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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87화. 앞으로, 한 걸음 ( 5 ) 

       

       

       

       

       

       연금술사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을 거다. 납과 철, 구리 등의 금속으로 금을 만들기 위해 온갖 기행을 저질렀다는 이들.

       결과부터 말하면 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연구 결과는 근현대 화학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렇게 역사의 뒤로 사라진 연금술사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연금술사가 다시금 등장했으니. 그들은 납으로 금을 만드는 대신, 돈으로 0과 1의 전자 데이터를 만들고는 했다.

       

       그리고 나도, 돈으로 전자 데이터 쪼가리를 만드는 연금술사가 되었다.

       

       

       “뭘 사야 좋을까.”

       

       

       어쩐지 약간은 즐거운 속마음을 애써 모른척하며, 스킬 리스트를 쭉쭉 훑어본다. 

       

       그렇게 많이 사지는 않을 거다.

       정말 딱 필요한 스킬만, 효율적으로. 과소비는 나쁜 거니까.

       

       

       “와씨, 이게 뭐야.”

       

       

       공격력, 방어력 증가에 캐릭터가 다중 분신술을 써? 거기에 합동 필살기라고? 잠시 혹해서,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넣을 뻔했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눈을 부릅떴다.

       

       저 스킬도 정말 탐이 나지만… 지금 필요한 건 합동 필살기가 아니다.

       분신술을 써도 독에 녹아내리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지금은 거지 같은 벌레 보스를 카운터 칠 수 있는 스킬들이 필요한 상황.

       

       

       “디펜스까지 생각하면 한… 3개 정도 사면 되려나.”

       

       

       보스전이 진행 중이면서, 동시에 디펜스도 진행 중인 지금. 보스도 잡고 디펜스도 끝마치기 위해서는 적당히 스킬을 분배해야 한다.

       쓸모를 다한 탐색 스킬을 빼고, 보스 전용 스킬 3개에 디펜스 스킬 2개 정도 들고 가면 괜찮을 것 같다.

       

       머릿속으로 보스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며 꼼꼼하게 스킬을 찾기 시작했다.

       

       

       외형은 벌레고 사용하는 무기는 독과 벌레. 이름이 ‘부패와 역병의 악마’라는 걸 생각하면 2 페이즈에는 주변에 병균을 뿌리는 스킬을 쓸 수도 있다.

       어쩌면 패시브로 주변을 부패시킬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근접캐인 한스로는 상당히 까다로운 상황.

       

       곰곰이 생각하면서 1 순위의 스킬은 ‘정화’ 혹은 ‘치유’, ‘면역’ 쪽으로 찾기 시작했다. 

       달랑 칼 한 개만 들고있는 한스가 감염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테니, 빠르게 해독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하, 내가 산 스킬만 지금 열 몇 개 있는데. 스킬을 또 사야되네.”

       

       

       사놓은 스킬은 쌓여만 가는데, 어떻게 된 게 보스전을 할 때마다 스킬을 매번 사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지고 있는 스킬로 해결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투덜거려봐야 상황은 변하지 않으니, 이내 포기하고 열심히 상점을 뒤졌다.

       그렇게 야밤에 열심히 스킬을 고르고 따져가며 머릿속으로 나름 가성비까지 따지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ㅡ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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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신 나를 유혹하는 스킬들의 유혹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정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스킬들만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나름대로 2 페이즈까지 예측하면서 스킬들을 구매했으니, 이제 남은 건 한스가 얼마나 잘해주냐에 달렸다.

       

       

       “후ㅡ 잘하자 한스야 진짜.”

       

       

       이제 정말 한스에게 모든 게 걸렸다.

       

       회색빛을 멈춘 화면을 띄운다. 한스의 발아래에 멈춰있는 보랏빛 연기와 낫 발톱을 휘두르고 있는 너글. 그리고 궁지에 몰린 한스.

       

       잠시 두 손 모아 간절하게 기도한다. 

       부처님과 예수님, 알라신 아무나 제발 저에게 힘을…!

       

       짧은 기도를 끝내고 크게 숨을 내쉰 다음, 회색빛으로 멈춘 화면을 다시 재생시킨다.

       

       그러자 보랏빛 안개가 고기굽는 소리를 내며 한스의 발을 타고 올라갔다.

       

       

       – 치이이익

       

       – “크악! 아아악!! 으아아!!”

       

       

       사극 드라마에서 인두로 고문받을 때 저런 소리가 나던데, 한스의 목소리도 진짜 불에 지져지는 것처럼 고통이 생생하다.

       한스의 체력이 빠르게 깎여나가기 시작한다. 

