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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자, 이름과 나이를 말해보십시오.”

       

       “히익?! 사, 살려줘! 살려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치지 않습니다. 여기서 뭘 했습니까? 주변에서 본 사람은?”

       

       “혀, 협회는 뭘 하는 거야! 이런 놈이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잖아!”

       

       “···하아.”

       

       

       한숨을 내쉰 하율의 몸이 안개로 변했다.

       

       안개가 몸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눈을 까뒤집었다.

       

       

       “죽였어?”

       

       “아뇨. 기절시켰습니다. 저라고 무턱대고 죽이지는 않아요. 이자는 경범죄자이지 않습니까.”

       

       “어, 그래···.”

       

       

       당연히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지, 스피라와 라이라의 눈동자에도 의문이 담겼다.

       

       무슨 기준인지 잘 모르겠네.

       

       범죄자는 다 죽이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그녀 나름의 기준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이곳에는 아라크네의 여론이 엄청 나쁘네요.”

       

       “당연하죠. 그럴 만도 하던데요.”

       

       “주인님의 조직을 나쁘게 말하는 놈들! 다 죽여버려야···!”

       

       

       또 시작이네.

       

       내 눈치를 보며 아부를 시작한 스피라를 가볍게 무시했다.

       

       저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같이 저러고 다니니 오히려 좋게 봐줄 수가 없는데.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말이야.

       

       

       “약탈, 강도, 사기, 폭행. 별의별 범죄는 다 저질렀네요? 살인 빼고. 그것까지 해버리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으시네요?”

       

       “···뭐, 그렇죠. 저도 일단 여기 일원이니까요.”

       

       

       강제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말한 라이라의 감정은 조금 복잡해 보였다.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 건 진작에 포기한 것 같았지만···.

       

       어느새 단체 생활에 익숙해진 걸까.

       

       그녀는 아라크네를 사칭한 놈들이 있다는 사실이 사뭇 불편해 보였다.

       

       

       “···너는 어때, 아르테?”

       

       “저요?”

       

       “네가 조직의 보스잖아.”

       

       

       흐음, 그래.

       

       기분이 좋냐 나쁘냐로 따지자면 당연히 나쁘다고 할 수 있었다.

       

       사칭범이 있다는 뉴스에 황급히 달려올 정도로는.

       

       괘씸한 녀석들을 혼내주러 간다. 딱 그 정도 마인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내가 틀린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기분 나쁘네.

       

       녀석들이 활동하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확실히 느꼈다.

       

       조직에 우호적인 의견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물론 아라크네는 범죄조직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게 멀쩡한 조직일 리가 없지.

       

       뒤에서는 협회와 거래를 한다고 한들 결국 범죄자 집단. 그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범죄조직이라고 해도 내가 만든 조직이다.

       

       별다른 애정이 없었더라도. 아무런 생각 없이 가볍게 만든 조직이라도 결국은 내가 거두어들인 사람들과 내가 만든 조직.

       

       그런 조직을 감히 사칭하다니.

       

       

       “죗값은 치러야겠죠.”

       

       “···그래?”

       

       “네에. 감히 사칭 따위를 한 죄는 크답니다.”

       

       

       

       ***

       

       

       

       “···흐음, 그렇구나.”

       

       “응. 아마 사칭범일 거야.”

       

       “좋아. 아빠한테 말해둘게.”

       

       

       아멜리아에게 아르테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오늘 아르테는 몸이 좋지 않다며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몰라도, 이번 학기는 중간고사를 특이하게 치르기로 했었기에 학교를 빠져도 다들 신경 쓰지 않았다.

       

       교실에만 해도 듬성듬성 학생들이 빠져있었고.

       

       아마 포인트를 얻으러 간 거겠지.

       

       그래서 아르테도 마음 놓고 학교를 빠진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너는 참···.”

       

       “또 뭐.”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멜리아가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집 안에 들여놓고서는 왜 아무것도 안 했냐. 고자냐. 그런 이야기겠지.

       

       아멜리아는 항상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으니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항상 저러다가 이상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멜리아니까.

       

       

       “아르테가 갈법한 장소는···.”

       

       “뭐야, 갈 거야?”

       

       “그럼 안가?”

       

       “가봤자 네가 왜 여기 있냐는 말만 들을걸?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게다가 딱 봐도 잡범이잖아. 사칭 같은 걸 하는 놈들은 대부분 그래.”

       

       “···잡범?”

       

       

       아멜리아가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 있다고 쳐봐. 이 녀석은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정신이 망가졌거나, 사회에 반발을 하고 있어.”

       

       “응.”

       

       “그런 녀석이, 다른 사람의 후광에 숨을 것 같아?”

       

       

       대부분의 빌런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범죄를 숨기면 숨겼지, 다른 녀석이 했다고 누명을 덮어씌우는 경우는 별로 없어.”

       

       “···그렇구나.”

       

       “응. 자존심도, 강함도. 무엇 하나 없는 놈들이나 그러지. 예를 들어···.”

       

       

       아멜리아가 갑자기 학생들을 살펴보고는 그들이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내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그 범죄자 있잖아. 네가 싸운···.”

