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7

       ​

        처억 –

        ​

        “신분을 밝혀라.”

        ​

        백작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에 기사와 병사들이 나를 막아섰다.

        ​

        영감님들이랑 다닐 때는 이런 일은 없었는데 말이다.

        ​

        이럴 줄 알았으면 한분 모셔오는 건데….

        ​

        “클로셀 영감님의 소개로 왔어요. 저는 크리스고…”

        ​

        몸을 돌려 등을 살짝 내밀었다.

        ​

        “얘는 성녀에요.”

        ​

        “꺄르륵!”

        ​

        “….”

        ​

        “….”

        ​

        갑자기 싸한 정적이 흘렀다.

        ​

        “끌어내라.”

        ​

        “예!”

        ​

        “….?”

        ​

        끌어내?

        ​

        나를?

        ​

        “아, 맞네.”

        ​

        생각해 보니, 클로셀 영감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

        성녀라는 이름 역시 대단했고 말이다.

        ​

        웬 평민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름을 들먹인다고 믿어 주기에는 너무 큰 이름이라는 소리다.

        ​

        “건들지 마요! 루나 건들면…”

        ​

        “음?”

        ​

        “바로 성전이 일어나요.”

        ​

        “끌어내라!”

        ​

        정말로 영감들 중에 한 명을 데리고 왔어야 했다.

        ​

        하다못해 알루어드라도 말이다.

        ​

        어제까지 못 들어가던 곳이 없다 보니 이런 경우는 상상도 못 했다.

        ​

        “란돌프경 없어요?”

        ​

        “감히, 평민이 입을 함부로 놀리는 구나!”

        ​

        “아 건들지 말라니까요? 나 건들면 동티난다니까!”

        ​

        괜히 몸주신의 미움을 사서 재수가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

        나와의 실랑이로 소란스러워지자 문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

        이윽고, 열리는 작은 문.

        ​

        “무슨 소란이냐?”

        ​

        “란돌프경!”

        ​

        다행히도 아는 얼굴이었다.

        ​

        “….”

        ​

        “영감님 소개로 영지대장간에 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요.”

        ​

        란돌프경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예를 취해 왔다.

        ​

        “모시겠습니다.”

        ​

        “….?”

        ​

        원래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랬던가?

        ​

        내 표정을 읽은 듯 란돌프경이 답을 해 왔다.

        ​

        “곧 귀족의 작위를 받으실 분이다. 모두 예를 갖추도록.”

        ​

        “허…헙! 실례많았습니다!”

        ​

        “무례를 용서하소서!”

        ​

        “참나.”

        ​

        받지도 않을 작위가 이렇게 효과가 좋은 것이었다니.

        ​

        새삼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

        “평소대로 하셔도 돼요. 어차피 작위는 못 받을 테니까.”

        ​

        “….”

        ​

        자작과 일어난 일을 모두 목격했던 란돌프 경이다.

        ​

        이내 수긍을 했는지 말투가 조금 바뀌었다.

        ​

        “작위를 받지 않아도 이미 그대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소.”

        ​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이군. 따라오시오.”

        ​

        또 나를 두고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신경 쓸 필요도 없어 보였다.

        ​

        주변에서 일이 한두 가지가 일어나야 신경을 쓰지….

        ​

        란돌프 경을 따라가다 보니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

        까앙 –

        ​

        까앙 –

        ​

        후끈한 열기도 함께 느껴졌다.

        ​

        불이 뜨거운 게 아니라, 안에 있는 기운들이 뜨거웠다.

        ​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말이다.

        ​

        “사주가 아주 불 천지네.”

        ​

        누가 대장장이 아니랄까 봐 불이 정말로 많았다.

        ​

        사주는 보통 오행을 기반으로 한다.

        ​

        화, 수, 목, 금, 토를 기반으로 기운의 조화를 보는 것이다.

        ​

        각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따라 성격이나 삶을 가늠해 보는 것.

        ​

        보통 사주에 화가 많으면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 많다.

        ​

        정열적이고 화끈하다고 해야 할까.

        ​

        “이곳이오, 작업 중에는 그들을 방해할 수가 없소.”

        ​

        종족이 하나 같이 장인이라고 했다.

        ​

        클로셀 영감도 작업 중에는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

        “들었어요.”

        ​

        수많은 대장장이들 안쪽으로 다른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

        아마, 저곳에 드워프가 있을 것이다.

