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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 * *

       

       

       

       

       쑨원은 잠시 고민을 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영국 측에서 무기를 판매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 받아들이자고?”

       “북양정부의 돤치루이가 완전히 물러난다는 조건을 붙였으니 괜찮습니다. 완전한 몰락은 아니지만, 안휘군벌로 돌아간다고 했고, 다시는 총통 자리는 안 노린다고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찝찝한 끝이라니.

       

       이제야 좀 기세를 잡았는데.

       

       

       “러시아의 지원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릅니다. 그나마 이번 전쟁으로 돤치루이를 끌어낼 수 있게 되었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실제로 러시아는 지금까지는 무상 지원을 해줬다.

       

       그 제국주의 국가가 무상 지원? 아마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 합중국은 아마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뜯어내려고 할 터. 당장 중재안을 내민 것도 안 받을 경우에 군사적인 개입을 노릴 수도 있다.

       

       이대로만 가면 어떻게든 돤치루이를 끌어낼 수 있을 텐데. 이것을 외국의 손에 맡겨야 한다니.

       

       아마 중재하는 것도 러시아와 일본은 다른 열강의 개입이 싫어서겠지.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러시아와 일본이 군사적 개입을 할 것이다.

       

       그때는 총칼 앞에서 돤치루이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돤치루이와 중국을 가르는 문서에 러시아와 일본이 도장을 찍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쑨원은 자신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서 마무리 짓고 다음을 준비하는 수밖에,

       

       최근 몸도 좋지 않아서 어쨌든 후일을 준비해야만 했다.

       

       

       “윽!후우. 어쩔 수 없군. 받아들여야겠지.”

       

       

       결국 사소한 반항 끝에 쑨원은 받아들였다.

       

       

       “역시 차리나의 말씀대로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는 천중밍의 측근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마오쩌둥은 쑨원의 집무실에서 나오면서 중얼거린 천중밍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쑨원이 평소와 같았다면 이것을 받아들이겠나? 당장 일본에도 이를 가는 작자가? 심지어 러시아에도 지원만 받겠다. 이딴 식이었는데? 저 인간은 현실을 보지 않고 이상과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야. 안 받아들였겠지.”

       

       

       지금 쑨원의 몸에 이상이 있다.

       

       당장 이번 회의에서만 해도 쑨원은 아내 쑹칭링이 보좌해줬었다.

       

       차리나가 말한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돤치루이가 물러나고, 쑨원이 죽고 나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성자치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몸 상태가 이전과는 다른 거 같았습니다.”

       

       

       그래. 솔직히 천중밍도 설마 설마 했다.

       

       그런데 설마 저런 꼴이라니.

       

       원래라면 만일에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최악의 수도 대비하긴 했었다.

       

       쑨원을 암살하거나,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다든가.

       

       물론 러시아 측에서 쑨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를 대비해 본격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있음을 천명하기도 해서 쑨원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죽을 날이 머지않은 거겠지. 공산당은 준비되었겠지?”

       “네. 공산당은 준비되어있습니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지.”

       

       

       그날을 대비해 천중밍과 마오쩌둥은 물밑으로 준비해오는 게 있었다.

       

       결국 북양정부의 돤치루이가 물러나고 나면 그때부터다.

       

       쑨원도 이제 오늘내일할 테고. 그때를 천중밍이 주도하여 연성자치를 이루어내면 될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와 일본이 직접 개입하면서 호법 정부와 돤치루이의 대립은 종결되었다.

       

       실제 역사와 달리 돤치루이는 실권을 쥘 수 있었으나. 거기까지였다.

       

       돤치루이 본인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었고, 북양정부의 집정 자리를 내려놓고 안휘군 사령관. 실질적으로 군벌로 돌아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정부를 맞이해야 할 무렵.

       

       쑨원은 원 역사보다 더 빠르게 끝에 다다랐다.

       

       

       “허억. 흐으윽!”

       “여보! 여보!”

       

       

       호법 전쟁으로 고생한 탓일까. 아니면 군벌연합에서 마음을 많이 쓴 탓일까.

       

       쑨원은 원역사보다 더 빠르게 건강이 약화되었다.

       

       그는 죽기 전 주마등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떠오른 것이 있었다.

       

       중국에 개입한 러시아의 차르. 그리고 합중국. 연성자치론자 천중밍. 애매하게 끝나서 표면적으로나 하나의 국가지. 여전히 군벌로 나누어진 중국.

       

       두뇌가 빠르게 회전되었다.

