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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전방 가시거리 끝에 어미고래가 있습니다!”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선원이 외쳤다. 분홍 아기고래를 돌보던 수의사 등의 인력들이 동시에 저 너머를 바라봤다.

         

       구름이 푸른 도화지의 하얀 물감처럼 번진 광경 사이로 눈에 띄는 핑크핑크 하늘고래가 유영하고 있었다. 거체가 헤엄치자 충격파만으로 구름이 흩어졌다.

         

       같은 종.

         

       누가 봐도 부모.

         

       파스텔은 덜덜 떨었다.

         

       으아아.

         

       어미고래.

         

       하늘하늘 고래고래.

         

       허억.

         

       하늘하늘이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고?!

         

       완전 하늘이 무너질 사건!

         

       우르르 쾅쾅!

         

       으아아!

         

       그런데 혼란한 마음과는 별개로 자신이 총책임자이기 때문에 최대한 침착하게 통솔했다.

         

       “모두 진정하세요! 계획대로만 하면 됩니다! 항행 중지! 각자 자리에서 대기하세요! 교수님, 고래 탐사선은 어딨죠?”

       “저기 있군요!”

         

       하얗고 푸른 보호색으로 덧칠된 학부 비공정이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하늘고래를 관찰 중이었다.

         

       “평상시보다 먼 거리입니다. 생각보다 어미고래가 사나운 상태인가 보군요.”

         

       으에, 안 좋은 소식.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예상 범주입니다!”

         

       이곳이 하늘섬의 법적 영공이긴 해도 사람 거주지와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태생이 온순한 하늘고래가 데려온 아기고래를 무시하고 괜히 먼 하늘섬까지 날아가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파스텔은 갑판에 드러누워 구운 새우나 받아먹는 아기고래와 화난 듯이 구름을 부수고 다니는 어미고래를 번갈아 봤다.

         

       어째 둘 다 반응이 없는데.

         

       아기고래가 철제함에 갇혀 있을 시점부터 부모와 자식이 진작 소통 가능했다는 건 악마님을 포함해 관련 학부 교수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철제함의 마법진까지 조사해서 검증도 했다.

         

       어미고래는 못 구하는 게 아니라 안 구하고 있었다.

         

       아기고래가 정말 죽을 위기라면 또 달라지겠지만 하늘고래는 태생부터 사기인 동물이라 굶고 피부 좀 갈라진다고 해서 안 죽는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코앞까지 왔는데 변화가 없는 건 당혹스럽네.

         

       너희 원래 이리 차가운 가족 관계야?

         

       아빠가 가산 하나까지 팔아먹고 튄 우리 집안이랑 똑같네.

         

       파스텔은 드러누운 아기고래에게 다가갔다.

         

       “상태는요?”

         

       수의사가 고래의 분홍 피부를 문지르며 감탄했다.

         

       “멀쩡합니다. 하늘고래를 돌본 적은 없어 사례만을 참고했는데 이 정도 회복력일 줄은 몰랐군요. 마석 몇 개 좀 먹었다고 몸이 회복되다니.”

         

       구조하고 바로 항행해서 날아온 건데 그사이에 아기고래는 정말 상처 하나 없이 쌩쌩해졌다.

         

       『확실히 하늘고래가 대단하긴 하군.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새끼 상태에서 대기 중의 마기만 섭취해도 거대한 성체가 될 수 있다고는 들었다만 마석을 먹였다고는 해도 그렇지 그새 회복될 줄이야.』

         

       헤에.

         

       아기고래가 분홍 혓바닥을 길쭉하게 내밀어 구운 새우를 가리켰다. 일꾼으로 따라온 고학년생이 새우를 바구니째 입에 털어줬다.

         

       와르륵.

         

       우물우물.

         

       확실히 엄청 괜찮아 보영.

         

       “나아서 다행이야!”

         

       긴장이 살짝 풀린 파스텔은 다른 바구니의 구운 새우를 손에 들었다.

         

       아기고래가 눈동자를 굴려 힐끔 쳐다봤다. 그러더니 빨리 먹고 받아먹겠다는 양 입을 빠르게 우물거렸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파스텔은 구운 새우의 껍질을 까서 마석 가루를 톡톡 뿌렸다. 큼지막한 새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냠.

         

       담백한 속살이 입안을 채웠다. 소금 간이 하나도 안 됐지만 은은한 감칠맛이 탁월했다.

         

       허억.

         

       맛있어!

         

       아기고래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물거림을 멈추더니 파스텔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고양이 사료를 주워 먹는 집사를 보고 경악한 고양이 같은 표정이었다.

         

       파스텔은 덩달아 눈이 동그랗게 됐다. 서둘러 새우를 먹고 삼켰다.

         

       “고래 친구, 왜 그래? 나한테 할 말 있어? 혹시혹시 가정사라거나. 부모님과 사이가 왜 이렇게 됐는지라거나.”