       재빨리 구매한 스킬 중 두개를 사용했다.

       

       

       《태양처럼 강인한 육체! 캐릭터에게 ‘면역’ 효과를 부여합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효과가 유지됩니다.》

       

       《끓어오르는 피! 공격력이 상당히 높게 상승합니다. 잃은 체력에 비례해서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한스에게 노란색과 붉은빛의 아우라가 깃들더니, 줄어들던 체력이 멈췄다.

       다시금 보랏빛 연기가 한스를 감쌌지만, 독에 면역이 된 한스는 멀쩡하게 움직인다.

       

       

       – “난…!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어!”

       

       

       한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외쳤다. 공감되는 말이다.

       나도 이 레이드를 이겨야 할 이유가 있거든.

       

       

       

       

              *       *       *       *

       

       

       

       

       

       “크으윽!”

       

       

       한스의 눈빛은 낭패감이 가득했다. 바닥과 벽에 역병을 심으며 점차 다가오는 보랏빛 독무. 

       조금이라도 닿는다면 자신은 순식간에 녹아내릴 것이다. 온몸에 종양이 생기고, 포자가 자라나서 악마의 노리개가 되리라.

       

       

       《후후… 자아, 이제 한번 보자꾸나.》

       

       

       너글이 양옆에서 기다란 거미 다리를 꺼내 정신없이 꿈틀거렸다. 기대되고 재밌어서 미치겠다는 듯한 모양새다.

       그리고 바닥을 기어 오던 독무가, 한스의 발을 집어삼켰다.

       

       

       치이이익ㅡ!

       

       “크으ㅡ!! 으아아아!! 아아아악!!”

       

       

       한스는 순간 눈앞이 새햐얘졌다고 생각했다. 발끝부터 산채로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신경을 불태우며 전해졌다.

       한계를 넘어선 자극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를 지졌고, 실핏줄이 터져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겨우 발가락에 닿았을 뿐인데, 몸을 녹이는 듯한 끔찍한 감각이 온몸을 강타한다.

       

       

       《흠. 이번에는 격이 오르지 않는군. 뭐가 문제지? 직접 움직여서 싸워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 검을 휘둘러야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투지? 의지? 뭐가 됐든 흥미롭구나.》

       

       

       너글은 한스의 고통 소리를 음미하는 듯, 작게 흥얼거리며 저 혼자 중얼거렸다. 

       

       

       《아직 표본이 너무 적구나. 조금 더 봐야겠어.》

       

       

       너글의 말에 독무가 점차 발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발가락 끝에서, 발등으로 그리고 발목까지.

       독무가 지나간 자리는 까맣게 썩어들어가며 보랏빛 종양이 부풀고, 피부가 녹아내려 하얀 뼈가 보였다.

       

       짧은 시간 동안, 한스는 끔찍한 고통에 기절했다가 정신 차리기를 반복했다. 지나친 고통은 한스가 편히 기절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독무에 마비독이 있었는지, 팔다리가 저릿하게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자유로운 부위는 오직 머리뿐. 그것마저도 언제든지 마비될 수 있었다.

       

       영혼을 산 채로 녹이는 듯한 고통이 계속해서 한스를 괴롭혔다.

       

       이렇게 자신은 악마에게 패배하고 마는 것일까?

       

       악마의 노리개가 되어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는 걸까?

       

       점차 시야가 흐려지는 듯했다. 가물가물하게 눈이 감겨오고 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

       

       …이대로 끝나면, 약속은?

       

       

       ‘약속… 약속을 했어.’

       

       

       데이지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언제라도 구하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은 데이지와 맺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ㅡ 촤아아악!

       

       《뭐…?》

       

       

       온몸에 역병이 퍼져 점차 죽어가던 한스의 몸에, 태양처럼 눈부신 빛이 내려왔다. 

       동굴에 퍼진 종기와 정체 모를 각질들이 불타오르고, 독기가 가득한 보랏빛 독무가 점차 사라지며 일대가 정화된다.

       

       밝은 빛은 한스의 몸에 스며들었다. 눈부신 태양이 노랗고 붉은 빛을 내뿜으며 한스를 감싸고, 온몸에 퍼졌던 독들이 불타며 사라졌다.

       

       

       《무슨… 말도 안 된다! 이 세상에 ■이 남아있을 리 없을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글이 미친 듯이 발광하며 제 발톱을 휘둘렀다. 