       

       “그 바람 능력자?”

       

       “쉿···! 조심히 말해! 다들 바람이라고 하면 좋은 기억이 없으니까. 공격 한방에 나가떨어졌다는 사실에 상처 입은 애들이 좀 있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아멜리아가 내 등을 때렸다.

       

       

       “어쨌든. 네가 상대한 그 사람도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습격했어. 이건 너도 아는 거야.”

       

       “아, 그거 말하는 거구나?”

       

       

       시우는 그 비췻빛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옆에 붙어있던 여성에게 지시를 내리며 아카데미 내부로 들여보냈더랬지.

       

       그때 당시에는 전력이 줄었다는 사실에 마냥 좋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방해했기 때문에.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가는 걸 막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그녀는 반쪽짜리 성공을 거두었다.

       

       사라진 한 명의 간부. 그리고 사라진 비밀의 방 내부의 아티팩트.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가 떠올랐으니까.

       

       출혈량으로 보았을 때 보스로 추정되던 여자는 죽었다.

       

       하지만 그 옆의 추종자는 죽지 않고 살았다. 아티팩트를 가지고 살아남았다.

       

       그녀는 목표를 이루었지만, 본인이 죽어버렸다.

       

       그렇기에 반쪽짜리 성공.

       

       

       “그 사람은, 비밀의 방에 있던 아티팩트로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는 거야.”

       

       “사회를 바꿔?”

       

       “응. 바닥의 혈흔으로 정보를 모아 어떻게든 은신처를 찾아냈다는데···. 발견했대. 아카데미 설립자의 수기를.”

       

       “뭐?!”

       

       “조용히 하라니까···!”

       

       

       황급히 입을 다물고, 잠깐 모였던 시선이 흩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히 하려고 했는데.

       

       들려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잠깐 방심해버렸다.

       

       아카데미 설립자의 수기라니, 수 백 년 전의 물건이잖아.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물건이었다.

       

       

       “그, 그래서? 뭐라고 적혀있었는데?”

       

       “음, 그게···. 정확하게는 못 들었어. 너무 위험하다고 해서. 다만, 세상을 바꿀법한 위험한 물건이라고···.”

       

       “세상을 바꿀법한 위험한 물건···?”

       

       “어디서 들어봤지?”

       

       

       아멜리아가 나와 만난 계기.

       

       아르테가 중얼거리던 무언가를 엿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때, 아르테는 비밀의 방에 세상을 바꿀 무언가가 잠들어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했지.

       

       

       “이야기가 좀 새버렸네. 어쨌든, 좀 큼직한 녀석들은 보통 그런 목적이 있어. 내 추측인데, 아마 그 빌런은 그걸로 무언가를 하고 싶었을 거야.”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봐. 다른 사람을 사칭하면 그 목표를 따라갈 수 없잖아?”

       

       

       사칭을 하는 순간부터, 빌런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목표를 타인에게 맡기는 꼴이 된다.

       

       그렇게 말한 아멜리아는 내게 말했다.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까 사칭을 하는 놈들은 보통 떨거지라는 거지.”

       

       “이해했어.”

       

       “···그런데 왜 이해한 것 같지 않지? 굳이 안 가도 괜찮다니까? 너 아르테가 어디로 간 건지도 모르잖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갈 거야.”

       

       

       아멜리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르테는 아마도 아라크네로서 행동하고 있을 테고, 그렇다면 내가 간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굳이 움직여서 이상한 의심을 받느니 그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명하겠지.

       

       그녀의 말은 백번 옳았다.

       

       하지만 나는 아르테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거, 결국 추측이잖아.”

       

       “···응?”

       

       “사칭범은 대부분 잡범이라는 말은 나도 이해했어.”

       

       

       아멜리아의 말은 이해했다.

       

       뭐,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아마 맞겠지. 그녀의 아버지는 현직 최상위권 영웅이니까.

       

       범죄니까 통계로도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칭범은 대부분 잡범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르테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번에 나온 사칭범이 잡범이 아니라면? ···아라크네를 노리기 위해 꾀어낸 행동이라면?”

       

       “그럴 리가.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해? 빌런 수백 명을 몰살한 집단이야.”

       

       “나도 알아. 그런 확률이 낮다는 것쯤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시우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비합리적이고 멍청한 선택이라고 해도.

       

       시우는 아르테를 따라가기로 했다.

       

       

       “너, 방금 그거 거짓말이구나.”

       

       

       빠르네.

       

       이럴 때는 진짜 눈치 빠르다니까.

       

       

       “바른대로 말해. 왜 가려는 건데?”

       

       “친구잖아.”

       

       

       아멜리아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망설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처음에는 막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친구잖아.”

       

       “···.”

       

       “아르테가 나쁜 길을 걷고 있고, 또다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다면···.”

       

       

       나는 아르테가 더 이상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으면 했다.

       

       생각보다 연약한 그녀의 모습을 직접 보았기에.

       

       그녀의 속마음을 엿보았기에.

       

       

       “친구가 바른길을 걷도록 도와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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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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