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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탑 뚫을게요. 포격 지원해주세요.》

        

       《저 지금 캐스팅 중이에요! 30초만 기다려주세요.》

        

       《뚫다 보면 타이밍 맞을 테니까 걱정마세요.》

        

       말도 안 되는 오더라는 태클을 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설득은 충분한 무력이 없는 자의 것이라는 무도(無道)한 소리를 주워섬기던 저 미친년은, 과연 복잡한 설명을 대신할 성과를 쟁취해내고 있었으니.

        

       매의 눈을 활성화해서 공유받은 이예나의 시야는 거대한 방패를 앞세운 성기사로 가득차 있었다.

        

       움직임도 둔하고 공격력도 낮으나, 경로를 차단하는 데는 특화된 빌드. 피지컬이 딸려서 긍지 없는 고기방패가 되었다는 비난만 감수할 수 있다면, 그 효율성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패를 든 기사 본인의 오른쪽 시야조차 절반은 가릴 정도로 거대한 벽은, 이동형 요새와도 같았으니.

        

       최선책은 쉴드 따위로 막아낼 수 없는 마법 포격을 쏟아부어 벽을 걷어낸 후 잘라내는 것이고, 차선책은 순간적인 협공으로 방어의 공백을 찌르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공유받은 시야가 가벼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앞뒤로 느긋하게 스텝을 밟으며 공간을 장악한 도적이, 공격이 가능한 사거리에 들어갔다가 다시 빠지기를 여러 차례.

       

       연계된 공격이 쏟아져 나올 것을 경계하며 매번 방패 뒤로 숨던 기사로서도, 슬슬 스텝의 리듬을 파악하고 카운터 타이밍을 재기 시작할 시점이었다.

        

       -턱.

        

       빠르게 쏘아진 단검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방패에 가로막혔다. 딱히 찌를 공간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공격을 우겨 넣은 결과. 스태미너가 뭉텅 깎여 나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럼에도 도적은 재차 앞으로 스텝을 밟았다. 이어서, 어지러이 회전하는 시야. 온 몸을 비틀어 힘을 실은 강공격이 상대의 하단을 향했다.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대방패는 중립 포지션에서 조금만 아래로 움직이면 하단 공격도 원천 봉쇄가 가능하니.

        

       ‘방패를 들어올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상- 아.’

        

       -텅!

        

       제대로 힘이 실렸던 공격이 방패에 막혀 무위로 돌아가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반님?》

        

       이번 공방에서 제법 큰 손해를 입은 이예나가, 의아하다는 듯이 레반을 불렀고- 그는 한 템포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화살을 날렸다면, 당연히 상대는 방패를 들어올려 막았을 것이다.

        

       그 때 온 힘을 다해 비어버린 하단을 공격한다면? 설령 공격이 실패하더라도 수비자세는 반드시 무너트릴 수 있었을 터이고- 궁수의 2차 공격으로,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었겠지.

        

       성공했다면, 정석적이고도 훌륭한 연계기였을 거다.

        

       타이밍을 창조해서 전열을 뚫어낸다는 점에서, 궁수 유저의 하이라이트라면 반드시 포함되는 전형적인 ‘궁수 캐리’ 장면이기도 했을 거고.

        

       하지만, 전열에서 싸우면서 궁수가 언제 어디를 지원할지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나오나는 아군의 시야까지 확인되는 친절한 게임이 아니니.

        

       ‘뭘 믿고 그걸 전제로 했나 했더니.’

        

       그러나 애초에 궁수가 자신의 교전을 보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궁수가 매의 눈으로 시야를 공유받으면, 시야를 공유하는 캐릭터의 상공에는 주먹 한 개 정도 크기의 반투명한 매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아까 시야가 위로 흔들릴 때 매를 확인하고는, 지원사격을 전제로 교전했다고.’

        

       그 찰나에 매가 생겨난 걸 보고는, 궁수가 완벽한 타이밍으로 방패 움직임을 유도해서 빈틈을 창출할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하지만-

        

       프로 경기면 모를까, 전투 중에 매를 확인해가며 그런 계획을 짜는 사람은 없다. 프로라면, 애초에 보이스로 서로 소통했을 거고.

        

       그러니 레반이 이예나의 생각을 눈치채지 못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뒤늦게나마 유추한 것만으로도 그의 게임 센스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리라.

        

       “아따먹님 볼게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도적은 재정비를 하겠다는 듯이 한 걸음 물러나며 가벼운 견제를 뿌렸다. 마지막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기사로서도, 방패를 앞세운 채 전진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

        

       매의 눈을 해제함과 동시에 활시위를 한 차례 당기고, 속사를 활성화하며 두 번째 화살까지 연이어 쏘아냈다. 포물선을 그린 첫 화살은 방패를 두들겼으나- 그리 생겨난 빈틈을 이예나가 놓칠 리가 없었다. 두 번째 화살이 기사의 몸을 꿰뚫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 템포 늦었지만, 완벽한 연계였다. 

       

       『와』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렸다』

       『ㅁㅊㄷㅁㅊㅇ 궁수도 잘하네』

       『궁수캐리 오랜만에 보네』

       『원래 궁수 했나?』

          

       《커버 좋았어요.》

        

       능청스럽게 그에게 공을 돌리는 목소리와 함께, 미니맵의 도적 아이콘이 기어이 상대가 점령한 첨탑에 진입했다.

        

       그리고 약 15 초 후.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 궁수가 처치되었다는 킬로그가 올라왔다.