        ​

        벌써 새어 나오는 느낌들이 보통이 아니었다.

        ​

        “다 비슷한 사주를 가지고 있구나…”

        ​

        작업을 하는 대장장이들의 느낌이 하나 같이 비슷했다.

        ​

        화, 금, 토의 기운을 강하게 가진 이들.

        ​

        완고하고 고집스러우며 불같은 사람들.

        ​

        대장장이 그 자체였다.

        ​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냅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하나하나 혼을 실으란 말이다!”

        ​

        “…옙!”

        ​

        까앙 –

        ​

        “네놈들의 망치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

        까앙 –

        ​

        “동작 한 번에도 집중이 흐트러 지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

        온몸이 딱딱한 근육으로 들어찬 영감이 젊은 사람이 만들던 쇳덩이를 집게로 들어 올렸다.

        ​

        “형편없군. 이래서야 병사들이 제대로 몸을 보호할 수도 없겠어.”

        ​

        콰앙 –

        ​

        영감의 망치질 한 번에 부서져 버리는 시뻘건 갑옷.

        ​

        아직 식지도 않은 쇠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타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

        “다시!”

        ​

        까앙 –

        ​

        “이놈아! 혼을 불어 넣으래도? 옳지! 그렇지!”

        ​

        드디어 영감의 마음에 드는 동작이 나오는 듯, 칭찬이 터져 나왔다.

        ​

        하지만 나는 전혀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

        “혼이 안 들어가는데…?”

        ​

        찌릿 –

        ​

        영감의 날카로운 눈이 나에게로 향했지만, 어쩌란 말인가.

        ​

        진짜로 혼이 안실리는데.

        ​

        “네놈은 누구냐?”

        ​

        “어…음…”

        ​

        아까처럼 소개를 했다가는 또 믿지 않을 것이다.

        ​

        잠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영감의 속사포 같은 말들이 터져 나왔다.

        ​

        “장인의 혼은 일반인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예?”

        ​

        “망치도 안 잡아본 것 같은 놈이 무얼 안다고…쯧쯧.”

        ​

        망치를 안 잡아 본 것도 맞고 대장간일을 모르는 것도 맞다.

        ​

        하지만.

        ​

        “제가 영혼을 볼 수 있는데, 진짜로 혼이 안 들어갔어요.”

        ​

        “….”

        ​

        “…..”

        ​

        곧이어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풉…!”

        ​

        “큭! 요즘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

        ​

        “뭐, 영혼을 보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더군. 북부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었나?”

        ​

        내 소문이 어느새 여기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

        하기야 여기에서도 점을 봐주고 다닌지 한참이나 흘렀으니 말이다.

        ​

        알만한 사람들은 알법도 했다.

        ​

        “영웅이 등장하니, 역시나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군.”

        ​

        “그러게나 말일세.”

        ​

        “머리가 새하얗다지?”

        ​

        힐끔 –

        ​

        “등에 아이를 업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네.”

        ​

        “그 아기가 성녀라지 뭔가?”

        ​

        힐끔 –

        ​

        웃음을 터뜨렸던 대장장이들이 나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

        멀리서 작업을 하고 있던 대장장이들도.

        ​

        “머리가 하얗고…영혼을 보고…아이를…?”

        ​

        “푸,푸른색의 방울을 들고 다닌다는 소리도 있었네.”

        ​

        힐끔 –

        ​

        아까보다 많아진 시선이 내 허리춤으로 향했다.

        ​

        “….”

        ​

        “…”

        ​

        “이 사람들아, 북부에 있을 사람이 여기에 왜 있다는 말인가?”

        ​

        넉살 좋은 말에 사람들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

        “하하하, 그럼 그렇지.”

        ​

        “난 또 진짜인가 싶었네.”

        ​

        “란돌프경이 함께 계서서 진짜인 줄 알았지 뭔가?”

        ​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 갔다.

        ​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정적.

        ​

        “….”

        ​

        “….”

        ​

        란돌프경이 입을 열었다.

        ​

        “그분이 맞다.”

        ​

        “허억…!”

        ​

        “헙!”

        ​

        경악의 반응들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

        망치를 들고 달려와 나를 훑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

        내 소문이 도대체 어떻게 났길래 이런 반응일까?

        ​

        “어,언데드도 무서워할만큼 흉측하게 생겼다고…”

        ​

        “분명히 목소리가 번개처럼 우렁차다 그랬는데? 온 성에 목소리가 울렸다고…”

        ​

        “…예?”

