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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레온 씨, 웃음이 사악해요.”

       “쀼우.”

       

       실비아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했다.

       

       “너무 속이 빤히 보여서 저도 모르게…. 크흠.”

       

       아무리 내가 범인이 게콘이란 걸 알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게콘의 자세한 성격이나 행동 패턴까지 꿰고 있는 건 아니었다. 

       

       만약 게콘이 조금이라도 신중한 성격이었으면 미끼가 좀 먹음직스럽긴 해도 일단 이틀 정도는 상황을 지켜 봤을 터. 

       

       하지만, 놀랍게도 게콘은 바로 미끼를 덥썩 물었다. 

       

       ‘미끼를 문 녀석이 가장 먼저 할 행동은, 바로 일을 벌일 때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것이지.’

       

       듣자하니 어젯밤 게콘은 평소에는 잘 나가지 않던 하루짜리 호위 의뢰를 나갔다가 들어왔다고.

       

       ‘어쩌다 한 번이면 모를까, 이틀 연속으로 호위 의뢰를 나가는 건 누가 봐도 수상한 행동.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지.’

       

       써먹었던 방법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의심을 가장 확실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

       그건 바로 사건이 일어날 시간에 길드장 반하임과 같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하임에게 미리 말을 해 두었다. 

       당신과 굳이 같이 있으려고 하는 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으니, 혹시라도 누군가 저녁이나 밤에 그를 부른다면 바로 나에게 그 사람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말이다. 

       

       ‘물론 나야 이름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이 정도 쇼는 해 줘야지.’

       

       그나저나, 이걸 바로 다음날에 실행할 정도면 아무래도 게콘이란 놈은 이 일을 끝으로 예정보다 빠르게 길드에서 손을 털고 나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긴, 이번 일까지 성공하면 길드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거의 다 챙겼다고 봐도 무방할 테니.’

       

       어떻게 보면 첩자 입장에서 이보다 더 시원하게 털고 나올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거다. 

       

       “근데 이 사람이 만약 그냥 진짜로 길드장님을 위로하려고 술을 마시자고 한 거면요?”

       

       실비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오늘은 허탕 치는 거죠, 뭐. 밤에 대기하는 게 지루하시면 실비아 씨는 여관에서 먼저 주무시고 계셔도 돼요. 실비아 씨가 하시기로 한 건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아지트 쳐들어갈 때 부르러 갈게요.”

       

       하지만 실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뇨! 그냥 조금 걱정돼서 여쭤본 거였어요. 레온 씨랑 아르가 대기하는데 제가 자고 있을 순 없죠. 그리고….”

       

       그리고 씨익 웃었다.

       

       “오히려 전 말씀하셨던 역할이 기대가 되는걸요. 후후.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네요.”

       “…실비아 씨.”

       “네?”

       “웃음이 사악해요.”

       “쀼우.”

       

       ***

       

       그날 밤. 

       

       굳게 잠긴 창고 바깥쪽의 경비는 평소보다 강화되어 있었다. 

       

       바로 전날 경비를 서던 용병 두 명이 시프 길드원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마비독이 발린 독침을 맞고 기절했었기 때문이었다. 

       

       시프 길드원은 용병 둘을 순식간에 제압한 후, 그들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간단히 빼내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안쪽 금고를 털었다. 

       

       그렇기에 지금 바깥에는 등급이 좀 더 높은 상주 용병 둘이 추가로 배치되었고, 그들의 무장 상태도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철저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흐흐. 머저리 같은 놈들. 내 이럴 줄 알았지. 경비 자알 선다.”

       

       시프 길드원은 그런 용병들을 향해 조소를 지었다. 

       

       스르륵. 탁.

       

       시프 길드원이 나타난 곳은 창고 안. 