       

       여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처음 이예나가 지원을 요청했던 때로부터 단 30초.

        

       뒤늦게 날아온 마법사의 포격은 헐레벌떡 백업을 오고 있던 상대 광전사에 적중했다.

        

       ‘뚫다 보면 타이밍이 맞는다는게, 저 얘기였나.’

        

       성기사를 뚫고 탑에 침입해서 후열을 썰어내는 일에는 애초에 포격 지원이 필요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무슨 헛소리를 해도 전황을 정확히 읽어낸 오더라고 믿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레반의 상식에는 반하더라도.

        

       《봇 뚫을게요.》

        

       작게, 웃음이 나왔다.

        

       궁수가 나오면 누가 할지를 두고 싸우자고 하길래, 당연히 궁수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번갈아가며 궁수를 고른다거나, 궁수 미러전을 통해 누가 더 실력이 좋은지를 겨루자고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레반 자신은 그러했다. 은근히 발끈해서 방을 파는 동안, 광전사로 궁수를 잡은 아따먹의 머리에 도끼를 한 번 심어준 후, 궁수를 잡고 도적의 몸을 고슴도치로 만드는 상상을 했을 정도다.

        

       아크의 필사적인 반대로 일대일 승부는 무산됐지만.

       

       3인큐를 계속하되 번갈아가며 궁수를 하며 어떤 조합이 더 좋은지 실험해보자는 합의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예나 역시 같은 마음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레반이 궁수를 잡은 턴에 저렇게 미쳐 날뛰는 걸 보고 있자면 – 그리고 궁수 슈퍼플레이 각을 만들어서 떠먹이는 걸 보고 있자면 – 눈치를 못 챌래야 도저히 못 챌 수가 없었다.

        

       분명, 지는 사람이 궁수를 하자고 했을 거다.

        

       ‘궁수 유저들이 얼마나 난리를 칠지는……당연히 생각 안 했겠지.’

        

       애정하는 캐릭터를 벌칙처럼 취급하는 걸 본 궁수 유저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다른 곳은 몰라도, 이런 저런 커뮤니티의 궁수 게시판은 난리가 날 터였다. 영향력 있는 스트리머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위키의 ‘논란’ 항목에 ‘직업 비하’가 하나 추가되었겠지.

        

       ‘하기사, 그런 걸 신경쓰면 유저수 1, 2위를 다투는 광전사에 대한 광역 도발을 시전할 리가 없긴 한데.’

        

       잡다한 생각을 할 시간이 너무 많았다. 상대 궁수나 마법사의 견제도 없고, 배후로 침투하는 광전사도 없다.

        

       상대 후열을 말 그대로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한 도적 덕분이었다.

        

       편안하고 여유롭게, 적진을 살폈다. 시야 저 편에서 허겁지겁 다시 포지션을 잡으려고 움직이고 있는 상대 궁수가 퍽 먹음직스러웠다.

        

       “궁수 옵니다. 자리 못 잡게 막을 게요.”

        

       화살을 활시위에 올리고, 저격을 활성화시켰다.

        

       -퉁!

        

       [뤼핀(궁수)님이 처치되었습니다!]

        [레바노프스키(궁수) → 뤼핀(궁수)]

        

       궁수가 주캐는 아니라지만, 은엄폐를 할 여유도 없이 뛰어다니는 궁수를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지하마저 점령하다시피 한 이예나 덕에 뒤를 의식할 필요도 없었고.

        

       ‘이렇게까지 편안하게 자리 잡고 프리딜에만 집중해도 된다면……브론즈 티어가 궁수를 잡아도 딜각 제법 나오겠는데.’

        

       커버를 원할 때는 제발 말을 좀 하라고 하기는 해야겠지만.

        

       다시 한번 웃음이 나왔다.

        

       미친년도, 상대할 때나 부담스러운 거지.

        

       우리편에서 날뛰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든든해질 지경이었다.

        

       * * * *

        

       =승리!=

        

       두 번째 실험은 제법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레반……궁수가 제법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전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실력이 상당하다. 

        

       넌 도끼보다 활이 어울려……같은 말, 하면 안 되겠지.

        

       “궁수 잘 하시네요.”

        

       이 정도 칭찬이 적당할 터였다. 너무 과하게 칭찬하면 쑥쓰러워할 테고.

        

       그간 겪어본 바에 의하면, 레반은 은근히 칭찬과 감사에 약한 타입이었다. 강퇴반사권을 거절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어찌나 격렬하게 거절하던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던 그 채팅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보내준 치킨은 먹었으려나. 뭔가 이미지상 닭가슴살에 샐러드만 먹을 것 같아서, 일부러 양념 듬뿍 치킨에 치즈볼까지 추가해서 보내줬는데.

        

       사람은 ‘선물로 받았으니 어쩔 수 없네’ 라는 핑계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그 정도 선물로는 역시 부족하겠지. 대회에 선발된 것도, 어쩌면 레반이 도와준 하이라이트 영상 덕분일지도 모르는 판에. 은혜를 모르는 금수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

       

       앞으로 방종할 때 호스팅이라도 꾸준히 해볼까.

       

       어쩐 일인지, 요즘 방송에 찾아오는 시청자가 제법 많은 편이니……도움이 되겠지.

       

       일단 오늘 깜짝 선물로 시작하는 편이 좋을 터였다. 미리 얘기하면……레반 성격상, 또 거절할 것 아닌가.

       

       사양할 필요 없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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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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