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지회의 의의는 그저 교분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다.
장차 정파의 미래를 짊어질 후기지수의 모임답게 말뿐이 아닌 무로서 교분을 나누는 것.
그것이 용봉지회의 취지.
원작의 에피소드를 대강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이번 용봉지회가 내게 큰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 기회를 무당파의 도사와의 비무에 사용했다.
본디 팽적산과 주인공이 비무를 벌이는 것이 용봉지회의 주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와 가장 비슷한 검을 추구하는 문파.
그리고 내가 벽을 깨는 데 가장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인물이 사는 문파.
내게 도움이 될 무인은 팽가가 아니라 무당이었으니.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학운도사에게 포권지례를 했다.
“듣던 대로 훌륭한 검이었습니다.”
“훌륭한 검이었습니다.”
“두 분 다 아주 훌륭한 비무를 보여주시는군! 이 남궁휘, 감탄했소이다!”
술에 취해 흥분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술김에 내공까지 담았는지 귓속이 아려왔지만 손님들은 아파하는 대신 껄껄 웃으며 그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비무를 볼 수 있다니, 오길 잘했군!”
“비무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몸이 근질거리는데!”
“자네, 나랑 한 번 해보겠나?”
“좋지!”
“하기로 했으면 바로 나오게나! 두 분이 아주 정갈하게 비무를 벌인 덕에 치워야 할 것도 없으니!”
저 녀석 은근히 사회자 체질이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학운 도사와 함께 옆으로 물러나 말을 걸었다. 내 목적은 아직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으니까.
“훌륭한 검이었습니다. 비무대회에서 부딪히지 못한 것이 아쉬워지는군요.”
“저도 감탄했습니다. 서역에도 이런 검법이 있다니…오랜 세월 철저하게 정련된 검법인 것이 동작 하나하나에 느껴집니다.”
“그렇습니까?”
“무예라는 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많은 이의 손을 거쳐 개량되는 법이니, 긴 시간을 거쳐 발전해온 검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특히 저희 같은 유검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유검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니 말입니다.“
학운 도사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대부분의 검리는 비교적 경지가 낮을 때에도 효과적이지만, 검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유검은 숙달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써먹기가 힘든 검이었다.
상대의 힘을 흘려내고, 그 힘을 역이용해 적에게 반격하는 기술은 높은 숙련도를 요구했으니까.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검법.
그렇기에 유검은 수련과 경험을 오래 쌓아야만 유의미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그러니 무당의 무공이 대기만성의 특징을 가지는 거고.
기사들의 검은…음. 까놓고 말하면 검리는 복잡할지언정 검초는 기본 아츠랑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니 어설프게나마 써먹을 순 있었다.
애초에 기사들의 주무장은 랜스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메인이 아닌 아츠가 어려워서는 안 되니까. 애초에 유럽 기사들이 아츠를 대하는 자세부터가 ‘기본기를 극한으로 연마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니까.
기사 아츠를 정립시킨 롤랑 경이 했던 말이었던가?
“이런 검을 만든 무당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하하, 시간 날 때 찾아오시면 됩니다. 무당은 손님을 거부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찾아오시면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강호의 문물을 익힐 겸 한번 방문해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잘 즐기다 가시길.”
무당에 갈 명분을 적당히 만든 건 성공인가. 무당에 가더라도 평범한 방문객보다는 내부인의 안내를 받아 돌아다니는 게 훨씬 나을 테니, 이 정도면 안배 자체는 제대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러고 정작 그 도사를 못 찾으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지금 신경 쓸 거리는 아니었다.
내가 오길 애타게 기다리는 혜령이를 놀아주러 가야 하니까.
“씁.”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혜령이와 목경이에게 다가갔다. 둘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앉아 대화조차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혜령이야 목경이를 어째서인지 경계하는 눈치지만, 목경이는 그냥 붙임성이 없어서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혜령아. 너무 오래 기다렸나?”
“아니에요! 헤헤. 그런데 무슨 이야기 나누신 거예요?”
“그냥 평범하게 검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
“헤헤, 엄청 열심이시네요!”
“무인이 무공에 대한 이야기 말고 할 게 있나.”
사심이 섞이긴 했지만, 무인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소재가 무공이니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당장 혜령이도 납득한 모양인지 뚱한 얼굴로 수긍하고는, 팔을 파닥이며 말했다.