         

       말하고 보니 꽤 실례되는 질문이라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궁금한 건 아니구!”

         

       그냐앙!

         

       아기고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료 주워 먹는 인간을 본 충격이 가셨는지 혓바닥으로 다음 바구니를 가리킬 뿐이었다.

         

       와르륵.

         

       우물우물.

         

       으이.

         

       먹보야, 먹보.

         

       『왜 고래와 대화를 시도하는 거냐. 고래는 사람 말을 할 줄 모른다.』

         

       그치마안 하늘고래 등위에서 만났던 아기새들과는 소통이 잘만 됐는데!

         

       『정 대화하고 싶으면 단답형 대답이 가능한 질문을 해라. 개체마다 다르긴 해도 경우에 따라선 사람의 의지를 이해하긴 할 테니.』

         

       허억.

         

       악마님 천재인가!

         

       일단 쉬운 질문부터.

         

       “고래 친구! 내가 질문할 테니까 대답해 봐! 대답은 날개 지느러미를 움직인다거나 하면 될 거야!”

         

       손가락으로 분홍색 날개 지느러미를 가리켰다.

         

       “알아들었으면 파닥파닥!”

         

       아기고래가 힐끔 쳐다봤다.

         

       정적이 흘렀다.

         

       아앗.

         

       파닥파닥이 뭔지 모르나?

         

       “양팔을 벌리고 이렇게이렇게.”

         

       파스텔은 손수 파닥파닥을 시범 보였다.

         

       “파닥파닥 파닥파닥.”

         

       아기고래가 절찬리 파닥파닥 중인 분홍색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상한 짓 하는 꼴을 잠자코 구경하더니 혓바닥을 쭉 내밀었다.

         

       앗, 혓바닥 소통?

         

       고래 입장에선 그게 더 편한가?

         

       혓바닥이 새우 바구니를 가리켰다.

         

       됐고 어서 먹을 거나 달라는 재촉이었다.

         

       우와앙!

         

       무시당한 파스텔은 울상이 됐다.

         

       나쁜 고래!

         

       완전 나쁜 고래!

         

       난 널 친구라 믿었는데!

         

       흐윽.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 상태면 기존 계획대로 상공 치료를 하지 않고 바로 어미고래에게 데려다줘도 되겠네요…….”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후작 각하의 기행에 혼란스러워하다가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다.

         

       “예예! 그렇습니다.”

       “바로 돌려보내죠. 뭔가 여기 있는 게 굉장히 편해 보이긴 하지만 어미고래 아래 있는 게 더 좋을 테니까요.”

         

       아기고래가 움찔했다.

         

       놀란 표정이었지만 살짝 삐진 파스텔은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먹던 새우의 껍질이 제대로 안 까져서 항의하는 표정일 거야.

         

       아기고래 데려다주기 계획을 실행했다. 학부의 고래 탐사선을 선회시켜 현장에서 빼고 아기고래의 상태를 재확인했다.

         

       “정말 다친 곳 하나 없군요!”

       “좋아요!”

         

       파스텔은 하얀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꼈다. 빗자루는 장인을 아예 비공정에 태워 그사이에 수리해 놨다.

         

       권력자 파스텔, 유능.

         

       “떴다 떴다 빗자루!”

         

       부우웅~.

         

       빗자루가 떠올랐다. 빗자루 끝에 연결된 밧줄도 올라가자 밧줄에 묶인 아기고래가 당겨졌다.

         

       꽁꽁 묶은 건 아니고 당기려는 의미로 묶은 밧줄이었다. 원래 계획은 치료된 아기고래가 어련히 부모에게 날아가는 시나리오였는데 어째 갈 생각을 안 하길래 억지로 움직이려는 거다.

         

       분홍색 아기고래가 갑판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버텼다. 밧줄이 팽팽해졌다.

         

       완강한 태도.

         

       오잉.

         

       “왜 그래? 혹시 속이라도 다쳐서 비행이 불가능한 거야?”

         

       살펴보기 어려운 곳이 다친 건가?

         

       공작 영애 앨시어가 신기해하며 고래에게 다가갔다.

         

       “아까 새우 먹겠다고 잠깐 비행했어. 먹기 편한 자세로 바꾸는 것처럼.”

       “그래?”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빗자루 출력을 좀 더 올렸다.

         

       그러자 버티던 아기고래가 밍기적대며 비행하기 시작했다. 어째 굉장히 가기 싫어하는 태도였지만 일단 움직이긴 했다.

         

       파스텔은 비상시에 빗자루 연료로 쓸 마석 자루를 마지막으로 살펴봤다.

         

       이상 없음.

         

       떨리는 손으로 빗자루 대를 꽉 쥐었다.

         

       침착한 표정으로 갑판 위의 사람들을 내려봤다.

         

       “제가 날아가면 지정된 위치까지 비공정을 선회하세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게 준비해 놓고요.”

       “예!”

         

       중진급 교수와 시선을 마주쳤다.

