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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꺄아아악! 안 돼 내, 내 힘이……!!’

       

        산맥 너머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메릴린의 비명.

        마치 토벌당한 보스 몬스터 같았다.

        본의 아니게 그녀가 흡수해야 할 정수 하나를 부수게 되었지만 당장은 여기서 빠져 나가는 게 더욱 중요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세계선에서 출구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쿵, 쿠웅——!

       

        31층의 천장이 메테오처럼 떨어지는 와중 구름을 뚫고 새하얀 빛이 나타났다.

        내가 서 있는 곳 뿐 아니라 메릴린이 있던 캠프와 몇몇 산등성이 등지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시련을 통과했을 때 생기는 포탈임을 확인한 나는 주저앉고 몸을 날렸다.

        이곳을 빠져나간 순간 나의 부재로 인해 생긴 모든 나비효과는 전부 사라질 것이기에 망설일 이유 따윈 없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힘들다 진짜.”

       

        돌아가면 일단 몸부터 씻고 침대에 쓰러져 있을 아녜스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한동안 쉬어야지.

        마리엘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떤 꼴이 나는지도 알게 되었으니 벨튀 횟수도 더 늘려야겠다.

        지친 몸을 이끌고 미래의 계획을 세우던 나는 환한 빛무리 속에서 눈을 떴다.

        흙과 나무뿌리 대신 울퉁불퉁한 돌바닥의 감촉이 신발 밑창을 통해 느껴지자 성공적으로 31층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살살이를 고쳐주겠다는 메릴린과의 약속도 끝났으니 굳이 여기서 그녀를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곧장 마력 승강기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돌리던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클락 데스몬드?”

        “네?”

        “치안부 부국장이자 부장 대리인 첸돌이다.”

       

        정보부와 비슷한 회백색 버프 코트 차림에 검은 장갑.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한다는 치안대의 정복이었지만 내게는 예외였다.

        마탑을 등반하는 내내 동고동락하며 빈도 수로 따지자면 생활부 사람들보다 더욱 자주 어울렸던 만큼 내적 친밀감이 남달랐다.

        나는 고개를 90도로 숙임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니플헤이르표 설화수부터 꺼냈다.

       

        “아이고, 불철주야 업무 하시느라 고생하십니다! 지난 원탁회 때문에 찾아오신 건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시련을 들어가느라 대타를 부탁드렸…….”

        “그 일 때문에 온 건 아니다. 듣자하니 네가 시련에 입장할 때 소란이 있었더군.”

       

        허나 첸돌은 내가 건넨 설화수를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대신 한 장의 종이를 들이밀었다.

       

        “마장을 반납하고 따라와라.”

       

        바로 내 이름이 적혀있는 체포영장이었다.

       

       

       

        *

       

        치안대가 나를 붙잡은 이유는 다른 생활부 직원들의 제지를 무시하고 시련에 무단으로 입장해서였다.

        내가 존재하지 않던 세계선이 삭제되며 마탑이 무너지는 미래는 없었던 것으로 치부되었지만 도주한 정황만큼은 그대로 남았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듯이 마법사가 탑에서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허나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시련에 멋대로 들어간 것 자체로는 그 정도로 큰 처벌을 받지는 않기 때문.

        게다가 무단입장이라 하기도 애매한 게 29층에서 제출한 서류 상으로는 충분히 시련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목격자들 증언이랑 거울에 기록된 내용은 확인했어?”

        “이상하게 그 시점의 녹화분만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생활부 직원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아무리 봐도 서류에 이상은 없는데…….”

        “30층의 결계가 사라진 초유의 사태잖습니까. 유력한 용의자인 만큼 이대로 보낼수는 없습니다.”

       

        반가운 얼굴인 콜튼은 나를 조사실에 앉혀놓고도 자신의 부관과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예상대로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쪼옥, 쪼옥, 쪼오오옥……!”

        “시끄럽다. 좀 조용히 마시지 못해?”

        “시련에서 고생하느라 물 마실 힘도 없어서요. 용건이 없다면 슬슬 돌아가고 싶네요.”

       

        반면 나는 설화수를 빨대로 빨아 마시며 느긋하게 저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고행의 층의 시련이 없어진 게 어째서 내 탓인가.

        엄연히 메릴린 때문이지.

       

        살면서 나쁜 짓은 커녕 가벼운 신호위반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였다.

        갤러리에서 분탕치는 나쁜 유저들을 볼 때면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을 만큼 여린 마음을 타고났는데 어째서 이런 곳에 잡혀 있어야 하는가.

        지금도 갤러리만 켜면 대학원에 들어갈 놈들이 수두룩한 게 마탑의 현실이었다.

       

        ====

        갸오갸이거

        [여동생보다 누나가 신붓감으로 적합한 이유]

       

        후자는 한정판이라서 가치가 더 높음

       

        [추천 1758 / 비추천 940]

       

        — 오

        — 캬

        — 동의합니다

        —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 발상 수준부터 어처구니가 없네 ㅋㅋㅋㅋ

        — 이게 마탑 평균이냐?

