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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

        용봉지회의 의의는 그저 교분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다.

        ​

        장차 정파의 미래를 짊어질 후기지수의 모임답게 말뿐이 아닌 무로서 교분을 나누는 것.

        ​

        그것이 용봉지회의 취지.

        ​

        원작의 에피소드를 대강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이번 용봉지회가 내게 큰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 기회를 무당파의 도사와의 비무에 사용했다.

        ​

        본디 팽적산과 주인공이 비무를 벌이는 것이 용봉지회의 주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

        나와 가장 비슷한 검을 추구하는 문파.

        ​

        그리고 내가 벽을 깨는 데 가장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인물이 사는 문파.

        ​

        내게 도움이 될 무인은 팽가가 아니라 무당이었으니.

        ​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학운도사에게 포권지례를 했다. 

        ​

        “듣던 대로 훌륭한 검이었습니다.”

        ​

        “훌륭한 검이었습니다.”

        ​

        “두 분 다 아주 훌륭한 비무를 보여주시는군! 이 남궁휘, 감탄했소이다!”

        ​

        술에 취해 흥분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술김에 내공까지 담았는지 귓속이 아려왔지만 손님들은 아파하는 대신 껄껄 웃으며 그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

        “이런 비무를 볼 수 있다니, 오길 잘했군!”

        ​

        “비무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몸이 근질거리는데!”

       

        “자네, 나랑 한 번 해보겠나?”

        ​

        “좋지!”

        ​

        “하기로 했으면 바로 나오게나! 두 분이 아주 정갈하게 비무를 벌인 덕에 치워야 할 것도 없으니!”

        ​

        저 녀석 은근히 사회자 체질이라니까. 

        ​

        나는 자연스럽게 학운 도사와 함께 옆으로 물러나 말을 걸었다. 내 목적은 아직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으니까.

        ​

        “훌륭한 검이었습니다. 비무대회에서 부딪히지 못한 것이 아쉬워지는군요.”

        ​

        “저도 감탄했습니다. 서역에도 이런 검법이 있다니…오랜 세월 철저하게 정련된 검법인 것이 동작 하나하나에 느껴집니다.”

        ​

        “그렇습니까?”

        ​

        “무예라는 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많은 이의 손을 거쳐 개량되는 법이니, 긴 시간을 거쳐 발전해온 검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

        특히 저희 같은 유검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유검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니 말입니다.“

        ​

        학운 도사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대부분의 검리는 비교적 경지가 낮을 때에도 효과적이지만, 검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유검은 숙달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써먹기가 힘든 검이었다.

        ​

        상대의 힘을 흘려내고, 그 힘을 역이용해 적에게 반격하는 기술은 높은 숙련도를 요구했으니까.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검법.

        ​

        그렇기에 유검은 수련과 경험을 오래 쌓아야만 유의미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

        그러니 무당의 무공이 대기만성의 특징을 가지는 거고.

        ​

        기사들의 검은…음. 까놓고 말하면 검리는 복잡할지언정 검초는 기본 아츠랑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니 어설프게나마 써먹을 순 있었다.

        ​

         애초에 기사들의 주무장은 랜스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

        메인이 아닌 아츠가 어려워서는 안 되니까. 애초에 유럽 기사들이 아츠를 대하는 자세부터가 ‘기본기를 극한으로 연마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니까.

        ​

        기사 아츠를 정립시킨 롤랑 경이 했던 말이었던가?

        ​

        “이런 검을 만든 무당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

        “하하, 시간 날 때 찾아오시면 됩니다. 무당은 손님을 거부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찾아오시면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

        “강호의 문물을 익힐 겸 한번 방문해보겠습니다.”

        ​

        “그럼 저는 이만…잘 즐기다 가시길.”

        ​

        무당에 갈 명분을 적당히 만든 건 성공인가. 무당에 가더라도 평범한 방문객보다는 내부인의 안내를 받아 돌아다니는 게 훨씬 나을 테니, 이 정도면 안배 자체는 제대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

        이러고 정작 그 도사를 못 찾으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지금 신경 쓸 거리는 아니었다.

        ​

        내가 오길 애타게 기다리는 혜령이를 놀아주러 가야 하니까.

        ​

        “씁.”

        ​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혜령이와 목경이에게 다가갔다. 둘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앉아 대화조차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

        혜령이야 목경이를 어째서인지 경계하는 눈치지만, 목경이는 그냥 붙임성이 없어서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

        “혜령아. 너무 오래 기다렸나?”

        ​

        “아니에요! 헤헤. 그런데 무슨 이야기 나누신 거예요?”

        ​

        “그냥 평범하게 검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

        ​

        “헤헤, 엄청 열심이시네요!”

        ​

        “무인이 무공에 대한 이야기 말고 할 게 있나.”

        ​

        사심이 섞이긴 했지만, 무인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소재가 무공이니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당장 혜령이도 납득한 모양인지 뚱한 얼굴로 수긍하고는, 팔을 파닥이며 말했다.

        ​

        “아저씨, 이제 우리 뭐해요?”