       한스는 제 몸을 감싸는 뜨거운 열기에 눈을 떴다. 온몸을 녹여버리는 듯한 고통은 가시고, 태양처럼 뜨거운 무언가가 몸안으로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이럴 리 없어!! 너,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너글의 몸을 이루고 있는 벌레들이 잔뜩 흥분하여 미친 듯이 기어 다니며 차르륵하고 쇠사슬 흐르는 소리를 냈다.

       한스는 눈을 감고, 몸 안에 있는 태양처럼 뜨거운 힘에 집중했다. 심장이 위치한 곳, 그곳에 작은 태양이 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작은 태양이 온몸으로 뜨거운 무언가를 펌프질하고 있었다.

       

       

       “신께선 나에게 더러운 악마를 쳐 죽이라고 명하셨다!”

       

       《■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 그래, 너, 너!! 네가 괴상한 술수를 부린 것이 분명하다!! 널 죽이면 그 힘도 사라지겠지!!》

       

       “여기서 죽는 건 너다!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어.”

       

       《■■■-!! ■■ 같은 녀석!! 죽어, 죽어라!!》

       

       

       ㅡ 푸시이이익!

       

       

       발광하며 소리치던 너글이 다시 한번 보랏빛 독무를 뿜어냈다. 아까보다 훨씬 독하고, 색이 진하다. 연기에 닿은 벽면은 부패하다 못해, 진물로 녹아내려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한스에게 닿자ㅡ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스의 피부를 따라 흐르는 태양의 힘에 녹아내리며 평범한 연기처럼 사라졌다.

       

       

       “널 죽이고, 난 살아서 돌아갈 거다.”

       

       《크아아악!! 그 힘!! 역겹고 증오스러운 그 힘!! ■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을리 없을터인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너글이 사방으로 거대한 발톱을 휘두르며 발광했다. 한스는 자세를 낮추고 재빨리 달려들었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작은 태양이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과 역병에 관한 것 뿐. 

       

       나머지는 아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었다.

       

       해볼만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신을 들먹이며 잔뜩 이성을 잃은 지금이라면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다.

       

       

       ㅡ 화륵!

       

       

       한스의 롱소드에 새하얀 빛이 감싸졌다. 언젠가 보았던 용사님의 신성력이 이랬을까.

       눈부신 빛에 감싸여진 롱소드는 날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 감히 내 앞에서 그딴 힘을 보이느냐!!》

       

       

       너글은 그 빛을 보더니 괴성을 지르며 한스를 몰아붙였다. 

       

       이 빛은 그에게 주어진 단 한번 뿐인 기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단 한번…!’

       

       

       한스는 눈을 부릅 떴다. 

       눈에 피가 지나치게 몰리며 실핏줄이 터지고, 피눈물이 흐르며 시야가 빨개졌다. 그래도 괜찮다.

       공격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동굴을 가득 메우며 휘둘러지는 채찍같은 꼬리와, 검처럼 날카로운 발톱, 엄니.

       모두 똑똑히 보인다.

       

       앞으로 달려가며 하나하나 눈에 새긴다.

       

       옆구리로 날아오는 채찍을 쳐낸다.

       얼굴을 찔러오는 엄니를 부순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발톱을 피한다.

       

       피하고, 쳐내고, 부수고 구른다.

       한스는 쉬지 않고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너글은 아직도 발광하며 이성을 잃은 채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널 증오한다!! ■을 증오하고 경멸한다!! ■■■■■■같은 녀석!!》

       

       

       “크으윽!!”

       

       

       정면에서 휘둘러지는 통나무같은 다리를 막아냈지만,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장을 울렸다. 

       

       울컥하고 시뻘건 피를 한 움큼 토해낸다.

       

       내장이 진탕되며 잔뜩 엉망이 된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억지로 발을 움직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계속해서 누적된 충격과 피로는 한스의 발목을 붙잡고, 비 오듯 쏟아지는 무수한 공격들이 하나둘 몸에 상처를 남긴다.

       

       

       ‘한 걸음, 더…’

       

       

       그래도 앞으로. 조금만 더.

       

       저 앞에, 역겹고 가증스러운 가면이 보인다. 

       까만 갑각질의 벌레처럼 기어다니며 인간을 유혹하고 장난처럼 죽이는 악마가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는 너글. 

       한스는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눈부신 빛의 검이 너글의 얼굴을 향했고ㅡ

       

       

       《끄흐으악!! 아아아아악!!!》

       

       

       무수한 벌레들을 꿰뚫으며,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주인공은 흑우야, 음머하고 울지… 이번 축구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별 기대없이 봤는데, 진짜 재밌더라구요!!! 골대가 열일했따!!!

    – ‘길가던나그네’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용기의 위대함!!! 체펠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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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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