        ​

        뭔가 소문이 잘못되도 한참이나 잘못되어 있었다.

        ​

        멀쩡한 사람한테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

        그 순간, 안쪽에 있던 건물에서 부서질듯 문이 열렸다.

        ​

        콰앙 –

        ​

        “영혼을 보는 놈이 왔다고?”

        ​

        “그런 놈이 있어?”

        ​

        “에고소드 만들기 딱이구만!”

        ​

        덥수룩한 수염.

        ​

        내 명치까지 올 만한 키.

        ​

        다부지고 단단한 근육들.

        ​

        소문으로만 듣던 드워프들이었다.

        ​

        우르르 –

        ​

        “이놈이 그 영혼을 본다는 놈인가?”

        ​

        “몸은 형편이 없군.”

        ​

        “같이 망치질은 못 하겠어.”

        ​

        드워프 다섯 명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품평을 하고 있었다.

        ​

        “드디어 에고소드의 비밀을 밝히나 했더니…”

        ​

        그중에서도 유난히 다부진 인상을 가진 드워프가 나를 또렷이 보고 있었다.

        ​

        “클로셀이 말한 인간이 네놈이냐?”

        ​

        “맞아요.”

        ​

        “만들어야 할 것이 있다고 들었다.”

        ​

        연락해놓겠다더니, 역시나 벌써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

        드워프가 흥분한 기색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

        “네크로맨서 놈들을 혼내줬다지? 무엇을 만들어 주면 되겠느냐?”

        ​

        정말 눈빛이 뜨거운 종족이었다.

        ​

        “언데드를 물리칠 검? 창이 필요한가?”

        ​

        “아,아니 그런 건 아니고…”

        ​

        “마법을 막을 갑옷? 훌륭한 방어 마법을 인챈트 해 주겠다. 성검을 담을 검집은 필요 없나?얼른 말해 보거라.”

        ​

        무언가 굉장한 물건들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

        문제는 내가 만들 물건이 저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나는 뻘쭘하게 입을 열었다.

        ​

        “밥 그릇이랑, 국 그릇이랑… 숟가락?”

        ​

        “….”

        ​

        “….”

        ​

        드워프 들의 수다가 뚝 멎었다.

        ​

        괜스레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물씬 올라왔다.

        ​

        그러게 사람 민망하게 왜 저런 거 부터 말해가지고….

        ​

        “혹시, 네크로맨서의 피를 담을 그릇인가?”

        ​

        “소문대로 무서운 인간이군. 숟가락으로 눈을 파버릴 것이 분명해.”

        ​

        도대체 내 소문이 어떻게 퍼진 걸까.

        ​

        나는 다시 한번 기대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

        “상 차릴건데요…”

        ​

        “….”

        ​

        “…”

        ​

        드워프들이 서로 미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

        나는 더 뻘쭘해졌고 말이다.

        ​

        어쨌든 드워프의 첫인상은 굉장히 특이했다.

        ​

        오행의 기운들이 제멋대로인 종족.

        ​

        화, 금, 토를 제외한 수, 목의 기운들이 없다시피 할 만큼 희미했다.

        ​

        그래도 생명이니 존재는 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

        ​

        “….”

        ​

        저렇게 오행의 기운이 안 맞으면 팔자에 부족한 것이 생긴다.

        ​

        보통 물가 근처에 살라고 하거나, 산에 자주 가라고 하는 말들도 기운간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하는 말이다.

        ​

        다시 말하자면, 드워프 들은 수와 목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결핍이 있다는 말이다.

        ​

        인생에 꼬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

        눈빛을 교환하던 드워프들이 시큰둥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

        “나온 김에 식사나 하고 가지.”

        ​

        “시간이 이르니 간식은 어떠한가?”

        ​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드워프들이 일제히 무언가를 꺼내었다.

        ​

        아공간 주머니인 듯 제법 커다란 컵이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

        사람 머리만한 잔.

        ​

        “맥주나 한잔 하지.”

        ​

        나는 깨달았다.

        ​

        드워프들이 수와 목의 기운을 채우는 방법을.

        ​

        “….이래서 맥주를 좋아하는거였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

    은* 독자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따듯한 응원 덕분에 신나서 연참을 해봤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e check love fortune, career fortune, financial fortune, compatibility, physiognomy, and points of intere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