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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점술사는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이빨 요정을 쳐다보며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눈알이 팽글팽글 돌고 두통이 엄습할 정도로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살아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너는 나에게 바쳐지는 길밖에 없다는 듯 횃불에 비치는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이 사악하게 웃었다. 춤을 추듯 천이 펄럭였으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천이 지느러미가 되어 크롬 크루어히의 몸짓이 되었다.

       강렬한 리듬에 춤을 추듯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으며, 원시 종교의 광기를 그대로 품은 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기쁜 듯 횃불에 몸을 바꾸고 있었다.

         

       그림자가 지고, 그림자가 사라진다.

       그 모습이 마치 몸을 측면으로 돌리고 몸을 빙그르르 돌리는 것 같은 모습이라.

       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발레를 추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빨 요정은 주연을 빛내주는 도우미라도 되듯 춤을 추었다.

       허리를 뒤로 한껏 꺾어 ‘ㄱ’자 형태가 되었고, 집게를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는 등의 숭배하는 동작을 취하며 움직였다. 방방 뛰면서 빨판을 위로 쳐들기도 하였고, 때에 따라서는 돋아난 여러 개의 발로 스스슥 기고 몸을 튕기며 기괴한 몸짓을 보였다.

         

       인간이 광기에 취해 춤을 춘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점술사가 고민하는 사이 봄의 제전 제2부 희생제(Le Sacrifice) 제2곡 젊은이의 신비한 모임(Cercles Mystérieux des Adolescentes)이 만드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끝을 맺고 있었다. 플롯과 클라리넷의 선율이 점차 끝이 나고, 타악기와 관악기가 광기를 품고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제3곡 선택받은 처녀에 대한 찬미(Glorification de l’Élue)가 시작된 것이다.

         

       원시 종교 특유의 광기, 이교도들의 통일된 집단의식, 목이 아닌 영혼으로 울부짖는 듯한 깊고 어두운 감정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감정에 동조하듯 이빨 요정들의 춤 역시 더 기괴해졌으며, 이제는 아예 춤이 아닌 몸부림으로 보일 법한 행동을 계속했다.

         

       “으윽!”

         

       끔찍한 불협화음 속에서 점술사는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게 뛰는 심장은 말 그대로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으며, 그것이 어찌나 심한지 귀에까지 그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진동 때문에 구역질이 샘솟고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고요하게 자극하는 다른 종교적인 진동과는 다른, 사람의 육체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을 토대로 정신을 미치게 만드는 이 진동은 사람을 피에 미친 살인마로 만든다는 광폭화(berserkr) 주술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술사는 쓰러질 수조차 없었다.

       구역질이 나서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려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당기기라도 하듯 몸이 확 뒤로 넘어갔으며, 무릎이 풀려서 넘어지려고 하면 꼭두각시 인형을 실로 세워주듯 벌떡 일으켜주었다. 몸을 휘청이면 누군가의 도움이라도 있는 듯 그를 잡아주었고, 토악질이라도 하려고 치면 입을 닫고 고개를 뒤로 젖혀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이빨 요정들처럼 광기 가득한 춤을 추는 것과 같아 보였으니.

         

       점술사는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자신은 이미 이 끔찍한 의식의 중심이 되었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직, 영웅이 되지 못하고 죽는 미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점술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영웅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어린 시절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성적 정체성, 종종 튀어나오는 또 다른 인격.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환상들.

       그 모든 것을 시련이라 여겼다.

         

       그저 영웅으로서 완성되기 위한 사건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그는. 그녀는.

       자신이 겪는 모든 것을 영웅이 되기 위한 시련으로 생각하며 쉴 새 없이 달려왔을 뿐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보았던 게일 용사들의 이야기.

       영웅이자 신이었던 그들의 이야기.

         

       ‘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선업을 쌓으려 했다.

         

       사람 하나를 바쳐서 여럿을 이롭게 하는 것이 선업이 아니라면 무엇이 선업일까?

         

       사람을 바쳐서 대지를 풍요롭게 만들고.

       사람을 바쳐서 태양의 은혜를 받게 하였고.

       사람을 바쳐서 재능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 과정에서 선업을 얻고, 영웅의 길에 한 발짝 다가갔을 뿐이다.

         

       그래.

       다가가기만 했을 뿐이다.

         

       점술사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이제 죽는다.

         

       “아.”

         

       저 멀리 동이 트는 것이 보인다.

       

       미약한 빛이 타오르는 어둠을 찢어발기며 솟구친다.

       불똥이 튀어 나뭇잎을 불태우고, 나무를 불태우고, 이윽고 온 산을 불태우며 세상을 밝히듯.

       크롬 크루어히의 태양이 마침내 떠올라 제물을 징수하려 하고 있다.

