붉은 선풍이 돌았다. 셀다스는 그걸 직격으로 맞아 저 멀리 날아갔다.

         

       “커헉!”

         

       아까도 느꼈지만, 말도 안 되는 고통이다. 외부에는 상처가 없지만, 이 붉은 선풍은 몸 내부를 파괴한다.

         

       셀다스는 얼굴을 휘저으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저 앞에 있었던 카아락이 보이지 않는다.

         

       “…?!”

         

       카아락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셀다스의 목을 부여잡았다.

         

       “커헉, 컥!”

         

       뿌드득. 당장이라도 경추가 꺾일 것 같다.

         

       “놀랐지? 나는 주술도 잘 부리지만, 근접전도 특기거든.”

         

       이번에도 비릿하게 웃는 카아락. 셀다스는 허공에서 몸부림치며 카아락의 팔을 부여잡았다.

         

       “의뢰도 완수하고, 엑시드의 마스터도 죽이고. 이거 수확이 좀 큰데?”

         

       카아락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콰오! 콰오!

         

       “음?”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콰오! 콰오!

         

       “뭔 소리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또 이상한 기술을……”

         

       카아락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던 그때, 스각! 별안간 그의 팔이 말끔하게 절단됐다.

         

       “무슨…!”

       “흐읍!”

         

       이어지는 케일의 검격이 카아락의 목으로 쇄도한다. 그러나 목에 닿기 직전.

         

       “일소해라!”

         

       파아앙! 붉은 선풍이 일어나며 케일과 셀다스를 집어삼켰다.

         

       “커흑!”

       “허억!”

         

       단말마를 지르며 날아가는 케일과 셀다스. 그대로 지면에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후우, 백귀인가. 시체의 밤이 발동되지 않는 걸 보니 아즈라엘과 에스투피나가 당했나 보군.”

         

       치이익! 카아락이 주술로 잘려나간 팔을 지혈했다.

         

       “크읍…! 더럽게 아프네.”

         

       케일은 눈을 부릅뜨고 검을 지지대 삼아 일어났다.

         

       “후우, 후우…….”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런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는 체력이 없다. 아즈라엘의 공격을 받아내고 붉은 선풍까지 정면으로 맞아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면 이들을 지키기는커녕 사이좋게 당할 뿐이다.

         

       “팔이 하나 날아간 건 아쉽지만, 엑시드의 마스터랑 백귀까지 잡아가면 좋은 수확이지.”

         

       지금 이 자리에서 카아락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케일도, 셀다스도, 카자르도 만신창이가 된 상태.

         

       “그럼 다들 한 번에 보내줄게.”

         

       카아락이 주술을 외치려던 그 순간.

         

       쿠구구구궁――!

         

       “뭐야?!”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린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카아락은 넘어지며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큽, 이게 대체?!”

         

       쩌적, 쩌적! 지면이 이곳저곳으로 갈라지며 붕괴한다.

         

       “…설마 진 바렌베르크가!”

         

       카아락이 눈을 부릅뜨고 다른 곳을 보던 사이, 빈틈을 타 케일이 외쳤다.

         

       “파란 머리! 너는 알아서 도망쳐라!”

         

       케일은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서둘러 일으켜 카자르와 프란체의 허리를 잡아 양쪽으로 들었다.

         

       빠득, 이를 악물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 전신에 오러를 활성화했다.

         

       “크윽!”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내상이 너무 심하다. 하지만 지금은 참는 수밖에 없다.

         

       “공녀, 마법사. 정신이 아찔해도 참으시오.”

         

       콰오! 번개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케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욱…….”

         

       셀다스도 덜덜 떨리는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그림자로 변하며 사라졌다.

         

         

       * * *

         

         

       새하얀 안개 속에서 감각이 차단되어 상대의 위치를 알 수 없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검이 튀어나오고 폭발이 일어난다. 오러로 추적해서 반격을 하려고 해도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그 탓에 내 상체는 대검에 베인 상처와 폭발을 직격으로 맞아 검게 그을린 흔적으로 가득했고, 왼쪽 허벅지에는 세로로 15cm가량의 구멍이 뚫렸다.

         

       “후우.”

         

       그래. 인정한다. 이놈들은 생각 없이 우리를 습격한 게 아니다. 나를 상대할 수 있는 완벽한 전술을 짜왔다.

         

       “와, 우리가 그 진 바렌베르크를 잡는 거야?”

       “아직 모르니까 집중해라.”

