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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후우…….”

         

       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면적이 어찌나 넓은지 물만 채우면 커다란 호수가 되어 관광 명소로 보일 정도였다.

         

       “일단 몸은 괜찮고.”

         

       오러가 모임과 동시에 몸의 상처가 다 치유되었다. 이러니 아무도 클리어 못 한 최종 보스지.

         

       “이제 프란체를 찾으러……”

         

       타닥타닥…….

         

       “…!”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어린아이. 아키온이라 불리는 폭렬술사의 손바닥이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뒤져…!”

         

       턱. 팔을 잡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나는 어린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언제나 진심을 다 하지.

         

       촤악! 검을 휘둘러 어깨 통째로 잘라버렸다.

         

       “끄아아아악!”

         

       붉은 선혈이 허공을 유영했다. 이내 추락으로 이어져 바닥을 적셨다.

         

       “커헉…! 커흐억…!”

         

       그대로 엎드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아키온. 나는 놈의 머리를 짓밟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놈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나?”

       “모른다…!”

       “그래?”

       “그래!”

         

       나는 검을 높게 들었다.

         

       “일단 다른 쪽 어깨도 잘라놔야겠군.”

         

       스각! 검날이 사선으로 쇄도하며 아키온의 왼팔이 잘려나갔다.

         

       “끄아아악……!”

         

       단말마가 그의 고통을 알려준다. 그러게 프란체를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이젠 상처를 막을 팔도 없군. 어떡하나?”

       “개, 개자식아…!”

         

       눈빛이 살아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살기가 남아있는 걸 보니 어린아이라도 칠성은 칠성인 듯하다.

         

       “벌은 제대로 받아야 할 거야.”

         

       빠악! 발을 내려찍어 아키온의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그대로 짓누르며 말을 이었다.

         

       “카아락에 대한 정보를 말해라.”

       “모른다…!”

         

       꾸욱. 좀 더 짓눌렀다.

         

       “이래도 모르나?”

       “모른…….”

         

       칼자루를 역수로 쥔 채 검날을 돌려 그대로 아키온의 심장에 꽂았다. 서걱!

         

       “커헉…….”

         

       위치는 제대로 잡았다. 심장이 관통됐을 터.

         

       “살아있는 놈이 있는지 찾아봐야겠군.”

         

       싸늘하게 식어버린 놈을 놔두고 나는 다시 걸었다. 아키온이 살아있는 걸 보면 분명 다른 놈들도 살아있다.

         

       거대한 크레이터라 해도 공중으로 비산한 바위들이나 먼지들이 떨어져 지형을 이루는 바람에 완전히 휑한 게 아니었다.

         

       “이러면 복잡한데.”

         

       다시 한번 다 날려버릴까? 이러면 찾을 필요도 없을 텐데.

         

       ‘아니야. 오감으로 잡자. 어차피 안개로 사라졌으니.’

         

       나는 감각에 오러를 흘려 넣었다. 미간과 관자놀이에 핏줄이 올라와 시야가 강화됐고, 벌레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청각이 강화됐다.

         

       후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짐승의 감각보다 뛰어난 후각. 곳곳에 퍼진 여러 냄새가 흘러들어온다.

         

       ‘프란체의 꽃향기가 나는 걸 보면 무사하군.’

         

       그제야 두근거리던 심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케일이나 카자르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카아락이라는 놈이 칠성 최강이라는 소리를 듣고 조금 불안했었다.

         

       이런 놈들 사이에서 최강이라면 상대하기 힘들 테니까.

         

       “프란체의 안전도 확인했으니 이제 찾아볼까.”

         

       벌레의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확인했다. 후각, 청각, 시각.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은 전부 사용한다.

         

       그러던 그때.

         

       ―미친, 저 정도라곤 못 들었다고!

       ―괜히 대륙제일검이겠나?

       ―안개까지 다 날려버릴 줄이야.

         

       여자의 목소리와 굵은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중년의 목소리.

         

       ‘전부 살아있었군.’

         

       왜 아키온 혼자서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마는. 다른 놈들도 죽일 테니 상관없겠지.

         

       “후우…….”

         

       뿌득, 뿌드득! 허벅지와 장딴지의 근육이 바짝 올라오며 오러가 흐른다. 그대로 높이 뛴다.

         

       콰앙! 발밑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몸이 튀어 올랐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놈들의 위치를 완벽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저기구나.’

         

       그대로 자세를 바꿔 다리에 오러를 흘려 넣는다. 그리고 스프링처럼 허공을 박차고 나아간다.