         

       “혹시 만약의 경우 제가 죽는다면 통솔 부탁드립니다. 호레이스 교수님께도 안부 인사 전해주세요.”

       “……예, 각하.”

         

       교수가 복잡해하는 얼굴로 끄덕였다.

         

       파스텔은 아직도 구름 부수며 화풀이 중인 어미고래를 돌아봤다.

         

       “갑니다!”

         

       빗자루 출력을 올렸다. 아기고래가 밍기적대며 따라 비행했다. 비공정도 선회하자 갑판이 단번에 멀어졌다.

         

       탁 트인 하늘이 반겨줬다. 바람이 몰아쳐 분홍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다.

         

       “이상 없음!”

         

       잘못하면 나만 화풀이로 죽을 거라는 사실만 빼면.

         

       “우와아앙!”

         

       보는 사람이 없어지자 파스텔은 책임자 모드를 포기하고 마음껏 울상이 됐다.

         

       “인생, 내 인생……!”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고래 친구가 어련히 날아갔으면 데려다주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는데에!

         

       하지만하지만 피해자에게 그런 강요를 하기도 너무 그렇고오!

         

       악마가 픽 웃었다.

         

       『어린 크래프트,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네 말대로 이젠 돈과 권력이 생겼으니 남에게 시켜도 충분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

         

       근래 들던 걱정이 덜어진 듯한 목소리였다.

         

       정작 파스텔은 악마님 말이 전혀 기쁘지 않았지만.

         

       “전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은데요!”

         

       누군가 대신 해주세요!

         

       『하지만 하지 않았지. 그런 것이다.』

         

       으아아!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손가락만 까닥하면 몇몇 인원이 비공정 타고 아기고래를 데려다 줄 텐데!

         

       설마설마 파스텔은 진짜 바보가 되어버린 걸까?

         

       설마설마 바보바보 파스텔은 이제 기정사실이야?!

         

       그런 거야?!

         

       그런 거야아?!

         

       으아아!

         

       이 정도면 바보바보바보 파스텔이야!

         

       구제불능!

         

       빗자루는 쾌속 질주했다.

         

       상당히 접근하자 꼬리지느러미의 충격파로 구름을 때려 부수던 어미고래가 행동을 멈췄다. 먼 거리인데도 보일 만큼 거대한 고래 눈동자가 물끄러미 응시했다.

         

       파스텔은 등줄기가 오스스 떨렸다.

         

       “부, 부, 부모님 되시죠? 고래 친구의.”

         

       마른침을 삼켰다.

         

       “이 거리에선 목소리가 안 들리려나~.”

         

       아하하…….

         

       어미고래가 거체를 움직였다. 다가오자 대기가 밀려나며 광풍을 만들어 냈다.

         

       파스텔은 강렬한 맞바람에 눈뜨기도 어려웠다.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마세요!”

         

       죽기 싫어……!

         

       빗자루를 잡고 오들오들 떨었다.

         

       그 와중에 악마가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흠. 시선이 널 향하고 있지 않군. 비공정도 아니고 하늘섬 방향도 아니야.』

         

       악마가 흥미로워했다.

         

       『호오, 그렇군. 고래의 눈동자를 잘 봐라. 어미로서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나?』

       “느껴져요! 느껴져요!”

         

       상황 안 맞게 혼자만 즐거운 악마님의 태도가아!

         

       그래도 이럴 때 말 잘 듣는 파스텔은 아직 먼 거리인 어미고래를 살펴봤다.

         

       살기등등한 분위기였지만 악마님 말대로 어째 파스텔을 향한 살기 같지는 않았다.

         

       오잉.

         

       이게 무슨 일이야?

         

       “고래 친구!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돌아본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아기고래는 이럴 줄 알았다는 양 전력으로 줄행랑치고 있었다. 파닥파닥도 안 하던 날개지느러미가 격렬히 파닥이고 꼬리지느러미가 광속으로 출렁였다.

         

       오이잉.

         

       왜 네가 도망쳐?

         

       생각 하나가 번뜩였다.

         

       “서, 설마 너 가출했니?!”

         

       밍기적대던 건 가출청소년이라 집에 돌아가기 싫었던 것?!

         

       초장거리 소통도 되는데 여태 어미고래가 구출하지 않은 건 어디 집 나가서 고생 좀 해보라는 의미였던 것?!

         

       근데 정작 가출한 자식은 제대로 구출돼서 팔자 좋게 새우나 받아먹고 있으니 화가 풀리지 않았던 것?!

         

       일순간 강렬한 빛이 세상을 덮었다. 어미고래가 발사한 광선 브레스가 파스텔을 일부러 빗맞히며 아기고래를 노렸다.

         

       굉음과 광풍이 몰아쳤다. 후폭풍이 파스텔을 덮쳤다. 광풍에 휩쓸린 빗자루가 정신 없이 회전했다.

         

       “우아아앙!”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아!

         

       새우 살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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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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