“아저씨, 이제 우리 뭐해요?”
“글쎄.”
최우선 목표인 무당파 무인과 친분 다지기는 성공했고, 이제는 인맥을 더 늘리거나 적당히 요리나 맛보다 돌아가면 될 것 같은데.
“뭐하고 싶은 거 있어?”
“음~잘 모르겠어요! 여기선 먹고 마시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이고…”
“비무는?”
“남자들 시선이 너무 몰려서 싫어요.”
그거야 뭐.
혜령이의 외모를 생각하면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철딱서니 없는 행동에 남자들 가슴에 불을 지르는 요소가 그득하니 차 있었으니.
여기 사람들이랑 다르게 피부가 좀 어둡긴 하지만, 미녀의 피부가 어두운 것 정도야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니 큰 문제 될 것도 없고.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친구를 사귀는 게 좋긴 할 텐데.”
나는 젓가락을 집어 들곤 동파육의 야들야들한 살코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음. 역시 남이 사주는 요리만큼 맛있는 게 없다니까.
“친구…저는 없어도 괜찮아요.”
생각보다 낯을 가리는 걸까,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내가 부모도 아닌데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친구라는 게 억지로 사귀려고 해서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다면 목경이라도…”
“…아저씨는 저랑 목경 공자랑 친구가 되는 걸 원하는 거예요?”
“적어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척져서 좋을 게 없으니. 가능하면 목경이를 최대한 묶어두고 싶으니…저만한 인재를 또 어디서 구하라고.
“왜요?”
“별일 없다면 자주 보게 될 사이인데 사이가 나쁘면 껄끄러워지니까.”
내가 어떻게든 목경이를 안고 가는 이상 둘의 사이가 나쁘면 분위기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질 테니, 나로서는 혜령이가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고 친해졌으면 했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혜령이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당연하게도 목경이를 쳐다보는 시선. 목경이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신경이 쓰이는지, 혜령이를 쳐다보았다.
“저는 혜령 소저와 척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친해지고 싶지도 않다는 건가.
복수를 이루는 것이 목표인 목경이 입장에서야 굳이 다른 사람과 사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하지. 원래 한 감정에 매몰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나마 나와의 인연의 실을 놓지 않고 있는 건 내가 은인이기 때문일 거다. 일단 내가 목경이 편의를 봐주는 것도 있고. 어쩌면 복수의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둘 다 너무 서먹해 하지 말라고. 무림 동도들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혜령소저,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해요.”
…엎드려 절받기식 인사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자.”
볼일은 끝났으니 가서 쉬기나 해야지.
내 말에 혜령이와 목경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있고 싶으면 있어도 돼.”
“아저씨 가면 저도 갈 거예요.”
“예의상 온 것일 뿐, 굳이 남아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니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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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검협이야.”
“듣던 대로 체구가…”
“옆에 해남화를 끼고 다닌다더니…”
“아저씨, 다들 아저씨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단번에 유명인이 됐네.”
기쁘다기보단 좀 귀찮네.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거 아니겠지.
혜령이를 노리는 놈이 나한테 비무 신청을 한다거나 하는 일 말이야. 그런 멍청한 놈이 무림맹에서 밥을 먹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저씨, 그래서 이제 뭐 할 거예요?”
“수련.”
“계속 검만 휘두르는 거예요?”
“아니.”
직인급의 수련은 검을 반복적으로 휘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건 실전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성장해나가는 거지.
“오랜만에 몸을 좀 풀고 올 생각이다.”
“몸을 풀어요?”
원작대로 진행된다면, 용봉지회가 끝나고 보름 후 즈음에 마두가 하나 나타난다.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마두, 혈랑도 곽무삼.
정확히는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지만…어쨋든, 그놈이 사고를 치기 전에 먼저 잡을 생각이었다.
원작대로 흘러간다면 놈은 무한 북서쪽에 있는 경산 아래 마을 주민들을 전부 죽여버릴 테니까.
수련과는 별개로,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저도 갈래요!”
“마음대로 해라. 대신 나한테서 너무 멀어지지 말고.”
“네!”
대답은 잘하네 대답은.
나는 피식 웃으며 소면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오늘 장례식 갔다가 내일 또 가야해서 내일 업로드는 다소 늦거나 못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닷…
시간은 최대한 맞춰볼게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