       “라하트 할배는 항상 진지하더라.”

       “아키온. 지금은 조용히 있어라.”

         

       나를 묶어둔 놈은 총 넷. 신체를 강화시키는 라하트와 아키온이라 불리는 폭렬술사. 그리고 대검을 휘두르는 알렉산드로. 거기에 이 안개를 뿌리는 헤이닐까지.

         

       초월자에 근접한 네 명을 힘 조절하면서 싸우는 건 쉽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이놈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프란체와 카자르가 휘말릴지도 모른다.

         

       ‘위치만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숨을 헐떡이며 바닥을 바라보고 있자 알렉산드로가 비웃었다.

         

       “이제 대륙제일검은 나 아니야? 크하핫!”

       “집중해라. 아직 진 바렌베르크는 멀쩡하다.”

       “저 상태면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은데?”

         

       잔뜩 신나서 떠들고 있는 그들을 상대로 나는 물었다.

         

       “공녀님은… 어떻게 됐지…?”

         

       완벽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이놈들은 내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아, 데카르트 공녀? 지금쯤 죽지 않았을까?”

       “그렇네. 칠성의 최강인 카아락이 갔으니까.”

       “백귀도 카아락은 못 이길 거야.”

         

       저렇게 말해도 프란체는 괜찮을 거다. 케일도 있고 카자르도 있다.

         

       카아락이라는 놈이 아무리 강해도 그 둘을 상대하며 프란체를 죽이는 건 불가능. 거기에 프란체도 흑마법을 다룬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카자르가 말한 마력을 방해하는 놈인데. 그 정체는 감각을 차단하는 헤이닐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헤이닐은 여기 있으니 전투에는 문제 없겠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우리가 있는 곳은 마차가 있던 곳인가?”

         

       이 질문은 안개 속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는 헤이닐이 답했다.

         

       “아니, 한참 먼 곳이지. 애초부터 너를 떨어트리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런가. 그럼 카자르와 프란체가 휘말릴 일은 없겠군. 나는 피식 웃었다.

         

       “뭐지? 죽을 때가 돼서 웃음이 나오나?”

         

       헛소리는 무시하고. 나는 검을 역수로 쥔 채 높이 들었다. 지금 내가 담을 수 있는 모든 오러를 모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진 바렌베르크의 오러가 다시 움직인다!”

       “다시 전술을 가동해!”

         

       내가 오러를 활성화한 동시에 이미 놈들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위치를 알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 일대의 전체를 날려버리면 되니까.

         

       “친절하게 답해줘서 고맙다…!”

         

       오러가 검 끝으로 모여 빛나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모아야 한다.

         

       “쓸데없는 짓을!”

         

       촤악! 대검이 내 등을 난도질했다. 그러나 나는 검을 놓지 않았고, 오러를 계속해서 흘려 넣었다.

         

       “미친놈…!”

       “아키온! 폭발을!”

         

       콰앙――!

         

       거대한 폭발이 나를 집어삼켰다.

         

       “미친, 멀쩡하잖아?”

       “젠장, 다 같이 공격을 퍼부어!”

         

       쿠구구구―!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를 가진 오러가 모이며 주변이 중압감에 짓눌렸다.

         

       “이게 뭐야…!”

       “아까까진 이러지 않았잖아!”

       “다들 침착해라! 천천히 처음부터…!”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아나? 오러에는 성질이 존재한다.”

         

       내 말에 다들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미쳐버렸나?”

         

       나는 계속해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에덴 데카르트는 불꽃. 카서스 페르시아는 빙결. 케일은 전류지.”

         

       우우웅…! 새하얀 오러가 십자의 모양을 이루며 초신성처럼 빛났다. 내가 모을 수 있는 오러는 다 모였다.

         

       “그럼 나는 뭐라고 생각하나?”

         

       압도적인 오러에 짓눌린 놈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중압감에 입도 뻥긋 못해 정적이 흘렀다.

         

       “너희들도 친절하게 대답해 줬으니 나도 답을 알려주지. 내 오러의 성질은 소멸이다.”

         

       서걱! 바닥에 역수로 쥔 검을 꽂음과 동시에.

         

       쿠구구구궁―――!

         

       오러가 폭발해 지면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미친!”

       “다들 도망쳐!”

       “전부 후퇴한다!”

         

       재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나지만 소용없다.

         

       내 오러가 이 일대에 있는 놈들을 전부 소멸시켜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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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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