        ​

        “글쎄.”

        ​

        최우선 목표인 무당파 무인과 친분 다지기는 성공했고, 이제는 인맥을 더 늘리거나 적당히 요리나 맛보다 돌아가면 될 것 같은데.

        ​

        “뭐하고 싶은 거 있어?”

        ​

        “음~잘 모르겠어요! 여기선 먹고 마시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이고…”

        ​

        “비무는?”

        ​

        “남자들 시선이 너무 몰려서 싫어요.”

        ​

        그거야 뭐.

        ​

        혜령이의 외모를 생각하면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저 철딱서니 없는 행동에 남자들 가슴에 불을 지르는 요소가 그득하니 차 있었으니.

        ​

        여기 사람들이랑 다르게 피부가 좀 어둡긴 하지만, 미녀의 피부가 어두운 것 정도야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니 큰 문제 될 것도 없고.

        ​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친구를 사귀는 게 좋긴 할 텐데.”

        ​

        나는 젓가락을 집어 들곤 동파육의 야들야들한 살코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

        음. 역시 남이 사주는 요리만큼 맛있는 게 없다니까.

        ​

        “친구…저는 없어도 괜찮아요.”

        ​

        생각보다 낯을 가리는 걸까,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내가 부모도 아닌데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친구라는 게 억지로 사귀려고 해서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다면 목경이라도…”

       

        “…아저씨는 저랑 목경 공자랑 친구가 되는 걸 원하는 거예요?”

       

        “적어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척져서 좋을 게 없으니. 가능하면 목경이를 최대한 묶어두고 싶으니…저만한 인재를 또 어디서 구하라고.

        ​

        “왜요?”

        ​

        “별일 없다면 자주 보게 될 사이인데 사이가 나쁘면 껄끄러워지니까.”

        ​

        내가 어떻게든 목경이를 안고 가는 이상 둘의 사이가 나쁘면 분위기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질 테니, 나로서는 혜령이가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고 친해졌으면 했다.

        ​

        “아저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

        혜령이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당연하게도 목경이를 쳐다보는 시선. 목경이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신경이 쓰이는지, 혜령이를 쳐다보았다.

        ​

        “저는 혜령 소저와 척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

        반대로 그렇게 친해지고 싶지도 않다는 건가. 

        ​

        복수를 이루는 것이 목표인 목경이 입장에서야 굳이 다른 사람과 사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하지. 원래 한 감정에 매몰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

        그나마 나와의 인연의 실을 놓지 않고 있는 건 내가 은인이기 때문일 거다. 일단 내가 목경이 편의를 봐주는 것도 있고. 어쩌면 복수의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

        ​

        “그러니까 둘 다 너무 서먹해 하지 말라고. 무림 동도들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

        “혜령소저, 잘 부탁합니다.”

        ​

        “…잘 부탁해요.”

        ​

        …엎드려 절받기식 인사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돌아가자.”

        ​

        볼일은 끝났으니 가서 쉬기나 해야지.

        ​

        내 말에 혜령이와 목경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더 있고 싶으면 있어도 돼.”

        ​

        “아저씨 가면 저도 갈 거예요.”

        ​

        “예의상 온 것일 뿐, 굳이 남아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

        니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가자.”

        ​

        ————————

        ​

        “사자검협이야.”

        ​

        “듣던 대로 체구가…”

        ​

        “옆에 해남화를 끼고 다닌다더니…”

        ​

        “아저씨, 다들 아저씨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

        “단번에 유명인이 됐네.”

        ​

        기쁘다기보단 좀 귀찮네.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거 아니겠지. 

        ​

        혜령이를 노리는 놈이 나한테 비무 신청을 한다거나 하는 일 말이야. 그런 멍청한 놈이 무림맹에서 밥을 먹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

        “아저씨, 그래서 이제 뭐 할 거예요?”

        ​

        “수련.”

        ​

        “계속 검만 휘두르는 거예요?”

        ​

        “아니.”

        ​

        직인급의 수련은 검을 반복적으로 휘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

        목숨을 건 실전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성장해나가는 거지.

        ​

        “오랜만에 몸을 좀 풀고 올 생각이다.”

        ​

        “몸을 풀어요?”

        ​

         원작대로 진행된다면, 용봉지회가 끝나고 보름 후 즈음에 마두가 하나 나타난다.

        ​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마두, 혈랑도 곽무삼.

        ​

        정확히는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지만…어쨋든, 그놈이 사고를 치기 전에 먼저 잡을 생각이었다.

        ​

        원작대로 흘러간다면 놈은 무한 북서쪽에 있는 경산 아래 마을 주민들을 전부 죽여버릴 테니까. 

        ​

        수련과는 별개로,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

        “저도 갈래요!”

       

        “마음대로 해라. 대신 나한테서 너무 멀어지지 말고.”

        ​

        “네!”

       

        대답은 잘하네 대답은.

        ​

        나는 피식 웃으며 소면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장례식 갔다가 내일 또 가야해서 내일 업로드는 다소 늦거나 못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닷…

    시간은 최대한 맞춰볼게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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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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