        — 제발 30분만 숨을 참아주세요

        — 근데 추천수는 솔직하죠? 여동생단 방 빼!!

         ㄴ 이거에 동조하는 놈들이 미친 새끼라면 이 글 쓴 놈은 괴물이야

         ㄴ 괴물이라 하니 한 동안 안 보이는 누가 떠오르네요.

         ㄴ 한 동안 안 보인 사람이라면…… 헉!

        ====

       

        대표적으로 114번째 부계로 달아놓은 예약글에 추천을 누른 1700명 전원 말이다.

       

        어쨌거나 가벼운 조사 이후 풀려날 것을 확신하는 나였기에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미 모든 증거는 저 안개 너머로 사라진 노릇.

        아무리 치안대라도 죄 없는 마법사를 오래 붙잡아두진 못하겠지.

       

        그러나 첸돌이 조사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내가 쓰던 창을 가져온 것이었다.

        평소에는 청소 도구함에 박아 놓고 가끔 껌을 뗄 때나 사용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녹아내린 창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마장에서 세계선의 마력장과 같은 종류의 파동이 검출됐다.”

        “네?”

        “말인즉슨, 이번 30층 시련이 붕괴한 사태와 네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소리지.”

        “…….”

       

        꼬리를 밟힌 뱀의 심정이 이러할까.

        설마 이렇게 의심의 칼날이 턱밑까지 다가올 줄은 몰랐다.

        허나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나는 태연하게 다리를 꼬며 남은 설화수를 바싹 마른 입에 털어 넣었다.

        스스로가 추리소설 후반부의 범인처럼 느껴지는 건 분명 기분탓이었다.

       

        “훌륭합니다, 거기까지 알아내시다니.”

        “자백하는 거냐?”

        “설마요. 단지 심증과 물증이 있을 뿐 제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아닐텐데요.”

        “보통은 그 두 개가 있으면 확정이다.”

        “……당신들이 이 자리에서 저를 잡는 건 불가능합니다. 재판도 없이 무고한 마법사를 지하 미궁에 쳐넣으면 학파에서 어마어마한 항의가 들어올 테니까요.”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난 뒤에 생각하자.

        메릴린은 내게 호감을 갖고 있으니 살살이의 입만 잘 막으면 무죄방면으로 풀려날 것이다.

        시련을 없앴다는 죄목 역시 행정부엔 존재하지 않는다.

        마탑 역사상 단 한 번도 벌어진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

       

        “학파라고? 어느 학파를 말하는 거지?”

        “그야 당연히 해주학…….”

        “콜튼, 호송차에 한 자리 비워놔라.”

        “뭐야 해주학파였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나, 시간 아깝게.”

        “앗.”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범죄자는 다섯 시간이 넘도록 구속하지 못했으나, 해주학파 출신이라는 걸 밝히자 1초도 안 되어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미궁으로 향하는 호송차에 실려갔다.

       

       

       

        *

       

        같은 시각.

        한발 늦게 세계선에서 빠져나온 메릴린은 31층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칼레이도스 학파의 마법사들을 마주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자님.”

        “니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

        “클라우디아 님께 30층에서 비범한 마력이 감지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뇌명의 주인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칼레이도스는 마탑의 끝을 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내가 준비가 덜 됐어, 아쉽게도.”

       

        메릴린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마력을 갈무리하며 못내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지막 정수를 회수하지 못한 바람에 전성기 때의 힘보다 살짝 약해진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도 최상층의 공략대에서 활동하기엔 부족함 없었으니 더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따라가기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같이 나온 애는 어디갔어? 클락이라고, 키 크고 기생 오라비처럼 생겨가지고 띨빵한 행동만 하는 마법사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서 대기하는 동안 31층으로 올라온 사람은 현자님 뿐…….”

        “아뇨, 한참 전에 올라오자마자 치안대가 데려간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

        “치안대가 데려갔다고?”

       

        치안대라면 분명 세계선 안쪽에서 클락과 자신을 쫓던 자들이었다.

        서슬퍼런 노기에 이제 갓 중층에 올라선 새파란 마법사는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네, 네……! 확실히 봤습니다! 30층의 결계를 파괴한 범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좀 전에 호송차가 지나간 걸로 봐선 아마 지하 미궁으로…….”

        “대학원생이 된 거라면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고참으로 보이는 마법사가 곧장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는 학파들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원생들과 계약을 맺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죄목에 따라 다르지만 저희 학파 정도면 충분히 빼내올 수 있습니다. 돈은 좀 들겠지만요.”

        “그래? 그럼 난 가볼 테니 걔가 거기서 나오면 이 말만 전해.”

       

        언젠가 탑의 주인이 되면 그를 가장 가까운 곳에 두겠다는 말.

        메릴린은 클락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미끼를 자청했을 때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말했다.

       

        “준비가 될 때 내가 있는 곳으로 부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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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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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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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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