       

       

       ‘잠깐, 설마!’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죽기 바로 직전, 이 모든 것이 러시아의 차리나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천중밍 그 자는 러시아의 차리나에게 속아 중국을 분할해버릴 거라고.

       

       물론 저 먼 모스크바에 있는 차리나가 정말로 그럴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딱 한 가지는 알 것만 같다.

       

       자신의 사후 중국은 통합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어떻게든. 어떻게든 일어나야 하는데. 하다못해 장제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쑨원은 죽기 전에 아내 쑹칭링에게 쥐어짜 내면서 자신의 사후에 대해 말하려 했으나.

       

       

       “여보. 여보. 다시 말해주세요. 뭐라고 하시는 거에요?”

       

       

       이미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쑨원은 눈물이 맺힌 아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났다.

       

       쑨원이 떠났다는 소식에 호법정부의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

       

       하지만, 이것을 기회로 삼던 천중밍은 마오쩌둥을 불렀다.

       

       드디어 그 날이 도래한 것이니까.

       

       

       “자, 그럼 시작하게.”

       “예. 사령관님.”

       

       

       천중밍과 마오쩌둥은 오늘을 기다려 왔다.

       

       연성자치를 위해서, 죽은 쑨원을 최대한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쑨원의 죽음으로 모두가 슬퍼하던 지금. 찬물을 들이부어 쑨원을 손가락질하게 할 생각이었다.

       

       천중밍의 명령을 받은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은 음지에서 쑨원이 이번 중재안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외세를 개입시켰다고 주장했다.

       

       

       “쑨원은 애초에 자신이 살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최대한 자기 업적이라고 치부하기 위해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중재안을 받아들였소!”

       “말도 안 돼! 쑨원 선생이?”

       “뻔히 들통 날 일을 그리한다는 말이오?”

       “이미 호법 정부 내부에서는 그래서 쑨원에게 실망한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확실히 러시아와 일본이 갑자기 중재안을 들이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하다 했는데.”

       

       

       쑨원에 대한 앞과 뒤가 다른 진실에 대륙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쑨원은 죽기 전이라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했으니까.

       

       물론 여전히 쑨원을 존경하는 무리는 중원 천하에는 지천에 널렸으나, 군벌들은 동요하기에 충분했다.

       

       쑨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인 만큼,

       

       이들의 관계는 살얼음판이었으니까.

       

       언제 누가 어떻게 이 중화민국의 패권을 잡고자 들고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때마침 광둥 군벌 사령관 천중밍이 군벌들을 소집했다.

       

       천중밍의 소집은 마땅치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쑨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라 군벌들은 그의 소집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천중밍의 군대는 러시아 백군 고문단이 직접 길러 낸 정예였으니까.

       

       소집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판 붙자는 말이나 다름없는 만큼, 이들은 천중밍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기 위해 소집에 한번은 응했다.

       

       그렇게 소집된 자리에는 호법정부의 관료인 왕징웨이와 장제스, 탕사오이, 탕지야오, 쉬수정, 취퉁펑,차오쿤, 우페이푸, 펑위샹 등, 서로 편을 가르고 싸웠던 군벌들까지,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그중, 쑨원의 후계자라고 스스로 여기던 장제스는 상당히 불만이 많아 보였으나, 천중밍이 헛소리를 할 때까지는 참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불만이 가득 섞인 얼굴로 먼저 운을 띄우기로 했다.

       

       

       “이보시오. 광둥 사령관 이제 어쩔 것이오?”

       “무엇이 말이오?”

       “이제 임시 총통도 죽었으니,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 그대가 중국을 쥐고 흔들 것이 아니오?”

       

       

       그래.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솔직히 잠깐, 천중밍은 그런 욕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좋지 못했다.

       

       말 그대로 내전을 완전히 이쪽에서 제압한 것도 아니라 이제는 군벌로 전락한 돤치루이의 안휘군벌도 그대로 살아있다.

       

       여기에 이 자리에서 내가 북양정부의 정권을 쥐겠다고 선포하면.

       

       이 시대의 황제의 자리라 할 수 있는 총통의 자리를 얻으려 한다면.

       

       아마 이 자리에서 군벌들은 박차고 뛰어나갈 거다.

       

       아마 반 천중밍연합을 만들어서 이번에는 천중밍 자신이 돤치루이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릴 터.

       

       러시아의 필요 이상의 개입을 받는다면 정말 한간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

       

       애초에 천중밍은 그런 권력욕은 없다.

       

       당장 광둥의 땅덩어리만 해도 어지간한 나라 체급은 된다.

       

       이제 광둥만 쥐고 평화적으로 발전을 해서 중원의 모든 한족이 광둥군벌의 천중밍이란 이름을 가슴에 담게 되는 그날을 바란다.