         

       파앙! 파공음이 일어나며 풍압으로 인해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러니까, 이대로 후퇴하자고!”

       “아니, 셋이서 작전은 계속한다.”

       “아오, 라하트 할배요!”

       “아직 카아락의 신호가 오지 않았다.”

       “놈도 당한 거 아니야?!”

       “설마. 카아락은……”

         

       콰앙! 연막탄이라도 터트린 듯 거대한 돌풍이 일어나며 시야를 가렸다. 후웅! 검을 한 번 횡으로 휘두르자 비산했던 먼지가 전부 쓸려나갔다.

         

       “서, 설마!”

       “미친!”

       “진 바렌베르크…!”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 경악으로 물든 표정. 그런 얼굴로 바라보니 너무하네.

         

       “놈은 아직 상처가 깊다! 지금이라도…!”

         

       라하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말도 안 돼…….”

       “상처가 전부 치유됐잖아!”

       “미친, 초월자는 자가치유도 가능한 거야?!”

         

       저벅. 저벅. 나는 그들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검날을 날카롭게 세우고 대각으로 뻗었다.

         

       “아까는 좋을 대로 움직였잖아. 이번에도 해보라고.”

         

       눈을 부릅뜨고 시선에 살기를 가득 담았다. 놈들은 입만 뻐끔거릴 뿐 발걸음은 떼지 못했다.

         

       “안 움직이나?”

       “…….”

       “…….”

       “…….”

         

       경직 그 자체.

         

       “알렉산드로. 아까는 네가 대륙제일검이 된다고 했잖아? 대검을 들어라.”

         

       터벅. 터벅.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놈들은 몸을 움찔거리며 위축될 뿐이었다.

         

       “크읏, 내가 먼저 가마!”

         

       스릉! 허리춤에 걸린 두 시미터를 꺼내 든 라하트가 내게 달려들었다.

         

       “강화!”

         

       치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라하트의 몸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다리는 멈추지 않았고 역수로 뒨 시미터와 함께 그대로 쇄도했다.

         

       “서포터가 앞으로 나오네. 멍청한 새끼.”

         

       휙. 가볍게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어…?”

         

       털썩. 한순간에 라하트의 상체가 말끔하게 잘려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푸슈웃! 피가 솟구치더니 남은 하체마저 앞으로 넘어졌다.

         

       “너네들, 알렉산드로랑 헤이닐이라고 했나?”

         

       내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저 맹수의 앞에 선 토끼처럼 오들오들 떠는 초식 동물만 남았을 뿐.

         

       “너희들을 죽이고, 모옥도 조만간 쳐부수러 가마. 프란체를 건드린 죗값은 톡톡히 치러야지.”

         

       후웅!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헤이닐과 알렉산드로의 몸이 반으로 토막 났고, 일대가 말끔하게 수평으로 잘려나갔다.

         

       “쓸데없이 시간이 지체됐네.”

         

       나는 다시 감각에 오러를 넣어 프란체의 흔적을 따라갔다.

         

       “지금 가니까 기다려.”

         

         

       * * *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진 케일과 정신을 잃은 카자르. 그리고 체념한 프란체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만류에도 이동을 밀어붙였으니까.

         

       “공녀님.”

         

       나는 쭈그려 앉아 프란체와 시선을 마주했다. 동기화의 위험성이 있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일이 있어도 그녀의 정신은 잡아줘야 하니까.

         

       “이건 절대 공녀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런 일을 벌인 모옥이 나쁜 놈들이지.”

         

       프란체가 생기 없는 눈빛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 때문에 카자르가… 나를 감싸다가…….”

         

       울먹거리는 목소리. 덜덜 떨리는 어깨와 손. 정신이 제대로 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들을게요. 너무 늦게와서 죄송해요.”

         

       나는 프란체를 살포시 안았다. 등을 토닥여주며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그제야 나를 꼬옥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나 때문에 카자르가… 내가 괜히 남작령으로 가자고 해서…!”

         

       훌쩍이며 말을 이어나가는 프란체.

         

       “자기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왜 나를 감싼 건지 모르겠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좀 더 남들을 신뢰하는 편이 좋다고. 카자르와 케일은 단순히 고용된 입장이라 공녀님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바로 빠지거든요.”

         

       품에 안았던 프란체를 떨어트리고,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카자르와 케일은 공녀님을 지키고 싶어서 지킨 거예요. 그게 아니었다면 여기서 이렇게 쓰러져있지 않았겠죠.”