       정확히는, 창고 안쪽의 바닥에 있는 땅굴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평한 땅이었지만, 시프 길드원이 땅굴 안에서 정확한 위치를 잡아 들어 올리자 그 땅의 둥그런 일부가 들어올려지며 그가 나올 수 있는 구멍이 만들어졌다. 

       

       ‘어제 독침으로 쇼 한 번 했더니 아주 바깥쪽 경계를 철통으로 강화해 놓으셨군.’

       

       사실 그는 어제도 이 땅굴을 통해 금고를 털었다. 

       

       게콘에게 전달 받은 암호를 입력해 금고를 열고, 돈과 성유물 조각을 전부 땅굴을 통해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은 뒤, 일부러 다시 와서 경비를 서고 있는 용병에게 마비독침을 던져 기절시켰다. 

       

       ‘마치 정면에서 들어와 털고 도망친 것처럼 해 두기 위해서 말이지. 크큭.’

       

       겸사 겸사 창고 안에서 땅굴을 빠져나갈 때 남았을 수도 있는 약간의 흔적을 완전히 메워 두기까지 했으니, 창고의 바닥을 조사해 본다 해도 들켰을 리는 없다. 

       

       ‘뭐, 이 땅굴도 이번으로 두 번이나 썼으니 폐기해야겠지만.’

       

       아무리 눈속임을 잘 했다고 해도, 똑같은 잠입 수단은 최대 두 번까지만 사용한다. 

       이는 시프 길드가 지키는 철칙 중 하나였다. 

       

       ‘게콘 녀석도 이번 일을 끝으로 손 뗀다고 했으니.’

       

       게콘은 처음부터 시프 길드에서 심어 놓은 스파이였다. 

       몇 년에 걸쳐 신뢰를 쌓아 놨고, 덕분에 간부의 자리까지 꿰찬 게콘을 통해 그간 여러 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캐머해릴이라는 작지 않은 도시의 용병 길드에서 들려 오는 정보 하나 하나는 시프 길드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성유물 조각이 대박 건이었지.’

       

       길드장은 간부를 의심할 생각조차 못 하는 멍청한 놈이라고 들었다.

       

       ‘얼마나 멍청하면 성유물 조각이 도난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할까.’

       

       게콘에게 들은 바, 창고가 털린 건 이미 일파만파 퍼졌으나 길드장은 일을 축소하기 위해 성유물 조각이 도난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간부들을 비롯한 몇몇의 입단속을 하고 대외적으로는 돈만 털린 것으로 알렸다고 했다.

       

       그리고 게콘도 몰랐던, 길드장이 개인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성유물 조각 반쪽을 그 자리에 갖다 놓기로 했다고. 

       

       ‘후후. 어쩐지 어제 훔친 조각이 좀 작다 했지. 뭐, 사실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했지만.’

       

       성유물 조각은 먼 옛날 성유물이었던 것들의 파편.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신성력을 자랑하는데, 만약 같은 성유물에서 나온 조각을 두 개 이상 가지고 있다면 거기서 뽑아낼 수 있는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러니 이번 기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였다. 

       

       시프 길드원은 조용히 어제 털었던 금고로 다가갔다. 

       

       그리고 복잡한 구조의 잠금장치에 작은 발광석을 비추고, 게콘이 알려 준 긴 암호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입력했다. 

       

       ‘암호가 틀렸을 때 폭발하거나 하는 함정은 보이지 않는다.’

       

       만에 하나 게콘이 자신을 속였거나, 아니면 게콘조차도 속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미 그는 안전하게 잠입을 완료했고, 암호가 틀려 금고를 열지 못했을 경우 곧바로 원래대로 잠금장치를 돌려 놓고 도망갈 준비를 마쳤다. 

       

       달그락. 달각.

       철커덕.

       

       마침내 암호를 전부 맞추자, 잠금장치는 철컥 소리를 내며 풀렸다. 

       

       ‘좋았어.’

       

       그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은 채 금고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성유물 조각을 찾기 위해 발광석을 내밀었다. 