         

       제 몸에서 나오는 열기로 곡물을 자라게 하고 모두를 살찌우는 대가.

       오직, 점술사를 제물로 먹어치우기를 원하고 있는 눈동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밤하늘의 어둠을 눈꺼풀 삼아 서서히 떠오른 동그란 눈알은 제 빛이 닿는 모든 곳을 찬란히 비추었고, 그 빛을 마주한 점술사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다만 반드시 도달할 끝에는 일말의 평온함이 있어 분노 대신에 체념을 주었다.

         

       두—웅!

         

       거대한 팀파니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태양 빛이 그에게 내려왔고, 그 빛은 곧 열이 되어 점술사의 몸을 가득 메웠다. 피를 부글부글 끓게 하고 눈알이 쩍쩍 갈라지게 하는 그 열기는 점술사의 몸을 맹렬히 순환하며 그를 죽이기 시작하였고, 점술사는 달군 철 구두를 신은 계모처럼 몸을 방방 뛰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이 산채로 익어가고 신경이 미쳐가고 있는 끔찍한 상황임에도 그는 그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오직 몸 안의 열기를 빼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자리에서 미친 듯이 튀어 올랐다. 한 발로 튀고, 두 발로 방방 뛰고, 팔을 위로 뻗어 열기를 가져가라는 듯 태양을 향해 애원하고. 고개를 위로 쳐들고 아래로 내리며 제 몸 안의 열기를 토해내려는 듯 그렇게 광기 어린 몸짓으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에 호응하듯 이빨 요정은 그의 주변을 미친 듯이 빙빙 돌고 또 돌았고.

         

       풀썩.

         

       이윽고 점술사가 몸에 김을 펄펄 풍기며 바닥에 쓰러졌을 때, 이빨 요정들은 일제히 제 팔을 대나무처럼 쭉쭉 늘리며 시체를 위로 쳐들었다. 헹가래를 치듯 하늘로 치켜들고, 귀한 것을 바치는 것처럼 공손하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들이 시체를 위에다가 내민 그 순간, 곡이 끝났다.

         

       봄의 영광.

       태양의 은혜.

       풍요의 거름.

       원시 종교의 신비.

         

       점술사는 그 모든 것을 품은 채 산제물이 되었다.

       산제물의 죽음과 곡의 끝으로 광기 넘치는 의식은 끝이 났으며,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은 태양 빛에 불타며 한 줌의 잿더미로 변했다. 장작으로 태우기라도 하듯 점술사의 시체 역시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과 함께 불타서 사라졌으며, 남은 재는 민들레 홀씨라도 되는 것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 사라졌다.

         

       그 모습이 진짜 크롬 크루어히라는 사악한 존재가 있고, 그 사악한 존재가 직접 손을 뻗어 점술사의 영혼을 거두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특히 잿더미가 사라지자 그것에 편승하듯 검은 연기로 변해서 같이 날아가는 그 모습이, 그 음산해보이는 모습이 점술사의 넋을 크롬 크루어히에게 끌고 가는 저승사자와 같은 모양새라 더더욱 그러했다.

         

       “옴 마니 파드메 훔(ॐ मणि पद्मे हूँ).”

         

       진성은 죽어버린 점술사의 명복을 빌 듯 그렇게 주언을 외웠다.

         

       그리곤 제단으로 가 온몸에 엄습하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엘라를 보았다.

         

       “꺼져가는 불꽃과 같구나.”

         

       오염된 엘라의 상태는 심각했다.

       피를 너무 많이 빨린 것인지 가뜩이나 새하얗던 피부는 시체를 연상케 만드는 빛으로 변해 있었고, 식은땀은 제단 전체를 흥건하게 적시고 땀으로 웅덩이를 만들 정도였다. 게다가 몸은 계속해서 작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쇼크가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진성은 엘라의 가슴께에 손을 가져다 대고 심장 소리를 느꼈다.

       심장은 뛰고 있기는 하나, 피를 많이 빨아들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몸의 에너지를 짜내서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심장은 잔뜩 무리하고 있었고, 언제든 심부전을 일으킬 것 같았다.

         

       진성은 손을 그대로 올린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어둠을 완전히 불사르지 못한 태양은 힘을 짜내서 세상을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그 빛과 어둠이 혼재된 상황 속에서 최상급 루비로 만든 서치라이트가 제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태양이 발하는 붉은빛과 자신이 발하는 붉은빛은 다른 것이라는 듯, 온 힘을 짜내며 말이다.

         

       “태양이여! 어린 태양이여!”

         

       진성은 허리춤에서 흑요석으로 만든 단검을 꺼냈다.

         

       푸욱!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엘라의 가슴에 꽂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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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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