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7

       필리우트 제국과 수인족의 영토를 가르는 기준은 하천이다.

         

       엘랑카야 산맥에서부터 시작한 수원은 무수한 물줄기를 따라 브륄리움 대폭포로 향한다. 이 사이에 위치한 한강보다도 널따란 하천을 두고 두 나라는 국경 대신 써먹기로 합의했다.

         

       이런 물길은 전통적으로 좋은 무역로였다. 이를 알아본 요호(妖狐)는 10년 전부터 제국인들과 거래를 시작했다. 살리에르 백작이 이쪽으로 영지를 옮겼을 즈음의 일이었다.

         

       살리에르 백작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야만족으로 취급했던 수인족을 인격체로 대우했다. 인간과의 물물교환을 허락했고, 여름마다 수해가 발생하면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그 덕에 인간과 요호의 관계는 그럭저럭 좋은 상태. 수인족의 영토로 가겠다는 날 로테가 심하게 붙잡지 않은 것에는 그런 뒷배경이 있었다.

         

       지금 건너고 있는 도개교 또한 살리에르 백작의 배려에서 만들어졌다. 세 개에 달하는 철제 도개교들은 수인족과 제국인들의 원만한 현 관계를 상징한다.

         

       “항상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강을 따라 내려가거나 혹은 거슬러 올라가는 나룻배들이 이따금씩 보인다. 그 풍경을 눈에 담으며 수인국으로 걸어갔다. 이상한 배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쟤 뭐야.”

         

       아니, 배가 이상한 게 아니라 탑승자가 이상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녀석인데.

         

       제 성격처럼 이리저리 꼬여있는 짙은 보랏빛 머리카락. 지계마도의 축복을 받은 눈동자는 흑진주를 품은 것처럼 은은하게 빛났고, 얼굴은 나이에 비해 한참은 동안인지라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무엇보다도 체구가 작은 소녀였다. 높게 쳐 줘도 140cm가 될까 말까 한 키였다.

         

       “프레이잖아.”

         

       프레이 셸커니. 이번에 내가 만나고자 했던 녀석이다.

         

       [주인님 친구가 왜 저런 곳에서 배를 몰고 있는 거죠?]

         

       “앗!”

         

       때마침 꼬맹이도 날 발견하고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이내 선실 내부로 뛰쳐 들어갔다.

         

       [왜 저러는 걸까요?]

         

       합당한 의문이었다.

         

       나 또한 버멜의 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프레이가 날 보자마자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겠지.

         

       간단히 얘기해서 일종의 ‘이벤트’가 발생한 것이다. 별다른 저항 없이 수인국에 진입할 수 있는 이벤트 말이다.

         

       양장본을 품에 넣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내 사전 동작을 곁에서 지켜보던 양장본은 한껏 불안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 하시게요?]

         

       “보면 몰라? 여기서 뛰어내리려고.”

         

       [네?]

         

       나는 도개교 장판을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해다. 추진을 얻기 위함이었다.

         

       [미, 미, 미쳤어요?!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저 배까지 닿는다는 걸 어떻게 아는데요?]

         

       다 아는 수가 있다.

         

       성공 여부를 가늠하려면 배와 다리 사이의 거리, 그리고 상대속도를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연산을 금안족은 무의식의 범주에서 처리한다. 쉽게 말해서 직감의 영역이다.

         

       ‘이건 된다!’ 하면 진짜 된다는 소리.

         

       [제국에는 다윈상 같은 거 없나.]

         

       “이상한 소리 말고.”

         

       -쿠웅!

         

       양장본의 밋밋한 소리와 함께 선체에 안정적으로 착지한다.

         

       갑작스러운 중량 증가에 대한 복원력으로 배가 상하좌우로 흔들렸다. 잘못하면 넘어질 뻔했다.

         

       “후우.”

         

       무게중심을 잡으며 숨을 고루 쉬었다.

         

       [남의 선박에 불법 침입이라니. 해적이나 할 법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시는군요.]

         

       “욕을 좀 먹더라도 아예 싸우는 것보다야 낫지.”

         

       나는 선실 문손잡이를 돌렸다. 내부에선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야야….”

         

       문을 완전히 열어젖히자 프레이가 선실 한복판에 넘어진 채로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궁둥이를 쓰다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급하게 움직이려다가 엉덩방아를 찧은 모양이다.

         

       “너 뭐하냐?”

       “너, 너야말로….”

         

       허겁지겁 자신의 머리를 가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자그마한 여우귀가 나 있다. 그녀의 종족을 알기에는 저거면 충분했다.

         

       프레이는 선반 위에 올려두었던 모자를 재빨리 눌러썼다. 아카데미에서 늘 쓰고 있던 고깔모자였다. 룸메이트 말로는 잠을 잘 때조차도 벗은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빽 소리를 내지르며 프레이가 고막을 위협했다. 그녀는 자신의 모자를 더욱더 깊이 눌러썼다. 어떻게든 당황한 기색을 정체와 함께 숨겨보려고 했지만….

         

       “꼬리 다 보인다.”

       “우와아악─!!”

         

       이젠 거의 울상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프레이는 모자를 벗어 쫑긋 솟아있는 두 귀를 드러냈다. 영락없는 여우의 귀였다.