       

       “…?”

       

       그가 일순 멈칫했다. 

       

       성유물 조각이 아니라 여리여리한 사람의 다리가 보였고, 시선을 홱 위로 올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부드러운 금발, 그리고 빨려들 것 같은 녹안을 가진, 지금까지 본 모든 여인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인은 곧 시선을 자신의 배꼽 쪽으로 떨구었고, 시프 길드원은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홀린 듯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여인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건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었고,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나운 생명체는, 시프 길드원을 향해 발톱을 세우며 포효했다. 

       

       “쿠룽!”

       “으아아아아악!”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순간. 

       

       퍼억.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은 시프 길드원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나이스, 아르. 아주 제대로 놀래켜 줬는데?”

       “쀼우웃!”

       

       잠복하고 있다가 시프 길드원의 뒤통수를 갈긴 내가 씩 웃자, 아르가 콧김을 뿜으며 주먹을 꼬옥 쥐었다. 

       

       드디어 대륙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두려워한다는 드래곤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 줬다는 생각에 흥분한 듯했다. 

       

       아르는 실비아의 품에서 폴짝 뛰어 나에게 안겼고, 보드라운 뺨을 나에게 마구 비볐다. 

       

       “아구, 잘했어. 아르 덕분에 확실하게 잡았네.”

       “쀼우우!”

       “후우. 원래 제 역할이었는데, 아르가 저리 좋아하는 걸 보니 양보하길 잘했네요.”

       

       실비아는 아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계획은 실비아가 혼자 금고 안에 있다가 문이 열리면 범인을 바로 때려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르가 ‘아르도 숨어 이따가 와앙! 하고 놀래켜 주고 시퍼!’라면서 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부탁을 하는 바람에 둘을 함께 들여보내고, 나는 근처에서 대기를 하는 걸로 노선을 조금 변경하게 되었다.

       

       “레온 님!”

       

       그리고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창고 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에는 이미 얼굴이 벌겋게 취한 길드장과 게콘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근처에 있던 다른 간부들을 포함해 연락을 받은 간부들도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설마 또 시프 길드가…!”

       

       나는 내 목을 안은 채 꼬리를 씰룩이는 아르의 엉덩이를 토닥여 진정시키고, 열려 있는 금고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잠금장치가 아주 깔끔하게 풀렸습니다. 오늘 바꾼 암호인데도 시프 길드원이 막힘 없이 풀어 내더군요.”

       “그 말은….”

       “설마 진짜 내부자의 소행이었단 말인가?”

       

       간부들이 술렁였다. 

       길드장은 말없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시프 길드와 내통하다니, 우리 중에 그럴 만한 사람이 대체….”

       “도저히 누군지 짐작도 가지 않는데….”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범인은 이미 알아냈으니까요.”

       “으응…?”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곧바로 태연하게 한 사람을 지목했다. 

       

       “게콘. 바로 저 사람이 시프 길드에 암호를 유출한 장본인입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게콘에게로 쏠렸다.

       

       “가, 갑자기 뭐야? 내가 암호를 유출했다고? 무슨 헛소리야!”

       “발뺌하셔도 소용없어요. 이미 증거가 여기 남아 있으니까요.”

       

       나는 풀려 있는 잠금장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잠금장치가 풀릴 당시에 입력된 암호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걸 본 게콘은 코웃음을 쳤다. 

       

       “암호? 암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뿐인 줄 알아? 내가 볼 땐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로한이 범인….”

       “잠깐만. 이 암호, 조금 이상한데.”

       “그러게.”

       “뒷부분의 순서가 조금….”

       “마지막 문자가 여기로 와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닌데. 이게 여기라고 했는데.”

       “…?”

       

       하지만 주변에서 들린 다른 간부들의 목소리에, 게콘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잠금장치를 톡톡 두드렸다.

       

       “이거, 제가 순서 달라도 풀리게 해 놨거든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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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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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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