       

       러시아의 차리나는 단순히 연성자치에 호의를 느껴서만이 아니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사람 좋은 얼굴로 군벌들을 설득한다.

       

       

       “이제 와 하는 말인데, 저번 중재안은 임시 총통이 멋대로 정한 것이었소. 나는 거기에 응하지도 않았었지. 그리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완벽하지 않은 내전의 끝, 불완전한 중원이오.”

       “갑자기 딴 이야기를 하는군. 러시아와 직접 이어진 광둥사령관이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것이오?”

       

       

       장제스는 자신이 존경하는 쑨원을 깎아내리면서 모든 책임을 씌우는 천중밍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장제스의 물음에 천중밍은 조금의 표정변화 없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중국 대륙은 크고 인구는 많소. 당장 이렇게 많은 군벌이 있는 것이 그 증거요. 인구가 많기에 다른 대륙에서는 나라 하나는 세울 수 있을 만한 세력을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군벌로서 다스리고 있소. 자, 까놓고 말하겠소. 여러분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은 내려놓기 싫지 않소?”

       

       

       천중밍의 말에 다들 헛기침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쑨원이 살아 있다면 모르겠지만, 쑨원이 죽은 데다가 이 자리의 군벌들은 호법전쟁 기간 동안 자기가 가진 지역의 힘을 동원해 북양정부의 돤치루이와 싸웠다.

       

       지금 가장 입지를 다진 세력은 천중밍의 광둥군벌이었으나, 그에게 자신들이 각자 맡은 지역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권한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하여 열강을 등에 업은 천중밍이 저런 말을 하자 귀가 솔깃했다.

       

       

       “그럼?”

       “애초에 지금의 중국은 진정한 통일을 할 역량이 안 되오.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군벌들이 각기 맡은 지역을 발전시켜 후일 열강들도 함부로 못할 만큼의 역량을 갖추면 통일정부를 세워 총통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럼, 다 가르자는 말이오?”

       

       

       사실상 5호 16국. 전국시대. 그때로 회귀하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말만 들으면. 그럴듯했다.

       

       어차피 이대로 억지로 하나 된 정부를 만든 들, 제대로 통합될 리도 없고, 군벌들이 애지중지하던 각 지역이 제대로 현대화(근대화)를 할지도 미지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냥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다.

       

       어디까지나, 군벌로서 자기 지역을 맡아 왕처럼 군림하고 싶은 명분.

       

       “쑨원이 살아있으면 싫든 좋든 그를 중심으로 뭉쳤겠지만, 이대로라면 서로 싸울 것이 아니오? 그렇게 되면 열강들의 개입은 필연적이오. 쑨원이 말년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여 이번엔 중재안이었으나 다음에는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소이다. 하여 형식적으로 푸이를 중화민국 황제로 올려두고 연성자치를 하는 것이오.”

       “나쁘지 않군.”

       

       

       군벌들은 그 말에 찬성했다.

       

       단 한 명, 장제스를 제외하고 말이다.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오?”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오. 이대로 라면 모두가 불만족스럽다 그런 말이지.”

       “그럼 어쩌자는 것이오?”

       “나중에 어느 지역이 가장 발전을 많이 했나. 그것을 가늠하고 그때 선거를 통해 결정한다면 모두 인정할 수 있지 않겠소? 말했듯, 천자를 둘 것인데, 이게 분열이라 볼 수 있겠소?”

       

       

       애초에 분열 따위는 없다. 어쨌든 모든 군벌이 청나라 황제를 다시 형식은 제대로 갖춘다.

       

       이렇게 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러시아의 합중국에는 작은 공화국들이 있지만, 중국은 중국 방식대로 군벌들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천중밍은 그렇게 판단했다.

       

       

       “나쁘지 않구려.”

       

       

       군벌들의 만장일치로 다시 자금성의 주인이었던 청나라의 푸이가 다시 형식적인 황위에 올랐다.

       

       그리고 군벌들이 각 지역을 맡으면서 ‘일단’은 연성자치가 시작되는 듯했다.

       

       

       “역시 중국은 이래야지.”

       

       

       물론 보고를 받은 아나스타샤가 보기에는 전국시대, 5대 10국, 5호 16국의 회귀였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아쉽게도 주인공이 안 나왔네요.
    그래도 중국은 결국 주인공이 개입할 예정이라 이 정도 비중은 나와야 해서요.

    이제 로스차일드도 등장할 거 같습니다.

    선작 3천 넘겼네요! 독자님들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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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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