         

       눈물이 맺힌 프란체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제는 남들을 더 믿어봐요. 예전과 달리 공녀님은 혼자가 아니니까.”

         

       울먹이는 프란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로 남들을 믿는 계기가 되었다면 다행이다.

         

       물론, 이 참상은 절대 잊지 않을 거다.

         

       모옥을 이 대륙에서 지워버린다. 사하라가 막는다면 사하라도 지워버리겠다.

         

       그게 내가 살인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프란체를 건드린 죄는 무거울 거야.’

         

       그때. 케일이 “크윽.” 하면서 머리를 부여잡더니 일어났다.

         

       “깨어났나?”

       “다 끝난 건가?”

       “그래. 다 죽였다.”

       “카아락이라는 놈까지?”

         

       나는 “아쉽게도 그놈은 찾지 못했다.”하곤 고개를 휘저었다.

         

       “그 자식, 말도 안 되게 강했다. 근접해서 싸워도 최악인데 원거리 공격도 통하지 않는 놈이었어.”

         

       칠성의 최강이라 했으니까. 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었던 건가? 나는 물었다.

         

       “놈은 칠성의 최강이라 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던 거지?”

         

       케일은 자신이 아는 모든 걸 말해주었다.

         

       에스투피나와 아즈라엘이라는 놈과 사투를 벌이고 처치한 다음, 계획을 듣고 프란체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는 모양.

         

       도착하니 카자르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으며 누군지 모르는 파란 머리가 대신 싸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간 셀다스의 소식이 없더니, 엑시드에서도 사정이 있었나 보군.’

         

       케일은 피투성이가 된 관자를 짓누르며 말을 이었다.

         

       “후우, 미안하군. 내게 믿고 맡겼는데 이런 상태라니.”

       “아니, 잘해줬다. 결과적으론 모두가 무사하니까. 게다가 놈은 칠성의 최강이었다.”

         

       내 위로에도 케일은 분한 듯 입술을 머금고 바닥을 응시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전멸이었다.”

       “…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놈의 빈틈이 생겼다. 그 시간에 서둘러 도망쳤지.”

         

       내 오러 폭발이 조금만이라도 늦었으면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건가.

         

       “미안하다. 내가 너무 늦은 탓이다.”

       “아니, 내가 약한 탓이지.”

         

       뭐지. 나랑 같이 자기 혐오 대결하자는 건가.

         

       “이번에 내 수준을 확실히 알았다. 나는 그동안 자만에 빠졌던 걸지도 모르겠군. 아니, 자만했다.”

         

       케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은 넓고 강한 놈은 많은 법이야. 솔직히 말해서 아즈라엘이라는 놈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내가 졌을 거다.”

         

       얘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강한 놈들이었다는 소리인데.

         

       “그놈들의 마스터는 얼마나 강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그러고 보니 모옥의 마스터는 나와 같은 초월자라고 했다. 이상한 권법을 쓰는 놈이라 했는데.

         

       ‘뭐, 상관없어.’

         

       상대가 누가 되었든, 프란체를 건드린 이상 죽음을 피해갈 순 없다.

         

       “걱정 마라. 모옥은 내가 이 대륙에서 지워버릴 테니까.”

         

       케일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단독으로 쳐들어갈 생각인가?”

       “이런 짓을 벌인 것에 대한 죗값은 치러야지.”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타국이기도 하고.”

         

       놈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한텐 안 될 거다. 이는 우매함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니다.

         

       칠성의 전력을 확인하고 판단한 결정이다. 마스터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는 잘 모르겠다만, 국가를 상대로 견제할 괴물은 아니지 않겠나?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일어날 수 있겠나?”

       “문제없다. 오러가 돌아가며 몸을 치유하고 있으니.”

       “그거 다행이군. 카자르를 맡기겠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카자르를 등에 업었다.

         

       나는 프란체를 수평 들기로 안았다.

         

       “나는 혼자 걸을 수 있어.”

         

       여기서 고집을 부릴 줄이야.

         

       “지금은 그냥 편히 쉬세요. 울어도 좋으니까.”

       “…….”

         

       프란체는 내 말을 듣곤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번 일로 인해서 배우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만.

         

       ‘모옥을 이 대륙에서 지우고, 이번 일과 관계된 성녀와 황태자도 기회가 오면 죽여야겠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에 살짝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살인귀과도 같은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꺼림칙함보다 분노가 앞섰으니까.

         

       ‘프란체를 위협하는 놈들은 다 죽일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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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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