         

       “들켰네….”

         

       한탄 섞인 목소리였다.

         

       살리에르 영지에서 잘 받아줬으니까 망정이지, 제국에서 수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나쁘다.

         

       틈만 나면 약탈을 일삼는 야만족, 제국에게 있어 수인족은 더도 말고 덜도 만 오랑캐였다.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북서쪽이나 남쪽은 지금도 수인들이 수탈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날 어떻게 할 거야. 친구들한테 이를거야?”

       “설마.”

       “거, 거짓말하지 마. 내가 요호라는 거 너도 싫잖아. 너도 인간이니…….”

         

       뚝. 거기까지 말하던 프레이는 몽글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멀뚱한 눈이었고, 멍청한 눈이기도 했다. 내던져진 시선은 내 눈동자에 맞닿았다.

         

       내가 한 마디 던졌다.

         

       “난 금안족인데?”

       “아, 그랬지….”

         

       수인족과 마찬가지로 과거부터 핍박받았던 종족.

         

       마법도 못 부리고 머릿수도 딸린다. 그랬기에 한창 마법만능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에는 교회로부터 탄압받기도 했다. 마수가 낳은 자식이라는 오명까지 써 가며 말이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지만.

         

       “내가 너 요호라고 말해봤자 나한테 좋아지는 게 뭐가 있는데?”

       “그, 그야 수인은….”

       “그래서 드워프라고 구라를 치고 다녔다고?”

       “혼혈이라니까!”

       “둘이 유전적으로 교배 불가능한 거 알아?”

         

       이쪽 세계 생물학의 역사를 담은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인간은 인간끼리만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엘프는 엘프끼리, 요호는 요호끼리만 자손을 남길 수 있다. ‘하프(Half)’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전자 차이 때문이다. 호랑이와 사자가 자연에서 교배되진 않잖아?

         

       “으엑.”

         

       프레이는 평소처럼 멍청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당황할 때 내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혼자서 배 타고 뭐 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까부터 등 뒤로 뭐 감추고 있는 거 다 보이거든.”

       “아닌데? 아무것도 안 숨겼는데?”

         

       나는 한숨을 쉬며 뒤쪽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화물이었다.

         

       “이, 이거?”

       “뭐 아편이나 그런 거 아니야?”

       “아편은 무슨…! 이건 마력초야, 마력초! 신령님에게 직접 받은…. 허억……!!”

         

       술술 정보를 불어대던 꼬맹이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고는 금세 입을 틀어막았다.

         

       “신령님?”

       “아무것도 아니야!”

       “신령님이라면 낙룡봉에 사는 그 용이잖아.”

       “너… 우리 신령님을 알아?”

         

       요호족에게 신령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존재는 이 근처에서 한 녀석밖에 없다.

         

       구천지대계 1석, 방사룡 요르문간드.

         

       요르문간드는 마왕군이다. 마왕이 없는 지금 상황에선 가장 강한 존재.

         

       그만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르문간드는 마왕군에 비협조적이다. 그녀는 마왕군 이전에 용족이었던 것이다.

         

       동료애가 강한 용족은 수인족의 일파로 분류한다. 동포가 아니라면 자비가 없지만, 거꾸로 같은 종족에 속한다면 자비심과 의협심을 불태워 모든 걸 희생하려고 한다.

         

       이 호구같은 마인드는 이 세계 드래곤들의 천성이다. 요르문간드도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거겠지.

         

       그 덕에 피치블렌드 산 근처에 사는 요호족은 요르문간드의 비호를 받는다. 요호족이 산자락에 공물을 바치면 그걸 가져와 식량으로 삼으며 연명한다.

         

       이 꼬맹이도 마찬가지겠지.

         

       “얼추 알긴 아는데. 낙룡봉 전설은 유명하잖아.”

       “그렇구나!”

       “그러면 그 마력초는 공물인가 뭔가 하는 거겠네.”

       “응! 나눠드리고 인간들에게도 팔러 가는 길이었어. 이 강 따라 내려가면 작은 마을이 하나 있거든.”

         

       쉽게 말해 납품업을 하고 있단 소리였다.

         

       잠깐만.

         

       “일부 장소에서만 교역하는 제국이고, 네가 파는 건 마력초. 어떻게 보면 반쯤 밀무역이지?”

       “아마?”

         

       지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뭔가 기억나려고 하는데 금세 다른 사고의 흐름에 막혔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

       “왜.”

       “이거 팔고 다시 올라가면 나도 수인족 마을에 발 들이게 해 줘.”

       “…금안족이면 문제는 안 되는데. 왜?”

       “거기서 할 일이 있거든.”

         

       ─ 내 동포들을 잘 보살펴주면 네가 원하는 고농축 우라늄을 양껏 만들어주겠다. 이걸로 계약은 성립, 무르기 없기다. 이제 충분하느냐?

         

       그야 네 신령님과 한 계약이 있으니까.

         

       요르문간드와 체결한 계약은 두루뭉술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기약 없는 애매한 조항에 내가 OK를 외친 이유는 버멜의 공략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그.

         

       그가 말한 ‘요르문간드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란 바로.

         

       이 꼬맹이가 자살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